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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이팅의 진실

2018년 3월 5일 — 0

미디어와 SNS를 연일 뜨겁게 달구는 클린푸드는 과연 현대인의 건강한 삶을 찾아줄 해결책일까? 클린이팅에 숨겨진 허와 실을 파헤쳐본다.

text 정재훈 — edit 양혜연 — photograph 박상국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많이 먹어라. 정제하지 않은 식재료를 통째로 먹어라. 가공식품을 멀리하라. 소금과 설탕이 첨가된 음식을 피하라. 인공첨가물이 들어 있나 확인하라. 최근 몇 년 사이 음식 트렌드의 대세로 떠오른 클린이팅Clean Eating의 주요 골자다. 기네스 팰트로, 미란다 커, 제시카 알바와 같은 할리우드 스타들의 다이어트로도 유명하지만, 클린이팅이 지금의 대세로 굳어지도록 만든 건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의 스타들이다. 인스타그램에 해시태그(#cleaneating, #eatclean)로 검색해보면, 관련 게시물 수만 해도 8500만 개가 넘는다. 이들 사진으로 보면 클린푸드가 어떤 것인지 더 분명해진다. 주로 눈에 띄는 테마는 푸른 채소와 붉은 과일, 갈색의 견과류다. 통곡물 그래놀라, 견과류에 바나나 슬라이스와 라즈베리를 얹고 아몬드 밀크를 넣은 스무디 볼, 유기농 단호박에 방사형 농장 달걀 프라이를 곁들인 아보카도 샐러드는 그야말로 클린이팅에 딱 어울리는 음식이다.

클린이팅이 대세가 된 이유
왜 이렇게 인기인 걸까? 일부에서는 건강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단순한 식이요법이 아니라 건강과 행복을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이기 때문이라 더 큰 인기라는 설명도 있다. 하지만 진짜 답은 사진 속에 있다. 클린이팅 또는 잇클린으로 검색되는 인스타그램 사진의 대부분은 쭉 뻗은 늘씬한 몸매에 근육질의 미남미녀들이다. 음식 사진보다 인물 사진이 눈에 더 많이 들어온다. 말이 필요 없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 사진만 보고 있어도, 클린이팅의 효과에 대한 믿음이 생긴다. 설탕, 소금, 조미료로 뒤범벅인 가공식품을 멀리하고 자연 그대로에 가까운 음식을 먹는다면 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다.
우리의 잘못을 명확하게 보여준다는 사실 또한 클린이팅이 유행하는 이유로 볼 수 있다. 왜 건강하지 못한가에 대한 답을 클린이팅의 기준에 맞춰보면 쉽게 알 수 있단 이야기다. 오늘 내가 점심으로 먹은 음식들을 예로 들어보자. 잡곡밥에 채소카레를 얹어 먹었다. 귀리와 현미로만 밥을 지었으면 괜찮았을 텐데 도정한 백미를 더 많이 넣어 지었으니 내가 먹은 밥은 클린푸드가 아니다. 카레 속에 썰어 넣은 당근, 양파, 호박, 감자는 기준에 맞는다 쳐도, 여기에 넣은 카레 분말은 가공식품이니 채소카레도 클린푸드가 아니다. 양배추 샐러드도 클린푸드라고 말할 수 없다. 양배추를 잘게 썬 것까지는 좋았는데, 하필 일본식 참깨 드레싱을 곁들여 먹었기 때문이다. 초산나트륨, 5-이노신산이나트륨, 잔탄검 등의 인공첨가물이 들어 있는 참깨 드레싱이라니 클린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가공식품이다. 한 달 이상 익힌 시원한 맛의 김치와 동치미는 소금기가 너무 많고 신선하지 못하니 역시 탈락이다. 결정적으로, 지난번 칼럼에도 등장했던 선물 받은 스팸은 아예 꺼내질 말았어야 했는데 프라이팬에 구워서 세 조각을 먹고 말았다. 클린이팅의 관점에서 보면 건강을 해칠 수밖에 없는 식단이다. 유행 다이어트가 돌고 도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뱃살이 늘고 전보다 쉽게 피곤해지는 현상이 나이가 들고 운동이 부족하거나 과식, 과음의 누적 때문이라는 설명은 사실이지만 식상한 진실이다. ‘글루텐 때문이다’, ‘도정 곡물 때문이다’, ‘유제품 때문이다’, ‘클린이팅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설명은 참신하며, 한편으로 믿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이가 드는 건 어쩔 수 없고, 운동 부족, 과식, 과음도 내 잘못으로 받아들여야 하지만, ‘클린’하지 못한 음식이 불건강의 원인이라면, 내가 건강하지 못한 것은 그런 식품을 제조하고 판매한 업체들의 탓으로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유사과학의 시대
과학자의 관점에서는 클린이팅을 반대할 수밖에 없다. 과학적 사실과 사실이 아닌 것들이 애매모호하게 섞여있는 주장은 과학이 아니라 유사과학 또는 사이비과학이기 때문이다. 과학으로 포장한 그럴듯한 거짓말이 해로운 것은 그로 인해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클린푸드라는 말은 반대로 다른 음식은 더티푸드라는 뜻이 된다. 영국, 미국, 호주의 여러 전문가들이 앞다투어 클린이팅 트렌드에 대한 경고를 발하는 이유다. 수많은 사람이 클린이팅 열풍에 심취하는 바람에 거식증이나 건강음식집착증으로 시달리는 사람들의 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골다공증협회에서 진행한 최근 설문조사 결과 18세에서 24세 영국 젊은이들 10명 중 4명이 이 같은 다이어트를 시도해본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클린이팅이 사회적 성공으로 이끄는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생각에 클린이팅을 따라 하다가 비용 부담에 힘겨워하는 청년들이 늘어남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포크를 생각하다>라는 저서로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는 영국의 유명 푸드라이터 비 윌슨도 클린이팅에 반대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비 윌슨은 애초 클린이팅에 대해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철저히 반대하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한 도서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클린이팅 옹호자들에게 수모를 당하고 나서부터다. 올림픽 선수들의 영양사로 유명한 르네 맥그리거와 함께 클린이팅의 모호한 개념과 모순점에 대해 지적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클린이팅 스타 작가 매들린 쇼는 “저는 그저 긍정적인 면을 보려 할 뿐이에요”라며 눈물 흘리며 팬들의 감정에 호소했고, 윌슨에게는 (43세의) 나이 든 여자가 (27세의) 젊은 여성을 비난하다니 창피한 줄이나 알라는 쇼 팬들의 비난만 쏟아졌을 뿐이다.
현실이 이렇다. 클린이팅은 유사과학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트렌드를 주도하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젊음과 뛰어난 외모를 자랑하며 대중의 감정에 호소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섭식을 두고 논란이 벌어질 때마다 불행히도 차분한 토론보다는 연예인과 과학자 간의 인기투표처럼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다. 과학과 과학이 아닌 것을 교묘히 섞은 유사과학을 대중으로서는 구별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유행 다이어트의 진실
과일과 채소를 많이 먹는 게 건강에 유익한 것은 사실이지만, 반드시 신선한 과일과 채소가 아니어도 괜찮다. 익힌 채소와 과일, 냉동된 채소와 과일, 절인 채소와 과일도 건강에 유익하다. 클린이팅을 따른다고 반드시 채소와 과일을 더 많이 먹게 되는 것도 아니다. 주키니 호박을 스파이럴라이저에 통과시켜 스파게티 면처럼 만들어 먹는 방식이 클린이팅과 함께 유행하면서 영국에서 주키니 호박 판매량은 20%가 늘어났지만, 영국민의 전체 채소 섭취량은 여전히 권장량에 못 미친다. 통곡물이 도정한 곡물보다 영양이 풍부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른 어떤 음식을 곁들여 먹느냐 하는 전체 패턴의 문제다. 참깨 드레싱을 과하게 뿌려 먹어서 좋을 일은 없겠지만, 양배추 샐러드에 약간의 가공식품 드레싱을 뿌려 먹는다고 건강에 해로울 일도 없다. 이름이 생소한 인공첨가물이라고 몸에 해로운 것도 아니며(예를 들어 아스코르브산은 비타민 C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 가공식품을 멀리하느냐보다는 어떤 식단으로 얼마만큼 먹느냐가 더 중요하다. 과잉의 염분 섭취는 조심해야 할 순 있어도, 적절한 염분의 섭취는 건강에 필수적이다. 어디까지가 과학이고 어디까지가 과학이 아닌가를 논파하다 보면 말이 길어질 수밖에 없지만, 설명이 길고 복잡하면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기 마련이다. 여러 전문가들이 클린이팅과 유사과학의 오류를 지적하고 나서도 트렌드를 바꾸기 어려운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틀린 건 틀린 거다. 나는 클린이팅의 기준에 맞지 않는 식사를 하며, 내 평소 모습은 할리우드 스타의 몸매나 외모에는 못 미치지만 충분히 즐거우며 건강하다. 원상태 그대로에 가까운 식재료를 사다가 정제당, 정제염을 첨가하지 않고 직접 요리해서 만든 클린푸드만 먹는다고 해서 이미 건강한 사람이 더 건강해질 수는 없다. 클린이팅을 한다고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유명인의 몸매와 외모를 얻는 것도 역시 불가능하다. 더욱 어려운 것은 그들과 같은 부와 명예를 얻는 것이다. 사실은 그와 정반대로, 내가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따를수록 그들은 더욱 부유해질 거고, 내 지갑은 더욱 얇아질 것이다. 본래 진실은 지루해 보여도 진실이고, 거짓은 그럴듯해 보여도 거짓인 법이다.

정재훈은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한 후 캐나다 토론토에서 다년간 약사로 일했다. 음식만큼이나 사람들과 요리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한다. 잡지, TV, 라디오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음식과 약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전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정재훈의 식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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