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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혼술의 성지

2018년 2월 18일 — 0

가벼운 펍부터 심야식당까지 여럿보다 혼자 가기에 더 좋은 혼술의 성지를 소개한다.

1식당

가게 이름부터 노골적으로 혼술자들을 환영하고 있는 이곳은 망원동에 5년을 거주해온 손창희 대표가 이 동네에 이런 식당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마련했다. 차라리 캄캄한 것에 가까운 조도에 얼굴 아래 높이로 개인 등이 마련되어 있고 모든 메뉴는 혼자 주문해도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과 양을 갖추고 있다. 자리마다 태블릿 PC나 스마트폰을 밤새 작동시켜도 좋을 정도의 콘센트도 준비되어 있다. 혼술자를 위한 배려가 유독 돋보이는 이곳에선 사시미와 생선구이, 튀김 등 제철 식재료를 사용한 일식 메뉴를 선보인다. 모듬 사시미는 주인이 계절마다 사랑받는 생선으로 선별한 사시미 5종으로 구성된다. 손님상에 내기 전 해동지 위에서 3~4시간가량 숙성을 거치는 사시미는 수분이 빠져 육질이 부드럽고 본연의 기름 맛이 올라와 감칠맛이 배가된다. 다진 돼지고기와 닭고기에 빵가루를 입혀 튀긴 멘치카츠도 적극 추천하는 메뉴다. 한 잔씩 홀짝이다 보니 어느덧 위 속엔 술이 찰랑찰랑 느껴지고 사시미나 구이로는 어딘가 채워지지 않는 깊은 허기가 들 때, 손님들이 어김없이 주문하는 메뉴가 바로 멘치카츠.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해야 한다는 법칙을 철저히 지킨 식감과 기름기가 녹진한 고기 맛은 빈속과 마음을 넉넉히 채워준다.

· 모듬 사시미 2만2000원, 멘치카츠 1만7000원
· 서울시 마포구 포은로 52-1
· 오후 6시 30분~새벽 1시 30분(라스트 오더 12시 30분)
· 070-8246-1535


서울집시

이름부터 방랑의 기운이 완연하다.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집시처럼 양조장도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맥주를 만드는 서울집시의 첫 번째 펍이다. 간판도 없어 아는 사람만 들어오라는 느긋한 배포가 느껴진다. 테이블 자리보다 바 좌석의 비중이 더 크다는 것만 보아도 ‘혼술친화적’인 곳임을 단번에 알 수 있다. 고로 단체 손님을 지양한다. 5명 이상은 일절 받지 않는다. 옆 사람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만큼 왁자지껄한 펍이 아니어서 맥주의 맛과 향에 깊이 집중할 수 있다. 이곳에 오면 의무처럼 마셔보아야 할 맥주가 있다. 이현오 대표가 집 뒷동산에 올라 직접 채취한 야생 효모로 만든 ‘뒷동산에일’, 뮤즐리에 올라간 오트밀에 영감을 받아 영국산 페일 맥아인 마리스오터와 오트밀을 이용한 ‘오트밀IPA’는 틀림없이 맥주의 신세계로 인도할 것이다. 요리는 스몰 디시로 부담 없이 나온다. 중국식 치즈튀김, 태국식 닭튀김, 이베리코 초리소와 크림치즈, 감자샐러드와 온센타마고 등 메뉴도 방랑자를 닮아 다국적이다. 그럼에도 공간만큼은 한국의 정서를 소담히 담았다. 위로는 한옥의 서까래가, 유리창 너머로는 종묘를 둘러싼 돌담이 고즈넉한 옛 정취를 돋운다. 한번 오면 이기심이 발동한다. 아는 사람이 더 늘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빌게 될 테니까.

· 태국식 닭튀김 8500원, 감자샐러드와 온센타마고 7500원
· 서울시 종로구 서순라길 107
· 오후 5시~자정, 월요일 휴무
· 02-743-1212


두블르베

두블르베 이준재 대표는 카페 아르바이트 당시 처음 접한 와인이야말로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술’ 같았다고 한다. 이후 본격적으로 와인을 공부한 뒤 망원동에 두블르베를 차렸다. ‘ㄱ’자 바 하나가 전부인 이곳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와인 리스트다. 오로지 대표의 취향과 변심에 따라 가급적 자주 바뀌곤 한다는 리스트에 대중적인 와인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야심 차게 추가한 와인을 어느 날 길 건너 바에서 들이기라도 하면 덜컥 리스트에서 빼버리는 식이다. 비슷한 맛이라도 덜 알려진 와인을 소개하는 데 매력을 느낀다는 그는 메뉴판 속 와인 설명을 전문적인 용어가 아닌 시적인 감상으로 대신하고 있다. 가령 붉은 과실의 풍미와 벨벳처럼 부드러운 타닌감이 인상적인 레드 와인 깐띠네포베로는 ‘봄날의 소풍 같은 발랄한 기분을 느끼다’, 블랙베리, 자두의 과실 향이 약간의 초콜릿, 가죽 향과 조화를 이루는 모란데는 ‘어두운 밤하늘 아래에서 하룻밤’이라고 소개한다. 와인에 곁들일 수 있는 플레이트로는 그린 생올리브 다섯 알, 과카몰리와 비스킷 등의 간단한 안주와 아보카도브루스케타, 감바스 같은 든든한 안주로 구성된다. 홀로 술을 기울이고 싶은 센티한 날 혹은 회식 후 딱 한잔이 아쉬운 밤, 유니크한 와인을 즐기고 싶다면 이곳이 적격이다.

· 아보카도브루스케타 1만1000원, 감바스 1만5000원
· 서울시 마포구 희우정로20길 75
· 오후 6시~새벽 2시, 일요일 휴무
· 010-3159-1752


혼고

해방촌 오거리에서 골목길로 접어들면 1인 화로구이점 혼고의 작은 간판이 보인다. ‘혼자라도 괜찮아’라는 창문에 적힌 문구가 홀로 온 이의 어깨를 정답게 다독거리는 듯하다. 이곳은 아담한 1인 화로 위에 소고기를 구우며 천천히 맛을 음미할 수 있는 고깃집. 특별히 혼술족에게는 꼬치구이 하나를 더 제공한다니 혼자서도 부담 없이, 아니 되레 혼자여서 더 대접받는 공간이다. 자리를 잡으면 ‘혼고 사용설명서’란 이름의 친절한 메뉴판을 펼쳐보자. 부채살, 살치살, 토시살 등 고기 부위별 설명부터 언제쯤 뒤집으면 적당한지, 무엇과 곁들이면 더 맛있는지 각종 팁이 적혀 있다. 고기를 주문하는 즉시 주인장은 숯 중에서도 최고로 꼽는 비장탄에 불을 피우고, 마장동에서 구입한 신선한 고기를 꺼내 손질한다. 고기 외에도 새우, 키조개, 닭모래집, 채소 등 다양한 꼬치류와 숙주라면, 곤약국수, 밥과 찌개 등 든든한 식사 메뉴도 마련되었다. 1인 고깃집을 표방하지만 분위기는 결코 삭막하지 않다. 세 번 이상 방문한 단골손님들은 계절이 바뀔 때면 ‘멤버십 데이’라는 이름으로 한자리에 모이기도 한다. 따로 왔지만 둘이, 혹은 서넛이 친구가 되어 나간다. 이 공간을 매개체로 외로운 사람들이 서로 정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 손은정, 편근철 대표의 바람. 그들의 말처럼 혼고의 문을 열면 복닥복닥한 동네 사랑방의 정겨움이 느껴질 것이다.

· 부채살스테이크 1만3000원, 살치살 2만원, 꼬치구이 1000~3000원
· 서울시 용산구 신흥로 89
· 오후 5시~새벽 2시, 일요일 휴무
· 070-4067-4624


쌀롱돔므

쌀롱돔므의 바는 ‘비밀의 방’처럼 문을 두드리는 자에게만 열린다. 진한 남자의 향기가 느껴지는 쌀롱돔므는 테일러를 주력으로 바버 숍과 바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고급 맞춤 정장을 제작하는 숍의 특성상 고위 계층부터 슈트 마니아까지 이곳을 다녀가고 있다. 정땅 대표는 손님들에게 관록을 배우고 취향을 나누고 싶어서 바 운영을 시작했다고 한다. 적어도 이틀 전에 예약해야만 이용할 수 있는 이곳의 바는 손님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시작됐지만 1:1 고객 맞춤으로 운영된다는 매력으로 어느덧 바만 이용하려는 고객도 적지 않다. 정 대표는 예약 당일 아침 장을 보기 전 손님에게 그날 준비할 수 있는 신선한 재료와 메뉴를 제안한다. 메뉴는 그날의 분위기에 따라 자유롭게 구성하는 편. 여유가 있을 때는 코코뱅을 소개하기도 하고 평소엔 정 대표의 특기인 파스타를 적극 제안한다. 술은 하우스 레드 와인만 구비되어 있으며 코키지 3만원으로 원하는 술을 가져와도 좋다. 예약이 없는 날은 바를 운영하지 않고, 바 마감 시간은 마지막 손님이 떠나는 시간이다. 운이 좋다면 하룻밤 내내 혼자 이곳을 이용할 수도 있다는 말. 테일러에 대한 얕은 지식만 갖춘다면 어색함은 금세 눈 녹듯 사라질 것이다.

· 모든 요리 메뉴 1만8000원씩, 하우스 와인 7000원
· 서울시 용산구 한남대로27가길 10 지하 1층
· 오후 7시부터, 바는 예약이 있는 날만 운영
· 02-6083-1219


쿠시무라

혼술하기 좋은 바와 테이블 서너 개만 마련된 작은 공간은 미식가들에게 특히 사랑받는 야끼도리집이란 타이틀을 거머쥐고 있다. 맛의 비법은 세 가지다. 오랫동안 거래해온 공장에서 공수한 신선한 생닭, 아무리 바빠도 꼭 대표의 손에서 구워져 나가는 원칙 그리고 숯의 중앙 부분과 가장자리를 옮겨가며 불 조절을 하거나 뒤집는 때를 아는 찰나의 직관. 대표의 노하우를 전수받으려고 이곳의 종업원으로 취직한 사람도 그동안 적지 않았다. 대표는 굽는 시간이나 소스만 배워가는 사람과 오랜 시간 일하며 내공을 쌓는 사람들 사이에는 매장을 차린 후 성과에서 분명한 차이가 난다고 말한다. 이곳의 문을 연 5년 전부터 오늘까지 단 하나의 꼬치도 자기 손을 거치지 않고 나가는 법이 없는 우직함과 야끼도리를 대하는 진중함은 몇 달 만에 터득될 리 만무하다. 닭완자를 타레 소스와 온센타마고에 적셔 먹는 쯔꾸네, 촉촉한 닭 안심 사사미, 다릿살과 대파를 곁들인 네기마는 꼭 맛보아야 할 메뉴다. 혼술하러 왔대도 무뚝뚝하게 한 길만 파는 주인이 먼저 말을 걸어주지 않으니 단란한 대화를 기대하긴 힘들다. 그저 최고의 닭꼬치를 맛볼 준비가 된 혀끝 미각만으로 얼큰하게 취하고 싶다면 이곳은 더할 나위 없다.

· 쯔꾸네 4000원, 네기마·사사미 4500원씩
· 서울시 마포구 와우산로3길 13
· 오후 7시~새벽 4시, 일요일 휴무
· 02-333-2650


옥스

한남오거리 골목에 자리한 바 옥스는 드라이에이징한 스테이크와 위스키의 절묘한 조합을 자랑한다. ‘황소(OX)’를 이름 전면에 내세운 이유가 있다. 미국과 호주에서 목초를 먹여 키운 최고급 청정우를 들여와 직접 손질하고 건식과 습식으로 숙성시켜 내놓기 때문. 정육점에서나 볼 법한 숙성고가 유리 너머로 보이는 것도 이색적이다. 등심, 안심, 부채살, 티본스테이크는 물론 갈비찜, 정강이뼈찜 등 다양한 소고기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아무리 ‘소 바’라지만 소고기 이야기만 하면 섭섭하다. 옥스는 무엇보다 술로써 ‘바’ 본연의 존재 이유를 증명한다. 일본 긴자의 텐더 바 출신이자 2017년 세계 바텐더 대회인 ‘월드 클래스’ 톱 10에 이름을 올린 이수원 매니저가 바 섹션을 지킨다. 클래식한 정통 싱글 몰트위스키부터 제철 과일을 이용한 창의적인 칵테일까지 두루 섭렵한 그가 손님을 섬세하게 응대한다. 그것이 배려임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은근하다. 이를테면 과일 플레이트 위에 올려놓는 포크의 각도까지도 손으로 집기 편한 정도를 계산한다고. 웅장한 규모의 바는 홀로 가면 더욱 고독해질 법한데 이곳은 천고가 낮아 아늑한 느낌이 든다. 웰컴용으로는 보틀 워터와 과일 플레이트, 설렁탕을 제공한다. 에스프레소 잔에 담은 사골 국물을 쭉 들이켜면 본격적인 혼술을 시작할 차례. 커버 차지가 없다는 것도 상당한 기쁨이다.

· 티본스테이크(100g) 1만5000원, 부채살(100g) 1만8000원, 육포 2만원
· 서울시 용산구 한남대로18길 27 지하 1층
· 오후 6시~새벽 4시(일요일은 새벽 3시까지)
· 02-797-5200


혼자노는양

‘혼술’ 이전에 태초부터 ‘혼자노는양’이 존재했다. 기계공학도였던 이현석 대표가 10년의 직장 생활을 관두고 바를 차린 지도 벌써 햇수로 8년. ‘혼술’과 ‘샤로수길’이라는 조어가 만들어지기도 전에 이미 혼자 술 마시기 좋은 동네 와인 바로 명성이 자자했다. 혼자 바를 자주 다녔던 이 대표는 바텐더가 말을 걸어주지 않는 곳이 좋았다. 이제 주인장이 된 그는 자신과 비슷한 심정일 고객들을 위해 불필요하게 말을 건네거나 대화 속에 끼어들지 않는다. “손님을 방치한다는 의미에서 불친절한 바예요.” 덕분에 혼술객들은 순도 높은 혼자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다. 책장에 빼곡히 꽂힌 책을 꺼내 읽어도, 빈 벽에 프로젝터로 비춘 벽난로 영상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어도 누구 하나 참견하지 않는다. 스트리밍이 아닌 CD만을 재생한다는 주인의 고집 아래 흘러나오는 음악은 귀를 확 트여준다. 친절한 안내는 와인 리스트에 적힌 코멘트에 기대할 수 있다. 프랑스 샤또 메일라드 2012년산은 ‘적당한 타닌과 쌉싸래한 맛의 모범생 스타일’이고, 피노누아로 만든 한슨 비야드는 ‘미국 와인이지만 프랑스 와인 같은 느낌’이라는 설명은 어딘가 친근하다. 오븐에 구운 카망베르 치즈와 하몽 플레이트, 감바스 등 안주도 적당하다. 야근하느라 밥때를 놓친 손님을 위해 닭고기와 감자, 양파를 볶아 끓인 ‘야근카레’는 단골들만 아는 별미.

· 감바스 1만2000원, 야근카레 8000원
· 오후 7시~ 새벽 3시
· 서울시 관악구 낙성대로 22-14
· 02-871-2789

edit 이승민, 장은지 — photograph 이향아, 차가연, 유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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