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열기

main

Cook

음식과 인문학 @한성우

2018년 2월 13일 — 0

밥과 빵, 두 단어 속에 함축된 인문학에 대하여.

text 한성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바쁜 삶에 지쳐 늘 잊고 살지만 가끔씩 부딪치게 되는 질문이다. 흔히 듣게 되는 한 문장에 불과하지만 이 질문은 인간의 삶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이끌어내는 질문이기도 하다. 사전에서는 인문학을 언어, 문학, 역사, 철학 등을 연구하는 학문이라 정의하지만 그것은 책상물림들의 정의일 뿐이다. 인문학은 인간의 삶 모든 것에 대한 근본적인 답을 찾는 학문이다. 그러니 삶을 살아가는 이들 모두가 이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는 이들이고, 답을 하는 이들 모두가 결국은 인문학자이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이 질문을 소설의 제목으로 삼고 그 답을 ‘사랑’이라 한정했다. 하지만 머리와 가슴으로만 이해될 뿐 몸으로는 와 닿지 않는 답이다. 이보다는 훨씬 솔직한 답이 필요하다. 이 질문에 대해 성경은 솔직한 답을 내놓는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마태복음 4:4)’ 이 구절의 핵심은 뒤에 있지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답으로 ‘떡’을 제시하는 앞부분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그런데 ‘떡’이 이상하다. 명절이나 잔치 때 먹는 떡, 끼니라기보다는 주전부리에 가까운 떡이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떡 없이도 충분히 살 수 있으니 이것을 ‘하나님 말씀’과 대비시킨 것이 엉뚱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성경을 찾아보면 각각 bread, Brot, pain으로 나오는데 모두 빵을 뜻한다. 일본어 성경에서도 ‘빵(パン)’으로 나온다. 중국어 성경에서는 ‘먹을 것’으로 번역되는 ‘食物’로 나오니 우리의 번역이 확실히 잘못되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전후의 맥락을 살펴보면 성경이 전해지기 시작하던 1800년대 후반 번역자의 고민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 땅에 밀가루 반죽을 부풀려 구워낸 음식이 아예 없으니 그 음식을 뜻하는 말도 없었을 것이다. 중국어처럼 ‘먹을 것’이라고 의역을 하거나 ‘밥’으로 번역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다. 결국 최초의 번역자는 고민 끝에 ‘떡’을 택한다. 그리고 100여 년이 지난 뒤 우리말 성경에서도 ‘떡’이 비로소 ‘빵’으로 바뀐다. 음식도, 그것을 가리키는 이름도 비로소 익숙해지게 되니 이제 본래대로 ‘빵’으로 번역해도 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그리고 이 성경 말씀대로라면 믿음이 없는 사람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질문의 답을 ‘빵’이라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답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하나님 말씀’이 아닌 ‘빵’을 답으로 삼아서가 아니다. 이 구절의 번역은 아직은 ‘밥’이어야 한다. ‘밥’은 껍질을 벗겨낸 쌀을 솥에 안쳐 지어낸 것을 뜻하기도 하지만 넓게는 먹을 것 전부를 뜻하기도 한다. ‘밥상’이라고 하면 오로지 밥만 올려놓은 상이 아니라 좁은 의미의 밥은 물론 국과 찌개, 그리고 반찬을 모두 올려놓은 상을 의미한다. 밥 대신 빵을 먹어도 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여전히 빵은 밥이 아니라고 믿는 이들도 있는 상황이니 성경 원문에는 ‘빵’이라 되어 있어도 맥락에 맞게 번역하자면 ‘밥’이어야 한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질문은 훨씬 더 고차원적인 질문이지만 이 질문을 먹을 것, 혹은 음식에 대한 질문으로 격을 낮추어도 결국은 인문학의 최고 경지에 이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빵’을 무엇으로 번역하는가의 문제는 결국 언어의 문제이니 자연스럽게 언어학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고, ‘빵’이 먹을 것 전체를 비유적으로 쓴 것임을 아는 순간 문학을 이해한 것이다. 빵이 없던 시대였다가 빵이 익숙해진 시대를 아는 것은 시간의 흐름을 다루는 역사학에 입문한 것이기도 하다. 사소한 질문에 하찮은 답이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결국은 인간의 삶에 대한 답이고, 인문학의 사전적 정의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밥은 밥이고, 쌀은 쌀이다. 우리말의 역사 전체를 살펴봐도 밥과 쌀 이외의 다른 말은 발견되지 않는다. 그리고 전국 구석구석의 방언을 뒤져봐도 역시 밥과 쌀을 대신할 말은 없다. 우리의 삶이 쌀과 그것을 원재료로 해서 지은 밥에 얼마나 많이 천착되어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밥과 쌀이 사라지고 있다. 1940년대와 비교해보면 밥그릇의 크기는 반으로 줄었고, 1970년대와 비교해보면 1인당 하루 쌀 소비량도 반으로 줄었다. 탄수화물이 성인병의 주범으로 취급받다 보니 ‘고봉’이란 말도 사라졌다. ‘밥심’이 결코 ‘고기심’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고 이 말도 결국은 사라질 운명이다.

‘밥상’이 ‘식탁’으로 대체되어가고, 빵 한 조각과 우유에 만 시리얼 한 대접이 ‘밥’이 되기도 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란 번역이 본래의 맥락에 맞지 않는다고 느낄 이도 사라질지 모른다. 그때가 되면 학교 교육보다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 가정 교육도 ‘밥상머리 교육’이 아닌 ‘빵탁머리 교육’이라 불러야 할지 모른다. 그래도 편안하고 배부르게 먹는 것이 먼저다. 그래야 ‘빵’이나 ‘밥’이 아닌 ‘사랑’이란 답이 나올 수 있다.

한성우는 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 전공 교수다. 서울대학교 국어국문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과정을 밟았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우리 음식의 언어>가 있으며 그 외 <대중매체 언어와 국어음운론 연구>, <텔레비전 자막에 대한 시청자의 반응 연구> 등이 있다.

이 기사도 읽어보세요
오파스 태국 음식과 칵테일을 즐길 수 있는 연남동의 오파스Opas. 핫 플레이스로 유명한 이곳을 제대로 들여다보았다. edit 권민지 — photograph 안세경 ©안세경 The Pro - 안세경 뉴욕 C...
아침밥 맛집 출출한 아침, 든든하게 해결할 수 있는 맛집부터 주문 배송 전문점까지 모았다. edit 이윤정 © Irina peicu 마리앤마사 미국 가정식 샌드위치를 기본으로 한국인 입맛에 맞게 레시피를 개발...
신창호의 주옥 미쉐린 스타를 처음 획득한 신창호 셰프. 주옥의 문을 연 지 꼭 1년 반 만의 일이다. 제철 식당 주옥 지난 11월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18>이 발표되면서 사람들 사이에 크게 회자된 두 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