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열기

main

People

임정식의 평화옥

2018년 2월 8일 — 0

정식당의 임정식 셰프가 곰탕집을 열었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18>에서 2스타를 받은 파인다이닝 셰프가 서민 음식을 하겠다니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찾아갔다. 그의 새로운 식당 ‘평화옥’으로.

곰탕 끓이는 미쉐린 2스타 셰프

임정식 셰프. 잘은 모르지만, 그는 천성적으로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부류가 아닌가 싶다.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짓다가도 요리 얘기를 할 때면 이내 진지해진다. 그러다가도 다시 눈에 반짝하고 장난스러운 빛이 스친다. 요리를 그리고 요리를 둘러싼 모든 것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정식당, 뉴코리안 다이닝, 한국인 최초로 <미쉐린 가이드 뉴욕>의 별을 받은 셰프, <미쉐린 가이드 뉴욕과 서울>의 2스타 셰프··· 지금까지 이름 앞에 붙던 몇 가지 수식어만으로는 더 이상 그를 설명하기 어려워졌다. 재기 발랄함과 불도저 같은 추진력으로 남다른 행보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핀셋을 들고 맛과 담음새에 섬세함의 극치를 보여주던 파인다이닝 셰프가 가장 서민적인 음식 중 하나인 곰탕, 맞다 바로 그 곰탕에 도전장을 냈다. 그가 새롭게 문을 연 ‘평화옥’에서는 소고기 육수를 기반으로 한 남과 북을 대표하는 메뉴를 선보인다. 매운 곰탕, 평양냉면, 어복쟁반 등이 그것이다. 이제 임 셰프는 냄비를 국자 삼아 들고, 사람 세 명은 너끈히 들어갈 대형 솥에 500인분의 육수를 끓인다. 한겨울에도 흰 반팔 티에 야구모자.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될 것 같다.

한식의 관문, 평화옥

1월 18일 인천공항 제2터미널이 오픈했다. 같은 날 아침 6시부터 평화옥도 영업을 개시했다. 최근 푸드 신에서 가장 큰 기대를 모으는 곳인 평화옥은 개인이 만든 단일 브랜드로는 처음 인천공항에 입성했다. 인천공항의 제안으로 성사된 일이다. 처음엔 서울 시내의 한 특급 호텔에 평화옥을 열 생각이었다. 도쿄 긴자에 오픈을 준비하기도 했다. 두 건 모두 계약 직전까지 갔지만 돌연 방향을 틀어 인천공항에 평화옥 매장을 오픈했다. 서울 중심지가 아닌 인천공항에 매장을 연 이유는 ‘한국의 입구’에서부터 진짜 한식을 만나게 하고 싶어서다. 하지만 공항이라는 특수성에는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닐 터. “공항 음식점에는 근처 공장에서 만든 것을 데워 서비스하는 경우가 많아요.” 식재료 수급이 원활하지 않아 직접 나가서 사와야 할 때가 많고, 위치 탓에 직원들을 고용하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그는 식당 안에 과감하게 주방을 짜 넣었다. 프렌치 스타일로 구성한 주방의 한쪽은 핫 파트로 곰탕을, 다른 한쪽은 콜드 파트로 냉면을 만든다. 만두를 빚는 것은 물론 김치도 담근다.

평화옥의 탄생

레스토랑을 한두 번 오픈하는 것도 아닌데 평화옥의 준비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꼬박 1년이 걸렸다. 그동안 임 셰프는 스무 차례가 넘게 팝업 레스토랑을 열어 연습하고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했다. 그 과정이 평화옥의 기반을 단단하게 다져주었다. “곰탕에 고기를 많이 넣으면 더 진하고 맛있을 줄 알았는데 직접 해보니 그게 아니더라고요.” 임 셰프는 오랜 시간 사랑받는 노포의 대단함을 피부로 느꼈다. “노하우라는 게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셰프는 정식당을 통해 연마한 주방의 테크닉을 평화옥에 적용했다. “콤비오븐에 김치찜을 하면 더 효율적이죠. 더 균일하게 잘 익어요. 달걀을 수비드해 비빔밥에 올려보기도 했어요. 녹진한 맛과 비빔밥의 마른 재료에 촉촉한 텍스처를 주고 싶었죠.” 안타깝게도 비빔밥은 오픈 직전 메뉴에서 빠졌지만, 솥밥과 같은 평화옥의 정식 메뉴에는 오븐에 익힌 수란이 곁들여진다. 셰프가 메뉴만 개발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150여 평, 150석 규모의 매장에는 그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로고부터 시작해 테이블, 식기, 오브제 등 머릿속에 그려온 평화옥의 모습을 실제 공간에 실현하기 위한 작업이 계속됐다. 입구의 바 좌석부터 프라이빗 룸, 신발을 벗고 식사할 수 있는 좌식 테이블까지 각기 다른 콘셉트로 공간을 구성했다. 홀 중앙에는 40명이 앉을 수 있는 커뮤니티 테이블을 배치했고 그 한 가운데 김치, 장아찌, 깍두기와 같은 반찬 항아리를 두어 손님이 직접 덜어 먹을 수 있도록 했다. 한국의 반찬 문화를 알리고 불필요한 음식 낭비를 없애자는 발상에서다. 정식당이라면 디저트 트롤리가 더 어울리겠지만 평화옥을 위해 김치카트를 제작했다. 테이블을 돌면서 부족한 김치와 음료, 참기름 등을 손님들에게 채워줄 예정이다. 평화옥 곳곳에 비치된 금속 기물들 역시 특별 제작했다. 몰드를 제작해 오직 평화옥에서만 사용하는 디자인의 그릇을 만들었다. 뜨거운 국물 요리를 서빙할 수 있도록 이중으로 그릇을 만들어 기능적으로도 편리성을 더했다.

리얼 코리안 푸드

대한민국에서 가장 성공한 셰프 중 하나인 임정식 셰프는 평화옥을 준비하며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새로운 시도는 그가 즐겨 하는 방식이고 늘 남들보다 조금 빨랐다. 임 셰프는 비즈니스맨으로 한 단계 도약했다. 한식 비스트로 ‘월향’ 이여영 대표와의 결혼이 시너지로 작용했다. 이전에는 요리에 더 몰입했다면 이제는 전반적인 식당 운영에 대한 밸런스까지 배운 것이다. 그는 콘셉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개성을 담자는 것이다. “와이프와 식당 콘셉트를 고민하다 뉴욕 UN 본부 앞에서 ‘뉴 노스 코리안 다이닝’을 한번 해보자는 얘기를 농담처럼 했죠.” 어찌 보면 북한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나라인데 사람들은 독재 정권만 알고 그 나라 문화에 대해선 잘 모른다. “외국에서는 ‘노스 코리아 푸드’라는 말 자체를 들어본 일이 없어요. 어떤 종류가 있는지 잘 알려지지도 않았죠.” 북한식 매운 곰탕이 바로 평화옥의 대표 메뉴다. ‘양곰탕’이라고도 부르는, 내장과 고춧가루 양념을 넣고 끓인 곰탕. 먹기 쉽고 간편하면서 탕반 문화인 한국적 특색이 짙은 메뉴다. 임 셰프는 뉴욕에서 요리학교 CIA를 졸업하고 2011년부터 뉴욕에서 한식을 기반으로 하는 레스토랑 ‘정식Jungsik’을 운영하고 있다. 뉴욕 생활을 통해 베트남 쌀국수, 태국의 똠얌꿍, 일본의 라멘 같은 국물 음식이 전 세계인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자리 잡는 것을 보고 곰탕의 가능성을 봤다. “국물과 탄수화물의 조합에 비주얼도 강렬하잖아요. 매운 곰탕은 분명한 캐릭터가 있는 음식이에요. 국에 밥을 말아 먹는 것도 신기하고 생소한 문화죠.” 또 ‘매운 음식’은 세계 시장에서 더 이상 장애물이 아닌 매력이라고 말한다. “뉴욕 정식에서는 외국 사람들이 김치를 찾고 매운 것도 더 좋아해요.” 특히 다민족 다문화 국가인 미국에서는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이 없다는 것이 임 셰프의 설명이다. 평화옥의 김치 또한 이북식이다. 고춧가루와 같은 양념을 줄여 샐러드처럼 가볍고 시원한 맛으로 즐길 수 있다. 한편, 몇 년 전부터 임정식 셰프의 SNS에는 연일 새로운 냉면 사진이 올라오곤 했다. 그의 냉면 순례는 직접 만들기로 이어졌고 급기야 냉면을 팔기에 이르렀다. 메밀 함량 65% 정도로 메밀 향은 유지하면서 탄력 있는 식감을 내기 위해 몇 번이고 레시피를 고쳤다. 3월 ‘냉면 개시’ 때까지도 테스트는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닭튀김이 평화옥 메뉴판에 이름을 올렸다. 오이와 무, 깻잎, 청양고추를 넣은 짭조름한 장아찌를 함께 낸다. 과거 대표적인 한식이 비빔밥, 불고기였다면 10년 사이 고기구이와 치킨이 외국인이 사랑해 마지않는 한식으로 자리매김했다. 평화옥은 과거의 전통적인 한식보다는 동시대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진짜 한식’을 선보일 예정이다. 셰프의 아이디어의 원천이 어디인지 묻자 먹고살아야 한다는 호방한 답이 돌아왔다. “결과물이나 소비자가 느끼는 높낮이는 비슷하니 스피드가 중요해요.”

9년 차 오너셰프의 달라진 하루

작년 11월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18>에서 정식당이 2스타를 받았다. 소감을 묻자 의외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1년 더 할 수 있겠구나.” 임 셰프는 파인다이닝 셰프가 공통적으로 가진 고민을 털어놨다. 불안함이다. 일상식과 달리 어쩌다 한번 먹는 고급 음식은 경기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메르스, 사드, 김영란법… 매년 최소 두 번씩 꼭 일이 터져 그를 괴롭힌다. 오픈 초반엔 10년쯤 되면 안정화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동안 1년이라도 마음 졸이지 않은 적이 없다. “별을 받는 것은 순간이고 멋있는 거지, 여전히 힘들어요.” 처음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17>이 발간되었을 때는 언론과 대중의 관심이 워낙 대단해 예약이 꽉 찼었는데 올해는 사정이 사뭇 다르다. <미쉐린 가이드>에 대한 부정적인 뉴스가 나오고 관심도 떨어진 것이 원인이다. 파인다이닝은 좋은 재료를 쓰고 인력도 많이 필요로 한다. 또 가격 저항선이 있어 제한된 손님이 반복해 오기 때문에 메뉴를 지속적으로 바꿔야 한다. 그래서 시스템을 만들기가 힘들다. 반면 대중식당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기 때문에 시스템만 잘 만들면 큰 부담 없이 운영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올해로 정식당은 오픈한 지 만 9년이 됐다. “제가 가진 능력 이상으로 성과가 났다고 생각해요. 이제 다음 것을 해야겠다는 마음도 생겼죠.”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에서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음식을 떠올렸고, 세계 시장에서 성공한 메뉴와도 부합하는 곰탕이 최종 낙점되어 평화옥의 구체적인 기획이 시작됐다. 화려한 타이틀에도 불구하고 임 셰프는 새로운 도전을 주저하지 않았다.

이미 노련한 셰프인 그는 더 이상 장을 보러 가거나 주방에 오랫동안 머물지 않는다. 정식당 역시 그가 상주하지 않아도 잘 굴러간다. 몇 달쯤은 뉴욕을 비롯한 해외에 머문다. 하지만 평화옥 오픈을 준비하며 그의 일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임정식 셰프의 하루는 이제 청담동도 뉴욕도 아닌 인천에서 시작한다. 짐을 싸 인천으로 이사를 왔다. 평화옥이 안정될 때까지 이곳을 떠나지 않을 생각이다. 다시 처음처럼 주방에서 보내는 나날들이 시작되었다. 오픈 당일 “지금 죽을 것 같아요”라고 고백하던 셰프는 메뉴판에 있는 음식 종류부터 대폭 줄이지 않을까 싶다. 아직은 평화옥의 평범한 일과를 그도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평화옥은 오래 끓인 곰탕처럼 진국이 우러날 것이다. 임정식 셰프의 목표는 비단 평화옥의 성공이 아니다. 평화옥 뒤에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평화옥은 바로 세계 진출을 위한 실험실이다. 한국인은 물론 다양한 인종이 드나드는 이곳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고기 메뉴를 더한 평화옥 업그레이드 버전을 준비하고 있다. 해외에서도 많은 러브콜을 받고 있다. 평화옥 오픈 전 대표 메뉴인 매운 곰탕을 맛보는 행운을 누렸다. 매콤한 양념과 내장의 고소함이 진하게 느껴지는 매운 곰탕 한 그릇을 비우니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한국인과 외국인의 입맛을 동시에 사로잡을 수 있는 한식을 만들고자 고군분투한 흔적이 역력하다. 의심하지 않았지만 역시 맛있다. 그는 비즈니스라 말하지만, 좋은 고기를 넣고 허투루 만들지 않은 셰프의 고집은 뜨끈한 곰탕 한 그릇에 오롯이 담겨 있다. 어쩌면 이제 공항 가기 전날 술을 잔뜩 마셔야 할지 모르겠다. 매운 곰탕을 더 맛있게 먹기 위해.


임정식 셰프가 선보이는 평화옥의 음식

소고기 육수를 기반으로 한 남과 북을 대표하는 메뉴.

1. 매장에서 직접 손으로 빚어 찐 고기만두.
2. 북한식 전골인 어복쟁반은 각종 채소와 곱창, 양지 사태 등의 고기 냄비에 담고 육수를 부어 끓여 먹는다.
3. 평화옥의 대표 메뉴인 매운 곰탕은 매콤하고 진한 맛이 일품이다.
4. 여러 번 레시피를 수정하며 면발에 힘을 준 평양냉면.

edit 박선희 — photograph 이과용, 박상국

이 기사도 읽어보세요
우리가 몰랐던 버터 이야기 꿀과 함께 허니버터로 이름을 날리던 버터는 이제 고지방 저탄수화물 다이어트와 함께 다시 한 번 화제의 주인공이 되었다. 왜 일까. 그리고 우리는 버터를 어떻게 먹어야 할까. text 정재훈 — edit 전보라 ...
엔젤스 쉐어 @김종관 연남동 엔젤스 쉐어(Angel's Share)는 ‘어쩌다 가게’ 점포 중 하나인 위스키 바다. 작고 아름다운 곳으로 다양한 위스키와 칵테일들이 구비되어 있다. 위스키를 좋은 잔과 좋은 얼음으로 즐길 수 있다. 한 사...
레스토랑 ‘오늘’의 박정석 셰프... The Chef of O’neul, 박정석이라는 사람 <올리브 매거진 코리아>는 한식을 새로운 시각으로 풀어내는 셰프를 만난다. 그 두 번째 여정은 동빙고동 '오늘'의 박정석 셰프다. 레스토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