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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닭갈비와 과학 @정재훈

2018년 2월 1일 — 1

원래 한 몸이었던 것처럼 우리에게 익숙해진 치즈와 닭갈비의 조합은 우연이 아니다. 쫄깃한 모차렐라 치즈와 매콤달콤한 닭갈비가 만들어내는 맛의 하모니 속엔 생각보다 많은 과학적 근거가 숨어 있다.

text 정재훈 — edit 양혜연 — photograph 이향아

치즈닭갈비의 재조명
시들어진 유행인 줄 알았는데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뜨거운 인기다. 2017년 쿡패드 ‘음식 트렌드 대상’을 차지하기까지 했다. 쉬운 일이 아니다. 쿡패드는 281만 종의 레시피를 공유하며 20년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최대의 레시피 사이트이다. 여기에서 2017년 1월 1일부터 11월 20일까지 약 8만 개의 검색어를 대상으로 한 데이터 분석과 뉴스 조회수를 바탕으로 가장 주목받았던 요리가 한국의 치즈닭갈비였다. “치즈 범벅인 닭갈비가 뭐가 좋다는 건지 모르겠다.”, “일본이나 우리나 젊은 친구들이 맛을 모르는 건 마찬가지구나.” 아재들의 한숨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뭔가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치즈닭갈비가 일약 스타로 떠오른 배경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고 있었던 과학적 원리가 숨어 있지 않을까?

푸드 페어링의 과학
합리적 가격, 간편한 요리법, 시즐감이라는 일본식 신조어에 딱 들어맞는 겉모습 등의 여러 요소가 치즈닭갈비의 인기 비결이라 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대중 음식의 성공 조건은 맛이다. 치즈닭갈비가 한국을 넘어 일본에서까지 젊은 층의 트렌드를 주도하는 음식이 되었다는 것은 치즈와 닭갈비가 풍미의 조합 면에서도 적절했다는 의미가 된다.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과학자들에 의하면 가능한 식재료의 조합은 1000조 이상인데 실제 사용되는 레시피는 수백만에 그치며, 그들 중 상당수가 중복이라는 것이다. 요리할 때 아무 원칙 없이 무작위적으로 식재료를 섞는 게 아니라 일정한 원칙에 따라 페어링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이제 치즈닭갈비에 숨어 있는 식재료 조합의 원칙을 찾아보자. 지금으로부터 26년 전인 1992년 영국의 스타 셰프 헤스턴 블루멘탈과 향미화학자 프랑수아 벤지는 ‘푸드 페어링 가설’이라는 이론을 세웠다. 비슷한 풍미를 공유하는 식재료들일수록 요리에서 잘 어울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화이트 초콜릿과 캐비아는 생뚱맞은 조합처럼 들리지만 트리메틸아민을 비롯한 여러 종의 향미화합물을 공유하므로 의외로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초콜릿과 블루 치즈도 서로 맞지 않을 듯한 음식이지만 73가지 향미화합물을 공유한다. 레스토랑 팻덕의 유명한 디저트 메뉴 ‘몰턴 초콜릿과 블루 치즈’는 여기에 착안하여 만든 메뉴다. 푸드 페어링 가설은 치즈닭갈비에도 들어맞을까 궁금해진다. 다행히 이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푸드 페어링 가설이 나오고 20년이 지난 2011년 12월, 자신의 저서 <링크>로 유명한 알버트 라즐로 바바라시를 포함한 네 명의 이론물리학자들이 5만6000종의 레시피를 분석한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블루멘탈과 벤지의 가설에 착안하여 식재료의 향미화합물 공유도에 따른 연결망을 그려보았더니, 서구식 레시피에 풍미 물질을 더 많이 공유하는 식재료들일수록 함께 쓰고, 그렇지 않은 것일수록 조합을 피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를테면 모차렐라 치즈, 파르메산 치즈, 버섯, 토마토는 강한 치즈 향의 4-메틸발레르산이라는 향미 성분을 공통으로 가지고 있어서 피자와 같은 음식에 흔히 함께 쓰인다는 것이다. 이들 연구팀의 자료에 따르면 구운 닭고기와 치즈는 무려 62가지 향미화합물을 공유한다. 치즈와 닭갈비는 실패하기 어려운 조합이다. 이 정도면, 맛을 모르는 젊은이들의 음식이 아니라 맛을 제대로 아는 젊은이들의 선택이라고 봐야 맞을 듯하다.

치즈닭갈비의 계보
푸드 페어링 가설만으로 치즈닭갈비의 조합을 온전히 설명하기는 어렵다. 음식의 향미 성분이 겹치는 게 반드시 좋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쉬운 예로, 참치 김밥을 먹을 때 커피를 함께 마시면 생선 비린내가 날 때가 있다. 커피와 참치는 생선 비린내를 풍기는 트리메틸아민이란 향미 성분을 공통으로 함유한다. 각각을 따로 먹을 때는 농도가 낮아서 느끼지 못할 수준인데, 둘을 함께 먹으면 비린내가 강해지는 것이다. 앞서 소개한 연구 결과에서도 서구의 조리법은 향미 성분이 공통된 재료들을 묶는 경향이 나타났지만, 동아시아 음식 조리법은 푸드 페어링 가설과는 반대로 중복을 피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게다가 치즈는 다른 음식의 향미를 억눌러서 감지하기 어렵게 만드는 음식이기도 하다. 캘리포니아대학 힐드가드 헤이만 교수에 따르면, 치즈를 먼저 시식하도록 한 뒤 와인 맛을 평가하도록 하면 전문가들도 와인의 섬세한 향미를 감별하기 어려워진다고 한다. 우리가 냄새를 맡으려면 우선 향미 성분이 휘발하여 콧속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치즈 속 카세인과 같은 단백질이 와인의 향미 성분과 결합하여 휘발을 막기 때문이라는 추측이다. 특정 와인과 치즈의 페어링이 더 맛있다고 느낀다면 그건 순전히 당신의 상상 또는 소믈리에의 멋진 설명 덕분이라는 게 헤이만 교수의 결론이다. 다시 치즈닭갈비로 돌아가보자. 닭갈비 위에 뿌려주는 치즈의 역할은 닭갈비의 강한 풍미를 부드럽게 완화시켜서 조금 더 먹기 편하게 만들어주기 위함일 수도 있다. 치즈떡볶이, 치즈불닭, 치즈등갈비에서 치즈닭갈비까지 이어지는 새로운 한식의 계보에 치즈가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은 맵고 자극성이 강한 음식 맛을 즐기기 위한 방편일지 모른다. 매운 음식을 먹고 우유나 요구르트를 마시면 도움이 되듯, 모차렐라 치즈 속 카세인 단백질이 캡사이신과 결합하여 입 안의 고통을 줄여주는 것이다.

누가 미식을 이끄는가
긴말이 필요 없다. 먹어보면 답이 나온다. 집 근처 치즈닭갈비집을 찾았다. 맛은 딱 기대했던 만큼이었지만, 피자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풍성하게 올린 치즈에 깜짝 놀랐다. 어린 시절, 피자 위에 올린 모차렐라 치즈가 너무 맛있어서, 치즈만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먹어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꿈이 현실로 된 느낌이었다. 먹고 나서 포만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참 많은 게 달라졌다. 20년 전의 닭갈비에도 정말 닭의 갈비 부위만 나오는 건 아니었지만, 먹고 난 느낌은 계륵이라는 고사성어를 몸으로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뭔가 부족한 느낌이 있었다. 뼈를 발라내고 나면 먹을 게 별로 없었다. 이제는 아예 뼈를 발라내고 고기만 나온다. 닭갈비라는 말만 남았을 뿐, 실제로는 닭 다릿살이다. 치즈를 듬뿍 얹은 닭갈비는 볶음밥 없이도 충분한 포만감을 줬다 (물론 볶음밥도 먹었다). 음식의 단백질 함량이 높아질수록 위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고 포만감도 오래간다. 먹어도 금방 배고플 나이의 청년에게 치즈닭갈비가 인기를 끌 만하다. 찾아보면 치즈닭갈비의 장점은 계속 나온다. 글루탐산이 풍부한 치즈와 닭고기의 조합이다, 쭉쭉 늘어나는 모차렐라 치즈가 쫄깃한 닭 다릿살과 함께 씹히는 맛이 좋다는 것도 이유가 될 만하다. 치즈 범벅인 음식을 뭐가 좋다는 거냐며 무시하기에는 재미있는 요소가 많이 숨어 있다. 하지만 치즈닭갈비 현상에서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이 음식이 젊은 층에서 인기라는 사실이다. 한국, 일본에서뿐만 아니라 더 멀리 싱가포르에서도 치즈닭갈비에 열광하는 것은 주로 젊은이들이다. 인스타그램 사진과 유튜브 동영상으로 음식을 즐기기 시작한 것도 역시 젊은이들이다. 쿡패드가 치즈닭갈비를 2017년 음식 트렌드의 대세로 인정했다는 것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미식의 주도층이 바뀌고 있다는 사실의 방증일 수도 있다. 아무 맥락도 없이 모차렐라 치즈와 파르메산 치즈를 닭갈비에 얹어 먹는 게 무슨 미식이냐며 반문할 수 있다.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건, 위에 길게 썼다. 한 가지 사실을 더한다면, 다양한 맛의 치즈를 즐기는 게 미식이 된 것도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치즈는 오랫동안 하층민의 음식이었다. 요즘 방송에선 우유의 영양을 농축한 치즈라며 치켜세우지만, 중세 이후까지도 많은 의사들이 치즈가 건강에 해로운 음식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치즈를 무시하던 이탈리아 귀족들이 마침내 그 맛을 깨닫게 되자 다음과 같은 유명한 격언이 만들어졌다. “가난한 소작농이 치즈를 (서양)배와 함께 먹으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게 하라.” 그들이 무시했던 농민들은 나중에 여기에 후렴구를 붙였다. “하지만 농민들은 귀족보다 먼저 배와 치즈가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 오늘날, 젊은 입맛을 무시하려는 미식가 아재들이 귀담아들어야 할 격언이다.

정재훈은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한 후 캐나다 토론토에서 다년간 약사로 일했다. 음식만큼이나 사람들과 요리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한다. 잡지, TV, 라디오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음식과 약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전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정재훈의 식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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