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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호의 주옥

2018년 1월 19일 — 0

미쉐린 스타를 처음 획득한 신창호 셰프. 주옥의 문을 연 지 꼭 1년 반 만의 일이다.

제철 식당 주옥

지난 11월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18>이 발표되면서 사람들 사이에 크게 회자된 두 부류가 있다. 작년에 이어 미쉐린 스타를 유지한 인지도 있는 셰프들과 푸드 신 전면에 드러나지 않았으나 별을 획득하며 새롭게 떠오른 재야의 인물들. 주옥은 후자에 해당한다. 청담동 골목 뒤편에 아담하게 자리한 주옥은 위치부터 대로변 뒤에 숨어 있다. 이곳이 맞을까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곧 붉고 네모난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임을 알리는 작지만 위엄 있는 간판. 그 위로 ‘주옥’이라 또박또박 쓴 한글 상호가 보인다. 제대로 찾아온 것이 맞다. 입구 안쪽 테이블에는 미쉐린 트로피와 투박한 채소가 나란히 놓여 있다. ‘동아’라는 박과의 한 종류다. 이는 주옥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말해준다. “주옥은 한마디로 계절의 맛을 표현하는 제철 식당이에요.” 신창호 셰프는 동아를 12월의 식재료로 꼽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동아 이전에는 텃밭에서 수확한 들깨와 늙은호박이, 여름에는 직접 따온 연잎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한쪽 벽면에는 1월부터 12월까지 그가 고른 식재료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계절에 가장 귀한 자연의 작물을 찾아 손님에게 대접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것이 주옥 음식의 핵심이다. 신창호 셰프가 매주 두 번 아침이면 제기동 경동시장을, 오후면 경기도 남양주의 유기농 농장에 가는 수고를 마다지 않는 이유다.
촬영을 위해 그를 만난 날은 기온이 영하 10도까지 떨어진 한겨울. 그는 매서운 추위도 아랑곳없이 덤덤하게 농장으로 향했다. 비닐하우스 안을 저벅저벅 걸으며 셀러리, 버닛, 당근잎 등 여러 가지 잎채소와 뿌리채소를 살피더니 펜넬의 잎을 따면서 말을 덧붙였다. “마트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펜넬의 굵은 뿌리 부분이 다잖아요. 실제로는 줄기가 2m 가까이 자라는 아주 키가 큰 채소죠. 저는 펜넬의 잎을 따서 해산물 요리에 곁들여 내요.” 농장 한 켠에 따로 마련된 조그만 밭에는 주옥이라 쓰인 팻말이 꽂혀 있다. 그가 직접 씨앗을 심는 곳이다. 루콜라 어린잎은 시중에서 구하기 힘든 것이라 씨를 뿌려 키운다. 다음 해에는 셀러리를 심을 것이다. 농장을 오간 지 이제 2년 차. 사계절 열두 달을 한번 쭉 겪고 나니 이제야 조금씩 자연의 생리가 눈에 들어온다. “어느 날 농장 대표님이 겉보기에 멀쩡한 채소를 모두 뽑아버리더라고요. 처음엔 그 모습을 보고 놀라 아깝게 왜 뽑느냐고 물었죠.” 철 모르고 무지에서 나온 질문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절정을 지난 것들은 맛이 써진다. 작은 작물이나마 농사를 직접 하면서 자연의 순환의 이치를 깨닫고 농작물을 대하는 자세를 다시금 배운다. “이 조그만 잎을 따기 위해 정말 많은 수고가 들어간다는 것을 알고 나서부터는 불평보다는 감사하는 마음을 먼저 갖게 되었어요.” 농장에 들른 시간은 오후 3시 브레이크 타임. 잠깐의 짬을 냈던 그가 다시 돌아갔다. 디너 풀 예약석이 기다리고 있는 분주한 격전지로.

주옥에 오기까지

소명을 다하듯 반복된 하루의 일과를 묵묵히 보내는 신창호 셰프는 걸어온 길도 그를 닮았다. 한 갈래로 곧게 뻗어 있는 길. 도중에 오르막길이나 비포장도로가 나올지언정 샛길로 엉뚱하게 빠질 일이 없는 그런 우직한 길 말이다. 그가 요리를 처음 꿈꾼 것은 우연히 한 TV 프로그램을 알게 되면서부터다. 5대양 6대주를 누비며 세계 각지의 음식을 탐방하는 MBC 교양 프로 <요리보고 세계보고>를 즐겨 보며 낯선 땅의 풍경과 사람들, 그리고 음식을 눈에 담았다. “한 사람이 먹는 한 그릇의 음식 속에는 그 나라의 기후와 풍토, 문화, 역사, 그리고 가치관까지도 모두 담겨 있더라고요.” 어쩌면 음식은 타인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통로이자 역으로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아닐까. 음식만이 발휘할 수 있는 그 오묘한 힘에 빠져들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스무 살, 조리학과 입학과 동시에 레스토랑에 취업했다. 때는 1998년도, IMF 시기였다. 당시 서울의 최고 레스토랑은 용수산이었고, 외식의 대명사는 패밀리 레스토랑이었다. TGIF와 아웃백, 베니건스, 토니로마스 등이 한국에 진출하며 중흥기를 이뤘던 때, 그는 실전 경험을 쌓겠다는 일념 하나로 토니로마스 주방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1년간 학업과 일을 병행하고 나서 군대에 입대했다. 근무지는 간부식당. 놀랍게도 그가 평생에 한식을 배운 유일한 곳이다. “한식은 간부식당에서 배운 것이 전부예요. 지금 제가 선보이는 요리는 이때의 경험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르지요.” 평범한 급식을 제공하는 사병식당과 달리 간부식당은 전문 찬모가 밑반찬부터 국, 찌개, 볶음, 탕 등 음식 전반을 담당한다. 찬모의 감독 아래 간부들의 식사를 전담해야 했던 군생활로부터 그는 한식에 대한 지식과 기술, 더불어 수백 명의 식사는 너끈히 해낼 정도의 강한 자신감도 얻었다.

제대하고 난 2002년. 서울에는 한창 이탤리언 레스토랑의 붐이 일었다. 현재 우리나라 이탤리언 레스토랑의 대부 격이라 할 수 있는 청담동의 안나비니, 논현동의 일치프리아니가 모두 그즈음 문을 열었다. 신창호 셰프는 도곡동에서 2년, 그 뒤로 청담동에서만 10년간 이탤리언과 프렌치 레스토랑을 오가며 경력을 쌓았다. “간판은 프렌치인데 런치 메뉴로는 파스타가 있는 레스토랑이 많았어요. 서양 요리라는 테마 아래 모두 조금씩 섞여 혼재된 시기였죠.” 줄곧 국내에서만 15년간 요리하던 그가 서른세 살이 되던 해에 유학을 결심했다. 정통 서양 요리에 대한 갈증이 있었던 걸까. 프랑스? 이탈리아? 전부 아니었다. 선택은 뜻밖에도 미국 마이애미의 일식당 ‘노부’였다. “노부 마츠히사 셰프는 제가 20대인 시절(2000년대)에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스타였어요. 그분의 요리책을 가장 많이 읽기도 했지요.” 피에르 가니에르, 알랭 뒤카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적인 스타 셰프 노부 마츠히사는 뉴욕에 노부를 처음 오픈한 지 23년 만에 현재 전 세계 32개 지점을 보유한 글로벌 제국으로 성장시켰다. 한마디로 요리로 세계를 평정한 인물이다. 그런 꿈의 레스토랑이었던 노부에서 4년간 연마한 것은 요리의 경계를 허무는 일이었다. 지금까지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은 메뉴가 있다. 불에 익히지 않은 날생선을 먹는다는 것을 쉽게 상상하지 못하는 외국인들을 위해 고안한 ‘신 사시미’ 요리였다. 생선회에 뜨거운 올리브유를 끼얹어 표면을 불투명하게 만들고 이 위에 새콤한 간장 소스를 곁들여낸 것이다. 단지 회뿐만이 아니다. 오징어, 장어, 된장 등 서양인들이 그리 선호하지 않는 식재료에 대한 거부감이 곧 경탄과 감격으로 바뀌는 것을 눈앞에서 목격했다. 실로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노부에는 정통 일식이 없다. 그 음식 안에는 페루, 멕시코, 유럽의 스타일이 총체적으로 녹아 있었다. 그것이 곧 ‘노부 음식’이었다. 이는 신창호 셰프가 주옥에서 펼칠 요리 세계에 큰 바탕이 된다. 실제로 주옥의 대표 메뉴 중 하나인 생선연잎찜은 유산지로 생선을 감싸 오븐에 굽는 프랑스의 파피요트라는 요리의 조리법을 응용한 것이다. 연잎에 생선을 넣고 해산물 육수와 간장으로 만든 소스를 부은 후 겉을 감싸 쪄내면, 생선에 연잎 향이 은은히 배어난다. 서양에서 접하기 힘든 연잎이란 재료를 그들과 친숙한 방식으로 풀어내면서도 동양적인 매력을 잃지 않은 메뉴다. 이름부터 궁금증을 유발하는 ‘청담육회’는 또 어떠한가. 신선한 육회와 곤드레나물 장아찌를 고소한 페이스트리 위에 올렸다. 이 역시 동양과 서양의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노부에서 그랬듯이, 주옥에서도 마찬가지로 서양인들이 한식을 하나의 즐거운 미식 경험으로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의 바람은 현실로 증명되었다. 빛나는 별을 안고서.

끝없는 배움의 자세로

시큼한 발효초의 냄새가 코끝을 감도는 레스토랑. 벽면의 진열대 전부를 발효 식초만으로 채울 만큼 신창호 셰프는 식초에 큰 비중을 할애하고 있다. 코스 식전에 처음으로 제공하는 발효식초는 이제 주옥의 시그너처가 되었다. 그의 식초 실험은 한 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니콜라스 발라와 코트니 번스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샌프란시스코의 유명 레스토랑, 바 타르틴의 쿡북이었다. 다채로운 음식 저장 기술과 요리법이 담긴 책 속에서 그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천연 발효식초와 발효종 음식. 곧바로 작업에 돌입했다. “간장, 고추장, 된장처럼 전통 장은 단시간에 해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가볍게 도전해본 것이 식초였어요.” 처음 담가본 포도 식초는 생각보다 쉽게 성공했다. 그로부터 식초 삼매경에 빠졌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포도가 껍질에 효모가 많아 초를 만들기에 가장 쉬운 재료였다. 운이 아주 좋았던 것이다. 지난 1년 6개월간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치자 식초, 오미자 식초, 탱자 식초, 달래 식초, 다시마 식초, 와송 식초 등 그간 만든 식초는 무려 20개에 달한다. 지금 주옥에서는 소나무순 식초, 레드 와인 식초를 가장 처음 맛볼 수 있다. 앞으로 때에 따라, 정확히는 성공하는 식초가 무엇이냐에 따라 그 구성이 조금씩 바뀔 것이다. “아직도 발효의 원리를 깨치지는 못했어요. 어느 날은 발효가 잘되었다가도 또 어느 날은 안 되는 날도 있고. 저만의 공식을 만들어가는 중이에요.” 인터뷰를 하는 도중 노부의 쿡북부터 바 타르틴까지 유독 책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 것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사실 요리에 관한 탐독 수준이다. 가장 큰 영감을 받은 롤모델도 책을 통해서 만났다. 호주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꼽히는 시드니 테츠야의 오너셰프인 테츠야 와쿠다가 그 주인공이다. “요리가 독보적으로 뛰어나서라기보다는 그가 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요리의 방향이 저의 이상향에 가깝더라고요.” 일식 같기도, 서양식 같기도 한 국적의 경계를 넘나드는 기발한 발상, 그리고 이를 현대적인 테크닉으로 실현시킬 줄 아는 명민함. 이 모든 것이 그에게 풍부한 원천이 된다. 테츠야 와쿠다의 행보도 눈여겨보았다. 그는 싱가포르에 테판야키 전문 레스토랑 와쿠 긴Waku Ghin을 오픈한 바 있다. 2016년에는 미쉐린 1스타, 그리고 이듬해 2스타를 받은 곳이다. “저도 언젠가는 순댓국이나 해장국, 부대찌개처럼 한국의 대중적인 음식을 가지고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싶어요.” 요리에 대한 갈망이 끝없는 신창호 셰프는 이미 미쉐린 스타 이후의 주옥을 더 기대하고 있다. “저를 비롯해서 직원들 모두가 부담감을 가지고 있어요. 한편으로는 또 다른 목표로 도약해야 할 것이 생겨 기쁘기도 하죠.” 그렇다. 주옥의 시즌 2는 지금부터다.

식재료 간의 기발한 조합과 창의성이 돋보이는 신창호 셰프의 요리 세계.

edit 이승민 — photograph 이과용, 유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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