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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밥상 @정동현

2018년 1월 12일 — 0

젊음이 노래하고 혈기가 들끓는 합정동 뒤편에 동무밥상이란 순한 이름을 가진 식당이 있다. 그러나 그곳에 가면 베일 듯한 눈매에 두꺼운 손마디로 음식을 내놓는 요리사가 있다. 그 나이 든 요리사는 남이 만든 요리를 먹지 않는다. 자신이 먹던 북녘의 맛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그 맛에는 돌을 쪼개 보석을 캐는 수고와 조각을 다듬는 세공의 섬세함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고향을 떠난 이의 눈물이 담긴 듯 맑고 또 맑아 아무리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았다.

text 정동현 — illustration 왕조현

돼지국밥을 먹을 때 나는 부산에 살던 시절이 떠오른다. 시끄럽고 불친절한 사람들, 말도 안 되는 도로 체계에 언제나 차가 밀리고 그 사이를 택시들이 레이싱하듯 끼어드는 그 항구 도시의 냄새와 기억이 훅 풍겨온다. 외국에 살던 시절, 몸이 아파 누운 늦은 저녁 홀로 부엌에 서서 라면 한 봉지를 끓일 때면 내가 한국인임을 뼈저리게 느꼈다. 아프면 한국 음식이 떠올랐고 그때마다 범죄 현장을 다시 찾는 용의자처럼 그 음식을 기필코 찾아 먹었다. 음식은 기억이지만 유행이기도 하다.

근래 가장 많이 생기고 있는 음식점은 스시집, 칵테일 바 그리고 평양냉면집이다. 유행은 복고와 첨단의 양단을 오가며 줄을 타는데, 평양냉면은 복고 속의 세련되고 정제된 아름다움에 다시 주목을 받았다. 그 이전에는 노인들이 옛 추억을 기리며 억지로 식구들을 데리고 가서, 혹은 혼자서 먹는 음식이었다. 그러나 그 조리 과정의 복잡다단함과 그 음식이 지향하는 ‘맑음(Clarity)’과 그 안의 ‘복합성(Complexity)’은 많은 도전과 성취를 내재했다. 음식을 다루는 미디어의 발달로 대중의 음식에 대한 이해와 호기심의 욕구도 커져갔고 그 수혜자는 그만한 역량을 지닌 평양냉면이었다. 소비자의 구매력이 가장 높은 강남을 위시해 평양냉면집들이 줄지어 문을 열었다.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젊은 여성들을 비롯해 호기심과 소비 성향 높은 고객들이 새로운 집들을 순례했다. 미디어는 앞다투어 순위를 매기고 특집 기사를 뽑아냈다. 그만큼 각 집의 스타일도 다양해져갔다. 한 음식의 스펙트럼이 넓어지고 시장이 커진다는 것은 퇴보가 아닌 발달이며, 전통이니 신토불이니 같은 슬로건에서 자유로워지고 그 음식 자체로 발전할 수 있는 선순환의 고리를 만들었다는 의미다.

이러한 발전은 앞으로 나아감이다. 필연적으로 그 시작점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평양냉면을 먹지만 이 음식의 기원이나 뜻하는 바는 희박해지고 재미와 지적 허영의 충족이 더 커진다. 아마 시간이 더 오래 지나면 음식은 음식 자체로 의지를 가지게 되어 언젠가는 땅과 사람에서 자유로워질 것이다. 하지만 그 자유를 얻지 못한 음식은 덧없는 가벼움이 아닌 속박의 무게를 지니고 있다. 개발이 한창 진행 중인 합정 골목길에 자리 잡은 ‘동무밥상’의 음식에는 그 무게의 맛이 있었다. 탈북자 출신의 요리사, 그중에서도 북한을 대표하는 음식점 옥류관 출신의 윤종철 요리사가 북한 음식 강의를 하다 지난 2015년 11월 차린 동무밥상은 거대하거나 화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동네 분식점처럼 수수하고 꾸밈새가 없다. 그 탓에 이곳의 명성이 그리 자자한 것이 맞는지, 혹시 잘못 찾은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주소를 보게 됐다. 고고한 옛 선비들이 그러했듯 깨끗한 주방과 홀을 보면 간판 없이도 한 끼 식사를 하기엔 모자람이 없으리라는 짐작이 들었다. 실제 단골손님의 대부분은 근처 오피스 타운에서 온 젊은 객이 많다. 그들이 집으로 돌아간 저녁나절이 되면 날씨까지 더해져 오히려 한적하기까지 했다. 메뉴는 대중이 생각하는 북한 음식이 총망라되어 있었다. 그중 어복쟁반은 근래 가게를 넓히며 새로 시작한 메뉴다. 주방 규모도 따라 커져 그만큼 할 수 있는 음식이 늘었다. 본래 평양에서 시작한 음식으로 서늘한 한기를 깨고 몸과 마음을 데우기 좋은 요리다. 크고 둥글며 납작한 냄비 위에 각종 채소와 고기, 당면을 올리고 소고기 육수를 부어 졸이듯 끓이며 먹는 어복쟁반은 자고로 여럿이 둘러앉아 먹기 그만이다. 이 집의 어복쟁반에는 특이하게도 배가 들어가 있는데, 그 이유는 이 음식의 설계와 맞닿아 있다. 오래 끓이며 먹다 보면 국물이 졸게 되고 그사이에 배가 익으면서 단맛이 빠져나온다. 조리 과정이 긴 음식의 속성을 이용한 재료 사용법이다. 순대도 여느 집과는 식감이나 맛이 달랐다. 각종 곡류를 돼지 피와 함께 넣어 만든 순대는 찰진 식감이 재료의 단맛과 어우러져 혀와 입 속에 오래 남는다. 그 결만 보자면 영국에서 먹었던 ‘블러드 소시지Blood Sausage’와 거의 흡사하다. 순대가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향토 음식이란 흔한 오해는 접어두는 것이 좋다. 짐승의 창자에 뭔가를 쑤셔 넣어 만드는 음식은 전 세계에 흔하다. 중요한 부산물인 창자를 먹기 흉하다며 쉬이 버릴 수 있는 민족은 거의 없었다. 그중 돼지 피와 귀리, 보리 등을 넣어 만드는 영국의 블러드 소시지의 찰진 질감과 곡식의 고소함과 피의 철분이 함께 느껴지는 맛을 동무밥상의 순대에서도 똑같이 느낄 수 있었다.
흔한 만두 역시 이곳은 조금 달랐다. 딤섬류나 근래 유행하는 냉동 만두처럼 소를 갈다시피 해 극단적인 부드러움을 노리지도 않았다. 대신 공이 많이 가는 방법을 선택했다. 소의 재료를 일일이 칼로 잘게 다진 것이다. 이렇게 칼로 다지게 되면 우선 요리사의 의도대로 재료의 크기를 조절할 수 있고, 기계를 써서 소를 다진 것에 비해 재료의 단면이 깔끔하게 잘려 물이 덜 나온다. 더불어 고기나 두부 중 하나의 양을 늘려 고기 맛이 많이 난다, 혹은 두부가 많이 들어가 슴슴하다 류의 평을 받기 위한 의도도 없었다. 대신 애호박과 고기, 두부, 양파 등 재료의 비율이 균형을 이뤘다. 이 모든 요소가 결합되었을 때 만두 하나를 먹더라도 맛이 선명하다는 느낌을 받고 그 뚜렷함은 맑다는 감각을 낳았다. 그 정점은 역시 냉면이다. 마침 동무밥상에 들른 그날은 윤종철 요리사의 생일이었다. 그의 아내는 배가 부르다는 남편을 굳이 식탁 앞에 앉히고 냉면을 뽑아 오며 말을 건넸다.

— “생일인데 장수면은 꼭 드셔야죠. 조금만 담았시요.”

덩달아 먹게 된 냉면 그릇을 보니 맛보기로 뽑았다는 양이 아니었다. 알뜰하게 뜬 면 똬리 위에 놓인 고명은 춤을 추다 조용히 무대 위로 내려앉은 무희舞姬처럼 고왔다. 그 냉면을 보며 나이 든 요리사가 말했다.

— “평양에서는 냉면 곱빼기를 달라고 하면 진짜 냉면 두 그릇을 준다니까. 그러면 한 그릇을 옆에 두고 허겁지겁 냉면을 먹는 거야. 나는 북에 있을 때 먹으면서 말을 해본 적이 없어. 먹느라 바쁜데 어찌 말할 새가 있나.”

고기를 먹고 후식으로 냉면을 먹는 풍습이 생긴 남한에서는 냉면의 양이 덩달아 적어졌다. 그러나 평양냉면을 전문으로 하는 곳에서는 그 양이 남다르다. 냉면 한 그릇이 식사이기 때문이다. 이미 배가 불렀지만 ‘장수면’이라고 이름 붙인 그 면 한 사발을 맛보지 않을 수는 없었다. 조심스럽게 고명을 한쪽으로 밀고 육수를 먼저 맛봤다. 육향이 주를 이루는 풍요롭고 화려한 근래 평양냉면의 두터운 맛이 아니라 골조가 뚜렷하고 간명하며 섬세한 맛이 흘렀다. 그리고 국물 사이로 간혹 씹히는 들깨는 겨울 하늘 홀로 나는 새처럼 고요 속에 작은 진동을 일으켰다. ‘들깨 씹히는 재미가 좋다’고 말하니 요리사는 그 의도를 밝혔다.

— “냉면을 먹을 때 여섯 젓가락에서 일곱 젓가락 정도에 한 번씩 들깨가 씹히거든. 그러면 먹을 때 지루하지 않아. 그래서 그렇게 들깨를 넣은 거라.”

그 의도는 적중했다. 아마 대부분 세세히 맛을 느끼지 못할지라도 혀와 이는 감각을 느끼고 뇌는 그 느낌을 기억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모호하게 그 맛을 추억할 것이다. 국물 다음은 면이었다. 눈으로 보니 면은 두툼하고 하얀빛을 띠었다. 얌체처럼 한 젓가락 조금 들어 먹을 게 아니었다. 젓가락이 허용하는 최대한의 양을 들어 입에 욱여넣었다. 면을 씹으니 툭툭 끊긴다. 그러나 탄성도 섭섭지 않다. 나는 육수와 면을 번갈아 먹었다. 따뜻한 기운의 육수와 차가운 면이 입안에서 잔잔한 리듬을 일으켰다. 그 속에서 메밀 향을 느꼈다는 것은 거짓말이거나 감각의 오류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밀가루로 만든 면과 달리 희미한 금속성의 맛이 느껴졌다. 몰트위스키를 마시면 다가오던 거친 북녘의 맛이었다. 밖으로 세찬 바람이 불고 영하로 온도가 떨어져도 이 면 씹는 재미를, 그 맛을 놓을 수 없었다.

그 맛 속에서 내가 가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곳의 향기가 났다. 이 음식을 만든 요리사가 그 맛을 잊지 않기 위해 다른 이가 만든 음식을 먹지 않는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 나이 든 요리사는 멀고 먼 길을 돌아 남으로 왔고 이 겨울, 또 장수면을 먹으며 다시 나이가 들었다. 그날 내가 먹은 모든 것은 이 땅 위에서 난 음식이었다. 그러나 가지 못하고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슬픔이 느껴져 배가 불러도 허기가 졌다.

정동현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 유통 회사를 다니다가 훌쩍 영국의 요리 학교 탕트 마리Tante Marie로 유학을 떠났다. 호주의 레스토랑에서 늦깎이 셰프로 요리 열정을 불사르며 일했다. 저서로는 <셰프의 빨간 노트>가 있으며, 지금은 신세계그룹 F&B팀에서 ‘먹고(Food) 마시는(Beverage)’ 일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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