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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인문학 @윤지현

2018년 1월 9일 — 0

인간의 삶에서 가장 원초적이면서 일상적인 요소인 음식은 인문학적인 사유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text 윤지현

완성된 한식 반상. 요리연구가 홍신애가 전남 보성에서 지은 햅쌀로 지은 밥, 아욱과 바지락을 넣어 자작하게 끓인 된장찌개, 장광효만의 팁으로 완성된 푸짐한 갈비찜.

다양한 전공의 교수들이 모인 자리에서 영화 <매트릭스>가 식탁의 화제로 오른 적이 있었다. 화학과 교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체온을 에너지로 이용한다는 인간 배터리 설정이 대단하지 않나요?” 디자인 전공 교수는 “세상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묘사한 마지막 장면이 기발하다”며 대화를 이었다. 이때, 문사철文史哲을 사랑하는 한 교수가 덧붙였다. “플라톤의 철학이 이토록 쉽게 이해될 수 있을까요? 동굴의 비유가 영화 <매트릭스>의 무대 장치니까요.” 필자에게 <매트릭스>는? 무엇을 먹느냐가 운명을 결정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인상적인 영화였다.

서두가 다소 길어졌다. 영화 하나를 보는 시각도 이리 다를진대, ‘음식’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양한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필자는 대학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했다. 대학 4년 동안 자연과학의 대상으로 음식을 공부한 것이다. 이후 박사 학위를 취득할 때까지 8년 동안은 경영학의 관점으로 음식을 탐구했다. 음식을 바라보는 필자의 관점이 뼛속까지 비인문학적인 것이 놀랍지 않은 이유이자 변명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음식인문학’이란 용어를 심심찮게 접하고 있다. 음식인문학이란 무엇을 의미할까? 글자 그대로 풀어보면, 음식을 인문학적으로 바라봄을 뜻한다. 즉 음식의 역사, 문화, 언어, 철학적 측면을 바라봄이다. 영어로는 동일한 단어(Food)로 해석되지만 ‘식품’은 자연과학적 대상으로서의 물질적 특성이 강한 단어인 반면, ‘음식’은 ‘먹고 마신다’는 인간의 행위에 주목하는 단어이다. 따라서 음식은 물질로서의 식품 그 이상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음식영양학보다는 식품영양학이 더 자연스러운 명칭인 것처럼 식품철학이나 식품문화학보다는 음식철학이나 음식문화학이 낯설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일 게다.

인간의 삶을 고찰함에 있어 인문학적 사유 방식은 매우 유용하다. 음식은 인간의 삶에서 가장 원초적이면서 일상적인 요소이기에 어쩌면 인문학적 사유의 최적격 대상인지도 모른다. 음식에 대한 자연과학적인 시각이 주로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에 천착하는 반면, 인문학적인 시각은 ‘누가’, ‘언제’, ‘어디서’ 음식을 먹느냐에 관심을 기울인다. 예를 들어 식품영양학에서는 칼로리와 영양소가 ‘무엇’의 핵심 요소이며, 건강은 이러한 ‘무엇’과 ‘어떻게’가 추구하는 궁극의 가치이다. 이에 반해 인문학에서는 ‘누가’, ‘언제,’ ‘어디서’ 음식을 먹느냐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때문에 이들은 결식 아동의 한 끼가 영양학적으로 불균형하다고 걱정하기 전에 집밥이 아닌 편의점의 혼밥임에 주목해야 한다.

회상해보면 필자가 음식을 인문학적 시각으로 처음 바라보게 된 것은 10여 년 전부터다. 당시 <그림 속의 음식, 음식 속의 역사>라는 책을 무척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마침 저자의 특강이 필자가 재직 중인 학교의 캠퍼스에서 열려, 완독한 책에 저자의 사인을 받았었다. 이후 일본의 식품영양학 명문인 여자영양대학에서 연구년을 보내게 되었는데, 역사, 문화 등을 전공한 교수들이 식문화영양학과에서 가르치고 있는 것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기도 했다.

대학에 근무하는 남편이 얼마 전부터 교내 학보에 ‘식탁 위의 인문학’이라는 칼럼을 연재하며 음식과 인문학의 연결고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탈고 직전의 남편 원고를 읽노라면 음식을 둘러싸고 이렇게나 많은 역사와 철학, 문학과 예술 이야기가 있음에 적잖이 놀라곤 한다. 해서 지극히 비인문학적인 식품영양학자가 음식인문학의 열풍에 펜을 더하고 있는 현재가 부끄럽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욱 많은 인문식객人文食客들이 경험과 사유를 공유해주길 희망하며, <올리브 매거진>의 원고 청탁에 용기를 내었다. 음식을 둘러싼 인문학적 논의는 필자의 삶은 물론 식품영양학의 깊이마저 더해준다는 점에서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윤지현은 대학에서 식품영양학을 공부하고 호텔·레스토랑·관광경영학과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3년부터 서울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로 지내며 푸드 서비스·마케팅 연구실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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