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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광효의 한식 반상

2018년 1월 5일 — 0

30년은 평범한 세월이 아니다. 당연히 그 시간 동안 만들어온 집밥도, 브랜드도 그렇다.

디자이너 장광효가 주방에 섰다. 오늘의 메뉴는 갈비찜과 된장찌개다.
디자이너 장광효가 주방에 섰다. 오늘의 메뉴는 갈비찜과 된장찌개다.

집밥 수호자
인터뷰나 화보 촬영 때문에 어떤 ‘인물’을 만나기 전에는 포털 사이트와 SNS에서 한동안 그의 얼굴, 몸짓과 말투까지 애써 찾아본다. 보다 쉬운 진행을 위해서. 하지만 그렇게 찾아본 일이 무색할 정도로 현장에서는 전혀 다른 사람을 마주하는 경우도 있다. 소위 ‘먹히는’ 캐릭터로 자신을 맞춰 연기하는 사람들이 그런 경우인데, 디자이너 장광효는 그렇지 않았다. 섬세한 몸짓, 조곤조곤한 말투,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의 반응을 항상 먼저 살피는 배려, 상대를 웃음 짓게 만드는 순수함, 좋은 것을 알아보는 감식안까지. 보여지던 그대로였다. 에이프런을 두르고 화구 앞에 선 그는 “패션 잡지 인터뷰는 너무 쉬워요. 많이 해봤으니까요. 한번은 방송국에서 우리 집으로 촬영을 왔어요. 요리하는 것도 찍고요. 근데 어렵더라고요. 오늘도 걱정이네요”라며 운을 뗐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에 바로 마음을 놓았다. “인류가 탄생하고 먹고 살면서 오늘 같은 최첨단 시대까지 왔잖아요. 변해야 할 게 있고 변하지 말아야 할 게 있는데 음식은 후자 같아요. 좋은 재료, 계절, 전통. 이런 걸 무시할 수가 없어요.” 이런 말은 오랜 시간, 자주, 공들여 요리해본 사람들만 하는 단골 멘트가 아니던가.
오늘의 콘셉트는 ‘장광효의 한식 반상’. 메인 메뉴는 갈비찜과 된장찌개다. 35년간 거의 매일 아침, 저녁으로 스스로 집밥을 지어 먹어온 그에게는 눈감고도 차려낼 수 있는 메뉴들이다. “결혼 전에는 어머니가 보내주신 음식 받아 먹기에 바빴어요.(웃음) 결혼하고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했죠. 아내가 지방의 음대 교수라 주말부부로 생활하는데, 주중에 혼자 있으면서 굶고 사먹고 하니까 몸의 균형이 엉망이 되더라고요.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서 시작한 게 30년 넘게 이어졌고 우리 집에선 지금도 내가 요리 전담이에요.” 갈비찜은 한 달에 한 번꼴로 해먹는 기력 보충용 요리다. 여름보다는 겨울에, 기름진 단백질을 먹고 싶을 때 자주 생각난다고. 장광효 식 갈비찜의 특이 재료는 설탕, 계피, 둥굴레차다. 먼저 설탕은 고기의 핏물을 뺄 때 사용한다. “모두 어머니에게 배운 팁이에요. 보통 핏물 뺄 때 길게는 하루, 짧아도 3시간은 걸리는데 ‘급속’ 모드가 필요할 때는 설탕물에 재워두죠. 30분 정도면 돼요. 가만, 생각해보니 밥 지을 때도 그랬던 거 같아요. 쌀 불릴 시간이 없을 땐 설탕물을 사용하셨어요.” 고기 손질을 하며 말을 이어갔다. “미국산, 일본산, 맛있는 소고기 엄청 많잖아요. 하지만 한우만의 식감과 맛이 있고 한식이라면 한우를 쓰는 게 좋은 거 같아요. 수컷보다는 암컷, 나이 많은 소보단 1년 미만의 소로 달라고 주문해요. 그러면 고기 파는 분들이 고기 좀 아냐고 묻곤 하죠. 그럼 안다고, 사실 나 고기 장사 한다고 막 그래요.(웃음)” 손질한 고기는 기름기를 제거하기 위해 한소끔 끓인뒤 소주를 넣어 잡내를 제거한다. 썰어둔 채소와 양념장을 넣고 센불에서 10분, 중불에서 10분, 약불에서 30분 넘게 끓이면 달큰한 갈비찜 냄새가 주방을 가득 메운다. 둥굴레차와 계피는 고기와 무가 들어가는 음식에 고소한 맛을 더해주는 데 특효. “소고기뭇국 끓일 때도 둥굴레차와 계피를 넣어요. 갈비찜이랑 이웃사촌 느낌이에요. 또 가을ㆍ겨울 무가 얼마나 맛있다고요.” 이내 완성된 갈비찜을 그윽한 눈빛으로 보더니 아쉽다는 듯 하는 말. “내일 먹으면 더 맛있을 텐데. 카레나 찌개처럼요. 된장찌개는 정말 별거 없어요. 된장만 맛있으면 되죠, 뭐.” 냄비에 된장과 함께 늘 엄마들이 하는 얘기를 풀어놓는다. ‘특별한 거? 없어. 그냥 하는 건데.’ 요리하는 엄마 곁에서, 매일 먹는 건데도 유독 맛있는 어느 날 그 비법을 물어보면 늘 돌아왔던 멘트다. “비법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하고 수줍게 웃었다. 그의 어머니도 그에게 같은 표정을 지었으리라. “믹서에 된장, 멸치, 조갯살을 다 넣고 간 뒤에 육수용 거름망에 담아서 짜낸 걸 넣고, 된장 조금, 두부와 호박, 제철 푸른 잎 채소를 더해 끓여요. 그럼 멸치 가시 때문에 움찔할 일도, 질겨진 조갯살에 이 아플 일도 없어요.”

육수가 우러난 국물에 된장을 풀고 있다.
된장찌개에 넣을 파를 썰고 있다. 채소를 다듬는 솜씨에서 집밥의 내공이 엿보인다.
된장찌개에 넣을 파를 썰고 있다. 채소를 다듬는 솜씨에서 집밥의 내공이 엿보인다.

음식의 힘
이 시대에, 특히 패션 디자이너에게 나이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마는, 60대에 들어선 장광효의 피부는 남다르다. “보는 사람마다 어디 피부과, 성형외과 다니냐고 물어요. 정말 안 다녀요. 이건 오랜 시간 좋은 식습관으로 만들어진 거예요.” 급히 집밥에 오르는 메뉴를 물었다. 일단 전라도에서 공수받는 제철 김치, 달걀 하나, 장조림은 열두 달 내내 오른다. 한식의 가장 기본인 밥은 요리연구가 홍신애가 전북 보성에서 농사지은 쌀에 5종 이상의 곡물을 섞어 넣는데, 이때 솥 바닥에 꼭 우엉을 깐다. 우엉 향이 밥의 풍미를 한껏 살려준다고. 나머지 반찬은 때에 따라 달라지지만 특히 비타민이 풍부한 나물, 항암 효과가 있는 말린 채소 무침을 즐겨 먹고 아내가 좋아하는 조기나 갈치 등 생선도 빼놓지 않는다. “아내한테 반찬이 부실하다는 말을 듣기 싫거든요. 밥 한 끼 제대로 차려 내면 남편 노릇 제대로 하는 것 같아서 좋고요.” 그러다 보니 식탁 위에 대여섯 가지의 반찬과 밥, 찌개가 금세 차려졌다. 또 식사 외에 견과류, 우유 한 컵, 사과 한 쪽, 고구마 한 조각도 챙긴다. 50대가 넘으면서부터는 보충제도 잊지 않는다. 비타민, 오메가3, 루테인, 효소까지. 이렇게 다채로운 먹거리를, 그것도 매일 챙긴다는 게 보통 일은 아닐 듯싶었다. “습관이 되면 일도 아니에요. 눈뜨면 자동이죠. 씻고 잠자고 화장실 가는 거랑 똑같아요. 그걸 ‘일’로 생각해요? 아니잖아요.” 집밥과 간식, 영양제까지 스스로 챙긴다는 건 부지런해야 할 뿐 아니라 식문화 트렌드나 정보에도 밝아야 가능한 일. 매번 인터넷 검색을 하는 걸까? 아님 주변의 지인들을 통해서일까? “TV요. 굳이 안 찾아봐도 채널 돌릴 때마다 지금 당장 챙겨 먹어야 할 게 얼마나 많이 나와요. 그래도 난 또래에 비하면 많이 먹는 편도 아니에요.” 솔직하고 순수한 인간 장광효의 매력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답이었다. 요즘 TV에서는 건강 정보만큼 맛집 투어 프로그램이 넘쳐난다. 맛집을 찾아다니기도 할까? 지금까지의 대화로 미루어봤을 땐 외식은 선호하지 않는 것 같았다. “미쉐린 스타를 받은 집도 그렇고, 관심이 가요. 궁금하잖아요. 한번은 아내와 방송에 나온 연남동 만둣집을 찾아갔어요. 내비 따라 겨우 갔는데 주차장이 없데요. 저 멀리 공영 주차장에 차를 대고 다시 왔더니 줄이 엄청 긴 거예요. 가게 안은 또 좁고. 투덜거리는 아내랑 겨우 기다렸다 먹었어요. 맛은 그다지 별로였어요. 방송이 다 믿을 건 못 되더라고요.(웃음)” 입맛 차이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는 이런 경험 자체를 무척 즐긴다. 사람들이 어떤 식문화에 관심을 갖고 즐거워하는지, 또 그게 어떻게 발전하는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집에서야 아침, 저녁으로 균형 잡힌 식사를 할 수 있다지만 업무 중인 낮 시간의 식사는 어떨까? 설마, 바지런히 도시락을 싸서 다니는 건 아닐까? “잘하는 가정식 백반을 시켜 먹기도 하고 미팅하다가 햄버거나 파스타를 먹기도 해요. 내가 찾아 먹진 않아도 휩쓸려 따라갔는데 의외로 맛있을 때도 있거든요. 그런 재미가 있죠.” 균형 잡힌 식습관을 바탕으로 새로운 식문화에도 마음이 열려 있는 장광효는 맛있는 음식의 힘을 믿는다. 특정 음식을 컬렉션에 반영했던 적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옷과 음식의 공통점은 있다고. 예쁜 옷을 입었을 때 행복하듯 맛있는 음식도 그렇다는 것이다. 행복은 전염성이 강하다. 인간은 자신이 행복하면 남한테도 너그러워지는 법인데, 그의 브랜드인 카루소의 옷을 입고 그들도, 그 주변인들도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디자이너 장광효가 완성된 반상 앞에 앉았다. 익숙한 음식을 앞에 두고, 집에서의 모습과 표정 그대로 편안한 모습이다.
디자이너 장광효가 완성된 반상 앞에 앉았다. 익숙한 음식을 앞에 두고, 집에서의 모습과 표정 그대로 편안한 모습이다.

성공 비결은 좋은 습관
2017년은 장광효에게 의미 있는 해였다. 그의 브랜드 카루소Caruso가 30주년을 맞았기 때문이다. 지난 1년, 각종 매체와 팬들은 축하인사를 보냈고 그때마다 소감을 물었지만 정작 그는 담담했다. 10년, 20년 될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특별히 뭘 해야겠다는 생각이 없었다고. 오히려 그때마다 목표를 세우고 일을 벌였다면 지쳐서 여기까지 못 왔을 것이라 짐작한다. “그냥 매해 똑같이, 쭉 왔어요. 1년에 두 번 쇼 하고, 인터뷰하고, 여행 다니고, 맛있는 거 먹으면서. 내가 돈이 너무 많다거나, 할 일이 없어서 편하게 이걸 하는 건 아니거든요. 딱 하나, 카루소를 하는 게 정말 재미있어요.” 어린아이같이 상기된 표정의 그를 보며 웃었다. 물론 그 웃음에는 30년이 지나도록 없어지기는커녕 오히려 커져가는 열정에 부러운 마음도 담겨 있었다. “왜요? 철 없어 보여요?(웃음) 내가 아무리 젊게 살아도 시간을 멈출 순 없죠. 나도 나이가 들어서 기성세대가 됐고, 국내 남성복 업계에서는 최고참이 됐는데, 그렇다고 거기에 맞춰 생각하고 살진 않아요. 어차피 살다 죽는 건데 내가 정말 만족하고 행복한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 세상이 다 핑크빛이에요.” 그래도, 당신 역시 사람이니 화가 날 때도 있지 않느냐고, 그럴 때는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답은 명료했다. 이 세상에는 나쁜 사람도, 좋은 사람도 없다는 것. 줄곧 온화한 표정이던 그가 국내 디자인 업계와 여기에 몸담고 있는 후배들에 대한 염려를 표할 때만큼은 안타까운 표정이었다. 경기 침체로 인해 업계가 힘들어진 데다 디지털 시대에 나고 자란 탓인지 뭐든 빨리 결과를 보려 한다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 운이 좋았노라고 겸손하게 말을 이었다. 국내외에 장광효와 카루소가 알려지기 시작하던 무렵은 남성복 브랜드가 각광받던 시기였고 그 시류를 잘 탔다. 분명 그때에 비해 지금은 성공하기 쉽지 않은 시절이지만, 그럼에도 ‘젊은이들’에게 바람이 있다면 끈기와 열정을 갖고 치열하게 이 시장을 이어나가줬으면 한다며 미소 지었다. “일단 휴대폰을 좀 내려놓고 손을 더 빨리 움직이는 법을 익혀야 할 거 같아요. 내가 옷을 10벌 만드는 동안 후배들은 1벌도 겨우 만들어요. 컴퓨터, 인터넷에 너무 의지해와서 그래요. 대부분의 업계가 그렇겠지만 의류업계도 실용적인 SPA 브랜드와 명품 브랜드로 소비가 점점 양극화되고 있어요. 여기서 디자이너 브랜드가 살아남으려면 결국 ‘손맛’이거든요.” 더불어 일상에서의 ‘좋은 (식)습관’을 거듭 강조했다. 소위 성공하는 사람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몸과 마음이 다 건강하다는 것. 누구나 짐작하듯 그런 습관은 결코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수십, 수천 번을 반복해 그처럼 눈뜨면 자동으로 하듯 체화가 되어야 가능한 일일 테다. “옷만 잘해서 컬렉션 나간다고 끝이 아니에요. 좋은 습관을 들이고, 새로운 식문화를 접하면서 식견을 쌓아야 해요. 전 세계 사람들을 보면 옷은 몰라도 먹는 거엔 하나같이 관심이 많거든요. 그게 대인 관계에도 굉장한 영향을 끼쳐요.” 이쯤 되니 장광효 식 갈비찜은 카루소 컬렉션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기본 재료(좋은 습관)에 그만의 팁(디자인 스타일)을 더해 오랜 시간(열정) 뭉근히 익혀 맛을 낸.

완성된 한식 반상. 요리연구가 홍신애가 전남 보성에서 지은 햅쌀로 지은 밥, 아욱과 바지락을 넣어 자작하게 끓인 된장찌개, 장광효만의 팁으로 완성된 푸짐한 갈비찜.
완성된 한식 반상. 요리연구가 홍신애가 전남 보성에서 지은 햅쌀로 지은 밥, 아욱과 바지락을 넣어 자작하게 끓인 된장찌개, 장광효만의 팁으로 완성된 푸짐한 갈비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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