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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ing

스시조 @정동현

2017년 12월 22일 — 0

먹는다는 것은 우리 자신뿐 아니라 사회가 지향하는 아름다움을 체험할 수 있는 행위다. 이 땅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재료를 오랜 시간 속에 쌓아올린 지혜와 경험으로 자르고 구워내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친절로 전달한다. 그 깊이와 넓이는 이 사회가 가진 역량과 역사, 그리고 아름다움에 대한 지향점과 같다. 그리고 스시조는 그 지향점의 끝에 있다.

text 정동현 — illustration 왕조현

스시조, 정동현

아침 출근길에 들르는 맥도날드에서 나는 한국을 본다. 그곳에는 밤을 새우고 공부를 한 학생, 이어폰을 끼고 화장을 고치는 오피스 레이디, 테이크아웃 잔을 들고 바쁘게 문을 열고 나가는 상고머리의 남자, 드문드문 데이트를 즐기는 오피스 커플이 있고 그들을 반기는 것은 무인 키오스크 주문대와 무표정한 얼굴로 아르바이트생에게 주문을 지시하는 직원, 매대 뒤 햄버거를 포장하는 손만 보이는 얼굴 모를 이가 살고 있다.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이 다국적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같기도 하고 조지 오웰이 쓴 <1984년>의 한 장면, 혹은 홍콩의 어느 곳 같기도 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전 지구적 스케일로 사업이 이루어지고 신화적인 인구 밀도를 이룩했으며 자기 파괴적인 근무 시간을 달성하는 한국을 발견한다. 무엇을 먹는지 말해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는 옛 프랑스 미식가의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보다 더욱 큰 규모로, 이 사회가, 우리들이 먹는 것은 곧 그 사회가 어떤 곳인지 말해주는 자화상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얼굴은 최저 임금, 평균 소득, 가처분소득, 도시개발계획, 사회적 문화, 노동법, 자연, 기후 등 모든 요소가 종합되어 만든 하나의 풍경이다. 그러나 이런 세상만 존재한다면 나의 세계는 나무 한 그루 없고 흐르는 강물은 바싹 말라버렸으며 열풍 부는 사막과 같을 것이다. 이 모든 황량함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만 모아놓은, 즉 이 사회가 성취할 수 있는 최고의 것들이 모인 곳이 있다. 그 극치의 미와 선은 한국이란 나라가 가진 아름다움에 대한 존경과 경의, 역사의 방증이고 또 현재다. 지금 이 순간 그것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은 조선호텔 ‘스시조’다.

하루마다 한 개씩 스시집이 생긴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근래 스시 시장은 공격적으로 팽창하고 있다. ‘초밥’이란 이름을 쓰는 대중 스시집은 대형 유통 시설과 가처분소득이 낮은 대학가 중심으로 자리를 잡은 반면, 청담동을 위시한 전통적 부티크 마켓에는 일본의 긴자가 부럽지 않은 가격과 질로 승부하는 고급 스시야, 그보다 한 단계 낮은 가격으로 가성비라는 마케팅 포인트를 앞세우는 미들급 스시야가 격전이란 단어가 어울릴 만큼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이 모든 스시야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 경쟁 전에 고고하게 자리를 잡고 한 줌도 안 되는 미식가들을 위해 오랜 기간 과감한 투자라고 이름 붙인 끝없는 지출을 하며 격과 자존심을 세우는 두 곳이 있었다. 그 두 맥락은 신라호텔의 아리아께와 조선호텔의 스시조다. 타 고급 호텔의 수많은 스시야 중에서도 이 두 곳은 스시의 본토 일본과의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그 수준의 기준을 잡고 끝없이 정진하며 한국 스시를 선도해나갔다. 그 두 곳에서 수련한 많은 요리사들은 자신의 업장을 차려 야인이 되었고 제각각의 기풍을 만들고 있다. 그럼에도 그 뿌리의 흔적을 없앨 수는 없는 것이다. 보통 일컫기를 신라호텔의 아리아께는 담백하며 깨끗한 선을 중시하는 반면 스시조는 그보다 호방한, 즉 초와 간이 세고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그 명성과 달리 스시조로 가는 길은 옹색하고 낡았다. 오랜 역사 속에 옛것이 되어버린 조선호텔의 좁고 덜컹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20층에 오르면 스시조라는 은색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고고하게 푸른 나무를 지나 안쪽으로 안내를 받으면 하얗게 눈이 내린 듯 말끔한 송판 다찌와 그 뒤로 넓게 자리한 홀이 있었다. 스시조에 가는 목적은 각양각색일 것이다. 모임을 하기 위해, 접대를 위해, 특별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그러나 오직 스시를 맛보기 위해, 그 높은 수준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다찌 앞에 앉아 눈부시게 흰 옷을 다려 입은 요리사를 마주해야 한다.

— “드시지 않거나 못 드시는 것이 있으신가요?”

영어로 ‘조병권’이란 배지를 단 요리사가 웃으며, 그러나 정중하게 물었다. 그사이 비취처럼 맑은 녹색의 말차가 차갑게 식혀져 나의 오른편에 놓였다. 풋풋한 풀의 향기와 그 풀을 말린 태양의 열기가 함께 느껴졌다. 첫맛은 떫었다. 하지만 그 떫음은 마치 와인의 그것과 같이 나무와 흙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내 몸은 거부감 없이 그 맛을 받아들였다. 향나무를 깎아 만든 다찌에서 풍겨나오는 희미한 나무의 흔적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나의 마음과 몸이 스시를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것이다. 초에 절인 우엉과 쌀겨에 절인 무(벳타라즈케), 일식 된장에 절인 단무지가 나왔다. 평범한 차림이지만 아삭하고 부드러우며 거친 질감이 각각 다르고 절인 정도, 염도 역시 흠을 찾을 수 없었다. 곧이어 일식 계란찜 자왕무시가 나왔다. 옅은 노란빛을 띤 계란찜 위에는 묽은 육수가 잔잔히 깔렸고 그 위에 트러플 버섯을 흩뿌렸다. 자왕무시와 트러플의 조합은 이미 미국을 비롯한 서구를 중심으로는 익숙한 조합이다. 그러나 그 조합을 표현하는 방식이 달랐다. 보통 그 맛과 향이 강하고 독특하여 요리에 어울리지 못하고 트러플 그 자체만으로 기억되던 다른 요리와 달리 계란의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트러플을 만나 눌리기보다 오히려 배가 되는 것 같았다. 그 효과는 염도와 농도, 향의 조합에서 이뤄진 것이었다. 그다음은 캐비아에 버무린 광어였다. 염도와 감칠맛을 캐비아로 잡아낸 실리적 장치이자 사람들의 허영심을 만족시키는 아이디어이기도 했다. 술에 찐 전복에 촘촘하게 만들어낸 칼자국은 요리사의 자존심이자 그가 치러낸 수련의 나이테에 다름 아니었다. 이로 느끼는 전복 살의 감촉, 살이 이겨지며 스며나오는 바다의 맛, 쌀로 만들어낸 꽃의 향기가 한데 어우러져 몸으로 들어왔다. 나는 벚꽃 향을 닮은 사케를 담은 주철잔을 만지작거렸다. 천사의 머리카락이라고 불리는 아주 얇은 카다이프Kadaif를 튀겨 도미로 감싼 뒤 시즈오카산 와사비를 올린 접시에도 여러 가지 맛이 모여 있었다. 생선회의 찰진 식감은 쉽게 질릴 수 있다. 많이 씹어야 하는 것은 재미가 아니라 노력이 필요하고 그 노력이 쌓이면 피로가 된다. 이것을 덜어낼 수 있는 방법은 재미를 첨가하는 것이다. 캘리포니아롤에 흔히 튀김류가 많이 들어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다음 차례로 나온 참치 뱃살에는 아무것도 올라가 있지 않았다. 산뜻한 지방의 깔끔한 쾌감이 혀에 전해졌다. 그러나 스페인산 축양참치는 여러모로 일본산 참치에 비해 맛이 떨어진다. 흔히 깊은 맛이라고 모호하게 표현하는 그 맛의 정체는 참치가 다양한 먹이를 오랜 시간 섭취하며 이뤄낸 다양한 풍미다. 흔히 맛이 복합적이고 진할 때 ‘깊다’라고 이야기하는데, 스페인산 축양참치는 맛의 깔끔함과 부드러운 식감은 탁월할지언정 이 깊이에서는 아쉬움을 보인다. 일본 원전 사고 이후 특급 호텔이 가져야만 하는 역설적인 핸디캡이다. 그 아쉬움은 고성과 부산에서 올린 성게알, 우니에서 채울 수 있었다. 굳이 캘리포니아와 홋카이도산의 농밀한 맛이 아니더라도 이른 아침 바다에서 전해오는 맑은 기운이 그대로 느껴지는 산뜻한 맛에 나는 조용히 신음 소리를 냈다. 촉촉히 구워낸 눈볼대(노도구로)와 시소 잎을 띄운 대합국은 코너 라인에서 정확히 쏘아올린 축구선수의 어시스트처럼 정석 그대로였다. 그리고 스시가 시작됐다. 스시 각각의 맛을 일일이 표현하는 것은 그다지 현명한 글쓰기가 아닐지 모른다. 하나하나 맛을 표현하기에는 가짓수가 많고 스시가 코스 중에 차지하는 맥락 또한 음악으로 비유하자면 곡의 음표에 해당하는 것이지 곡 그 자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날의 스시 중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의 카덴차처럼, 유난히 빛나는 몇 점이 있었다. 묵직한 저음으로 시작을 알리듯 주어진 광어와 도미 스시는 첼로 아랫단 현처럼 안정감 있는 맛을 냈으며 이제 독도새우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보탄에비로 쥔 스시는 새우 살의 찰진 단맛이 호사스러울 정도였다. 초반에 나온 두 가지 우니 중 손님이 선호하는 맛으로 다시 쥐어낸 군함스시는 수미쌍관을 이루듯 스토리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전어를 초에 절여 낸 스시 한 점은 스시조가 지향하는 명징하고 힘있는 맛의 표본이었다. 싱싱한 젊음처럼 맛에는 거침이 없다. 과감하지만 섬세하게 쓰인 기술은 보이지 않게 맛을 만들어낼 뿐 과시하지 않는다. 맛을 내야 할 것은 어느 곳보다도 제대로, 확실히 내지만 창의적인 시도는 멈추지 않는다. 타협이 없는 질과 계속된 연구에 늘 다른 곳보다 몇 발짝 앞에서 있는 곳이 바로 스시조다. 그리고 손님의 숨소리, 눈빛까지도 예의 주시하는 주도면밀한 접객과 빈틈없는 조리는 손님이 가질 수 있는 불만의 잠재 요소를 아예 없애버린다. 그리하여 식사는 미식이 되고 미식은 식사 이상의 가치를 가지게 된다. 그 모든 것은 아름다움이었다. 부자연스럽고 식상하며 구태의연한 것이 사라진, 창의적이고 섬세하며 자연스럽고 명확한 아름다움이었다. 그 아름다움은 이 나라가 가질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것이었다.

정동현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 유통 회사를 다니다가 훌쩍 영국의 요리 학교 탕트 마리Tante Marie로 유학을 떠났다. 호주의 레스토랑에서 늦깎이 셰프로 요리 열정을 불사르며 일했다. 저서로는 <셰프의 빨간 노트>가 있으며, 지금은 신세계그룹 F&B팀에서 ‘먹고(Food) 마시는(Beverage)’ 일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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