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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ing

메르씨엘 @정동현

2017년 11월 23일 — 0

바다는 너르고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배는 조그맣다. 멀리 바다는 하늘과 맞닿아 있고 그곳에서 둘은 하나가 된다. 그 풍경을 바라보며 하얀 접시를 받는다. 풍경이 맛이 되고 맛은 다시 풍경이 된다. 높은 산 위에 오른 것 같기도 하고 바다 한가운데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 프랑스 전원의 구수한 향기도 맡아진다. 부산 해운대의 메르씨엘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은 바다였고 하늘이었으며 그리고 프랑스였다.

text 정동현 — illustration 왕조현

메르씨엘

한국에 아인슈타인과 같은 천재가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주입식 교육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이 미국과 같은 제1의 강대국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작은 영토와 강대국 사이에 낀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지금의 한국이 잘못된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언제나) 모두 다 전직 대통령 때문이라는 것이 통설이다. 한국에서 프랑스 요리가 되지 않는 이유를 찾는 것은 사실 그만큼 쉽다. 먼저 거리가 멀다. 프랑스와 한국은 비행기로 11시간이 소요된다. 식재료를 수입할 때 드는 비용이 그만큼 늘어나게 된다. 김 사러 쓰키지 시장에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일본의 사정을 생각해보면 큰 불리함이다. 급히 푸아그라가 필요하다고 파리를 다녀올 수도 없는 노릇인 것이다. 수입하는 데 드는 비용이 비싸고 더불어 식재료 원가 자체도 싸지가 않다. 한국에서 생산되는 재료로는 프랑스 요리의 맛을 낼 수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버터부터가 그렇다. 한국에서 우유가 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판매되는 버터를 보면 그 질이 한심하다. 색과 풍미 모두 프랑스산과는 비교가 불가하다. 이러니 똑같은 조리법으로 음식을 만들어도 맛이 다르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하다못해 밀가루도 프랑스산을 써야 납득할 수 있는 품질이 나온다. ‘우리밀’이라고 떠받드는 것은 우리 사정일 뿐이다. 게다가 인테리어부터 시작해 서비스 등 동네 백반집 차리듯 힘을 뺄 수 있는 요소가 전혀 없다. 투자가 많이 되어야 하고 인력도 다수 투입되며 식재료 원가도 비싸다. 이러니 프랑스 음식을 한번 제대로 먹으려면 카드 한도부터 살펴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대중이 프랑스 음식에 대한 이해가 매우 낮다는 것이다.

— “그래서 프랑스 음식이 뭔데? 프랑스 사람은 뭐 먹니?”

프랑스 음식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하면 제일 먼저 나오는 질문이다. ‘빵’과 ‘마요네즈’가 프랑스 말이라고 설명을 하고, 우리가 먹는 거의 모든 종류의 빵과 소스류가 프랑스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해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실상 프랑스 요리는 양식의 기본이요 뿌리다. 프랑스와 자존심 경쟁을 하는 이탈리아마저도 본토에 가보면 프랑스식 기법을 차용하는 경우가 다수다. 식재료에 대한 이해, 조리의 수준과 복잡성 등, 현재 주방의 구조와 용어, 조리법을 체계화하고 정립한 것이 프랑스였다는 것을 모른 채 단지 ‘코스 요리’라고 여기며 각 잡고 앉아 있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면 큰 오해인 것이다. 물론 이는 한국의 경제적 수준과 개발 속도 등 여러 요소와 관련이 있다. 이웃 일본만 하더라도 ‘재퍼니즈 프렌치’라고 불리는 그들만의 고유한 개성을 확립했고 오히려 역으로 종주국 프랑스에 큰 영향을 끼쳤다. 1960년대 새롭게 등장한 누벨 퀴진Nouvelle Cuisine, 즉 재료를 섬세하게 조리하고 깔끔한 맛에 중점을 둔 재현법은 일본에서 역으로 넘어간 것이다. 이는 그들만의 식문화 전통이 확실하고 식재료에 대한 이해 및 자원이 풍부하며 그것을 소비할 경제력이 뒷받침된 일반 대중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반면 한국은 프랑스 음식을 소비할 수 있는 대중의 범위는 서울 청담과 압구정 일대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 동네에 들어선 몇 개의 업장과 특급 호텔 몇몇만이 한국에서 유지 가능한 프랑스 음식 ‘시장’이다. 그러나 2012년 부산에서 새로운 움직임이 시작됐다. 프랑스 음식의 불모지라고 여겨지던 부산의 해운대 동백섬에 ‘메르씨엘’이 들어선 것이다. 메르씨엘에 가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저 택시 기사에게 목적지로 동백섬 ‘메르씨엘’을 이야기하면 아마 이런 답을 듣게 되리라.

— “메에르씨엘 가서 차 한잔 하실라꼬예? 거가 풍경이 참 조치예.”

이제 문을 연 지 5년째. 택시 기사가 그 이름을 알아들을 정도로 부산에서 자리를 잡은 메르씨엘에 가게 되면 가장 먼저 놀라게 되는 것은 해운대 앞바다를 향해 뚫린 풍광이다. 높은 산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듯, 앞으로 막힌 곳 하나 없는 대형 창을 통해 바다가 그대로 전해진다. 그 앞으로는 포장마차도, 크게 울리는 트로트 노래도 없다. 보이는 것은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와 그 든든한 배경이 되는 바다뿐이다. 이 배경을 뒤에 두고 펼쳐지는 것은 한국 그 어디보다 진지한 프랑스 음식이다. 그리고 지상 1층은 (택시 기사가 말했던) 차와 과자를 즐기는 ‘살롱드떼’이고 지상 2층으로 올라가야 레스토랑이 펼쳐짐을 알아두자. 더불어 부디 바라는 것은 여유를 두어 예약을 하고 그 레스토랑의 격에 맞게 옷차림을 가져달라는 것이다. 아무리 해운대지만, 슬리퍼에 반바지 차림으로 출입할 만한 곳은 아니다. 음식점의 종업원이 입는 옷이 그곳의 드레스 코드라는 말이 있다. 간단한 논리지만 틀리는 법은 극히 드물다. 그날의 밤, 여행 가방에 챙겨온 옷을 꺼냈던 것은 메르씨엘에 가기 위해서였다. 택시를 타고 메르씨엘에 도착했을 때 바다의 풍광은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경계를 나누는 해안가의 빛과 이따금 바다를 가로지르는 배의 작은 불빛으로 바다의 존재를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시킨 것은 메르씨엘 코스라고 부르는 프렌치 코스였다. 예전에 비해서는 간소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아뮤즈부쉬부터 시작하는 코스의 방법론을 버리지는 않았다. 서양 강낭콩(Pea)을 갈아 바게트 빵에 올린 타파스를 시작으로, 안초비와 방울토마토로 신맛과 짠맛의 균형을 잡고 참치를 밑에 깔아 무게감을 더한 타파스, 그리고 토마토소스를 지축 삼아 위에 게살튀김을 올렸다. 우리가 테이블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시간, 주문을 받는 타이밍, 그 모든 것을 아우른 타이밍에 놓인 아뮤즈부쉬Amuse- bouche에는 온기가 서려 있었고 또한 기름 묵은 냄새가 나지 않았다. 우리가 한번 숨을 들이쉬고 두 번째 숨을 내쉬는 순간, 잠시 허기를 느낄 타이밍에 나온 그 작은 음식들을 먹을 때, 비로소 이곳에서 펼쳐질 시간에 대한 막연한 설렘이 구체적인 기대로 바뀌었다. 반원으로 모양을 잡은 버터는 알맞게 녹아 칼을 대는 순간 반짝이는 단면을 보였다. 따스하게 데운 세 가지 종류의 빵에 버터를 발라 입에 넣었다. 쫀득거리고 살짝 단맛이 나는 모닝롤, 신맛으로 식욕을 돋우는 사워도우, 바삭한 껍질과 부드러운 속이 확연히 대비되던 바게트 모두 흔한 맛은 아니었다. 디테일은 예리했으며 흐름의 맥을 잡는 전체 그림은 매끄러워 잔잔히 흐르는 노래 같았다. 그다음으로 우리가 주문한 것은 리옹식 깜빠뉴 테린이었다. 고기를 갈고 그 사이에 초록으로 박힌 피스타치오, 그 모두를 하나로 만드는 촉촉한 지방과 짠맛의 조화는 이국적인 식재료의 향을 앞세워 혀를 공략했다. 시큼한 겨자 소스에 묻혀 파테를 조금씩 잘라 먹을 때, 이곳은 해운대가 아니라 하루에 두어 번 기차가 오고 가는 프랑스 시골의 작은 식당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양파 수프는 공간뿐만 아니라 계절도 바꾸어놓았다. 양파에서 단맛이 나도록 갈색으로 굽고 송아지 육수를 부어 끓이고 바게트 빵과 치즈를 켜켜이 쌓아 구운 수프에서는 꽃향기가 났다. 아마 코냑과 같은 술을 부어 마무리했으리라. 몸을 데우고 마음을 놓이게 하는 수프의 온기와 맛에 자세가 느슨해지고 웃음이 새어나왔다. 공간은 녹아내린 치즈처럼 조금씩 바닷속으로 사라져내렸고 남은 것은 사람과 음식뿐이었다. 메인으로는 부르기뇽과 양갈비가 나왔다. 와인을 넉넉히 붓고 소갈비가 뼈에서 살이 분리될 정도로 오래 익힌 부르기뇽은 가정풍이라고 하기엔 입에서 녹는 느낌이 아이스크림을 먹는 듯 고급스러웠다. 그러나 먹는 이로 하여금 부담을 가지지 않도록 푸근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거칠지 않게, 조심스럽게 겉을 굽고 부끄러운 듯한 앳된 분홍빛을 감춘 양갈비에서는 부르기뇽에서 감춘 칼날의 빛이 엿보였다. 녹색 초원의 향이 느껴지는 양갈비를 잘 드는 칼로 조금씩 잘라 민트 소스에 발라 입에 넣었다. 다른 한쪽은 양의 뼈와 채소를 구워 물에 우리고 졸여 만든 쥐Jus에 묻혔다. 그 뒤로 라벤더 티와 제철 과일 파블로바, 클래식 바닐라 밀페이유를 먹었다. 머랭을 굽고 과일을 올린 호주의 디저트 파블로바는 보기에도 아름다웠고 밀페이유는 바삭한 식감과 감미로운 바닐라의 맛이 대비를 이루며 황홀한 끝을 안내했다. 그러나 사실 음식의 맛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공간과 음식이 만들어낸 풍경이었고 음악이었다. 음식의 맛은 악기가 되고 큰 창 너머에 깔린 어둠은 그 악기의 소리가 울리는 무대가 되었다. 그 음악을 들으며, 와인잔을 들고 부딪히며, 밖을 바라봤다. 바다는 여전히, 명백히 그곳에 있었다. 보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 음식을 만든 이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메르씨엘Merciel은 프랑스어로 바다, 하늘, 그리고 감사하다는 프랑스어를 섞어 만든 조어다. 12년간 보낸 프랑스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려 윤화영 셰프는 그와 같이 식당의 이름을 지었다고 했다. 나는 그가 고마웠다. 보이지 않고 잡을 수 없더라도 느낄 수 있는, 진심을 담은 음식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정동현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 유통 회사를 다니다가 훌쩍 영국의 요리 학교 탕트 마리Tante Marie로 유학을 떠났다. 호주의 레스토랑에서 늦깎이 셰프로 요리 열정을 불사르며 일했다. 저서로는 <셰프의 빨간 노트>가 있으며, 지금은 신세계그룹 F&B팀에서 ‘먹고(Food) 마시는(Beverage)’ 일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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