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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무현의 무오키

2017년 11월 17일 — 0

열여덟 살에 셰프가 되겠다고 결심한 소년은 이라크 자이툰 부대 사령관의 개인 조리사를 거쳐 미국·영국·호주의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의 주방에서 꿈을 향한 도전을 이어갔다. 10년 후 아프리카 최고 레스토랑의 부주방장에 오르더니 귀국한 지 2년 만에 자신의 레스토랑을 열었다. 박무현 셰프의 진짜 도전은 이제부터다.

박무현의 제1막

셰프의 살아 있는 눈빛이었다. 레스토랑의 안착을 위해 요즘은 아침 6시에 일어나 자정이 넘어서야 잠자리에 든다는 박무현 셰프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자신감에 찬 모습이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잘하는 것도 할 줄 아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없던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었던 자신이 처음으로 가슴에 품었던 꿈을 이뤘기 때문이다. 박무현 셰프가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의 대표적인 컨템퍼러리 레스토랑 더 테스트 키친The Test Kitchen의 부주방장으로 승격되면서부터다. 국내 호텔에서도 총주방장을 지낸 경력이 있는 루크 데일 로버츠Luke Dale Roberts 셰프가 2011년에 오픈한 이곳은 1년 만에 남아공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선정되었고, 4년 후에는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50’에서 세계 20위권에 진입했다. 박무현 셰프는 더 테스트 키친의 오픈 멤버로 시작해 3년 만에 시니어 수셰프의 자리까지 올라 수년간 주방을 이끌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핫한 레스토랑의 부주방장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은 많은 미식가들을 열광케 했다. 그는 2015년에 귀국해 해비치 호텔앤드리조트 제주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밀리우의 헤드셰프로 활동하면서 본격적으로 국내 고객들과 소통할 수 있었다. 오히려 한국에 돌아온 후 자신의 레스토랑을 열겠다는 계획에 가속도가 붙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분들이 저를 격려하고 제 요리를 기대해주셔서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
청담동 외진 골목, 건물 2층에 문을 연 무오키는 더 테스트 키친을 축소해놓은 듯한 공간 레이아웃과 인테리어 디자인이 눈에 띈다. 층고가 높은 복층 구조로 카운터 테이블과 홀 좌석이 조화롭게 어우러지고 위층에는 아담한 사이즈의 프라이빗 룸이 마련되어 있다. 무엇보다 이곳에서는 홀과 맞먹는 크기의 오픈 키친을 통해 한 편의 공연을 보듯 요리사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낮 12시가 되면 무오키의 오픈 키친에서는 쿠킹 쇼 1부의 막이 오른다. 6명의 요리사는 각자의 위치에서 각개전투를 벌이다가도 박무현 셰프의 오더에 따라 놀라운 팀워크를 보여주었다. 각본 없는 휴먼 드라마는 그렇게 조금씩 완성되어갔다.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열정’이 박무현 셰프를 가장 잘 표현한 단어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절실함’이라고 정정해주었다. 매 순간 낭떠러지에 서 있다고 생각했기에 지금의 영광을 누릴 수 있는 것이라 덧붙였다. “만약 제가 부자였다면 요리를 고집하지 않았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런 여유가 없었어요. 요리사가 되기로 다짐한 후부터는 다른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으니깐요. 육체적, 정신적, 재정적으로 힘든 시기를 수없이 겪으면서도 주방에서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요리 아니면 안 된다는 절박함 때문이었지요.” 열여덟 살에 자주 가던 스파게티 가게 주인에게 부탁해 처음 주방에 발을 들인 그는 스물네 살에는 해외 진출을 목표로 하루의 ⅔를 영어 공부에 매진했다. 스물다섯엔 미국 워싱턴 힐튼호텔에서 인턴십을 시작으로 영국 더 팻 덕The Fat Duck, 호주 키Quay, 남아공의 더 테스트 키친까지 월드 베스트 급 레스토랑에서 꿈을 향한 도전을 이어갔다. 그의 간절함은 자신의 에너지를 오롯이 요리에 쏟아붓기 위해 돈, 연애, 유흥 등 부수적인 요소를 과감히 포기하기에 이르게 했다. 20대 때의 그는 매일 4시간씩 자고 17시간씩 주방에서 일했다. 다행히 노력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서른 살이 되었을 때 더 테스트 키친의 부주방장으로 승진했고 밀리우 헤드셰프를 거쳐 올해는 세간의 관심 속에서 무오키를 오픈했다. 한번 마음먹은 것은 꼭 해내고 마는 그의 성정에 진득한 인내력과 강인한 체력이 더해져 결국 일을 낸 것이다.
세계 최고의 주방을 두루 섭렵한 박무현 셰프의 요리는 트렌디하다. 전 세계 미식가들에게 주목받고 있는 몇몇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처럼 무오키의 메뉴는 클래식한 맛과 레시피를 모던하게 프레젠테이션한다.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있다. 레스토랑을 옮길 때마다 식재료에 천착해온 그는 재료가 가진 가능성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데 집중했다. 그의 시그너처 메뉴인 ‘토마토’는 토마토를 말리고 피클하고 콩피하고 튈과 소르베로 요리한다. 그리고 토마토 주스로 젤리를 만든다. 여러 가지 조리법을 통해 다양한 토마토의 맛과 향, 질감은 접시 위에서 하나의 메뉴로 완성된다. 그가 2015년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한 일도 전국의 좋은 식재료를 찾아다니는 ‘식재료 여행’이었다. “현재 무오키의 메뉴는 익숙한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앞으로 독특한 식재료를 꾸준히 소개할 예정이에요. 여러 국가를 다니다 보니 그 나라 식재료를 제대로 아는 데 최소한 3년은 걸리더라고요. 한국에서는 아직 2년밖에 안 됐으니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나아질 거예요.”

셰프의 꿈

이번 촬영을 기획하면서 그의 꼼꼼한 계획성에 놀랐다. 메시지로 일정을 논의하는데 촬영이 가능한 내용을 시간대별로 나눠 제안했기 때문이다. 그는 5분 단위로 일정을 짜는 철두철미한 스타일이다. 단시간에 괄목할 만한 결과를 만든 것도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한 그만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터. 예상했듯이 중장기 계획도 이미 짜여 있었다. 마흔이 될 때까지 캐주얼 레스토랑과 대중적인 메뉴를 선보이는 공간을 차례로 만들어 박무현의 요리를 3가지 버전으로 보여줄 계획이다. 그리고 마흔다섯이 되면 일선에서 물러나 가족과 후배를 더 많이 챙길 수 있는 여유를 갖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첫 단추인 무오키를 성공시키는 것이 최우선 과제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박무현 셰프가 미쉐린의 별보다 더 갈망하는 것은 무오키를 찾은 손님들에게 인정받는 것이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결과적으로 일등이 아니어도 정말 괜찮아요. 다만 손님들이 항상 최선을 다한다고 인지하는 사람이 되는 것, 그리고 그들이 제가 만든 요리를 먹고 행복할 수 있으면 돼요. 한국에 돌아온 이유도 한국 사람들과 한국어로 일하면서 한국 손님들에게 칭찬받고 싶어서인걸요.(웃음)”
박무현 셰프에게 요리는 직업 그 이상이다. 그는 입버릇처럼 요리가 자신의 삶을 180도 바꿔놓았다고 말한다. 아들이 직업군인이나 공무원이 되길 바랐던 아버지는 이제 어느 누구보다 그를 열렬히 지지하고, 학교에서도 듣기 싫은 잔소리를 달고 살았던 그는 이제 다른 누군가에게 조언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후배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자 한때 강단에도 섰던 그는 셰프의 덕목 중 첫 번째로 인성을 꼽았다. 인간관계에서도 오는 불필요한 스트레스가 없다면 업무가 힘들어도 할 만하다는 것을 오랜 주방 경험에서 터득했다. 당연히 무오키의 직원 채용 풍경은 여타의 레스토랑과 달랐다. 이력은 참고만 할 뿐 한 명당 최소 2시간 이상 면접하면서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려고 애썼다. 그의 혜안이 적중한 것일까, 주방 스태프의 70% 이상이 파인다이닝 경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팀워크는 최고의 하모니를 이룬다.

무오키Muoki는 아프리카어로 참나무라는 뜻이다. 더 테스트 키친 시절, 아프리카 대자연의 나무는 고된 노동과 업무 스트레스에 지쳐 있던 박무현 셰프에게 어머니 같은 존재였다. 그는 언제 찾아도 너른 품을 내어주는 나무 그늘에 누워 달콤한 낮잠을 자고 나무에 기대 행복한 미래를 상상했다. 첫 번째 레스토랑의 이름을 아프리카어로 지은 것은 그때를 추억하고 당시 그가 받았던 따뜻한 위로를 요리를 통해 손님에게 돌려주겠다는 셰프의 숨은 의도는 아니었을까. 나무를 굉장히 좋아한다는 박무현 셰프는 나무와 닮은 점이 참 많다. 해를 더해갈수록 우직한 그의 근성은 더욱 깊이 뿌리내릴 것이고, 숱한 유혹과 시련에도 늘 그래왔듯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DINING AT MUOKI

MUOKI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컨템퍼러리 레스토랑 더 테스트 키친에서 수셰프로 활동했던 박무현 셰프의 첫 번째 오너십 레스토랑이다. 더 테스트 키친을 오마주한 듯한 인테리어가 특징이며 바 좌석과 홀 테이블, 프라이빗한 룸까지 포함해 30여 좌석이 마련되어 있다. 동일한 식재료를 다양한 조리법으로 보여주는 베리에이션 메뉴와 스타일리시한 프레젠테이션의 조합이 훌륭하다. 익숙한 재료를 사용해 새로운 맛을 선보이며 메뉴마다 맛의 밸런스가 뛰어나다.
· 런치 7코스 6만원, 디너 10코스 12만5000원
· 서울시 강남구 학동로55길 12-12
· 010-2948-4171

edit 이미주 — photograph 이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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