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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의 위스키가 있는 밤

2017년 11월 10일 — 1

그의 달콤한 미소 뒤엔 언뜻 쓸쓸함의 그림자가 비친다. 독한 위스키를 잔에 따르던 밤에 나눈 낭만적인 요리와 이야기.

다시 만난 요리

무대 위에 마이크를 든 모습도, 조리대 앞에 칼을 든 모습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남자. 손호영이 다시 주방에 섰다. 올리브TV의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 <마스터셰프 코리아 셀러브리티>(이하 ‘마셰코’)에서 최종 우승을 거머쥔 이후 꼭 4년 만의 일이다. 그가 ‘요리 좀 한다’고 알려진 데는 분명 마셰코의 공이 크다. 방송에 출연한 2013년은 그의 인생을 통틀어 요리를 가장 많이, 그리고 치열하게 했던 시기다. 하루에 8시간 이상은 기본이고 밤을 새워 요리해야 했던 날도 부지기수였다. 그렇게 단기간 요리에 푹 빠져 살고 보니 프로그램이 끝난 뒤로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모든 전의를 불태우고 하얗게 소진되어버린 상태였달까. 마셰코 전에는 요리를 그저 취미로 소소하게 즐기는 수준이었다. 서른 살 독립 이후, 혼자 사는 것에 대한 로망을 하나씩 실현해갈 때 요리도 그중 한 가지였다. 친구들을 초대해 밥과 술, 안줏거리를 차려주곤 했다. 프라이팬에 굽고 튀기거나 냄비에 끓이는 손쉬운 요리가 대부분이었다. 특히 즐겨 했던 메뉴는 카레. 냉장고 안에 남아 있는 재료를 몽땅 썰어서 볶다가 카레와 물을 넣어 끓이면 간단하게 완성될뿐더러 여러 번 끓일수록 맛은 깊고 진해지니 이보다 기특한 음식이 없었다. 수제 돈가스는 아무에게나 해주지 않는 필살기였다. “냉동과 수제의 차이가 가장 큰 메뉴는 돈가스 아닐까 싶어요. 냉동 돈가스는 수분기가 거의 없어 뻑뻑한 데 반해 돼지고기를 직접 저민 후에 바로 튀김옷을 입혀 튀겨내면 정말 맛있거든요.” 이렇게 어느 정도 자신 있어 마셰코에 출연했지만 요리를 제대로 접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칼을 잡는 법부터 다시 배웠다. “그동안 제가 한 요리는 요리가 아니라 소꿉장난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죠. 요리라는 거대한 세계에 조금씩 빠져들면서 거의 반쯤 미쳤었던 것 같아요.” 뜨거운 불도, 날카로운 칼도 무서워하지 않는 그는 겁 없이 요리했고 그만큼 빨리 늘었다.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김소희 셰프는 창의성이 가장 돋보이는 참가자로 그를 꼽기도 했다. 재료마다 어울리는 궁합과 공식이 있기 마련인데 그는 전문 지식이 없었기에 오히려 더 과감하고 독창적일 수 있었다. “제가 잡채에 고구마를 썰어서 넣었던 적이 있어요. 고구마가 으깨져서 모양도 밉고 맛도 이상했는데 알고 보니 당면을 고구마 전분으로 만들더라고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죠.” 방송을 통해 요리에 진지하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지만 반대로 ‘마셰코 우승자’라는 타이틀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다. “몇 달 동안 겉핥기식으로 벼락치기한 것에 불과해요. 특히 생선 요리는 해본 적이 없어서 자신이 없는데 마셰코 우승자가 어디 가서 생선도 못 다듬으면 창피하잖아요. 그래서 더 요리와 멀어지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새우브루스케타에 쓸 기다란 바게트 빵을 꽤 능숙하게 썰면서 내뱉었다. “제가 그래도 한때 칼질을 하긴 했었나 봐요.” 잠시 지난날을 회상하는 듯하더니 어느 순간 다시 썰기에 집중. 오랜만에 요리하는 소감을 묻자 활짝 웃으며 재미있단다. 장을 보고 재료를 손질하는 일이나 요리를 마치고 뒷정리하는 일이 번거로울 뿐이지 음식 만드는 일 자체는 언제나 그의 마음을 뛰게 한다고. 만약 마셰코 섭외가 들어온다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또 한 번 도전해볼 것이라 답했다. “아직 해보지 않은 세상의 모든 요리를 다 해보고 싶어요.”

요리를 좋아하는 것만큼이나 대식가이자 미식가로도 유명한 그는 얼마 전에 올리브TV의 <원나잇 푸드트립> 촬영차 몽골을 다녀오기도 했다. “몽골로 간 게 큰 실패였어요. 거의 매끼 양, 양, 양, 소고기, 다시 양, 양, 양이었죠.” 고기를 주식으로 하는 나라이다 보니 거의 고기만 물리게 먹어야 했던 것이 못내 아쉬웠다. “소고기만두라고 해서 드디어 양에서 해방되었구나, 하고 기쁘게 먹었더니 양 기름을 넣어 또 양고기 맛이 났어요.” 당분간 양이라면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을 표정이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은 시원한 맥주로 입가심할 수 있었다는 것. 술 역시 주종을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데 그날의 느낌에 따라 술을 고른다. 툭 털어놓고 허심탄회한 인생 이야기를 할 때는 소주를, 연인과 단둘이 분위기 잡고 싶을 때는 와인을. 그리고 공기가 차갑게 변해버린 오늘같이 쓸쓸한 날은 위스키를 택한다. 독주에는 부담 없이 한 손에 들고 먹을 수 있는 브루스케타나 제철 과일을 올린 오픈 토스트가 적당하다. 토스트에 듬뿍 바를 크림치즈를 만들기 위해 거품기를 든 그가 잠시 멈칫했다. 공포의 머랭 치기가 생각난 모양이었다. “그래도 오늘은 생크림에 설탕을 넣고 30%까지만 휘핑을 하면 돼요. 여기에 부드럽게 풀어준 크림치즈를 넣으면 딱 좋은 농도가 되거든요.” 쉬지 않고 정신없이 손목으로 젓다 보니 결국 지나치게 휘핑을 해버리고 말았다. 다시 생크림을 부으며 호탕하게 너털웃음을 치는 모습에 모두가 웃을 수밖에.

새우브루스케타 위에 페페론치노 가루를 뿌려 완성하는 모습.
새우브루스케타 위에 페페론치노 가루를 뿌려 완성하는 모습.
천천히 반듯하게

2017년 단 하루도 쉼 없이 내달리던 레이스를 잠시 천천히 걸어갔다. 남들 눈에는 쉰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원 없이 노느라 바빴다. 스스로에게는 한마디로 ‘축제’ 같은 해였다. “내일이 없는 20대처럼 시간을 보냈어요. 뉴욕으로 여행도 가고 볼링도 치고 클럽도 다니고요. 20대에 해보지 못한 것을 이제야 한 거죠.” 그는 심지어 다음 주 볼링 프로 테스트를 앞두고 있었다! 솔로 가수로서, 또 뮤지컬 배우로서의 행보도 자신만의 길을 꾸준히 만들어가고 있는 그는 오는 11월 24일부터 뮤지컬 <올슉업>의 엘비스로 다시 찾아올 예정. 작년에는 진지한 정극에 두 편이나 도전했을 만큼 연기적인 부분에도 욕심이 많다. god 활동은 더욱더 빼놓을 수 없다. 재결합한 지 3년 차, 내년은 대망의 20주년 콘서트를 계획하고 있다. 공식 데뷔 일자는 1999년 1월 13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1998년 채널V에 출연하면서 비공식적인 데뷔를 한 바 있다. 이를 기준으로 하면 내년이 무려 데뷔 20주년이란다. 무엇보다 앨범의 방향에 대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중이다. “예전의 god 감성을 어느 정도까지 녹여내야 할까 고심하고 있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대중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이라고 봐요.” 무서울 것 하나 없던 정상에서 한 걸음씩 차분차분 내려온 그는 시간이 흘러 세대가 바뀌는 것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그럼에도 마음에 구멍이 뚫리는 기분을 지울 수는 없었다. “매해 콘서트를 할수록 실력도 늘고 퀄리티도 높아지는데 아이러니하게 관객 수가 줄어드는 걸 보면 쓸쓸해요.” 19년 동안 무대 위에서 울었던 적이 거의 없는 그가 작년 연말 콘서트 때는 결국 눈물을 보였다. “이 자리가 앞으로 없을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어요. 어쩌면 이 광경을 다시 못 볼지도 모른다고….” 잠시 말을 멈추었다. 때론 내뱉는 말보다 침묵이 더 많은 것을 드러낸다. 그 정적 안에는 두려움과 망설임 그리고 절박함, 미안함 따위의 감정들이 느껴졌다. 연약함을 내보인다는 건 ‘당신을 믿는다’는 숨김 없는 고백이 아니던가. 팬들 앞에서 흘린 눈물은 다시 말해 20년간 쌓인 그들에 대한 신뢰와 다름없을 것이다. “걱정하지 말라고, 그 한마디만 하고 싶어요.” 그토록 강인하게 느껴지는 표정은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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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사라

    호영씨의 진솔한 인터뷰 잘 읽었습니다~ 사실 잡지 나오자마자 바로 구매해서 이미 읽어보긴 했지만^^;; 이렇게 올매코 홈피에서 다시 정독하니 더 좋네요ㅎㅎㅎ 호영씨의 요리 저도 맛보고 싶어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