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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의 의미 @정기문

2017년 11월 3일 — 0

미식이란 자신만의 사연이 담긴, 진한 감동의 맛이 있는 음식을 즐기는 것이다.

글. 정기문

음식에 대한 최고의 명언은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라는 성경 말씀이다. 단 이 구절을 잘 해석해야 한다. 흔히 이는 빵을 먹는 것은 저급한 것이고 하느님의 말씀은 고귀한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 구절의 정확한 의미는 사람은 빵은 기본으로 먹어야 하고, 그러고 나서 하느님의 말씀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이 명언인 것은 인간의 본성을 매우 잘 표현했기 때문이다. 모든 동물 가운데 오직 인간만이 살기 위해서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서’ 산다. 생각해보라. 동물 가운데 어떤 것이 최고의 맛을 얻기 위해 세상 끝 오지에서 혹은 바닷속 깊은 곳에서 재료를 구하고, 온갖 향신료를 넣고, 발효를 하고, 정교한 레시피를 이용해서 조리를 하는가? 인간이 이렇게 미식을 탐닉하는 것은 미각이 발달해 있기 때문에 맛있는 것을 먹음으로써 쾌락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최고의 미식을 얻기 위해서 때로 목숨을 걸기도 한다. 고작 먹는 것에 목숨 거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역사상 많은 인물들이 실제로 그랬다. 유명한 사례로는 루이 16세를 들 수 있다. 프랑스 혁명이 한창일 때 그는 부인 앙투아네트를 데리고 혁명 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파리를 탈출하여 오스트리아로 도망가기로 결심했다.

혁명 세력은 ‘광기’에 가까운 열정에 사로잡힌 집단이기 때문에 탈출하다가 붙잡힌다면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다. 따라서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탈출은 목숨을 건 필사적인 일이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들은 탈출에 성공하지 못하고 ‘바렌’이라는 도시에서 붙잡혀 파리로 끌려왔고 종국에는 둘 다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이들의 탈출은 왜 실패했을까? 루이 16세의 식탐 때문이었다. 루이 16세는 참으로 대식가였다. 그는 한 끼 식사에 ‘소고기 2인분, 구운 닭 한 마리, 포도주 한 병, 달걀 프라이 여섯 개를 빵과 함께 먹곤 했다’. 그는 또한 민감한 미식가여서 맛있는 것을 보면 반드시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이런 성품은 탈출 마차가 생므누Saint-Menehould라는 작은 도시에 이르렀을 때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루이 16세는 그 도시의 특산품이 돼지족발탕이라는 것을 알고는 마차를 멈추게 한 후에 돼지족발탕을 먹고 가자고 고집했다. 왕이 명령했기 때문에 신하들은 따를 수밖에 없었는데 문제는 돼지족발탕의 조리시간이 매우 길다는 것이었다. 먼저 돼지를 잡아서 족발을 채취한 후에 끓여야 하기 때문에 조리시간이 최소한 몇 시간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이 16세는 기어이 돼지족발탕을 먹은 후에야 다시 길을 떠났다. 단순하게 이야기한다면 루이 16세는 좋아하던 돼지족발탕을 먹느라 탈출하다가 붙잡혔고 그 때문에 죽었다. 잘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고 했으니 그가 행복하게 죽었을까? 그만이 알 일이다. 많은 현대인이 루이 16세만큼은 아니지만 미식을 얻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TV에 맛집이 소개되고 나면 몇 시간씩 차를 타고 와서 줄을 서는 사람이 많다는 점, 사람들이 여행을 가는 주목적이 여행 지역의 유명 음식을 먹어보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 사실을 쉽게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필자도 맛 순례에 탐닉하곤 했다. 5년 전 음식에 관한 책을 쓰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200원짜리 믹스 커피밖에 모르던 사람이었는데 유명한 커피 가게를 찾아가서 메뉴에 있는 커피를 죄다 마셔보았다. 또 밥에 김치밖에 모르던 사람이었는데 유명한 빵집을 찾아서 좋은 빵은 몽땅 먹어보았고 백화점에 있는 치즈를 종류별로 사다 몇 달을 먹어보았다. 계속 치즈를 먹다 보니 치즈와 김치 맛이 비슷하게 느껴졌다. 서양에서 15년 살다 온 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치즈 맛을 제대로 알았구먼” 하고 말했다. 그런데 비싼 돈을 주고 온갖 빵, 치즈, 과자, 녹차, 커피를 아무리 사먹어도 ‘아 인생의 맛이야’라는 감탄사가 나오는 것은 없었다. 그 어떤 음식도 내가 직접 조리한 된장찌개나 멸치국수만 못했다. 그렇다고 내가 음식에 어떤 소질이나 조예가 있는 것은 전혀 아니다. 필자는 결혼하기 이전에는 음식을 해본 적도 없고 음식을 배워본 적도 없다. 결혼 후에 남녀평등의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남자도 요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쉽게 만들 수 있는 몇 가지 음식을 아내에게서 배웠다. 그런데 간단한 요리라고 했지만 요리에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가령 된장찌개를 끓이려면 감자, 양파, 호박, 멸치 등의 재료를 구입해야 하고, 재료를 다듬고, 육수를 내고, 된장을 섞어서 끓여야 한다. 적게 잡아도 족히 1시간은 걸린다. 그리고 간단하게 나물을 무치고, 밥을 해서 상을 차리려면 또 족히 1시간은 걸린다. 그렇게 해서 처음 내가 만든 음식을 먹었을 때 진한 감동을 느꼈다. 그 음식이 아주 맛있어서가 아니라 지금까지 어머니와 아내가 나를 위해서 그렇게 오랜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음식을 해주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내가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진정 독립된 개체로서 살아갈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최고의 미식은 이런 사연이 있는 음식일 것이다.

정기문

정기문은 서울대학교에서 역사교육학을 전공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 서양사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군산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대표 저서로는 <역사학자 정기문의 식사食史>, <세계사 박물관>, <역사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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