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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ing

고료리야 하루카

2017년 10월 23일 — 0

손이 많이 가고 비싸지 않은 음식을 하는 식당이 있다. 땅값이 비싼 곳도 아니고 사람들이 몰리는 곳에 있지도 않다. 대신 그 가치를 알고 뜻을 이해하는 이가 찾는 집이다. 일기일회一期一會, 일생 단 한 번의 만남을 위해 물잔을 닦고 손님에게 미소 짓는다. 마포 용강동의 ‘고료리야 하루카’다.

text 정동현 — illustration 왕조현

고료리야 하루카

전 세계에서 일식이 두 번째로 맛있는 곳은 어느 곳일까? 이론의 여지가 없다. 우리가 사는 곳, 한국이다. 뉴욕은 가장 비싼 레스토랑이자 미쉐린 3스타를 받은 마사Masa를 필두로 어느덧 일식이 파인다이닝의 주류가 되었다. 일본과 친교가 깊었던 대만, 금융의 중심지 홍콩도 일식의 강자다. 그러나 일본 본토에 가장 가까이 있다는 한국의 지정학적 유리함을 이겨낼 수 없다. 비행기로는 2시간이 채 안 걸리는 가까운 곳에 있는 일본. 재료가 궁하면 반나절 만에 장을 보고 다녀올 수 있다. 공유하는 식재료도 많다. 게다가 아픈 역사지만 근대 36년의 식민 시대를 거치면서 일식이 한식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일본으로 요리 유학을 가는 이들도 상당수다. 그중 특히 스시의 수준은 일본을 많이 따라잡았다. 조선호텔과 신라호텔을 중심으로 이어진 명문 일본 스시야와의 교류는 마치 과외수업과 같았고 그 수업을 마친 수많은 요리사들은 호텔을 뛰쳐나와 자신의 업장을 차렸다. 이제 한국의 스시 시장은 고급, 중급, 하급으로 분류할 수 있을 정도로 고도화되었다. 재료의 질에 큰 영향을 받는 스시의 특성상 값과 질의 상관관계는 분명하고 사람들은 경쟁과 시장 경제의 원리에 따라 자신의 지갑 사정에 맞는 스시집을 고르기만 하면 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러나 한국 일식은 여기까지다. 한국 엘리트 체육이 쇼트트랙과 양궁에 올인하듯 스시 말고는 내세울 만한 일식이 없다. 특히 손이 많이 가는 정통 화식和食은 고급 호텔에 가도 찾기 어렵다. 더구나 그 분포 역시 강남에 치우쳐 있어 한강 이북으로 넘어오면 제대로 일식을 하는 집이 호텔 업장 말고는 드물고 연령대가 낮은 연남동과 연희동에는 저렴한 단가로 승부하는 수준 이하의 이자카야가 난립한다. 그러나 때로 시장의 질서에 순응하지 않고 자유 의지로 살아가며 과감한 승부를 거는 이가 나타난다. 손끝으로 공을 잡고 공기의 흐름에 따라 궤적이 자유자재로 바뀌는 너클볼이 나아가듯, 바람에 날린 씨앗이 불시착한 것처럼 마포 용강동의 거리 한편에 자리한 정통 화식집이 있다. 그 이름은 고료리야 하루카(小料理屋 はるか)다. 마포역을 나오면 첫눈에 보이는 것은 고층 오피스텔이요 코로 느껴지는 것은 고기 굽는 냄새다. 일찍이 식당들이 군락을 이룬 나루터였던 마포는 이제 돼지구이의 일종을 가리키는 대명사가 되었다. 그 마포의 끝자락, 돼지갈비집이 무리를 이루고 거리마다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을 하는 용강동 길을 서강대 방향으로 한참 걷다 보면 길 한편에 너른 간판만 있고 글자는 없는 집이 나타난다. 처음 멀리서 봤을 때는 영업을 하는 곳인지 아리송했다. 조금 더 가까이 가면 일본풍으로 쓰인 글씨에 멈춰 서야 할 지점을 알 수 있었다. 굳이 사람들을 끌어모으지 않아도 된다는 자신감인지 아니면 번잡스러운 것을 원하지 않는 주인장의 성향인지 알 수는 없다. 영업은 저녁 6시부터 자정까지, 메뉴는 저녁 9시까지는 6만원 하는 오마카세 하나로만 진행하고 9시가 넘으면 오마카세가 아닌 단품류도 주문할 수 있다. 9시 이전에도 오마카세가 진행되는 와중에 따로 단품류도 주문 가능하다. 오마카세의 메뉴는 주마다 바뀌고 좌석은 오직 다찌밖에 없다. 빽빽하게 앉아도 12석 내외의 작은 규모, 당연히 예약은 필수다. 가게 문을 밀고 들어가니 손님을 반기는 환한 표정과 과하지 않은 인사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은 짝을 지어 술잔을 기울이고 하얀 조리모를 쓰고 안경을 쓴 요리사는 아이 같은 미소를 지었다. 그 옆 기모노 차림에 머리를 깔끔하게 뒤로 넘긴 여주인의 인사 소리는 잘 다듬어진 프로의 것이었다. 그 느낌은 차갑게 식힌 물수건을 건네받으면서 이어졌다. 기껏해야 맥주 한 잔을 두고 점잔을 떠는 일반 스시집과 달리 모두 앞에 술병을 두고 있는 모습을 보면 이 집이 지향하는 바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예감은 요리가 진행되면서 더 확실해졌다. 시작은 ‘네기도로’였다. 다진 쪽파와 참치를 와사비와 간장에 버무리고 그 위에 살짝 김을 뿌려 담아낸 이 요리를 한 젓가락 먹는 순간 사케를 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맛이 배제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숙성된 참치의 감칠맛은 농후하다는 형용사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 “제가 한동안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온 기념으로 프로모션 중인 사케가 있습니다.”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그 사케를 아니 시킬 수 없었다. 이름은 치에비진(ちえびじん, Chiebijin), 오이타현에서 나는 준마이다이긴죠급 사케였다.
— “제가 제일 좋아하는 사케입니다.”

주인장은 사케를 와인잔에 붓고 얼음을 넣은 나무 상자에 비스듬히 올려놓았다. 코를 와인잔에 밀어 넣자 모여져 있던 향이 몸속으로 들어왔다. 봄날의 꽃내음을 닮은 향기를 시작으로 은은한 단내가 훅 풍겨왔다. 한 모금 마시니 그 향은 맛이 되고 매끄럽게 목구멍을 미끄러져 내려갔다. 더할 나위 없는 맛이었다.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사케를 반 잔쯤 마셨을 때 ‘핫슨’이 나왔다. 핫슨(八寸)은 각 변이 8치(1치는 3cm)가 되는 상을 뜻하는 말이다. 각 변이 24cm가 되는 작은 나무 상 위에 담백한 맛, 짠맛, 기름진 맛, 단맛, 새콤한 맛, 총 5미味를 올려 그 위에서 맛의 완결성과 함께 계절을 동시에 즐길 수 있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박고지를 넣은 간뾰마끼를 시작으로 우메보시를 넣고 조린 열빙어, 흰살 생선을 토란 사이에 넣은 튀김, 표고버섯 간장 조림, 시금치를 데친 후 가쓰오부시 국물에 넣은 오히타시おひたし, 두부와 소고기, 파를 각각 간장에 조려 꼬치에 끼운 한입 스키야키, 방울토마토 젤리가 그날의 핫슨이었다. 담백한 것을 시작으로 시계 방향으로 돌아가며 맛을 봤다. 각각의 작은 요리의 조리는 완벽했고 맛을 볼 때마다 입안의 모든 감각을 이용하는 듯했다. 바쁘게 한 끼를 때우고 일어나야 하는 직장인의 점심은 이곳에 없었다. 혀의 감각을 모두 이용해 맛을 즐길 수 있는 작은 놀이동산 같았다. 그렇다고 일류 스시집처럼 엄숙하지도 않았다. 안경을 쓴 요리사는 음식이 나올 때마다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정확하고 바르게 설명했다. 그때마다 그의 얼굴에는 귀찮아 하는 기색이 하나도 없었고 오히려 음식을 알리고자 하는 열의마저 느껴졌다. 그 에너지가 손님에게 전해져 이곳의 분위기는 처지거나 혹은 젠체하지 않고 음식을 솔직하고 쾌활하게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요리가 단순하거나 혹은 흔한 것은 아니었다. 그 뒤로 이어지는 스이모노(국물 요리)는 도미의 가마살을 구워 가쓰오부시 국물에 넣은 뒤 튀긴 파를 올렸다. 단순히 생선을 물에 넣고 끓인 것이 아니라 총 세 개의 요리가 합쳐져 하나를 이룬 구성이었다. 처음에는 하나하나의 맛을 보고 그 뒤에는 입안에서 그 합을 느끼는 것이 순서다. 무엇보다 그릇에 뚜껑을 덮고 위에는 단풍잎을 올린 뒤 살짝 물을 뿌려 낸 그 순간부터 맛과 향은 이미 마음으로 전해졌다. 그다음은 모둠 스시였다. 간장에 절인 아까미(참치 등살), 살짝 아부리한 주도로(참치 중뱃살), 갑오징어, 아부리한 갈치와 도미, 식초에 절인 고등어가 한 접시에 올라왔다. 이 집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생선별로 숙성을 다르게, 또한 알맞게 한다는 점이다. 숙성을 통해 감칠맛을 극대화하는데 그리하여 그 맛과 조화를 이루는 술은 필수가 된다. 한 점에 한 모금씩 술잔을 비웠다. 사케병이 그만큼 줄어갔다. 사시미 접시를 물리고 난 후에는 두부를 튀겨 가쓰오부시 국물에 넣은 아게다시 도후가 나왔다. 이 요리도 이자카야처럼 두부만 쓴 것이 아니라 토란과 가지를 같이 써 맛과 식감에 변주를 주었다. 마지막 요리는 소고기와 감자, 당근을 간장에 조린 니쿠자카였다. 얇게 채 친 파를 고기와 감자, 당근에 살짝 올려 입에 넣었다. 폭신하지만 아예 부서지지 않는 알맞은 조리, 적절한 간, 그쯤 사케병은 밑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취기에 힘입어 주인장, 요리사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 둘의 꿈이 한국에 제대로 된 ‘료칸’을 만드는 것, 디저트가 없는 이유는 코스가 마친 후에도 흐름이 끊기지 않고 술잔을 주고받을 수 있게 하려는 의도라는 것, 그리고 세세하게 요리에 대한 대화를 이어갔다. 마침내 사케병을 비운 채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그 둘은 문밖까지 배웅을 나왔다. 결국 우리가 보이지 않는 곳까지 가서야 그 둘은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떠오른 것은 니쿠자카 안에 들어 있던 감자와 당근이었다. 모서리가 각지지 않도록 잘 다듬어진 단면. 그리하여 국물이 흐려지지 않고 온전한 형태를 이루며 입안에서는 고른 식감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그 사소한 정성. 이곳을 빛나게 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에 마음을 쓰는 정성이었다. 그것은 우리 모두 익히 알고 있는 평범한 것이었다.

정동현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 유통 회사를 다니다가 훌쩍 영국의 요리 학교 탕트 마리Tante Marie로 유학을 떠났다. 호주의 레스토랑에서 늦깎이 셰프로 요리 열정을 불사르며 일했다. 저서로는 <셰프의 빨간 노트>가 있으며, 지금은 신세계그룹 F&B팀에서 ‘먹고(Food) 마시는(Beverage)’ 일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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