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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의 의미 @ 강현정

2017년 10월 3일 — 0

즐기는 미식, 평가받는 미식.

text 강현정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알려주시오,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소”라고 브리야 사바랭은 말했다. 이렇듯 먹는 것은 한 개인을 이루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프랑스인들은 믿는다. 맛있는 음식을 예찬하는 미식가들, 좀 과장하자면 먹기 위해 산다고도 할 수 있는 이들은 진귀한 식재료에 환호하고, 맛있는 식당이라면 먼 거리를 마다 않고 찾아간다. 식사 문화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킬 정도로 자부심이 강하고, 음식에 목숨을 거는 프랑스인들에게 미식은 무엇일까? 단지 송로버섯이나 푸아그라만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테루아와 계절을 존중하는 자세, 기본을 중시하는 정확한 조리, 나아가 음식과 어울리는 와인과의 조화 등이 씨실과 날실처럼 촘촘하게 얽혀 있는 높은 식문화의 총체라 할 수 있다. 그들의 미식 예찬은 역사가 깊다. 원조 미식가인 고대 그리스 시인 아르케스트라토스의 장편 시에 가스트로노미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했고, 그는 당시 각지의 식재료와 비장의 요리법을 시로 읊었다고 한다. 그리스어 가스트로(위)와 노미(학문, 규범)의 합성어인 가스트로노미는 단순히 맛있는 것을 탐닉하는 구르메의 개념과는 조금 다르다. 단순한 식탐이나 먹는 즐거움에 지적, 문화적, 사회적 요소를 더한, 타인과 함께 향유하는 식탁에서의 쾌락이라는 성격이 더 두드러진다. 브리야 사바랭이 그의 저서 <맛의 생리학>에서 ‘영민한 사람만이 제대로 먹을 줄 안다’고 주장했듯이 먹는 행위, 나아가 미식은 단순히 한 개인의 생리적 욕구를 채우는 것을 넘어 타인과 식사를 함께함으로써 그 이상의 즐거움을 누리는 행위인 것이다. 이러한 미식의 습관은 프랑스 요리문화를 지속 발전시켰고, 그 형태나 유행은 바뀌어왔지만 미식의 기본은 오늘날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과거 왕실과 귀족의 전유물이었던 화려한 식문화는 신흥 부르주아 층에 번져나갔고, 1960년대에는 사치스러운 오트퀴진의 거품을 걷어내 재료 본연의 맛을 강조하고 건강까지 염두에 둔 가벼운 요리를 주창하는 누벨퀴진이 탄생했다. 현재 프랑스에서는 모던하고 창의적인 비스트로노미 위주의 실용적인 요리가 인기를 끌고 있지만, 이들도 그 뿌리는 과거로부터 이어져오는 미식 유전자와 같다. 즉, 테루아에 기반을 둔 양질의 식재료, 자연의 섭리를 존중하는 계절성, 탄탄한 기본기를 쌓은 실력 있는 요리사의 솜씨, 정성 어린 서비스 등이 어우러질 때 비로소 높은 수준의 미식이라 할 수 있다. 21세기 현재 미식은 계속 진행 중이다. 음식평론가나 레스토랑 평가서는 수많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음식을 평가하고 세상에 알린다. 때로는 실제 요리사보다 더 깊은 식견과 경험, 예리한 혀와 감각을 지니기도 한 이들은 요리를 만드는 사람과 이를 소비하는 미식가들 사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 국민이 미식가를 자처하고 SNS와 미디어에는 먹방이 넘쳐나는 미식 인플레 시대에 과연 진정한 미식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인구당 식당 수가 세계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많다는 한국에서 식당의 수명은 안타깝게도 그리 길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슐랭 가이드의 서울판이 발간되었고, 지금 많은 식당들은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마음이 분주하다. 하나의 식당이 미식가들의 사랑을 받기까지는 차곡차곡 쌓아나가야 하는 기초 토대가 필요하다. 하지만 결과물이 탄생하는 과정이 아주 짧고, 그 속도도 너무 빠른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심지어 그 과정이 반대로 진행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 높은 점수 획득을 최우선의 목표로 세운 다음 거꾸로 그 요건들을 채워나가는 것이다. 단숨에 외형상의 모습을 갖출 수는 있겠으나 기본기의 부실로 인해 까다로운 소비자들의 지속적인 충성을 받지 못하는 곳을 여럿 보았다. 이것은 속전속결로 이루어지기에는 너무나 많은 수고와 노력이 유기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단시일에 성급히 이루기에는 기초 토대가 꽤 견고해야 한다는 말이다. 좋은 식재료 구하기부터 정확하고 독창적인 레시피 구성까지 정말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는 생산자의 소명의식이나 요리사의 끝없는 노력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맛을 찾는 까다롭고 예민한 소비자들은 생각만큼 너그럽지 않다. 간단한 일품요리를 먹더라도 더 좋은 재료, 더 위생적인 관리와 준비, 더 정확한 익힘과 간, 더 아름다운 플레이팅을 원한다. 또한 지불하는 비용에 상응하는 더 세밀하고 구체적인 요구를 할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미식을 논하는 데 있어 까다로운 잣대를 들이대야만 할까?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한결 편안하고 소박하게 미식을 즐기기도 한다. 신선하고 좋은 식재료를 사용해 정확한 조리법으로 최적의 간을 한 상태의 맛있는 요리, 그리고 이것을 좋은 사람들과 즐거운 대화를 주고받으며 나누는 그 장면. 이것은 그 맛뿐이 아닌 총체적 미식의 기억으로 오래도록 남는다. 내가 미식을 경험했던 순간을 떠올려보면 늘 맛있는 음식, 좋은 동반자, 따뜻한 분위기와 마음이 담긴 서비스가 함께 있었다. 이처럼 미식은 종합적인 추억이다. 그것은 고급 레스토랑에서의 파인다이닝일 수도 있고, 정성껏 준비한 가정의 식탁에서일 수도 있다. 미식은 이렇듯 가까이서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강현정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프랑스어를 전공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불과를 졸업했다. 프랑스 문화와 요리 전반에 관한 관심과 애정으로 르 코르동 블루 파리에서 요리와 와인을 공부한 뒤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루카 카르통에서 견습했다. 프랑스 미식 관련 책들을 꾸준히 국내에 소개하고 있으며 대표적인 번역서로 <페랑디 요리 수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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