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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 사태에 부쳐 @정재훈

2017년 9월 29일 — 0

조류독감에 이어 살충제 파동으로 달걀이 다시 한번 도마에 올랐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고민할 때다.

text 정재훈 / edit 이미주 / photograph 이과용

달걀 사태에 부쳐 정재훈

반복되는 이야기
터졌다 하면 달걀이다. 조류독감 유행이 끝나자마자 이번에는 살충제 사태가 터졌다. 닭들은 두려움에 빠졌다. 전체 산란계의 ¼에 달하는 2518만 마리가 조류독감으로 살처분을 당한 직후, 다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달걀로 인해 264만 마리의 산란계가 죽음의 위험에 처한 것이다. 다행히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 정부는 지난 8월 20일 살처분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대신 닭에서 살충제 성분이 빠져나갈 때까지 기다리는 방식을 권했다. 사료를 제한하고 어두운 환경에서 지방을 줄이고 털갈이를 유도하여 닭의 체내에 쌓인 살충제를 더 빨리 제거하는 것이다. 체중이 30% 이상 줄어들고 깃털이 빠지는 와중에 달걀을 낳을 겨를이 있을 리 없으니 어차피 폐기처분해야 할 달걀의 생산도 동시에 줄어든다는 추가적 장점이 있다. 하지만 강제로 굶겨진다는 것은 동물에게는 가혹한 일이다. 실제 이 과정에서 상당수의 닭이 폐사한다.

방목이 답인가
문제가 터질 때마다 해법도 한결같다. 방사형으로 사육하면 된다는 거다. 닭이 자유롭게 움직이며, 흙먼지와 모래로 목욕을 할 수 있게 하면 자연스럽게 진드기를 줄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세상일이 이렇게 단순하고 쉽게 해결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렇지 않다. 유럽연합은 2012년부터 좁은 배터리 케이지 사육을 전면 금지했다. 이번 사태의 진원지가 된 네덜란드는 한 농장에서 평균 4만에서 5만 마리의 산란계를 키운다. 가족이 운영하는 소규모 또는 중간 규모 정도의 농장이 대부분이다. 한 회사가 수백만 마리의 산란계를 관리하는 미국의 기업형 사육과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이번 살충제 사태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더 친환경적인 네덜란드의 농가들에서 터졌다. 산란계 대다수가 좁은 닭장에서 관리되는 미국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조용했다. 쉽게 이해되지 않지만 이렇게 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동물로서 닭의 생태가 복잡하기 때문이다. 동물에게는 늘 기생충 감염의 위험이 있다. 애완동물을 키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개와 고양이를 야외로 데리고 나가는 순간부터 이와 진드기의 위협이 시작된다. 산란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진드기의 종류도 다양하다. 닭의 몸에 달라붙어 기생하는 이와 진드기가 있는가 하면 와구모 진드기(Red Mite)처럼 평소에는 둥지와 빈틈, 짚에 기거하다가 밤이 되면 닭의 피를 빨며 괴롭히는 종도 있다. 좁은 닭장 대신 널찍한 계사에 둥지와 횃대를 마련해주면 닭의 복지에 도움이 되지만, 동시에 와구모 진드기가 숨어 살 곳이 많아진다. (계사를 비우고 소독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같은 맥락이다. 이들 진드기는 닭에 계속 붙어 사는 게 아니라 계사 여기저기에 숨어 살고 있으니 계사를 소독해야 한다.) 재래식 닭장은 비좁고 닭의 움직임을 제한하여 스트레스를 주는 단점이 있는 반면, 외부 동물 침입과 와구모 진드기 감염을 막기에는 조금 더 유리하다는 장점이 있다. 이런 이유로 2011년 미국 농무부는 한 연구논문을 통해, 유럽에서 재래식 닭장과 살충제 사용이 금지됨에 따라 유럽에서 와구모 진드기가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었다. 최근 통계에 의하면 이 종류의 진드기는 유럽 양계농가의 83%에 만연해 있으며, 네덜란드, 독일, 벨기에의 경우 감염률은 무려 94%에 이른다. 2017년 유럽을 뒤흔든 살충제 사태는 예견된 재앙이었다.

달걀 사태 이면의 진실
살충제 검출로 인한 달걀 파문이 한창이던 지난달, 한 일간지는 “닭 날갯속 진드기 30마리, 흙목욕 1주일 만에 사라졌다”는 헤드라인의 기사에서 닭을 풀어놓고 키우는 동물복지형 양계농가들은 흙목욕의 효과 덕분에 살충제 없이도 진드기 피해를 훨씬 덜 입는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에 숨겨진 진실은 무엇인가? 헤드라인을 다시 읽어보자. “닭 날갯속 진드기”에 대한 이야기다. 기사에서 소개한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브래들리 멀런스 교수팀의 연구 결과는 닭의 몸에 달라붙어 사는 진드기에 대한 것이었다. 자유롭게 흙목욕이 가능한 방사형 사육 환경에서 닭은 흙을 몸에 비비는 행동으로 이들 진드기를 쉽게 떨어낼 수 있다. 흙목욕을 할 수 없는 케이지 속 닭은 진드기 감염에 취약하다. 좁은 공간에 여러 마리가 붙어 있으니 감염이 빠르게 확산될 가능성도 높다. 그러나 흙목욕을 할 수 있다고 해서 집 뒷마당의 닭이 모든 해충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는 없다. 브래들리 멀런스 교수팀이 내놓은 2016년 연구 결과에서는 뒷마당에서 자유롭게 뛰노는 닭이 케이지 사육장의 닭보다 훨씬 더 다양한 외부 기생충에 감염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세상일이 이렇게 어렵고 복잡하다. 하나를 풀면 또 다른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해결된 줄 알았던 사태가 반복된다.

미식으로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지난해 가을, 방송 촬영을 위해 방사형으로 닭을 기르는 농가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계사는 깨끗하게 유지, 관리되고 있었고, 사육 수도 적은 편이었다. 닭들이 여러 시간 동안 자유롭게 바깥을 드나들 수 있었고, 먼지로 목욕도 하고 가끔 날기도 하면서 활발하게 움직였다. 제대로 동물복지를 구현하는 농장이었다. 크기는 일반 달걀보다 작았지만, 노른자가 두툼하고 탄력이 있었으며, 맛은 비린내 없이 고소했다. 그런데 막상 집에 돌아와서는 그날 가지고 온 달걀을 많이 먹을 수 없었다. 방금 낳은 달걀에 남은 따뜻한 온기가 아직 기억에 남아 있었고, 난생처음 닭이 애써 낳은 달걀을 내가 뺏어 먹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생산량이 매우 적었다. 미식으로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옥수수로 살찌운 소 대신 풀 먹인 소를 먹고, 케이지에서 대량 생산된 달걀 대신 방사형 농장의 달걀을 더 많이 먹는다면 환경이 더 나아질까? 그렇지 않다. ‘팜 투 테이블 Farm to Table’ 운동으로 유명한 셰프 댄 바버가 자신의 레스토랑 블루 힐 앳 스톤 반스에서 경험한 대로다. 수년 동안 닭과 번갈아 초원에서 풀을 뜯도록 하여 키운 양 세 마리를 다시 여러 시간에 걸쳐 섬세하게 도축하여 준비한 양고기 48조각은 레스토랑을 연 지 1년이 지난 어느 날 밤, 겨우 “핫도그 하나 먹을 시간”에 전부 동이 나버렸다. 우리는 대량 생산이라는 말만 들어도 염증을 느끼는 사회에 살고 있지만, 정작 더 무서운 것은 대량 소비다. 과도한 방목으로 땅이 황폐해지지 않도록 순환 방목하면서 풀이 성장할 시간을 주면서 관리하여 양들을 기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미식가들이 그걸 먹어치우는 건 순식간이다. 생산자에게만 친환경, 유기농, 동물복지를 강요하면서 나는 그대로 먹겠다는 생각을 가져서는 곤란하다. 환경은 나와 다른 사람, 사람과 자연 간의 관계로 이뤄진다. 친환경 소비 없이 친환경 생산은 불가능하다. 유럽발 달걀 사태가 보여주듯, 대량 생산 달걀을 동물복지와 환경을 고려한 달걀로 대체하여 먹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친환경 달걀을 먹되 환경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경우에 따라서는 더 적게 먹어야 환경을 개선할 수 있다. 댄 바버가 블루 힐 앳 스톤 반스에서 소고기 스테이크 대신 당근 스테이크를 굽고 2등급 소고기를 끓여 만든 소고기를 내놓은 것처럼, 환경을 생각한다면 우리 식탁은 “자연이 제공하는 것을 반영하는” 요리로 채워져야 한다. 댄 바버는 자신의 두꺼운 책 <제3의 식탁>에서 돌려 말하려 애썼지만,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결국 우리가 지금보다 적게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 동물성 음식을 줄이고, 식물성 음식의 비중을 늘려야 한다. 소비 중심의 사회에서 소비를 줄이라니 선뜻 꺼내기 어려운 얘기다. 하지만 그렇게 생산과 소비를 줄여서라도 더 잘 관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지 못하면 이번과 똑같은 사태의 반복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다. 단지 내 체중을 덜어내기 위한 게 아니라 세상을 구하기 위한 다이어트를 해야 할 때가 가까이 오고 있다. 본래 미식의 기본은 음식을 조금씩 아껴 먹는 거다.

정재훈은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한 후 캐나다 토론토에서 다년간 약사로 일했다. 음식만큼이나 사람들과 요리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한다. 잡지, TV, 라디오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음식과 약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전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정재훈의 식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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