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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 @정동현

2017년 9월 23일 — 0

뜨거운 땅은 모든 것을 말려버린다. 모든 기운은 가라앉지 못하고 하늘로 향한다.
생생하고 현현한 열기 속에 부유하는 모든 것의 향을 끌어모은 음식이 바로 커리다. 한국에서 커리를 먹어야 한다면 답은 간단하다.
동대문에 가서 세계 최고봉의 이름을 찾는다.

text 정동현 – illustration 왕조현

더워서 사람이 죽는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한낮 기온이 섭씨 40도를 넘었다. 조금만 걸어도 현기증이 났다. 터번을 쓴 남자가 나를 노려봤다. 달궈진 땅에서 익은 냄새가 났다. 뼈만 남아 앙상한 꼬마 아이들은 ‘원 루피’를 외치며 내 뒤를 따랐다. 내 몸에는 덥다는 감각밖에 남지 않았다. 인도의 여름은 혹독했다. 왜 이 땅의 사람들이 살이 마르고 피부가 검게 타는지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차를 마시고 던진 진흙잔, 담배를 씹어 빨간 이를 가진 사람들, 릭샤와 소, 백미러가 없는 차들이 뒤엉켜 먼지만 가득한 도로, 이 모든 것이 인도였다. 20대 중반에 경험했던 7월의 델리는 참을 수 없는 더위가 모든 것을 뒤덮어 뿌옇게 만들어버렸다. 먹는 족족 설사를 했다. 처음 접한 인도의 커리는 향이 진하다는 말로는 다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말라버려 향이 짙어진 그 독한 음식을 입에 넣을 때마다 장이 놀랐다. 마실 것은 맥주밖에 없었다. 도망치듯 인도 북부행 버스를 탔다. 10시간이 걸려 인도의 휴양지라는 마날리에 갔다. 그리고 다시 12시간이 걸려 달라이 라마의 티베트 임시정부가 있는 다람살라에 도착했다. 위로 올라갈수록 기후는 서늘해졌다. 해발고도 1250m의 다람살라에서 여름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른 아침이면 추위에 떨며 낡은 담요를 머리끝까지 끌어올렸다. 잔뜩 싸온 반팔 옷 대신 긴팔 옷을 시장에서 샀다. 델리에서처럼 지루한 흥정은 없었다. 눈이 맑은 티베트인들은 긴 흥정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한국 돈으로 100원도 안 되는 1루피에 악착같이 달려들고픈 마음도 들지 않았다. 찬 바람을 맞으며 마살라Masala 짜이를 마셨다. 짜이는 외국에 수출하고 남은 싸고 질 낮은 홍차에 생강, 카르다몸과 같은 향신료와 우유를 넣고 달이듯 끓인 인도 특산의 밀크티다. 세계 3대 다우지多雨地 중 하나라는 다람살라의 열대 스콜을 한껏 맞고 따끈하고 다디단 짜이를 마시면 굳이 기도를 하지 않아도 마음에 평화가 몰려왔다. 음식도 입에 맞았다. 태양의 힘이 덜해질수록 음식의 독기도 빠졌다. 부담스러웠던 향은 순해졌다. 식욕이 다시 돌아왔다. 커리 하면 어머니가 해주던 카레밖에 모르던 시절은 갔다. 인도 인구의 족히 반수가 넘는 채식주의자를 위한 채소 커리의 맛도 알게 됐다. 감자를 조합한 커리의 수는 무한했다. 티베트 고원의 초입, 다람살라에는 해가 지고 나면 별밭이 펼쳐졌다. 은하수가 생생히 보였다. 그쯤 나는 싼 럼을 스프라이트에 섞어 마시고 취해 잠이 들었다. 인도에서 돌아와 한동안 커리는 입에도 대지 못했다. 한약재 비슷한 그 향이 나는 음식은 아예 먹지를 못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채 한 달을 가지 못했다. 이후 나는 인도 음식 경찰이라도 된 것처럼 ‘제대로’ 된 인도 음식을 찾아 먹겠다며 돌아다녔다. 강남의 유명한 식당과 이태원 등지를 돌아다녔지만 내가 돌아온 탕아처럼 결국 되돌아간 곳은 동대문의 ‘에베레스트’였다. 세계 최고봉의 이름을 딴 에베레스트가 문을 연 것은 2002년이었다. 네팔의 칸첸중가 출신으로 산악 장비 무역을 하던 ‘컬커만 구룽’ 사장은 사업을 하며 히말라야를 찾는 산악인과 사귈 일이 많았다. 네팔 대사관에 근무할 정도로 수완이 좋던 그가 서울에 와서 아쉬웠던 것은 음식이었고 그 아쉬움을 달래려 스스로 만든 것이 바로 에베레스트의 시작이다. 에베레스트 전에 인도 음식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에 들어오며 고급화 전략을 써 값이 비쌌다. 메뉴 또한 한국화를 한다며 다양하지 않았다. 에베레스트는 한국에 온 네팔인을 대상으로 하여 높은 값을 받지 않았다. 10여 년 전만 해도 이곳에 가면 한국 사람보다 피부색이 다른 인도, 네팔 사람이 더 많았다. 시간은 지나고 서울 전역, 그리고 수원과 평택 등 산업단지 부근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은 지역을 중심으로 인도 음식점이 더욱 많이 생겨났다. 예전처럼 용기를 내야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라 백화점에서도 찾을 수 있는 친숙한 음식이 되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에베레스트의 위상은 꺾이지 않았다. 인도와 네팔, 그 둘의 차이는 작으면서도 크다. 네팔은 인도 음식뿐만 아니라 티베트의 음식이 수렴하는 곳이기에 요리가 다양하고 무엇보다 향신료 향이 인도에 비해 순하고 맛이 느끼하지 않고 담백하다. 티베트식 만두인 ‘모모’를 비롯 볶음면의 일종인 ‘차오면’ 등 인도 북부에서 흔히 먹는 음식들이 이곳 메뉴에 있는 이유가 바로 이곳 음식의 맥脈은 네팔에 있기 때문이다. 노인들의 홍대라는 동대문 거리의 으슥한 뒤편, 건물 2층 에베레스트의 문을 열면 가장 먼저 현란한 군무가 나오고 있는 텔레비전이 눈에 띈다. ‘발리우드’라고 불리는 인도 영화는 이곳에서 하루 종일 볼 수 있다. 그리고 손님이 없을 때마다 그곳에 시선 고정을 한 종업원들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커리 하나를 시켜도 그때그때 조리를 시작해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늦어도 양해 바란다’는 표지를 본 것이 10년 전, 이제는 유명세를 타 음식 회전이 상당히 빠르다. 종업원들의 한국어 실력도 그만큼 늘었다. 무표정한 것은 여전하지만 빠르고 정확하며 친절하다. 웬만한 한국 식당보다 서비스가 낫다. 몇 페이지에 걸친 메뉴는 여럿이 와도 다 시키기 어렵다. 이럴 땐 전략을 세우는 편이 좋다. 밥과 난, 채소와 고기 그리고 사이드 메뉴를 적당히 분배해 다양한 맛을 보는 것이다. 또한 익숙하지 않은 메뉴를 한 가지씩 끼워 넣어 경험치를 높이는 것도 방법이다. 이곳에 갈 때마다 무조건 시키는 메뉴는 역시 닭고기 커리다. 그중에서 2001년 영국의 외무장관 로빈 쿡이 ‘진정한 영국 요리’라고 말한 ‘치킨 티카 마살라’는 빠뜨릴 수 없다. 인도 식민 지배의 역사가 긴 영국에서는 인도 커리가 마치 한국의 중화요리와 같은 위상을 차지한다. 그중 ‘치킨 티카 마살라’는 짜장면과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셀로판지를 덕지덕지 붙여놓은 인도 식당에 가면 어김없이 이 요리가 있다. 맵기는 살짝 매콤한 수준, 향신료에 재워놓았다가 아궁이와 비슷한 탄두리 화덕에 구운 닭고기를 넣어 은은히 불 맛이 나 식욕을 쉽게 당긴다. 그리고 빠뜨릴 수 없는 것은 시금치 커리 중 하나인 ‘팔락파니르’다. 시금치를 얼마나 갈아 넣었는지 걸쭉한 질감을 가진 팔락파니르는 하얀 코티지 치즈도 함께 들어간다. 채식을 할 때 모자라기 쉬운 단백질을 보충하는 역할을 하는 식재료다. 시금치나물만 아는 한국인에게는 낯선 음식이지만 충분히 도전할 만하다. 유분을 제거한 버터인 기Ghee에 볶아 갈아낸 시금치는 고소하면서도 은은히 쇠 맛이 난다. 시금치의 철분 때문이다. 여기에 비슷한 금속성 맛과 신맛, 그리고 단 유분을 가진 치즈가 어울리면 재미있는 조합이 된다. 또 하나 빠뜨릴 수 없는 것은 역시 양고기 커리다. 그중에서도 매운 커리로 유명한 인도 서남부 고아 지방의 빈달루Vindaloo 커리는 한국인이라면 꼭 한번 먹어봐야 한다. 인도 커리는 맵다라는 고정관념을 만든 커리이기도 하다. 영국에 잠시 살던 때, 빈달루 커리를 마구 퍼먹던 나를 보던 영국인 친구의 놀란 표정을 감상하던 그때처럼 강황을 넣고 볶아 색이 노랗고 인도 특산 쌀인 ‘바스마티’ 종으로 만든 볶음밥을 곁들이면 특히 좋다. 밥이 날린다고 불평을 하는 것은 이제 옛날의 일, 민트와 재스민 향이 나는 인도 쌀이 아니면 커리의 향을 받아낼 수가 없다. 갓 구워낸 난도 필수다. 갈릭난, 버터난 등 취향에 따라 골라 먹을 수도 있다. 메인 요리로 탄두리치킨을 시키면 네 명이 와도 충분한 양이 된다. 탄두리 화덕에서 기름기가 쏙 빠져 담백하지만 전혀 퍽퍽하지 않은 질감을 가진 탄두리치킨은 이 집의 대표 메뉴이기도 하다. 그리고 마지막은 인도식 요구르트인 라시와 마살라 짜이다. 델리에서 먹던 것처럼 설탕이 씹히는 라시는 아니다. 대신 신맛과 단맛이 조화로워 툭 튀지 않는 무던한 맛이다. 그래서 더위를 쫓으며 먹기에는 제격이다. 맛만 볼까 한 잔을 시켰다 여러 잔을 추가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나는 여름이 아닌 겨울을 기다린다. 에베레스트를 찾아 그 진한 짜이를 제대로 맛볼 수 있는 계절은 겨울이기 때문이다. 눈이 내려 길이 얼고 사람들이 두터운 옷을 입고 거리를 종종걸음으로 걸을 때, “여기는 어떻게 알았어?”라는 소리를 들으며 동대문 뒷골목을 찾는다. 그리고 진한 짜이를 시켜 마시며 뿌연 창을 쳐다본다. 그곳에 비친 내 얼굴이 흐릿해져 형체가 불분명하다. 그러면 나는 그 옛날 열사의 땅 인도를 헤매던 20대의 나를 잠깐이나마 찾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정동현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 유통 회사를 다니다가 훌쩍 영국의 요리 학교 탕트 마리Tante Marie로 유학을 떠났다. 호주의 레스토랑에서 늦깎이 셰프로 요리 열정을 불사르며 일했다. 저서로는 <셰프의 빨간 노트>가 있으며, 지금은 신세계그룹 F&B팀에서 ‘먹고(Food) 마시는(Beverage)’ 일에 몰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