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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의 의미 @한창훈

2017년 9월 19일 — 0

미식이란 음식 안에 배어든  만든 이의 수고를 짐작하는 것이다.

나는 섬에 살고 있다. 당연히 생선과 해초를 자주 먹는다. 어제 저녁은 전갱이구이에 밥을 먹었고 오늘 아침에는 고둥수프를 먹었다(이따가 만드는 법을 가르쳐드리겠다). 이렇게 말하면 다들 부러우시겠지만 사실 먹을 게 그런 것 말고는 별로 없다. 이곳에서는 1kg짜리 도미회 떠놓고서 친구 부르면 면박당하기 십상이다. 심마니에게 도라지 선물하는 꼴이니까(물론 3kg짜리라면 말이 달라지지만). 대신 좋아하는 게 있다. 족발이나 갈비, 삼겹살이면 흐뭇해한다. 흔한 것은 무시당하고 귀한 것은 대접받는 것이 세상사 인지상정이다. 한 홉의 물이 가뭄 때와 홍수 때 다르듯 말이다. 이러니 육지에 한번 나가면 찾아 사먹는 게 거의 정해져 있다. 순댓국밥, 냉면, 짬뽕, 짜장면 같은 것들. 그곳에선 흔하고 이곳에선 귀한 것들 말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일로 한동안 육지에서 머물다 돌아오면 강력하게 해물을 원하게 된다. 당장 바다로 나가 그게 무어라도 몇 마리 낚아서 썰고 무치고 끓여 먹는다. 한참 만에 먹는 거라 입에 짝 붙는다. 소증素症과 비슷한 증세다. 친구들이 옆에서 오리 주물럭 먹고 있어도 쳐다도 안 본다. 하다못해 반 뼘 정도 크기의 자리돔도 뼈꼬시로 해먹는다. 바로 이 맛이야, 하면서.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면 순댓국밥이나 짬뽕 생각이 간절해진다. 과음한 다음 날이면 더욱 그렇다. 혀만큼이나 이기적인 물건이 또 있을까. 섬에서는 고를 메뉴가 워낙 적다 보니 ‘아, 뭐 먹지?’ 탄식이 저절로 나온다. 이를테면 오후 6시 거문슈퍼 평상 앞에 모인, 가까운 몇 사람의 풍경이다. 세 명이면 세 명, 네 명이면 네 명 모두 그 소리를 한다. 어제 한 고민 오늘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 내일도 할 것이다. 같은 시간, 근처 횟집에서는 육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왁자하니 회정식을 먹어대고 있다. 소라와 홍합이, 해삼과 돌멍게가, 그리고 농어나 참돔이 그들 입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감탄과 칭송이 그 입에서 나온다. 툭하면 ‘위하여!’ 소리도 쉬지 않는다. 혀만큼이나 바쁜 게 또 있을까. 괴테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내가 돼지고기를 먹으면 그 돼지고기는 괴테가 된다.” 멋진 정의이다. 그동안 먹었던 것들이 세포를 만들어 지금의 내 살과 뼈를 이루고 있다. 먹는 것을 통해 끊임없이 나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종종 이런 생각을 했었다. 아주 비싸고 유명한 음식, 그러니까 철갑상어 알이나 송로버섯, 푸아그라(거위 학대 논란이 있다) 같은 것을 먹으면 사람 자체가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것 말이다. 미안하지만 아직까지 그런 증거는 찾을 수 없었다. 라면 먹는 것보다야 건강해지겠지만 마음을 바꾸는 것을 한 번도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우리 몸은 그것을 단순한 ‘남의 살’로만 여길 테니까. 미식을 탐하는 모습이 그다지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시 고둥으로 돌아간다. 오늘 먹은 고둥은 어제 잡은 것이다. 식당 하는 후배와 마을 뒤편 바다에서 물안경 쓰고 잡았다. 연이은 폭염으로 바닷물은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파도에 몸이 쓸리지만 늘 그러는 것이니 그러는가 보다 해야 한다. 고둥 종류는 엄청나게 많다. 일일이 이름도 다 못 외울 지경이다. 우리 섬사람들은 그중 시리고둥이라는 것을 최고로 친다. 반듯한 원뿔 모양으로 가장 크고 살도 넉넉하다. 패류도감에서는 바다방석고둥으로 나온다. 한 시간 정도 물질을 한 다음 망태 짊어지고 돌아왔다. 뭔가 근사한 그림 같겠지만 이제 고작 한 단계 끝난 것이다. 솥에 삶는 것은 간단해서 단계로도 안 친다. 정작 중요한 일이 남았다. 식힌 고둥을 함지박에 쏟은 다음 까야 한다. 쌀에 비유해보자. 바위에서 고둥 잡는 게 탈곡脫穀이라면 까는 것은 도정搗精이다. 껍질 까지는 것 말이다. 바늘을 찔러 넣고 손이나 고둥 자체를 돌리면 기가 막힌 타원의 속살이 나온다. 암컷들은 알이 차서 동그라미 끝부분이 빛나는 노란 빛깔이다. 예쁘면서 탐스럽다. 하지만 이 짓이 만만치 않다. 다섯 사람이 세 시간 걸렸다. 눈이 침침해지고 허리가 아픈 것도 예사이다. 끝나자 다들 아이고, 소리를 내며 허리를 폈다. 두 번째 단계가 끝난 것이다. 이때 누군가에게서 나온 말. “이런 것은 그냥 얻어먹으면 의미가 없어. 이렇게 다 해야 진정한 맛을 알지.” 마지막 단계는 후배 부인이 했다. 먼저 멸치 육수에 고둥을 넣고 끓인다. 끓을 때 물에 푼 전분과 들깻가루를 넣는다(상황에 따라 찹쌀가루를 넣기도 한다). 양파와 대파 같은 기본 채소는 필수, 깻잎이나 방아 잎, 청양초는 선택 사항이다. 양파 조각은 불 끄기 1분 정도 전에 넣으면 식감을 살릴 수 있다. 그러니까 잡으러 간 것부터 해서 최소 여섯 시간 걸린 것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 고작 10분 만에 먹어치웠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밥을 빨리 먹는 편이기는 하지만 여섯 시간과 10분은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 이게 마련하는 사람의 노동과 받아먹는 사람의 만족, 그 둘 사이의 거리이다. 공짜처럼 먹어대는, 누군가 만들어준 음식을 대했을 때 우리의 미식 개념은 그렇게 준비하는 이의 수고를 짐작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게 없으면 먹을 수 없으니까.


한창훈은 소설가로 한겨레문학상, 요산문학상, 허균문학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대표작으로는 소설집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 <가던 새 본다>, 장편소설 <홍합>, <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 산문집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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