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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버거 이야기

2017년 9월 14일 — 0

덜 익은 패티 때문에 생기는 ‘햄버거병’부터 맥도날드의 식중독균
검출 소식까지 햄버거에 대한 안 좋은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가장 친숙하지만 건강하지 못한 음식으로 간주되는 햄버거에 대한 모든 이야기.

비만은 햄버거 탓인가 
모르면서 아는 척하기 쉽다. 친숙한 음식일수록 그렇다. 얼마 전 쉐이크쉑에 처음 들렀을 때였다. 맛이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줄을 길게 서서 기다릴 정도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햄버거가 너무 작았다. 감자 프라이를 함께 주문하지 않았더라면 먹자마자 배고플 뻔했다. 하지만 내가 간과한 사실이 하나 있었으니, 햄버거는 본래 그렇게 작았다는 것이다. 미국인의 대중 음식으로 햄버거의 위상이 높아지기 시작한 1920년대에만 해도 패티 사이즈가 개당 30g이 채 되지 않았다. 레이 크록이 미국 일리노이주 디스플레인즈에 자신의 맥도날드 1호점을 연 1955년 햄버거의 패티 역시 가열 조리 전 45.4g, 조리 뒤 30g에 불과했다(이 패티 무게는 1파운드의 십분의 일이어서 종종 10:1 패티라고 불린다). 그때만 해도 맥도날드 메뉴판에 햄버거는 15센트짜리 그냥 햄버거와 19센트짜리 치즈버거 단 두 가지만 존재했다. 아직도 맥도날드 매장에서 주문이 가능하며, 패티 중량도 그대로인 이들 버거의 열량은 각각 253kcal, 302kcal다. 햄버거만 먹으면 그냥 딱 밥 한 공기 열량이다. 콜라와 프렌치프라이까지 당시 사이즈로 맞추면 다 먹어도 열량이 700kcal를 넘지 않는다. 이 정도면 하루 세끼를 먹어도 체중을 늘리기 어렵다. 이쯤이면 왜 맥도날드 1955버거가 진짜 62년 전의 햄버거와는 거리가 먼 것인지 알 만하다. 1955년 오리지널의 맛을 살렸다는 이 버거의 패티는 쿼터파운더와 동일한 113g으로 당시 실제로 사용한 패티의 2.5배 중량이다. 정말 과거를 재현해보고 싶다면 그냥 햄버거나 치즈버거에 스몰 사이즈 프렌치프라이와 콜라를 맛보는 게 낫다. 우리는 62년 전의 햄버거 맛을 상상하면서 당시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고기와 감자와 콜라를 먹고 있다. 햄버거 때문에 살찌는 게 아니다. 많이 먹어서 살찐다. 비만은 양의 문제다.

햄버거와 짜장면의 공통점
누가 언제 어디서 처음으로 햄버거를 만든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잘 모르는 문제일수록 여러 억측이 난무하는 법이다. 칭기즈칸이 이끈 몽골 제국의 기마병들이 날고기를 안장 밑에 넣어 연하게 만들어 먹었던 데서 햄버거와 타르타르스테이크가 유래했다는 설이 대표적이다. 땀으로 고기에 간이 배어 먹기에 좋았을 거라는 추측도 더해진다. 허구도 이런 허구가 없다. 안장 밑에서 땀으로 오염된 고기는 변질되어 도저히 먹지 못할 음식이 되고 말 것이다. 타르타르스테이크 역시 몽골인들과는 관련이 없다. 프랑스에서 원래 이 요리의 이름은 아메리칸 스테이크였고, 날고기를 저며 그대로 먹는 요리에 타르타르소스를 곁들여 내는 과정에서 타르타르스테이크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진 것이다. 음식의 기원에 대한 허황된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으면 곤란하다. 그냥 가벼운 흥밋거리일 뿐이다. 햄버거는 짜장면과 여러 가지로 닮았다. 둘 다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누군가 처음 만들긴 했을 텐데, 그게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독일 이민자들이 고기를 갈아 만든 햄버그스테이크를 즐겨 먹었다지만, 번 사이에 패티를 넣어 먹는 햄버거와 햄버그스테이크는 별개의 음식이다. 짜장면이 정통 중국 음식이라기보다 한식인 것처럼 햄버거도 독일 요리가 아니라 미국 요리다. 둘의 비교가 더 재미있어지는 것은 수제 버거에 이르러서다. 기계가 만드는 햄버거는 없다. 고기를 굽는 기구가 무엇이든 최종 조립은 사람 손으로 해야 한다. 모든 햄버거는 수제 버거인 셈이다. 그런데도 수제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이유는 만드는 타이밍과 관련된다. 주문 즉시 고기를 굽고 조리하여 만든 햄버거임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맞다. 그냥 햄버거가 미리 만들어둔 소스를 얹어 내는 짜장면이라면, 수제 버거는 그때그때 즉석에서 볶아내는 간짜장이다. 짜장이냐 간짜장이냐의 단순한 구분보다 요리사의 실력이 중요한 것처럼 ‘수제’라는 수식어도 햄버거를 고르는 데 별 의미 없다. 어떤 재료로 어떻게 요리되었는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 패티 위에 달걀 프라이를 올리느냐 마느냐보다 그 완성도가 맛의 성패를 가른다. 나는 고무처럼 질긴 달걀 프라이 때문에 망친 수제 버거를 여러 번 맛봤다.

고기와 익힘의 문제  
버거 패티를 어느 정도로 익히느냐는 더 중요한 문제다. 이는 맛의 문제일 뿐 아니라 건강 문제이기도 하다. 고깃덩어리 자체는 표면을 제외하면 무균이지만, 고기를 잘게 갈면, 세균으로 오염된 표면의 고기 조각들이 고기 전체로 섞여 들어간다. 갈아 만든 햄버거 패티는 충분히 익혀주어야 안전하다. 다시 몽골 기마병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들이 타르타르스테이크의 전파자가 되었을 리 만무한 것은 익지 않은 고기의 위험성 때문이다. 바로 먹는 육회도 아니고, 안장 밑에서 덥혀지고 오염된 고기를 혹여 잘못 먹었다가 배탈이라도 나면 어떻게 말을 타고 초원을 누빈단 말인가. 이런 문제를 피하기 위해 예로부터 몽골인들의 주된 음식 조리법은 삶거나 찌는 방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덜 익은 햄버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맛 때문이다. ‘요리의 과학자’라 불리는 해럴드 맥기의 부친의 경우가 그러했는데, 맥기가 자신의 책 <훌륭한 요리를 위한 열쇠Keys to Good Cooking>에 쓴 내용을 보면, 그의 아버지는 레어보다 더 레어로 햄버거를 즐기곤 했다고 한다. 패티를 그릴 위에서 살짝 흔드는 정도로 익혀 먹었으니 맥기의 아버지가 식중독으로 종종 고생한 것은 뻔한 일이었다. 그렇게 고생하고도 레어로 익힌 햄버거를 고집하는 아버지를 위해 맥기는 안전한 레어 햄버거 만드는 법을 고안하고, 책에 기록할 정도였다. 그의 비결은 고기를 덩어리째 구입해서 끓는 물에 30~60초를 담가 표면을 살균하고, 얼음물에 1분 동안 식혔다가 꺼내어 바로 갈아내는 것이다. 물론 그 정도로 레어 햄버거에 대한 욕구가 크지 않은 사람이라면 중심부까지 70℃가 되도록 패티를 완전히 익혀서 먹는 것으로 충분하다. 햄버거는 완전히 익혀 먹는 게 가장 안전하다.

햄버거에 가려진 것들 
현대 미국인들의 식단에 햄버거가 미친 영향은 어마어마하다. 1950년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육류 자리를 두고 돼지고기와 소고기가 경쟁했다. 하지만 20년 뒤에는 소고기 소비가 이전의 두 배로 늘어나면서 1위를 차지했다. 미국인들의 소고기 소비가 늘어난 것은 그들이 햄버거를 많이 먹었기 때문이다. 연중 소고기 소비량의 절반이 햄버거로 인한 것이었다. 맥도날드와 같은 거대 프랜차이즈의 영향력이 막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맥도날드 한 회사가 메뉴에 무엇을 더하느냐가 미국의 전체 식품 시장에 파장을 미친다. 미국에서 소고기, 돼지고기, 감자, 양상추, 토마토를 가장 많이 구매하는 곳이 맥도날드다. 닭고기는 KFC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구매한다. 몇 년 전 메뉴에 사과 슬라이스를 추가하면서 이제는 미국에서 가장 많은 사과를 구매하는 회사가 되기도 했다. 그만큼 식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맥도날드 메뉴가 어떻게 바뀌느냐가 미국 언론의 화제에 오르는 이유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도 그러한가는 의문이다. 국내 롯데리아, 맥도날드, 버거킹 매장을 모두 합쳐도 2000곳을 넘지 않는다. 우리는 전 세계의 맥도날드 매장 수(2013년 기준 3만5429개)보다 더 많은 수의 치킨집(약 3만6000여 개)이 존재하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 치킨집 대부분은 영세 자영업자에 의해 운영되지만, 여기에 닭고기를 공급하는 육계 기업은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소수다. 시장은 이들에 의해 좌우지된다. 미국에서 사람들의 식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큰손이 맥도날드류의 햄버거 프랜차이즈라면 한국에서 그런 큰손은 육계 기업이다. 솔직히 우리 대다수는 햄버거 패티 원료육의 원산지와 사이즈보다 프라이드치킨 가격과 닭의 호수에 더 민감하지 않은가. 최근 햄버거가 논란의 중심에 서긴 했지만, 그렇다고 햄버거가 우리 식생활에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는 음식은 아니다. 햄버거에만 너무 집착하지 말자. 대한민국에서 먹거리 문제를 논하려면 대한민국을 들여다봐야 한다. 문제를 제대로 파헤쳐야 해결책도 제대로 찾을 수 있다.


정재훈은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한 후 캐나다 토론토에서 다년간 약사로 일했다. 음식만큼이나 사람들과 요리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한다. 잡지, TV, 라디오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음식과 약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전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정재훈의 식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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