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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의 까델루뽀

2017년 9월 12일 — 0

서촌의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서울의 중심부인데도 고층 건물은 찾아볼 수 없고 대로에서
한 블록만 들어가도 미로 같은 골목 사이로 낮은 한옥과 다세대 주택이 이어지는 독특한 풍경을 자아낸다.
그곳에 오랜 시간 동안 서촌지기를 자처해온 이재훈 셰프가 있다.



젊은 셰프, 서촌을 품다

서촌의 골목길을 걷다 보면 정겨운 풍경과 마주한다. 집 앞에 내놓은 화분이며 빨래, 스티커가 잔뜩 붙은 전봇대, 수도 계량기까지 오늘날 서울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그림들이다. 그리고 그 정감 있는 풍경들 사이사이에 한옥과 주택을 개조한 레스토랑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지금에야 몇몇 실력 있는 셰프들이 유입되면서 갈 만한 곳이 많아졌지만 불과 4~5년 전만 해도 서촌은 미식의 불모지였다. 파인다이닝이라는 개념조차 낯설던 시절부터 서촌의 느린 정서가 좋아 묵묵하게 이곳을 지켜온 셰프가 있다.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새로운 다크호스로 떠오른 이재훈 셰프가 그 주인공이다. ‘서촌 황태자’, ‘서촌지기’, ‘서촌의 맹주’ 등 그의 이름 앞에는 항상 ‘서촌’이란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그도 그럴 것이 서촌에만 5개의 레스토랑을 운영 중이며 인적이 드물던 이 동네를 핫 플레이스로 만든 데에는 그의 공이 컸기 때문이다. 청담동에 위치한 700평 규모 레스토랑의 총괄셰프였던 그가 무슨 연유로 테이블이 5개뿐인 까델루뽀를 운영하게 되었을까. 강남의 급변하는 트렌드와 과도한 경쟁에 지쳐 있을 때쯤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일했던 곳이 여러모로 좋은 조건이었지만 어느 순간 기계처럼 일하는 제 자신을 발견했어요. 언제 행복했었나 되짚어보니까 요리하면서 손님한테 다가갔던 순간이더라고요.” 회의감이 들어 공부나 더 하자 마음먹고 일본 유학을 준비하던 중 가려고 했던 지역에 지진이 발생했다. 그리고 지인의 소개로 운명처럼 까델루뽀에서 일하게 됐다. 까델루뽀는 오래된 한옥을 레노베이션해 2006년도에 오픈한 이탤리언 레스토랑이다. 7년 전, 이재훈 셰프가 막 합류했을 때만 해도 사업성 떨어지는 지역에 위치한 ‘애물단지’에 불과했지만 그는 고즈넉한 한옥이 주는 정서적인 이점을 더 높게 평가했다. 게다가 손님과 가까이서 소통할 수 있는 소규모 레스토랑을 갖는 것이 오랜 염원이기도 했다. 주인은 골칫덩어리를 해결했고 그는 첫 번째 꿈을 이뤘다. 2011년에 까델루뽀를 인수한 것이다.

음식은 추억이다

세월이 흐르고 사람이 바뀌고 집의 형태가 달라졌어도 골목은 그대로 남아 추억을 환기시킨다. 사람들이 서촌의 골목골목을 찾아다니는 수고를 마다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이재훈 셰프가 까델루뽀를 성공시킨 후 에노테카 친친, 비스트로 친친, 친친경양식, 친친원테이블 등 서촌에 서로 다른 콘셉트의 레스토랑을 연달아 오픈한 것은 단순히 구색을 맞추기 위함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과 맛있는 추억을 향유하고 싶어서였다. 사람들이 음식을 맛으로만 평가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부동산 중개인에게 공간을 소개받을 때마다 거짓말처럼 그곳에 어울리는 콘셉트의 레스토랑이 떠올랐다. “어렸을 때 일요일마다 할아버지를 따라 미사를 드리러 갔어요. 그날은 할아버지와 외식하는 날이기도 했고요. 한번은 할아버지가 햄버그스테이크 맛을 보여주겠다며 경양식집에 데리고 가셨는데 어찌나 사람이 많았는지 1시간 넘게 기다렸어요.” 오랜 기다림 끝에 맛본 음식은 과연 맛이 좋았다. 따뜻한 크림수프와 모닝빵을 먹었을 때의 희열을 아직도 잊지 못할 정도다. 그날의 기억으로부터 탄생한 공간이 친친경양식이다. 그의 예상대로 손님들은 친친경양식에서 햄버그스테이크를 먹으며 추억 속에 빠진다. 그런가 하면 박노수미술관 바로 옆에 위치한 와인 바 에노테카 친친은 이탈리아 유학 시절에 우연하게 들른 제노바의 한 선술집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는 홀로 여행 중에 길을 잃고 한참을 헤매다가 배라도 채워야겠다 싶어 눈앞에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이 와인과 곁들여 간단한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어둡고 낯선 바깥 풍경과 대조되는 따뜻한 공기에 안도감이 들었어요.” 2013년에 오픈한 에노테카 친친은 합리적인 가격대의 와인과 이탤리언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으로 정평이 나면서 많은 단골을 확보하고 있다. 오래전 이재훈 셰프가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그랬던 것처럼 몇몇 손님은 혼자 방문해 이곳에서 허기진 몸과 마음을 달랜다.

(왼쪽부터) 한옥을 개조해 만든 까델루뽀의 내부 전경. 안채와 별채를 합쳐 테이블이 5개뿐인 아담한
레스토랑으로 고즈넉한 분위기에서 식사하기에 제격이다.
까델루뽀에서 코스 메뉴를 주문하면 가장 먼저 제공되는 오징어먹물빵.
까델루뽀의 주방은 4명의 스태프가 들어가면 꽉 찰 정도로 협소했지만 기물이 잘 정리돼 있고 위생 상태가 좋았다.
(왼쪽부터) 안심 스테이크에 나가는 크림시금치를 조리 중인 이재훈 셰프.
까델루뽀는 이탈리아어로 ‘늑대의 집’이라는 뜻이다. 별채로 향하는 한옥
벽면에 늑대가 그려진 까델루뽀 현판이 걸려 있다.
(왼쪽부터) 까델루뽀의 주방 풍경. 주문서 옆에 붙여진 메모장에는
신메뉴에 대한 설명이 빼곡히 적혀 있다.
한쪽에선 육수를 내기 위해 채소를 볶고, 다른 한쪽에서는
수프를 만들기 위해 우유를 끓인다.
(왼쪽부터) 주방에 있다가 잠깐 홀에 모습을 드러낸 이재훈 셰프.
‘오늘의 수프’는 모둠 버섯을 넣은 크림수프였다.
(왼쪽부터) 전채 요리로 제공되는 4가지 메뉴 중 하나인 수박스테이크를 굽고 있다.
한우 안심 스테이크. 웨트에이징 스테이크에 구운 버섯, 크림시금치, 매시트포테이토를
곁들여 와인 소스, 크림소스로 마무리한 메인 메뉴다.

서촌 황태자가 되기까지

말끔한 외모와 7개의 레스토랑을 가진 오너셰프라는 타이틀만 보면 이재훈 셰프를 엄친아로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는 녹록지 않은 20대를 보냈다. 스무 살 때 경양식집 홀 서빙 아르바이트를 계기로 업계에 입문한 그는 요리에 흥미를 느끼고 제대 후 청담동의 한 이탤리언 레스토랑에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요리사에 대한 꿈이 깊어질 때쯤 제대로 해야겠다 싶어 이탈리아 유학을 감행했다. 4년 넘게 잠자는 시간을 쪼개가며 일해 모은 돈으로 이탈리아 요리학교 ICIF에 입학한 것이다. 교육 과정이 워낙 타이트해 중도에 포기하는 학생도 더러 있었으나 그에겐 오히려 요리에만 집중할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졸업 후에는 피렌체 인근 몬테카티니의 그로타 주스티Grotta Giusti 호텔의 레스토랑인 라 베란다(Ristorante La Veranda)에서 1년 반 동안 일했다. 이재훈 셰프는 재작년 여름, 7년 만에 라 베란다를 다시 찾았다. 처음으로 손님이 되어 허름한 조리복이 아닌 말쑥한 정장 차림으로 스테이크와 와인을 주문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얼굴이 낯익은 서버에게 오래전에 이곳에서 일했던 한국인에 대해 아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때 누군가 레오나르도(이재훈 셰프의 이탈리아 이름)라고 부르더니 당시 일했던 스태프와 함께 모두 나와 그를 환대했다. “레스토랑에서 일할 때 매일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했어요. 근무 마지막 날 레스토랑 식구들과 두에 바치Due Baci(볼에 두 번 뽀뽀하는 이탈리아 인사법)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갑자기 자전거 체인이 끊어진 거예요. 그동안 한번도 고장 난 적 없던 자전거가 왜 그랬는지, 그대로 도로에 주저앉아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침 8시 30분, 이재훈 셰프가 까델루뽀에 출근하기 위해서 집을 나서는 시간이다. 이미 그의 손에는 휴대전화가 들려 있다. 레스토랑 업무 외에도 미팅, 쿠킹쇼, 방송 등 요즘 그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셰프 중 한 명이다. 유학 시절과 비교했을 때 상황은 많이 달라졌지만 그때만큼 값진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또 그때처럼 몸은 고단하지만 마음은 여유롭고 행복하고 감사하다. 그는 처음 까델루뽀로 출근하던 날의 냄새를 기억한다. 지하철 역을 빠져나와 서촌 골목길에 접어들었을 때 향긋한 꽃 내음이 났다. 보도블록의 벌어진 틈 사이로 올라온 잡초와 칠이 벗겨진 대문도 생생하다. 청담동이 아닌 서촌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들, 이런 수수함과 소소함이 서촌의 정서라는 것을 그는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좁은 골목 사이 켜켜이 쌓인 추억을 소중히 여기고 작은 것에도 감동받는 감성적인 면이 자신과 서촌을 찾는 사람들의 공통점이라고 말하는 이재훈 셰프.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그는 서촌에 어울리는 사람이다.


밤에 더 운치 있는 까델루뽀의 야간 전경. 전형적인 ‘ㄷ’자 한옥 구조로 안채와 본채로 분리된 2개의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문을 지나면 탁 트인 마당을 가득 메운 포도나무가 보인다. 잘 익은 포도는 레스토랑에서 음식 만들 때 사용하기도 한다.
(왼쪽부터) 원형 테이블이 있는 별채 전경. 소규모 모임 하기에 좋은 곳이다.
이탤리언 가정식을 표방하는 비스트로 친친의 한보배 수셰프. 비스트로 친친은
서촌이긴 하지만 워낙 외진 곳에 위치해 일부러 찾아가야 하는 곳임에도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비스트 친친의 주방에서 요리를 만들고 있는 이재훈 셰프. 친친Chin Chin은 ‘친한 친구’의 줄임말이면서 이탈리아어로 ‘건배’라는 뜻이다.
(왼쪽부터) 에노테카 친친의 주방 전경.
에노테카 친친의 윤종성 셰프와 이야기 중인 이재훈 셰프.
그는 워낙 일정이 많아 자주 올 수는 없지만 한번 방문할 때 레스토랑
운영에 애로 사항은 없는지 귀 기울여 듣는다.
(왼쪽부터) 에노테카 친친의 인기 메뉴인 까넬로니. 속을 넣은 굵은 마카로니인
까넬로니는 이탈리아 북부 지방의 파스타 요리다.
에노테카 친친은 합리적인 가격대의 와인을 다량 보유하고 있어 언제든
부담 없이 찾아갈 수 있는 공간이다. 테이블 좌석뿐만 아니라
바도 마련되어 있어 ‘혼술’ 하기에도 좋다.
에노테카 친친의 외관 전경.

into

이재훈 셰프의 첫 번째 오너십 레스토랑으로 고즈넉한 한옥에서 이탤리언 코스 요리를 즐길 수 있다. 제철 식재료를 사용한
다채로운 코스 메뉴뿐만 아니라 샐러드, 파스타, 메인 요리는 단품으로도 주문할 수 있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대의 점심 코스도 큰 인기다.
별채 공간이 따로 마련돼 있어 프라이빗한 소규모 모임을 하기에 좋고 메인 홀은 테이블이 많지 않아 미리 예약하고 가는 것이 좋다.

• 디너A 5만2000원, 디너B 8만5000원
•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16길 5-5
• 02-734-5233


Chin Chin’s Menu
(왼쪽부터) 연어 그라브락스는 염장한 허브로 마리네이드한 연어와 적양파,
케이퍼, 미니 채소로 완성한 메뉴로 비스트로 친친에서 맛볼 수 있다.
에노테카 친친의 버섯크림또뗄리는 만두 모양 파스타 토르텔리니에 트러플 크림소스,
야생 버섯 포르치니로 속을 채웠다. 진한 트러플 향과 녹진한 맛이 특징이다.
수제 햄버그스테이크와 아보카도 샐러드, 밥까지 친친경양식의 다채로운 구성이 옛날 부모님
손 잡고 외식 갔던 경양식당을 떠올리게 한다. 기존 친친함박에서 업그레이드된 메뉴이다.
(왼쪽부터) 새우, 마늘, 방울토마토, 허브 등 국내산 재료를 사용해 만든
친친파스타는 친친경양식에서 만나볼 수 있다.
에노테카 친친에서 맛볼 수 있는 다진 해산물, 감자, 리코타 치즈로 속을 꽉 채운
토마토소스의 까넬로니. 짭조름해서 와인과 곁들이기 좋다.
비스트로 친친을 맡고 있는 김상호 셰프의 고향인 동해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파스타로 이름도 ‘셰프의 고향’이다.


Dinner at Ca’del Lupo

1. 식전 요리인 갑오징어와 레몬 제스트를 곁들인 옥수수먹물리소토.
2. 셀러리, 바나나, 오이, 파인애플을 곁들인 가스파초.
3. 구운 라디치오, 관자, 보타르가 파우더, 파프리카 퓌레를 곁들인 오일 베이스 파스타.
4. 레몬 버터 소스와 그린 올리브 페스토를 곁들인 광어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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