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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의 의미 @황상민

2017년 8월 16일 — 0

미식이란 음식에 담긴 마음인가, 욕망인가?
text 황상민

동정호를 보았다. 그리고 악양루에 올랐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두보의 유명한 시, ‘등악양루’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오래전에 동정호에 대해 들었지만, 이제야 악양루에 오르게 되었네.’ 이렇게 시작하는 시다. ‘좋은 음식과 술, 차가 제공된다’는 문구에 끌려 무작정 참가한 중국 호남성 인문여행이었다. 그런데 내가 올라가 있는 그 악양루는 두보가 올라가 동정호를 보았던 그 악양루가 아니었다. 시대에 따라 사람들이 각기 다른 모습의 악양루를 계속 그 위치에 만들었다는 것이다. 악양루의 시작은 삼국 시대 동오의 장수였던 노숙이 만든 누각으로, 오나라 군대를 지휘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이곳을 716년 당나라 때 악주의 태수인 장열이 수리하면서 ‘악양루’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후 왕조에 따라 5번이나 그 모습이 바뀌었다. ‘그때그때’ 수리될 때마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재현된 것이다. 최근 만들어진 동정호 옆의 공원에 각 왕조별로 다른 모습의 악양루 청동 미니어처가 있었다. ‘난간에 기대어 눈물만 흘리네’라는 두보의 마음은 흔적도 없이, 더위에 지친 나에게는 ‘동정호’의 바람만이 느껴졌다. 두보는 동쪽과 남쪽으로 오와 초를 나누었다는 말로 동정호의 장대함을 노래했다는데, 나에게는 악양루의 진짜 정체는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남았다. ‘남대문’이 불타고, ‘광화문’이 복원된다고 할 때, 우리는 가능한 한 고적은 ‘과거 있었던 그대로 재현되어야 한다’고 여겼다. 건물을 실체로 보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선조의 유물을 지키고 보호하는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정작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생각조차 못한 채 생명력이 없는 건물을 통해 중요한 무엇을 찾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악양루는 만들어진 후 수백 년이 흘러 이름을 가지고, 그 이후에도 그냥 이름만 있는 그저 그런 누각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친구 등자경의 요청으로 범중엄이라는 사람이 쓴 ‘악양루기’ 덕분에 천하 시인과 문인들이 꼭 한번 찾아보아야 하는 어떤 누각이 되었다고 한다. 두보가 악양루에 오른 이유가 된 것이다. 범중엄의 ‘악양루기’나 두보, 이백의 ‘등악양루’와 같은 시가 있었기에 악양루는 분명 유명해졌다. 이것은 이름을 얻은 것뿐 아니라, 평범한 누각이 자신의 정체를 가지면서 생명체가 있는 무엇으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더 이상 시간의 흔적을 가득 담은 쇠락한 건물이 아니다. 내가 올라간 악양루도 겉모양은 수리 중이었다. 하지만 내부는 개방되어 누구나 올라갈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건물이 아니라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어떤 체험이었다. 그것은 1층과 2층에 똑같이 복제된 채로 있는 ‘악양루기’에서도 잘 표현된 듯했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듯이 눈으로 보는 것이 전부는 아닌 듯하다. 수천 년의 시간의 틀 속에 수많은 사람들은 각자의 눈으로 동정호를 보고 두보처럼 자신의 삶을 악양루에서 표현했을 것이다. 풍경이나 건물 그 자체가 아닌 각자의 마음을 표현했다. 음식, 소위 우리가 찾고 싶은 ‘미식’이라는 것도 이와 같지 않을까 싶다. 그냥 맛있는 음식이 아닐 것이다. 미식은 음식을 만든 사람, 보는 사람, 그리고 먹는 사람의 마음으로 정해질 것이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겠다는 마음이 있을 때, 또 맛있게 음식을 먹을 수 있을 때, 아니 음식을 통해 우리의 삶을 다시금 느낄 수 있을 때 미식이 생겨난다. 맛있는 음식, 즐거운 술, 편안한 차를 찾아 떠난 나의 문화 탐방은 미식의 경험이었다. 악양루에 오른 나는 두보의 삶보다는 눈으로 보이는 건물로 그 사람을 느끼려 했다. 중국의 피카소라는 제백석 화가의 기념관에서 발견한 비파 열매를 그린 그림은 경험에 대한 또 다른 통찰을 던져주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비슷한 것과 비슷하지 않은 것 사이에 있다. 기묘함이 되는 것은, 너무 비슷하면 세속에 영합하는 것이요. 너무 비슷하지 않으면 세상을 속이는 것이다. 作畵, 在似與不似之間. 爲妙, 太似爲媚俗. 不似爲欺世. ­齊白石” 문화기행은 보는 것뿐 아니라 먹는 경험에서도 나를 속이면서 세속에 영합하는 것이었다. 답사하는 와중 접하는 음식들은 최고 수준으로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항상 화려하고 큰 식당보다는 시골의 알려지지 않은 식당에서 참가자들의 만족은 더 높았다. 놀랍게도 식탐이 있는 나조차도 평소보다 더 자제하는 마음으로 음식을 대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테이블 위의 한가득 차려진 음식을 열심히 먹지 않았던 것은 결코 아니다. 먹방이 난무하고 심야식당의 고독한 미식가가 되기를 꿈꾸는 이 시대에 미식의 의미를 찾는 것은 또 다른 세속의 영합일 것이다. 미식이란, ‘음식의 본질’을 찾는 것일까, 아니면 나의 욕망의 본질을 번드레하게 표현하고 싶은 것일까? 현재 나의 어떤 욕망이 어떤 음식으로 재현되는지를 아는 것이 미식의 의미일 것이다. 우리가 ‘그때 그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다’는 것은 역사의 흔적을 되살리는 것이 아니라 나의 욕망을 속이는 일이다. 건물이나 음식이나 겉으로 보여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음식이 우리의 삶과 욕망을 잘 충족시켜준다고 막연히 느끼게 될 때 우리는 미식을 찾는다. 그러나 최고의 미식이란 수많은 가짓수의 음식상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음식의 느낌을 자신에게 최고로 느껴주게 만드는 어떤 것이었다.


황상민은 심리상담가로 서울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교에서 심리학과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 후 하버드 대학 사이언스센터와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연구 활동을 했으며 현재 심리 전문 연구 및 상담기관 위즈덤센터의 고문으로 재직하며 팟캐스트 ‘황심소’를 운영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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