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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남의 아메리칸 다이닝 테이블

2017년 8월 15일 — 0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닌 에릭남이 앞치마를 매고 자기만의 시간에 빠졌다.

edit 이승민 — photograph 박상국 — hair 미영 — makeup 구다연 — styling 권혜미 — assist 임나영 —place 테이블원(02-557-8291) — items 챕터원(02-517-8001)
다양한 미식 경험에서 다져진 실력

에릭남의 미소는 보는 이도 입가에 웃음을 머금게 한다. “정말 오랜만에 요리하는 것 같아요. 맛없으면 어떡하죠?” 멋쩍게 한 차례 웃으며 그는 앞치마를 휘휘 둘렀다. 현장의 스태프들은 이미 맛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표정이다. 과카몰레 만들기로 가볍게 몸을 풀기 시작. 아보카도가 적당히 물렀는지 확인하기 위해 조리대에 아보카도를 돌려가며 탕탕 쳐본다. 자신 없다는 말과 달리 몸이 기억하는 능숙한 손놀림이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의 손맛이 밴 음식을 먹고 자라며 어깨 너머로 보고 배운 요리는 제법 수준급이 되었다. 어머니가 해주신 갈비찜과 닭볶음탕, 홍합미역국은 여전한 그의 소울 푸드다. 무말랭이 하나도 일일이 햇볕에 바짝 말려 버무리는 한식 명인에 가까운 전주 큰이모 댁의 음식도 떠올렸다. 그의 차근차근한 요리 솜씨도 아마 집안 내력이 아닐까 싶다고 한다. 한식을 좋아하지만 소질은 없다는 그는 미국에서의 어린 학창 시절부터 요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백질과 탄수화물, 채소를 한 가지씩 넣는다는 공식으로 식단을 구성했다. 가령 훈제 연어와 샐러드, 매시트 포테이토의 조합처럼 손쉬운 것부터 차렸다. 주변에 미식가인 친구들을 따라 소문난 레스토랑을 섭렵하며 그의 요리 난이도도 덩달아 높아졌다. “언젠가 마장동에 있는 ‘본앤브레드’라는 한우구이집에 갔어요. 소고기 안심을 식빵 사이에 넣은 가츠샌드를 먹었는데 그 맛이 너무 강렬해서 잊혀지지 않아요. 안을 자세히 보니 호스래디시 소스를 발랐더라고요. 그 뒤로는 집에서 햄버거나 샌드위치를 만들 때 꼭 호스래디시 소스를 넣어서 차별화를 줘요. 오늘 만드는 햄버거에도 이 소스를 사용할 거예요.” 촬영일에 선보인 우니 파스타 역시 미국 LA에 있는 해산물 레스토랑 C.O.D.의 우니 트러플 파스타를 먹어보고 구상한 메뉴다. 이렇게 요리를 따로 배운 적은 없지만 맛있게 즐긴 음식을 기억해놨다가 혼자 레시피를 찾아 시도해본다. “요리는 일상에서 충분히 실행하고 성공시킬 수 있는 작은 도전이라고 생각해요. 누군가 맛있게 제 음식을 먹어주거나 제가 맛을 봐도 정말 괜찮을 때 ‘해냈다!’라는 성취감을 느끼죠.” 다음에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메뉴는 스페인의 대표 해물 요리 파에야다. 면도 직접 뽑고 토마토소스도 다진 마늘과 소고기를 올리브유에 볶아 으깬 토마토를 넣는 등 원재료만으로 파스타를 만들어보고 싶다고도 한다. “주로 외식을 하지만, 사실 밖에서 사먹는 음식은 안에 무엇을 넣었는지 알 수 없잖아요. 그래서 집에서 요리할 때는 가능한 한 좋은 유기농 재료로 건강하게 만들려고 해요.” 무언가를 완성해가는 과정 그 자체를 즐기는 에릭남은 이날 빵도 숙성된 바나나와 밀가루를 반죽해 오븐에 넣고 구웠다. 일명 ‘바나나빵’은 그가 미국에서 생활할 때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즐겨 먹던 디저트다. 한국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어 직접 만들기로 결심했다. 올해 처음 만들어본 것치고는 지인들의 반응이 꽤 좋았다. 그 뒤로 바나나빵이 먹고 싶을 땐 일부러 바나나를 미리 사서 냉동실에 넣어 숙성시킨다. 갈색으로 변색된 것일수록 더 달고 부드러워 반죽하기에 더 좋기 때문이다. “맛은 장담할 수 없어요.” 엄살을 부렸지만 정말 훌륭한 맛이었다.

음식 너머의 문화에 대한 탐구

‘배려남’, ‘매너남’, ‘1가정 1에릭남 보급’ 등은 에릭남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들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밴 것은 그만큼 상대의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세심하게 고려한다는 뜻일 테다. 그런 그의 사려 깊음은 음식에서도 드러난다. 우연히 그가 좋아하는 TV 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어릴 때부터 요리 프로그램을 즐겨 봤어요. 그중에서도 뉴욕 맨해튼 출신의 스타 셰프 안소니 부르댕Anthony Bourdain의 쇼를 가장 좋아해요.” 안소니 부르댕이 진행하는 <미지의 세계(Anthony Bourdain Parts Unknown)>는 CNN에서 방영하는 인기 프로그램으로 올해 벌써 8번째 시즌이다. 전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한 지역의 독특한 음식과 이를 둘러싼 역사와 문화, 사람들에 집중하는데, 포르투갈 농가에서 살아 있는 돼지의 멱을 따고 사막에서 양 통구이를 맨손으로 뜯어 먹는 등 ‘요리계의 인디아나 존스’라고 불릴 정도로 익살스럽고 모험을 즐기는 인물의 취재기를 담고 있다. 에릭남이 가장 인상 깊게 본 장면은 농장에서 키우는 돼지를 도축해 모든 부위를 해체하고 손질하는 적나라한 과정을 담은 에피소드다. “보통 사람들은 마트에서 깨끗하게 포장된 상태의 고기만 보잖아요. 저 역시 고기를 먹을 때 이 동물이 어디에서 어떻게 자랐고 어떤 방식으로 도축되어 식탁에 오르게 되었는지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없었죠. 안소니 부르댕의 방송을 본 다음부터 그 부분에 대한 인식이 생겼어요.” 최근 먹거리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에서 내비친 메시지와도 맞닿아 있는 지점이다. 그렇다고 육식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동물을 물건처럼 공장에서 비인도적으로 사육하는 대량 도축 시스템에 대해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것. “소가 어느 지역의 농장에서 어떤 사료를 먹고 자랐는지 알 수 있도록 표기하는 경우가 더 늘어나면 좋겠어요. 그럼 구매하면서도 동물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고 감사하게 먹을 수 있을 거예요.” 그의 따뜻한 시선은 항상 대상 너머를 향해 나직이 내려다보는 것 같다.


우니 파스타에 넣을 소스를 직접 만들기 위해 가져온 핸드 블렌더. 성게알과 버터를 넣어 갈아 만든다.
바나나빵 반죽을 넣을 빵틀로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알맞은 크기의 빵을 구워준다.
(왼쪽부터) 파스타를 완성하는 가장 마지막 단계는 파르메산 치즈를 그레이터로 갈아 뿌려주는 것.
파스타 요리를 할 때 꼭 챙기는 도구다.
햄버거에 넣는 소스로 스코틀랜드의 미세스 브릿지 마요네즈를 택했다.
(왼쪽부터) 마요네즈, 케첩, 호스래디시 소스와 함께 태국 스리라차 핫소스까지 빵에 발라 느끼한 맛을 잡아준다.
핸드 믹서로 빵 반죽을 섞고 나서 거품기로 한번 더 세밀하게 섞어준다.
(왼쪽부터) 주로 연어와 곁들이는 호스래디시 소스를 햄버거에 넣는 것이 에릭남만의 비법.
바나나빵을 만들기 위해 핸드 믹서를 따로 구비했다. 버터, 밀가루, 설탕, 달걀, 베이킹소다, 소금, 그리고 숙성된 바나나를 함께 넣고 반죽한다.

오븐 안에 들어가기 직전의 빵틀. 반죽 위에 잘게 썬 땅콩을 토핑으로 올렸다.
(왼쪽부터) 밀가루와 버터, 설탕, 달걀, 베이킹소다, 숙성된 바나나를 함께 넣고 반죽하는 중이다.
우니 파스타에 들어갈 소스를 만들기 위해 성게알을 하나씩 옮기고 있다.

잘 쉬는 ‘일’을 위한 단계

2011년 MBC <위대한 탄생 2>를 통해 데뷔한 이후 지난 6년 이상을 쉼 없이 계속 달려왔다. 워낙 활발하고 외향적인 성격의 그는 쉬는 날이 하루라도 있으면 불안해서 다른 더 큰 일을 벌이곤 했다. 직업적인 강박에서인지 휴식차 떠난 LA행에서도 열흘 동안 내내 머무른 곳은 스튜디오였다. 녹음 부스 안에 처박혀서 무려 15곡 정도의 노래를 쓰고 왔다. 아무리 지치지 않는 에너자이저라 할지라도 한 템포 천천히 늦춰서 가야 할 때가 있는 법. 이제 그는 자신을 위해 좀 더 여유를 갖고 천천히 나아갈 계획이다. 직업상 끊임없이 안에 있는 것을 사람들에게 꺼내 보여주고 쏟아내야 했기에 그만큼 채워야겠다는 자각이 든 것이다. “아버지가 ‘쉬는 것도 일’이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이제는 잘 쉬는 일도 잘하고 싶어요.” 두 달 전에는 남동생들과 별다른 계획도 세우지 않고 발리로 훌쩍 떠났다. 넘실거리는 파도 위에 몸을 맡긴 채 서핑을 하기도 하고 홀로 선베드에 가만히 누워 세상의 시간이 잠시 멈춘 듯한 기분도 느껴보았다. 실로 오랜만에 가져본 충만한 쉼이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일하다 보니 앞으로는 혼자 보내는 시간을 더 확실하게 가지려고 한다. 고로 외로울 줄도 알아야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의 소중함도 알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에릭남에게 요리는 혼자만의 시간을 지탱하는 하나의 수단이다. 다른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 철저히 스스로를 위해서 한다. “저에게 요리는 굉장히 이기적인 행위예요.” 요리하는 시간만큼은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자신만의 방식대로 어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하는 것. 그렇게 오로지 요리에만 집중해서 원하는 맛을 만들어냈을 때의 쾌감은 즉흥적으로 떠오른 악상을 적어 내려가 끝내 한 악보를 완성했을 때의 황홀함에 비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더 멀리, 더 오래 뛰기 위해 숨을 고르고 있는 지금, 그리고 심호흡 후 다시 달리게 되는 그 순간에도 그는 조금씩 더 견고해지고 있을 것이다.

바나나빵과 성게알을 듬뿍 넣은 소스로 만든 우니 파스타, 소고기와 양상추, 양파, 토마토, 오이 피클과
갖가지 소스를 넣은 햄버거로 차린 아메리칸 테이블.
토마토 비프 햄버거, 우니 파스타, 바나나빵, 과카몰레와
토르티야 칩 등 에릭남이 손수 차린 푸짐한 아메리칸 다이닝 테이블 앞에 앉았다.
직접 만든 과카몰레를 토르티야 칩에 발라 맛보며
귀엽게 포즈를 취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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