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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 강국의 과제 @정재훈

2017년 8월 14일 — 0

치킨이 우리네 식탁을 넘어 세계로 뻗어가고 있다. 원조 KFC의 아성을 무너뜨린 새로운 KFC(Korean Fried Chicken)의 저력과 풀어야 할 과제에 대하여.

text 정재훈 — edit 이미주 — photograph 김잔듸

KFC의 성공 시대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대한민국 치킨은 세계 최고다. 인터넷에서 코리안 프라이드 치킨을 찾아봐도 칭찬 일색이지만, 다양한 요리 과학 실험으로 유명한 MIT 출신 요리 덕후이자 <더 푸드 랩>의 저자 켄지 로페즈-알트 또한 그렇게 단언했다.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의 원조라는 자부심을 가진 미국 남부 사람들에게 미안하지만, “닭을 튀기는 일에 관한 한 한국인을 능가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이는 쉽게 이뤄낸 일이 아니다. 닭을 튀긴다는 것 자체가 난이도 높은 기술을 필요로 한다. 흔히 닭고기를 백색육이라고 부르지만, 자세히 보면 그렇지 않다. 부위별로 색상이 둘로 나뉜다. 백색육이라는 명칭에 걸맞은 옅은 색의 가슴살과 그보다 더 진한 색의 다릿살이다. 천적을 피해 잠시 날아오를 때 사용하는 날개와 가슴살을 이루는 근육은 짧은 순간 빠르게 움직여야 할 때 딱 맞다. 이들 근섬유에는 지방을 태우는 장치가 들어 있지 않으니 주변에 지방을 많이 가지고 있을 필요도 없다. 닭가슴살에 지방 함량이 낮은 이유다. 반면 다릿살을 이루는 근육은 하루 종일 몸통을 떠받치고 서 있거나 걷고 뛰어다닐 때 사용된다. 지구력을 필요로 하는 이들 근육은 지방을 연료로 사용하며, 또한 산소를 필요로 한다. 이 과정에서 산소를 운반하고 사용하는 데 미오글로빈이라는 적색의 단백질이 사용된다. 이로 인해 단지 색상만 짙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방과 이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풍미의 화합물은 짙은 색 다릿살을 무미에 가까운 옅은 색 가슴살보다 훨씬 풍부한 맛의 고기로 만들어준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짙은 색 고기와 연한 색 고기는 단지 맛의 측면에서만 다른 게 아니라 조리 특성에서도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이는 결합 조직의 비율 때문이다. 닭, 칠면조와 같은 가금류 고기의 연한 정도는 결합 조직을 이루는 콜라겐의 함량에 주로 달려 있다. 다릿살은 무게를 지탱해야 하는 만큼 튼튼해야 하므로 결합 조직 콜라겐의 비중이 높고 이로 인해 질기다. 콜라겐을 젤라틴으로 녹여 연하게 익히려면 섭씨 70도 이상의 고온으로 비교적 장시간 조리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했다가는 가슴살이 버텨내질 못한다. 조리시간이 조금만 길어져도 닭가슴살은 과잉 익힘으로 수분이 빠져나가 퍽퍽하고 질겨서 맛없는 치킨이 되어버린다.

치킨에 최적화된 나라
닭다리가 맛있는 치킨을 만들자니 가슴살이 퍽퍽해지고, 가슴살이 촉촉한 치킨을 만들자니 다리가 질겨진다. 이 어려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기름의 온도를 높이는 방법으로는 어렵다. 재료 속 수분이 수증기로 증발하는 동안 튀김 표면의 온도는 기름 온도보다 낮은 섭씨 100도를 유지한다. 튀기는 과정에서 표면층 수분이 다 빠져나가고 나면 기름과 접촉하는 면에서는 빠른 가열과 갈변 반응이 일어나지만, 재료 내부에서의 열전달은 여전히 매우 느린 상태로 유지된다. 이는 아이스크림에 튀김옷을 입혀 튀겨내도 내용물이 녹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이지만 치킨에 적용했다가는 끔찍한 결과물이 나온다. 기름의 온도를 높이는 방식으로는 재료의 속까지 잘 익은 튀김을 만들기는커녕 겉만 바싹 태우고 속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설익은 치킨이 되고 마는 것이다. 과거로 돌아가보면, 1950년대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의 창업주 커널 샌더스의 이에 대한 해결책은 압력튀김기였다. 온도를 높이는 대신 압력을 높여 튀겨주면 조리시간을 단축하면서도 수분의 증발을 막아 촉촉하면서도 속까지 잘 익은 치킨을 만들 수 있다. 당시 미국에서 닭은 지금보다 오래 사육되었고, 이로 인해 결합 조직이 풍부한 짙은 색 육이 풍부했으니, 적절한 해법이었다. 샌더스의 KFC 한국 진출에 앞서 70년대 말에 이미 압력튀김기가 수입되어 여러 매장에 도입된 것을 보면 이는 분명히 대한민국 닭튀김에도 유효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후라이드 치킨의 혁신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치킨을 더 작게 조각 내고, 튀김 재료로 영계처럼 더 작은 크기의 닭을 사용한 것이다. 본래 닭과 같은 가금류는 나이 들수록 결합 조직이 증가하여 다릿살은 더욱 질깃해지며, 가슴살은 더 두꺼워지고 퍽퍽해진다. 나이 어린 영계는 튀기는 데 시간도 줄어들 뿐만 아니라, 바삭한 후라이드 치킨으로 만들어도 과잉 익힘 없이 촉촉하고 연하다. 고기를 더욱 촉촉하게 해주는 염지와 튀겨낸 치킨에 무궁한 맛을 더해주는 양념을 통해 대한민국 치킨은 더더욱 놀랍게 변신했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21세기의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후라이드 치킨에 최적화된 나라다. 미국 KFC의 국내 진출을 두려워하던 1984년의 켄터키 치킨의 기억은 잊혀지고, 이제 우리는 원조 KFC보다 더 맛있다는 새로운 KFC(Korean Fried Chicken)로 세계를 넘보고 있다. 그러나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는다.

대한민국 치킨의 딜레마
장점을 뒤집으면 단점이 보인다. 후라이드 치킨으로 통일된, 후라이드 치킨에 최적화된 나라에서 닭의 다양성은 사라졌다. 찜닭도, 닭갈비도 9호짜리 작은 닭 일색이다. 간혹 닭고기를 씹을 때 이가 튕기듯 저항감이 느껴지면 그건 수입 닭다릿살이다. 퍽퍽한 닭가슴살을 근섬유 결에 따라 찢어가며 소금에 찍어 먹던 추억은 국내산 닭으로는 재현이 어려워졌다. (책에서 맛없다 해도 내 입에 맛있는 건 어쩔 수 없다.) 거대 기업이 병아리와 사료와 동물약과 기자재를 농가에 공급하고, 농가는 병아리를 키우는 위탁 사육 비용을 기업에게 지급받는 방식의 수직계열화가 굳건히 자리를 잡으면서 이제는 어딜 가도 작은 닭뿐이다. 후라이드 치킨에 최적화된 어리고 작은 닭이 대세가 되면서 어떤 닭 요리를 먹어도 닭고기 자체의 맛은 비슷해지고 말았다. 가슴살이나 다릿살이나 윙이나 맛과 조직감에서 별반 차이가 없다. 최적화라는 정답이 다양성을 죽였다. 작은 닭 일색의 후라이드 치킨 시장에도 조금씩 변화가 찾아오고 있긴 하다. 15호 닭을 튀겨내는 치킨 전문점도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다. 15호 닭으로 튀겨낸 후라이드 치킨의 맛은 어떨까? 좋고 나쁨의 문제를 떠나 큰 닭답게 부위별로 맛이 정말 다르다는 것과 둘이 먹어도 배가 부르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 그러나 큰 닭이 작은 닭을 대체하는 또 다른 정답으로 자리 잡는 식으로는 다양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시장의 중심이 9, 10호 닭에서 15호 닭으로 이동한다고 해서, 닭고기 판매가 한 마리 기준에서 부분육으로 바뀐다고 해서 다양성이 크게 증가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답을 포기해야 다양한 답이 보인다. TV 맛 전문가는 옛날 씨암탉은 맛이 없었을 거라며 미식의 정답이 아니라는 식으로 몰고 가지만, 진정한 미식에 그런 정답은 없다. 요리와 식문화의 꽃은 수많은 알을 낳고 폐계가 된 닭을 잡아 갖은양념으로 요리하여 내놓는 폐계 전문 식당에서도 피어난다. 폐계는 못 먹을 음식이 아니라 오로지 살만을 먹기 위해 사육하는 도시의 고기와는 달리 동물이 가진 고유의 가치와 생산력을 최대한 활용하고 돌보다가 최종적으로 고기로 활용하는 농촌형 고기 본래의 맛을 고스란히 담아낸 음식인 것이다. 얼마 전부터는 치킨의 최적 가격이 얼마인가를 두고 논쟁이 한창이다. 나 역시 생닭 한 마리 가격에 대해서는 둔감하지만 주변 치킨 전문점의 메뉴 가격에는 신경이 쓰인다. 동네 치킨집을 검색할 때는 15호 닭에 대한 관심이 불타오르지만 시장에 15호 닭이 팔린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도 별 감흥이 없다. 닭고기한테 이래서는 곤란하다. 미국 대선에 나선 대통령 후보가 “모든 가정의 냄비에 닭고기를!”을 선거 구호로 외친 지 아직 90년도 안 지났다. 중세 유럽에서는 땅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하늘 높이 달려 있다는 이유로 과일을 가장 가치 있는, 귀족의 음식으로 바라보았고, 같은 관점에서 동물 가운데는 날짐승을 최고로 쳤다. 16세기 이탈리아에서는 “자신은 집에서 소고기나 양고기 따위나 먹고 있는데 남편은 밖으로 나돌면서 고급 닭고기와 자고새를 먹는다”는 여인의 푸념이 실제로 그럴 만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오늘 밤, 당신이 어디에선가 치맥을 즐기고 있다면, 마지막 한 조각까지 알뜰살뜰하게 발라 먹어야 할 이유가 충분한 것이다. 치킨에 쏠린 식탁에서 다양성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일단 먹으면서 고민해보자.


정재훈은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한 후 캐나다 토론토에서 다년간 약사로 일했다. 음식만큼이나 사람들과 요리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한다. 잡지, TV, 라디오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음식과 약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전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정재훈의 생각하는 식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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