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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원의 밀리우

2017년 8월 14일 — 0

프랑스어로 중심이라는 의미의 밀리우milieu는 이름에 걸맞게 해비치 호텔앤드리조트 제주의 로비 중앙에 위치해 있다. 손동작 하나까지 다 보일 정도로 오픈된 구조의 밀리우 주방, 그 중심에 새로운 얼굴 김영원 셰프가 서 있다.


제주로간 요리사

좋은 식재료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그 자체가 선물이지만 별다른 조리 없이도 맛있기 때문에 조리법을 새로 개발하기 어렵다. 천혜의 자연을 간직한 제주가 풍부한 향토 식재료를 보유하고도 미식의 불모지로 불리는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에 지역의 특수성도 한몫 더했다. 예로부터 생활력이 강한 제주 여성들은 생업과 가사를 병행해왔다. 그 때문에 부엌에서 오래 머물 시간이 없었고 자연스럽게 조리시간이 짧은 냉국이나 물회 등을 즐겨 먹었다. 생계를 짊어져야 했던 그들에게 요리는 미식의 개념보다는 끼니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제주는 갈치조림, 돔베고기, 몸국 등 지역을 대표하는 메뉴를 갖고 있지만 토속 음식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꽤 오랫동안 정체되어 있었다. 그러던 중 제주 다이닝 문화에 물꼬를 튼 사건이 일어났다. 2015년 제주의 첫 번째 프렌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밀리우가 해비치 호텔 안에 문을 연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김영원 셰프는 서울 도곡동에서 프렌치 비스트로 뀌쏭82를 운영하고 있었다. 겉치레 없이 담백하게 자신의 요리를 담아낸다는 평을 받으며 레스토랑이 안정기에 접어들 때쯤 제주도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연고는 없었지만 특유의 분위기가 좋아 제주를 종종 찾았고 그곳의 향토 식재료에 열광하기도 했다. 남다른 애정을 쏟다 보니 이번엔 약점이 보였다. 제주는 무無에 가까울 정도로 다이닝 공간이 없다는 것. “소위 맛집으로 소문난 곳에서 1시간 넘게 기다렸다가 식사를 한 후에는 어김없이 후회가 밀려왔어요. 서울에서 평범한 맛이 제주도에선 특별한 맛으로 인식되는 것이 안타까웠어요.” 김영원 셰프는 제주의 외식 문화에 대한 갈증을 스스로 해결하기로 마음먹고 올가을쯤 제주도에 두 번째 레스토랑을 열 계획을 세웠다. 본격적으로 오픈 준비를 시작할 즈음 운명처럼 밀리우의 헤드셰프 자리를 제안받았다. 망설일 것 없이 곧장 짐을 꾸려 가족과 함께 제주로 내려갔다. 그렇게 김영원 셰프는 올해 4월부터 윤화영·박무현 셰프에 이어 세 번째로 밀리우의 주방을 책임지게 되었다.

자연과 상생하는 셰프

서귀포시에 위치한 김영원 셰프의 자택에서 밀리우까지는 자동차로 40분 거리로 출퇴근 시간만 80분이 소요된다. 물리적인 잣대로 봤을 때는 서울 생활과 별다르지 않으나 심리적으로는 훨씬 여유로워졌다. 그는 길가에 핀 이름 모를 야생화 향기에 위로를 받고 때때로 의외의 수확을 얻기도 한다. “지금은 제철이 아니라 쓸 수 없지만 원래는 디저트로 나가는 메밀아이스크림 옆에 메밀꽃을 함께 플레이팅했어요. 여긴 메밀꽃이 들꽃처럼 피니까 출근길에 필요한 만큼 꺾어서 접시에 올리면 돼요.” 퇴근길에는 한치잡이 배를 보기 위해 멀리 돌아가는 길을 택하고, TV에서 보목항 일대에서 자리돔이 많이 잡힌다는 소식을 듣고 배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자리돔을 사러 간 적도 있다. 서울이라면 어쩌다 한번 일어날까 말까 하는 특별 이벤트 같은 일상을 그는 제주에서 매일매일 누리고 있다. 제주의 향토 식재료는 새로운 것에 목말라 있는 셰프에게 무한한 영감을 준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싱싱한 해산물이 지천인 데다 들이 넓고 기온이 따뜻해 사시사철 채소가 풍성하다. 그런 의미에서 김영원 셰프가 밀리우에 합류한 후 식재료의 스펙트럼이 넓어진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시장 상인에게 사정사정하지 않아도 활한치나 활어·건조·반건조 옥돔을 얼마든 구할 수 있고 갯상추라 불리는 번행초 역시 밀리우에 와서 본격적으로 사용하게 된 재료다. 김영원 셰프는 제주의 자연이 주는 특혜를 영민하게 이용하는 기지를 발휘했다. 호텔 내에 텃밭을 만들어 팜투테이블을 실현시킨 것이다. 허브류, 뿌리채소, 열매채소 등 20가지가 넘는 텃밭 작물은 밀리우의 주방을 거쳐 정성 가득한 요리로 새롭게 탄생한다. 그는 당일 수확한 채소를 플레이트, 커틀러리와 함께 세팅해 환영사를 대신하기도 한다. 김영원 셰프가 밀리우를 통해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은 것은 제주의 대자연에서 받은 혜택을 자연으로 되돌려주는 것이다. 직접 재배한 채소로 요리하고 남은 음식물은 퇴비로 만들어 다시 텃밭으로 돌려보내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싶은 것. “이미 해외 레스토랑에서는 손님들이 남긴 음식을 퇴비로 만들어 디자인된 백에 담아 손님한테 선물하기도 해요. 저도 자연과 상생하는 레스토랑을 만들고 싶어요.”


(왼쪽부터) 서귀포 매일올레시장에서 해산물을 보고 있는 김영원 셰프. 밀리우에서 사용하는 식재료는 보통 해비치
호텔 구매팀에서 구해주지만 시장의 상황에 따라 여의치 않을 때는 그가 직접 구입하기도 한다.
고등어와 비슷하게 생긴 전갱이는 제주도에서 각쟁이로 불린다.
표선 바다를 거니는 김영원 셰프. 제주도 해변의 모래나 바위틈에서 자라는 번행초를 채취하기 위해 종종 바다로 나온다.
해비치 호텔 내의 도시형 텃밭은 김영원 셰프가 밀리우에 오기 전부터 조성을 제안해 완성한 공간이다. 토마토, 가지, 비트, 래디시 등의 제철 채소와 로즈메리, 바질, 민트, 레몬타임, 딜 등의 허브 그리고 로메인, 상추 등의 샐러드 채소를 재배한다.
(왼쪽부터) 텃밭은 김영원 셰프를 비롯해 밀리우 스태프들이 함께 관리한다.
밀리우 텃밭에서 탐스럽게 여문 래디시.
제주도의 토질과 바람은 허브가 자라기 좋은 환경이다. 밀리우에서 사용하는 허브는 텃밭에서 그때그때 따서 사용한다.

김영원의 무한 도전

밀리우를 거쳐갔던 셰프들의 이력으로 미루어 짐작해보건대 김영원 셰프의 영입은 파격적인 인사로 여겨진다. 해외 경험이 풍부했던 이전 셰프들과 달리 그는 국내파에 가깝다. 르 꼬르동 블루-숙명 아카데미를 졸업한 후 미국 폭스우드 호텔에서 1년 남짓 일한 것을 제외하면 국내에서 차근차근 기본기를 다진 케이스로 프렌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이 대중에 첫선을 보인 2000년대 초·중반부터 8steps, 봉에보, 정식당 등을 거치며 탄탄한 요리 내공을 다져왔다. 그의 이름이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을 뿐, 업계에선 이미 그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김영원 셰프는 밀리우를 통해 자연스럽게 제주의 터치가 묻어나는 프렌치 요리를 선보일 계획이다. 자신이 배운 프렌치 조리법에 불협화음을 내는 향토 식재료를 억지로 끼워 넣기보다는 맛의 하모니를 고려해 서로 어우러지는 재료를 사용하겠다는 것. 또한 그는 푸아그라, 달팽이 등 만든 이도 먹는 이도 어려운 프랑스 식재료보다는 대중에게 익숙하면서 자신이 더 자신 있게 다룰 수 있는 재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구색을 맞추기 위한 프렌치 요리가 아닌 김영원 스타일의 프렌치 다이닝을 선보이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내비친 셈이다. “장 프랑수아 피에주 셰프가 한국에 왔을 때 어떤 인터뷰에서 자기는 한국의 식재료를 배우러 온 것이 아니라 프랑스 음식을 전해주러 왔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기자가 왜 프랑스 음식이냐고 되묻자 자신이 프랑스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당연한 답변을 하더라고요. 근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의 말이 맞아요.” 그 역시 제주의 식재료를 공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10년 이상 갈고닦은 프렌치 요리의 내공을 발휘하기 위해 제주에 정착했다. 해비치 호텔 로비, 밀리우와 마주 보는 벽면에 대형 사이즈의 추상화가 걸려 있다. 고 이두식 화백의 <축제> 시리즈로 신명 나는 축제 현장을 옮긴 듯한 화려한 색채와 분방한 붓 터치가 인상적이다. 밤이 되면 밀리우의 디너 코스에서는 또 다른 스타일의 ‘축제’가 펼쳐진다. 김영원 셰프가 <축제>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옥돔 요리는 뵈르 누아제트, 화이트 와인 벨루떼, 파슬리 오일을 곁들인 후 라타투유로 만든 프로방스퓌레를 올리고 한연화 잎과 꽃으로 장식했다. 이두식 화백의 작품보다는 좀 더 절제되고 은유적인 느낌의 ‘축제’이지만 그것만의 발랄함과 생기가 느껴진다. 그는 요즘 <축제> 맞은편 벽면에 걸려 있는 엘즈워드 켈리의 기하학적인 추상화 작품을 유심히 관찰 중이다. 플레이트를 캔버스 삼아 그는 또 어떤 맛있는 작품을 완성하려는 걸까.


(왼쪽부터) 아뮈즈부슈로 서비스되는 고등어회 플레이트의 밑작업 중이다.
플레이트에 미리 토사카노리 해초를 깔고 오이젤리를 굳힌 뒤 주문이 들어오면 그 위에 고등어회를 올려 낸다.
고등어는 회를 뜨기 전에 얼음물에 담가둔다.
정교한 플레이팅의 정수를 보여주는 밀리우의 메뉴는 한 가지 음식을 낼 때마다 각각의 재료가 담긴 여러 개의 그릇이 필요하다.
흑돼지 삼겹살을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재료를 담은 소스 팬.
디너 서비스를 개시한 밀리우의 오픈 주방 전경.
흑돼지 삼겹살을 플레이팅 중인 김영원 셰프.
카본 재질의 길쭉한 트레이는 해외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많은 음식을 한번에 서빙할 때 사용하는 것으로 밀리우를 오픈할 때 고가에 들여왔다.
(왼쪽부터) 오픈 주방에서 바라보는 밀리우 전경. 코쿤 스타일의 개별 룸 주변으로 고사리,
야자나무, 스파티필름 등 공기 정화 식물이 잔뜩 심어져 있어 마치 숲속에 있는 느낌이다.
보름간 숙성시킨 한우 투 플러스 등심은 굽기 전에 실온에 두어 온도를 맞춘다.
영업시간 내내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밀리우 주방 풍경.

Fresh Ingredients of Jeju

천혜의 자연을 간직한 제주는 내륙과 달리 식재료가 청정하기로 유명하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철 따라 다른 해산물이 잡혀 올라오고 해변을 따라 조성된 논밭과 초지, 한라산 일대의 산기슭에서 농산물과 축산물 등 각종 식재료가 풍성하게 쏟아져 나온다. 제주에서 많이 잡히는 해산물로는 한치, 고등어, 옥돔 등이 있다. 한치는 오징어에 비해 씹는 맛이 더 부드럽고 감칠맛이 좋아 제주도민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아왔다. “한치가 쌀밥이라면 오징어는 보리밥이고 한치가 인절미라면 오징어는 개떡이다”라는 제주도 속담이 있을 정도. 제주도 고등어 또한 알아주는 식재료로 김영원 셰프는 “제주도 고등어는 때깔부터 다르다”고 표현했다. 그만큼 싱싱하고 맛이 좋아 어떻게 조리해도 만족도가 높다. 해산물만큼 제주의 축산물도 특별하다. 제주 흑돼지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만큼 귀한 대접을 받고 흑돼지 이외에도 흑우, 재래닭 등 제주도에는 다양한 토종 가축이 있다. 그런가 하면 제주도는 허브 천국으로도 유명하다. 어떤 카페를 가더라도 거의 모든 음료에 로즈메리가 가니시로 사용되는데, 비료와 농약 없이 사계절 내내 로즈메리 재배가 가능한 곳이 제주다. 물 빠짐이 좋고 통풍이 잘돼 로즈메리뿐만 아니라 딜, 타임, 파슬리 등 허브 재배의 최적지라고 할 수 있다. 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제주는 국내 최대의 메밀 생산지이기도 하다. 밀리우에서는 제주 메밀로 디저트 메뉴를 선보인다.


Dinner at Milieu 

1. 아뮈즈부슈로 제공되는 니스 식 올리브 타페나드, 제주산 고등어회와 해초, 그라블락스.
2. 관자, 콜리플라워, 한치 요리에 오징어 먹물을 넣은 뵈르블랑 소스를 마블처럼 플레이팅한 메뉴.
3. 엔다이브, 셀러리액, 비트, 소렐, 그린올리브, 사랑초 등 채소와 허브로 완성한 따뜻한 요리.
4. 뵈르 누아제트, 화이트 와인 벨루떼, 파슬리 오일 3가지를 곁들인 제주도산 옥돔 요리.
5. 조선된장으로 마리네이드한 제주산 흑돼지 요리, 렌틸콩과 베이컨, 제주막걸리 소르베.


info

해비치 호텔앤드리조트 제주 1층에 위치한 프렌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밀리우는 제주에서 나는 제철 식재료를 이용해 한국적인 터치가 가미된 프렌치 다이닝을 선보인다. 12개의 바 좌석과 5개의 개별 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운영 시간은 오후 6~10시까지다. 디너 코스는 6단계와 9단계 2가지이며, 8월부터는 바 좌석에서만 맛볼 수 있는 단품 메뉴를 출시할 예정이다.

• 6코스 11만원, 9코스 13만8000원
•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민속해안로 537 해비치 호텔앤드리조트 제주 1층
• 064-780-8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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