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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ing

세진식당 @정동현

2017년 7월 20일 — 0

한 시대를 이끌던 쇳덩어리들은 천천히 녹이 슬고, 그 쇠를 뽑고 나르던 사내의 단단한 몸은 노년의 기색을 감출 수 없다. 그러나 을지로의 세진식당의 노래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그 소리는 높지 않고 리듬은 화려하지 않다. 대신 시간을 품고, 더욱 견고하게, 땅으로부터 멀리 울려 퍼질 뿐이다.

text 정동현 – illustration 왕조현

을지로는 섬이다. 인쇄소와 기계공구상가가 단층 건물 안에 들어선 이곳은 개발이 비껴가고 대신 세월이 물처럼 흘렀다. 매번 한국 공시지가 최고봉을 찍는 명동에서 몇 백 미터 전방, 전국에서 물건을 받으러 상인들이 올라오는 동대문 뒤쪽에 자리한 을지로 골목은 어둠이 쉽게 찾아들고 취객은 그 골목길을 헤매며 왔던 길을 뱅뱅 돌 뿐이다. 낯선 그 길은 무섭지만 한편으로는 설렌다. 초등학교 시절 학원에 갔다 늦게 집에 돌아오는 길이면 시장 어귀, 갓 일을 마친 어른들이 작은 탁자에 둘러앉아 소주병을 헤아리고 있었다. 햇볕에 그을린 얼굴과 팔, 본래 색을 잃고 회색빛이 된 러닝셔츠, 한쪽 다리만 걷어 올린 바지, 그리고 수북이 쌓인 담배꽁초와 귓가에 울리는 큰 웃음소리와 욕지거리를 들으며 ‘어른이란 저런 것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저렇게 독한 것들을 마시고 먹으며 세상에 모든 자유를 누리는 존재가 바로 어른 같았다. ‘세진식당’으로 가는 길은 어릴 적 걷던 그 길과 흡사하다. 슬래브 지붕과 양철 문, 오래된 폰트로 쓰인 간판들은 보존이 아니라 방치된 채 풍화되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다. 쇠붙이를 잡고 당기며 하루를 보낸 사내들이 웃통을 벗고 등목을 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곳이 서울의 사대문 안이 맞을까 의문도 든다. 그러나 그 의문을 뒤로하고 길을 걸으면 어디선가 리듬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속 광경처럼, 과거의 영광을 오롯이 품고 자신만의 리듬을 지키고 있는 곳이 있으리란 어떤 확신이다. 그 확신에 따라 길을 걷다 좁은 골목 틈으로 몸을 옮기면 그곳에 작은 간판을 단 ‘세진식당’이 있다. 전경을 보면 이 동네에 흔한 밥집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한잔 걸치기 딱 좋은 만만한 풍경에 멋모르고 빈자리에 엉덩이를 걸치면 “예약된 자리입니다”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반백의 머리에 키가 훤칠한 주인장으로, 한눈에 봐도 미남인 그의 서글서글한 눈웃음에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도 쉽게 수긍하고 마는 것이 초행객들이다. 운 좋게 자리를 잡으면 벽에 붙은 메뉴판이 보인다. 나무를 이어 붙인 그 판때기에는 난쟁이들이 줄을 서듯 작은 글씨로 음식 이름이 빽빽하게 적혀 있다. 유심히 살펴보면 그 구색이 심상치 않다. 김치찌개, 된장찌개, 부대찌개와 같은 식사 메뉴는 이런 식당에 당연히 있어야 할 것 같은 구색이다. 그런데 삼합, 갑오징어 같은 단어를 보면 이 집의 정체성에 혼란이 온다. 저런 메뉴는 본래 전문 식당에 가야 먹을 수 있는 것 아닌가? 만약 그 의심을 떨칠 수 없다면 우선 오징어볶음과 생태찌개를 시키는 것이 좋다. 주문이 들어가면 이내 주방에서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주방 안을 살피면 여느 가정집에서 쓸 법한 가스레인지와 냄비, 프라이팬, 투박한 칼이 전부다. 허리가 굽은 악사들이 빛바랜 악기들을 꺼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미들 템포, 툭툭툭 하는 소리와 함께 채소가 잘려나간다. 그러고는 뭔가를 스윽스윽 쓰다듬는 소리가 들린다. 달군 프라이팬 위에 오른 채소와 오징어를 볶는 소리다. 뿌연 연기가 올라오고 프라이팬을 흔드는 리듬은 조금씩 빨라진다. 그러나 흥에 겨워 리듬을 흐트리지 않는다. 노래는 청중을 아우르며 정해진 시간에 끝나고, 요리는 채소의 숨이 죽을 정도로만 진행될 뿐이다. 그리고 주인장은 큰 키를 굽혀가며 음식을 받아 부드러운 저음과 함께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  “맛있게 드세요.”

접시 위로 피어오르는 향을 맡으면 대학 시절 먹었던 물 흥건한 오징어볶음은 다 거짓말 같다. 물기 없이 건조하게 내어낸 오징어볶음은 고춧가루에서 스며나온 붉은 기름에 윤기가 흐른다. 먹어보지 않아도 맛을 느낄 수 있다. 이미 입안에 침이 흐르고 붉은색에 이끌리는 검은 소처럼 젓가락을 들이민다. 오징어볶음과 달리 생태찌개는 냄비째 테이블에 놓인다. 국물에 담긴 재료는 경상도 쪽과 판연히 다르다. 우선 민물 새우가 들어가고 국물의 색도 그리 붉지 않다. 양념 맛으로 강하게 지르는 것이 아니라 너른 색소폰 소리처럼 너르게, 그리고 서서히 달아오른다. 민물 새우를 넣어 국물의 향이 더욱 달큰하다. 맛을 보면 토장을 섞은 듯 구수하고 한편으로는 매콤하여 혀 밑을 조금씩 달군다. 한소끔 끓고 채소가 숨이 죽으면 먹어도 된다는 신호다. 한 숟가락을 뜬다. 입속으로 국물이 흘러 들어간다. 눈을 질끈 감아야 할 것 같다. 소리도 내어야 제맛이란 느낌도 든다. 어쩔 수 없이 “캬아” 하는 소리가 터져나온다. 이쯤이면 메뉴판의 다른 음식들이 궁금해진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갑오징어를 시켜야 한다. ‘싯가’라는 말에 겁먹지는 말자. 다리 넘어 강남에 비하면 절반 값에 불과하다. 일반 오징어에 비해 갑오징어는 살집이 두툼하고 식감이 좋다. 이 말은 갑오징어를 먹기 전까지는 의미 없는 글자에 불과하다. 오래 푹 대충 익힌 것이 아니라 속이 살짝 투명할 정도로 익힌 갑오징어에 이를 들이밀면 생각보다 크게 느껴지는 탄성에 살짝 아리송해진다. 하지만 이윽고 이가 파묻히듯이 부드러운 살점에 박히면 그제야 갑오징어 맛이 실감난다. 갑오징어 다음에는 삼합이 제격이다. 세진식당에서 한번은 꼭 맛을 봐야 하는 메뉴이기도 하다. 삼합의 주인공인 홍어 맛은 목포에서 먹던 것과 비할 수 없다. 하지만 딸려 나오는 김치와 돼지 수육은 이 집을 나서는 순간 다시 생각이 난다. 지나치게 익어 군내가 나는 김치가 아니다. 여전히 청량감이 살아 있지만 홍어의 삭은 내를 이겨낼 정도의 산미는 지니고 있다. 돼지고기도 흐물거리는 모양새가 아니다. 익혔다가 한번 식혀 역시 탄력이 살아 있다. 김치와 돼지고기, 홍어를 함께 싸서 입을 크게 벌리고 집어넣다가, 홍어 한 점, 돼지고기 한 점을 번갈아 가며 먹기도 한다. 그러다가 김치 한 대접, 돼지고기 한 접시를 다시 청하게 되는 것은 매번 있는 일이다. 접시를 비우고 이제 애꿎은 술잔을 만지작거리면 주방에 서 있던 노인이 다가와 말을 건다.

— “아따 맛이 있는가?”

전라도 사투리가 강하게 밴 목소리에는 높낮이가 있다.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고 던지는 한마디에 담긴 리듬이다. 이 작은 식당의 노래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 “라면부터 끓였지. 가스불 하나밖에 없었어.” — “진짜 작았어요.”

호기심에 던진 질문에 주인장과 주방의 노인이 함께 입을 연다. 연도로 치면 1991년, 그때는 오히려 지금보다 돈을 더 벌었다고 한다. 따져보면 무조건 현금을 주고받던 시절이니 그럴 만도 하다. 햇수로 27년이 되는 지금까지 조금씩 가게 평수가 늘어나고 이들의 얼굴에는 주름살이 굵어졌다. 그리고 나는 어린 티를 벗고 조금씩 나이 든 행세를 하며 이 좁은 길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  “다음에 또 와.”

누구에게나 던지는 말이라는 것을 알지만 기분이 나빠질 계제는 없다. 그 소리가 잊혀질 무렵에는 다시 길 위다. 그 예전 거리에서 보던 어깨 넓은 어른들은 없다. 고개는 땅을 향하고 어깨는 처진다. 발걸음은 무거운데 가야 할 곳을 정할 마음도 없다. 욕지거리를 던질 대상도 없고 큰소리를 칠 용기도 없다. 잔꾀만 남아 내 앞에 선 사내를 제치고 택시에 올라탄다. 이래야만 한다는 강박에 밤마다 뭔가를 풀어내려 하지만 그 맺힌 것이 무엇인지 몰라 다 헛수고다. 탁한 공기에 택시의 창을 내린다. 문득 떠오르는 것은 그 옛날 라면을 끓이며 시작했다는 식당의 정경이다. 작은 가스불에 올려진 냄비 하나. 그것으로 생계를 꾸린 식구. 그때부터 시작된 나지막한 노래를.


정동현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 유통 회사를 다니다가 훌쩍 영국의 요리 학교 탕트 마리Tante Marie로 유학을 떠났다. 호주의 레스토랑에서 늦깎이 셰프로 요리 열정을 불사르며 일했다. 저서로는 <셰프의 빨간 노트>가 있으며, 지금은 신세계그룹 F&B팀에서 ‘먹고(Food) 마시는(Beverage)’ 일에 몰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