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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수에서 찾은 한식의 미래

2017년 7월 13일 — 0

대표적 여름철 음식인 빙수는 해마다 조리법과 재료가 업그레이드되어서 찾아온다. 건강식에 대한 집착과 기원과 전통을 찾아가야 한다는 과도한 압박에서 벗어났기에 가능한 일이다.

text 정재훈 — edit 이미주 — photograph 이병주

한식은 건강식인가
“배드 코리안Bad Korean이란 이름의 레스토랑을 만들고 싶다.” 한식을 주제로 열띤 토론을 하던 중에 나온 얘기다. 한식은 건강식이라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현대 한국 음식이 주는 쾌락에 집중한 음식을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이었다. 나에게 실제로 그런 곳을 오픈할 정도의 여유가 있진 않지만, 요즘도 종종 비슷한 상상에 빠진다. 세계 다른 어떤 나라의 음식과 비교해봐도 한식은 유독 건강에 집착이 심하다. 막국수 한 그릇에 메밀의 효능만 여섯 가지, 족발 한 접시에는 일곱 가지 효능이 붙는다. 팥죽이라고 효능이 빠질 리 없다. 팥에는 우유보다 단백질이 6배, 철분이 117배 더 많다니 대단한 식품처럼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마른 팥이 그렇다. 팥을 삶고 갈아 쌀가루를 섞어 만든 팥죽의 단백질 함량은 100g당 3.1g으로 우유와 비슷한 수준이다. 수분 함량이 전혀 다른 두 식품의 영양을 비교하는 것은 그야말로 물장난에 불과하다. 팥과 우유의 철분을 비교하는 것도 옳지 않다. 우유에는 철분이 거의 들어 있지 않다. 이를 대비하여 갓 태어난 송아지의 간에는 약 450mg의 철분이 저장되어 있는 데다, 엄마 소의 젖을 빨 때 함께 입으로 들어오는 약간의 목초에도 충분한 철분이 들어 있으니 굳이 우유에 철분이 들어 있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런 우유와 팥의 철분 함량을 비교하면 과장된 수치가 나오는 것은 필연이다. 게다가 팥에는 철분의 흡수를 방해하는 폴리페놀 성분이 풍부하므로 팥 속의 철분 흡수율이 그리 높다고 보기도 어렵다. 한식의 효능 찾기 놀이는 과학으로 포장되어 있으나 사실 과학과는 거리가 멀다. 철분이 부족한 우유와 철분이 풍부한 팥이 만났으니 우유팥빙수는 환상의 궁합이며 최고의 건강식이라고 무릎을 치는 소리가 들린다. 그냥 다 헛소리며 잘못된 상상이다. 음식 속 영양 성분이 늘 사이좋게 우리 몸으로 들어오려고 춤을 추진 않는다. 서로 훼방을 놓다가 장을 타고 그대로 빠져나가버리는 경우도 흔하다. 우유에 풍부한 칼슘은 팥 속의 철분(팥 자체의 폴리페놀 때문에 흡수가 어렵다는 그 철분)이 흡수되는 것을 추가적으로 방해한다. 그런데 과연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있긴 한 걸까? 혹시 후식으로 빙수 먹기 전에 미리 배에 채워 넣은 삼겹살을 잊으신 건 아닌지(철분 함량과 흡수율에서는 붉은 고기가 최고다). 음식 속의 다양한 영양물질들이 때로는 서로 충돌하고, 때로는 서로 도움을 주기도 하며, 아무 상관없이 따로 놀 때도 있지만, 우리가 식탁에서 그런 영양소들 간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걱정할 이유는 없다. 그저 다양한 음식을 고루 섭취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옛날 빙수, 요즘 빙수
다행히 빙수는 한식의 집요한 건강 강박을 떨쳐버렸다. 팥죽이나 팥칼국수집과 달리 빙수 전문점에서는 팥의 효능 광고판이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팥의 건강 이미지에 연연하지도 않지만, 팥과의 결합도 필수가 아닌 선택 사항이다. 우유와 시럽과 과일로만 만든 빙수가 있는가 하면, 아이스크림과 초콜릿으로 만든 빙수, 티라미수빙수, 치즈빙수도 있다. 짜장면과 흡사한 모양의 짜장빙수와 전주비빔밥처럼 비벼 먹는 비빔밥빙수도 실존한다. 춘장 대신 팥, 고추장 대신 블루베리 소스를 얹었다니 정말 짜장면과 비빔밥 맛이 나진 않을 테지만, 제주도 한 카페의 오징어빙수에는 진짜로 무늬오징어 몸통살을 얹었다니 그 맛이 궁금해진다. 이토록 다양한 변주가 가능한 것은 빙수는 전통 또는 원조의 폐쇄성으로부터도 벗어나 있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음식에 ‘옛날’이 결합되면, 과거에 대한 왜곡된 환상에 빠지기 쉽다. 가마솥에 옛날 방식으로 팥을 쒀서 고운 얼음 위에 올린 빙수가 전통 팥빙수라면 그 전통은 언제 만들어진 것이며, 옛날이 가리키는 시대는 언제란 말인가. 연중 얼음을 관리하는 빙고는 조선 시대에도 있었고, 그때 이미 상류층에서는 얼음을 잘게 부수어 과일과 함께 먹는 화채가 유행했다지만, 그런 것들은 지금의 빙수와는 거리가 멀다. 얼음을 깎아 단팥을 얹어 먹는 팥빙수의 원형이 되는 음식은 일제강점기 일본을 통해 들어왔으며, 겨울에 언 강과 저수지의 천연빙을 여름까지 저장할 수 있는 냉장 시설이 갖춰지면서 191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경성에 빙수 판매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옛날 빙수 하면 팥빙수를 떠올리기 쉽지만, 1929년 소파 방정환이 잡지 <별건곤>에 쓴 기사를 보면 그 당시 이미 바나나물과 오렌지물, 딸기물 중 하나를 선택해서 과일빙수를 맛볼 수 있었으며, 노랑, 파랑, 빨강 식용 색소를 뿌린 색동빙수, 건포도를 얹은 빙수, 황설탕을 넣은 빙수가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특이하게도 그는 얼음 맛에 부족함을 느끼거나 아이스크림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면 빙수 위에 달걀 하나를 깨뜨려 섞어 먹으면 된다고 권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물론, 그렇게 하면 딸기 맛이 줄어들게 되므로 정말 빙수 맛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면 피하는 게 좋다는 충고도 빠뜨리지 않는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빙수 플레인이다. 방정환의 빙수 예찬에서 놀라운 것은 1920년대 경성의 빙수가 팥빙수 일색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지금의 관점에서 봐도 다양한 종류의 빙수가 있었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어떤 빙수가 맛좋은 빙수인가에 대한 시각이 지금의 대세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 더 놀랍다. 그는 입속에서 느껴지는 질감을 중시했다. “사랑하는 이의 부드러운 혀끝 맛”처럼 녹아내리도록 얼음을 잘게 갈아 만들어낸 빙수여야 한다는 것이다. 우박 같은 거친 얼음 입자를 사용한 빙수를 먹는 것은 가여운 일이며, 누런 설탕을 콩알처럼 덩어리진 채로 넣어주는 빙수는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밉다고 표현했다. 전통 빙수가 가리키는 시대가 1920년대라면, 그 원형은 팥빙수보다는 과일빙수에 가까우며, 당시 사람들도 먹을 수만 있다면 곱게 간 눈꽃빙수를 선호했던 셈이다. 빙수는 솔직한 역사의 음식이다. 빙수가 보여주는 것은 수천 수백 년의 허구적 신화를 걷어버린 날것 그대로의 역사다.

빙수는 궁극의 한식이다
음식의 미래를 그리다 보면 우리 머릿속에는 새로운 식재료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단백질원으로 고기의 시대는 저물고 곤충을 먹게 될 거라는 식이다. 하지만 식재료가 음식의 전부가 될 수 없다. 새로운 음식은 그 새로움을 뒷받침하는 기술이 선행되어야 만들어진다. 여름에도 얼음을 저장할 수 있는 기술과 현대 제빙산업 없이 빙수의 출현은 불가능한 일이고, 얼음을 더 곱게 가는 빙삭기, 롤러 사이에서 더 미세한 얼음 입자를 만드는 눈꽃빙수 제조기의 도움 없이 빙수의 현재를 말할 수 없다. 이제껏 인류가 먹지 않던 생소한 식재료만으로 음식의 미래를 열어갈 수는 없다. 퍼즐의 처음과 마지막 조각을 채우는 것은 기술이다. 기술은 음식을 평등하게 만들기도 한다. 과거 일부 특권층만 향유할 수 있었던 여름 얼음이라는 희소한 식재료는 냉장, 냉동 기술에 의해 대중의 손으로 들어왔고, 다시 그 얼음이 갈아져 빙수가 되었다. 빙수가 처음부터 서민 대중의 음식이었다는 사실은 빙수로 인한 식중독 사고가 끊이지 않았던 과거의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음식이 정말 재미있어지는 것은 이 부분이다. 역사 속에서는 상류층의 음식이 대중화되는 현상뿐만 아니라 거꾸로 서민 음식이 다시 상류층으로 순환하는 모습이 종종 보인다. 기술이 음식을 평등하게 만들면, 사람은 다시 음식으로 계층을 나눌 궁리에 빠진다. 고가의 애플망고, 돔 페리뇽으로 만든 셔벗, 월악산에서 채취한 벌집을 올린 사치스러운 호텔 빙수를 입에 넣으며 자기도 모르게 무언의 우월감에 빠져들기란 지극히 쉬운 일이다. 하지만 분식집 빙수나 호텔 빙수나 그 바탕에 깔린 기술은 동일하다. 누군가는 더 비싼 빙수를 먹고 있다는 데 가려 잊힐 때가 있지만, 실은 우리 모두가 빙수를 먹고 있다는 면에서 평등하다. 다양한 여름 빙수에서 젊음의 활력이 넘치는 한식의 모습이 보인다. 건강식에 대한 집착, 기원과 전통을 찾아가야 한다는 과도한 압박감은 얼음과 함께 녹아 사라지고 혀끝에는 시원한 즐거움만 남는다. 그러니 누군가 나서서 ‘배드 코리안’ 레스토랑을 오픈하지 않아도 될 거 같다.


정재훈은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한 후 캐나다 토론토에서 다년간 약사로 일했다. 음식만큼이나 사람들과 요리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한다. 잡지, TV, 라디오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음식과 약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전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정재훈의 식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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