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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의 의미 @안휴

2017년 6월 26일 — 0

방대한 미식의 여정 속에 개개인이 느끼는 미식의 의미는 계속해서 진화하고 변용된다.

text 안휴

얼마 전 나의 저서 <세계의 별들을 맛보다>를 읽고 유럽으로 유학을 떠난 요리사가 오랜만에 찾아와 스승의 날에 맞춰 준비했다며 나에게 뭔가를 전해줬다. 쇼핑백에서 꺼내보니 투명한 유리 용기에 쌀이 가득 담겨 있었다. 자세히 보니 한국의 쌀은 아니고 이탈리아에서 리소토를 만들 때 사용하는 아르보리오 품종이었다. ‘근데 웬 쌀?’이냐고 막 물어보려던 참에 어서 열어보라고 해 여니 순식간에 익숙한 향이 진동을 했다. 트러플(송로버섯) 향이었다. 안에는 골프공만 한 블랙 트러플과 그보다 작은 사탕만 한 사이즈의 화이트 트러플이 들어 있었다. 본인이 직접 만들어주고 싶었으나 다음 날 출국한다며 이 아르보리오 쌀과 트러플로 리소토를 만들어서 먹어보라는 그의 친절한 선물이었던 것이다. 그날 마침 모스크바 출장에서 돌아온 지인이 캐비아를 가져왔다며 마련한 저녁 모임이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선물 받은 트러플을 가져갔다.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이 제2차 세계대전 전에 만들어진 1940년 빈티지의 와인을 들고 왔다. 그날은 요리사에게 트러플과 캐비아에 어울리는 즉흥 요리를 부탁했다. 캐비아와 함께 먹는 각종 컨디먼트가 준비되어 나왔는데 점심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는 지인 하나는 전채 요리로 시작한 캐비아와 연어알이 느끼하다면서 같이 나오는 블리니와 사워크림만 계속 먹어치웠다. 기다리고 있던 와인은 한참이 지나도 소믈리에가 가져오질 않아 물어보니 코르크가 오래되어 너무 신중하게 열고 있다고 했다. 식사를 하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날 나의 테이블에는 미식, 대식, 과식, 폭식이 모두 공존하는 희한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좀처럼 접하기 힘든 희귀한 산해진미로 요리할 기회를 줘서 고맙다는 요리사들과 오래된 빈티지의 와인 맛을 맛보아 상기된 소믈리에의 진땀을 빼게 한 건 그저 우리의 미식을 추구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친 행위나 다름없었다. 삶의 익숙함에 속아 소중한 걸 놓칠 때가 있듯이 미식의 여정도 예외는 아니다. 그 여정은 끝없이 방대하기 때문이다. 그 긴 여정 속에 개개인의 미식의 의미도 계속 진화하고 변용된다. 몇 년 전 홍콩에서 무심코 TV를 보던 중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에서 상어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접했다. 중국요리에서 주로 쓰이는 상어 지느러미를 얻기 위해 상어의 지느러미만 자르고 처참하게 그대로 바닷속에 버려 천천히 굶어 죽는 상어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고 나니 공교롭게도 전날 포시즌스 호텔의 룽킹힌 레스토랑에서 먹었던 오독오독한 식감의 감칠맛 나는 샥스핀 요리가 떠올라 혼란스러웠던 적이 있다. 그 계기로 샥스핀 요리를 일체 배제하게 됐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처럼 미식의 욕망도 끝이 없는 것이 사실이며 동시에 불편한 진실이기도 하다. 예전에 미식가로 잘 알려진 영화배우 지인이 자신이 좋아한다는 개고기집으로 나를 데려간 적이 있다. 생전 개고기를 먹어본 적도 없고 먹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타인의 맛과 취향을 존중해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믿는 터라 호기심에 가보았다. 음침해 보이는 시골집 분위기의 방 안에 앉으니 개고기로 만든 제법 다양한 요리들이 나왔다. 언뜻 족발과 비슷한 수육이 나와 젓가락을 들어 맛보려던 찰나에 휴대폰이 울렸다. 내 휴대폰은 전화가 올 때마다 우리 집 강아지 사진이 배경으로 보이는데 순간 나도 모를 죄책감이 들어 전화를 받으러 밖으로 나가보니 뭔가 타고 있는 기분 나쁜 냄새가 진동했다. 살펴보니 커다란 개 한 마리가 불에 타고 있었다. 결국 그날 저녁은 굶게 되었고 집에 돌아가니 오랫동안 앉아 있었던 개고기집의 냄새가 배었는지 연신 킁킁대면서 나를 바라보는 우리 집 강아지의 해맑은 눈빛을 마주하기 어려웠던 기억이 있다. 세상의 온갖 좋은 먹거리가 많은데 굳이 아직도 개고기를 식용해야 하나라는 게 나의 생각이지만 어느 타인에겐 최고의 미식 대상이라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몇 해 전부터 불어온 먹방, 쿡방의 열풍으로 한국은 혼란한 시국만큼이나 혼란한 미식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그 나물에 그 국밥’처럼 금방 사라져버리는 트렌디한 식당들은 가보기도 전에 다양한 이유로 대부분 없어지는 게 현실이다. 작년 여름 뉴욕에서 대학교 동창인 미국 친구 부부의 알래스카 별장으로 초대를 받아 한 달 가까이 신비한 체험을 했다. 앵커리지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어서 순록고기를 먹으러 주말에 레스토랑을 가거나 신문이나 필요한 것을 사러 시내에 나올 때 외엔 거의 완전 고립되어 있는 환경이라 아침 점심 저녁 모두 직접 만들어 먹어야 했다. 오랜만에 한 집 안에서 그들과 함께 생활해보니 그들의 식생활은 커피든 달걀이든 우유 또는 향신료같이 사소한 것까지 생태계를 파괴하는 인위적인 유전자 변형 농산물이나 식품을 철저히 배제하고 공정거래 및 동물복지 농장에서 온 유제품만 고집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지구 환경을 위해 일상생활에서 이미 자연스레 실천하고 있고 또한 그것이 가능한 그런 선진국의 환경이 놀라울 따름이다. 보통 어른 키보다 큰 2~3m나 되는 대형 넙치라든지 다양한 종류의 연어들 그리고 어른 주먹만 한 크기의 가리비 등 알래스카의 풍요로운 해산물과 직접 낚시를 하고 한여름에 눈발이 날리는 신기한 숲 속에서 채집한 재료로 요리를 하는 원시적인 이 경험은 단순한 미식의 즐거움 외에도 새로운 미식의 힐링이었다.


안휴는 갈라위크 Inc.의 대표이자 푸드 칼럼니스트다. 해외와 한국을 오가며 푸드&와인 축제인 ‘파인다이닝 갈라위크’와 다채로운 음식문화 전시 및 행사를 기획했다. 저서로는 <바다와 섬의 만찬>, <세계의 별들을 맛보다> 등이 있으며 전방위 아티스트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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