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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업 레스토랑에서 찾은 미식의 의미 @정재훈

2017년 6월 26일 — 0

짧게는 하루에서 길게는 몇 달까지 한시적으로 문을 여는 팝업 레스토랑은 셰프와 방문객 모두에게 기회이면서 동시에 실패할 가능성을 안고 있다. 이러한 불확실성이 바로 팝업 레스토랑의 매력이다.

text 정재훈 — edit 이미주 — photograph 차가연

팝업 레스토랑의 매력 
유명 셰프가 런던 가정집에서 연 팝업 레스토랑도 아니었고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마천루 꼭대기에서 열렸다는 세계 최고층 팝업 레스토랑도 아니었다. 그냥 가로수길을 걷다가 마주친 모 수입 맥주 팝업 스토어였다. 그런데도 뭔가에 끌린 듯 들어갔다. 막상 맛본 맥주나 안주의 맛이 그렇게 특별하진 않았다. 한두 잔 마시고는 금방 다시 나왔다. 거의 매번 그렇다. 팝업 레스토랑이 만족스러웠던 기억이 그다지 많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팝업이라는 말만 붙으면 가봐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에 빠진다. 팝업 레스토랑을 그냥 지나치기란 어려운 일이다. 게릴라처럼 불쑥 나타났다가 사라진다는 사실만으로도 강한 끌림이 있다. 팝업 매장은 정규 공간이 아니라 임시로 빌린 곳이며 일시적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러한 일시성이야말로 바로 음식의 본질적 특성이다. 음식은 그것을 만드는 사람에게는 그림과 같지만 먹는 사람에게는 음악과 같다. 하지만 미식은 음악, 미술 감상과 다르다. 음식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반드시 작품을 파괴해야 한다. 어제 내가 먹었던 음식은 여기 없다. 음식을 맛보면서 느끼는 행복감 이면에는 음식도, 그걸 먹는 인간도, 잠시 동안 존재할 뿐이라는 사실이 엄존한다. 우리가 팝업 레스토랑에서 맛보는 것은 그 일시성을 극대화한 경험이다. 번역기를 돌리지 않아도 오늘을 즐기라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의 뜻이 그대로 다가온다. 지나간 팝업을 붙잡을 수는 없다. 그리하여 팝업의 일시성은 다시 희소성으로 이어진다. 레스토랑에서도 어제 내가 먹었던 음식이 여기 없는 건 사실이지만, 같은 레스토랑에서 같은 메뉴를 주문한다면, 그리고 셰프와 스태프가 언제나 재현성 높은 요리를 내어놓는 실력을 갖췄다면 어제와 거의 동일한 요리를 즐기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팝업 레스토랑이라면 다르다. 지난 크리스마스에 참석했던 장진모 셰프의 팝업 레스토랑 ‘앤드 다이닝’에서 맛본 해초에 마리네이드해 생나물을 곁들여낸 도미 세비체는 인상적이었다. 직전에 맛본 자연 송이버섯 멜바와 달걀의 부드러움과 대비되는 산미와 시원한 풀 향, 적당히 탄력 있는 날생선의 식감이 기억에 남는다. 나는 그날의 사진을 휴대폰에서 꺼내볼 수 있다. 하지만 같은 공간에서 그 음식을 다시 맛볼 수는 없다(팝업 장소를 제공했던 이태원 문샤인마저 작년 말 영업을 종료했다). 마찬가지로 올해 4월 1일 임정식 셰프가 팝업 ‘아이뿨유’에서 선보인 베트남 쌀국수 역시 다시 맛볼 수 없는 음식이다.

희소성의 식문화
영국의 문화비평가 스티븐 풀이 자신의 책 <미식 쇼쇼쇼(영어 원제는 You Aren’t What You Eat)>에서 팝업 레스토랑의 대유행에 대해 비난한 것도 희소성 때문이다. 그는 팝업이 과거 연중 특정 시기에만 한정 판매했던 캐드버리 크림 에그 초콜릿의 고급 버전 유사체에 불과하다고 깎아내렸다. 순전히 일시성을 이용해서 한몫 보려 한다는 것이다. 풀의 말대로 우리는 희소성에 흔들린다. 어떤 음식을 먹고 싶게 만드는 제일 쉬운 방법 하나는 지금이 아니면 맛볼 기회가 없다는 생각을 자극하는 것이다. 2006년 4월 미국 시카고의 시의회가 모든 식당에서 푸아그라가 든 요리를 판매할 수 없도록 금지하는 조례를 통과시키자 이전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푸아그라를 맛보려고 레스토랑으로 몰려들었다. 미식가들은 물론이고, 애초에 푸아그라에 별 관심이 없던 사람들까지 더 이상 맛볼 수 없다는 생각에 휩싸였다. 100달러가 넘는 고가의 푸아그라 테이스팅 메뉴도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서 제일 맛좋은 음식은 금단의 음식일지도 모른다(지금은 다시 시카고에서 푸아그라를 먹을 수 있다. 푸아그라 금지 법안은 2년 뒤인 2008년 5월에 철회됐다). 토머스 켈러와 제이미 올리버 같은 유명 셰프들마저 나서서 팝업 레스토랑을 열고, 인당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행사에 언론이 호의적인 기사를 써주는 것도 모두 희소성 때문이라는 게 풀의 주장이다. 그는 “유명 요리사의 팝업 레스토랑은 그곳에 가고 싶다는 열망을 부추기려고 또 다른 종류의 희소성을 가미한다는 점에서 그저 자기 밥그릇 챙기는 행사에 불과하다”고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솔직히 찔린다. 글을 쓰는 지금도 제주도의 한 럭셔리 호텔이 서울에서 진행한다는 팝업 레스토랑에 가야 할 것인가 고민 중이다. 단 이틀만 존재하는 레스토랑에서 식사한다는 말에 솔깃한 건 사실이다. 날씨에 관계없이 흰옷 정장을 입고 야외에서 식사하는 디네 앙 블랑에 매년 세계적으로 10만 명이 참여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일 거다. 특별한 자리에 가고 싶고, 특별한 음식을 맛보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풀은 ‘당신이 먹은 음식이 곧 당신 자신은 아니다’는 책 제목에서부터 정통 요리를 먹는 것으로 우월감을 표시하는 현대인들의 세태를 비판했지만, 그런 특권 의식이 팝업 레스토랑 매력의 전부라고는 볼 수 없다. 팝업만의 독특한 매력은 전혀 다른 곳에 있다. 그것은 실패의 미학이다.

실패에서 배우는 미식
메뉴 하나하나에 수준 높은 일관성을 유지하면서도 독창적이고, 한 번의 끊김도 없이 적절한 타이밍에 다음 메뉴가 제공되어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는 팝업 레스토랑은 극히 드물다. 팝업은 여러 면에서 실패 확률이 높다. 팝업을 찾는 방문객의 입장에서 실패할 확률을 줄일 방법도 별로 없다. 정규 레스토랑에 방문할 때는 미식 평론가나 블로거 리뷰가 도움이 될지 몰라도 팝업 레스토랑에는 별 소용이 없다. 그리하여 판단은 오롯이 나의 몫이다. 셰프 입장에서도 불확실성은 마찬가지다. 남의 주방에서 임시로 구성된 팀으로, 새로 구성한 메뉴에 도전한다는 것은 매일 같은 업장에서 일할 때와는 전혀 다른 도전이다. 레스토랑 오픈에 드는 초기 비용과 고정 인건비와 같은 비용을 줄일 수 있어서 그만큼 식재료에 아낌없이 투자할 수 있다지만, 제한이 줄어든다고 해서 반드시 더 창조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플레이트 위에 놓인 음식의 가짓수는 여럿이지만 아무 감흥을 주지 못하는 팝업 레스토랑을 여러 번 경험했다. 호기심에 가득해서 찾아간 팝업에서 실망만 가득 안고 돌아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 불확실성이야말로 팝업 레스토랑의 매력이다. 새로운 시도는 늘, 새로운 실패를 낳을 가능성을 안고 있다. 매일같이 치솟는 임대료와 인건비를 감당해야 하는 레스토랑 경영자에게는 실패를 감당할 여유가 없다. 팝업 레스토랑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부담이 적다. 팝업이 한 번 실패했다고 부도가 나거나 셰프의 명성에 치명적인 해를 끼치는 건 아니다. 우리는 실패를 통해 배운다. 상투적이지만 진실이다. 성공에는 너무 많은 요인이 있어서 성공한 사람도 자신이 어떻게 성공한 것인지 정확히 알기 어렵다. 그러나 실패는 단 한 가지만 잘못되어도 가능하다. 실패에서 배우기가 성공에서 배우기보다 쉬우며, 음식이 맛있는 이유보다 맛없는 이유를 찾기가 쉬운 일이다. 많이 실패해본 미식가일수록 자신만의 맛의 기준을 날카롭게 세울 수 있다. 낯선 음식 맛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많을수록 창의성이 넘치는 셰프가 성공할 확률도 높아진다. 지난달 어느 주말 야외에서 진행된 한 대규모 팝업 행사에 수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행사 자체는 성공보다는 실패에 가까웠다. 날은 덥고 태양은 뜨겁게 내리쬐는데, 대기 줄은 길었고, 음식은 생각보다 실망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 모여든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는 젊음의 활기가 넘쳤다. 팝업을 통해 본 우리 식문화는 확실히 젊어지고 있다. 돌이켜보면, 서울에서 베트남, 인도, 그리스 음식은 고사하고, 낯선 해외 여행지까지 찾아가서도 굳이 한식집을 찾아야 사람들의 직성이 풀리던 시대가 있었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려는 경향은 유전적 성향이나 문화적 배경에 더해 나이와도 관련된다. 과학자들에 의하면 60대의 새로운 것에 대한 선호는 20대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다고 한다. 맛집을 찾는 게 목적이라면 굳이 팝업에 가서 얼굴을 찌푸리고 있을 이유가 없다. 팝업을 여는 사람도, 팝업에 가는 사람도 즐거운 것은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것이 새로운 경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팝업은 실패해도 된다.

정재훈은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한 후 캐나다 토론토에서 다년간 약사로 일했다. 음식만큼이나 사람들과 요리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한다. 잡지, TV, 라디오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음식과 약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전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정재훈의 생각하는 식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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