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열기

main

People

피에르 가니에르의 요리와 인생

2017년 6월 12일 — 0

새하얀 조리복 위에 백색 앞치마를 두른 백발의 셰프는 오늘도 주방에 들어선다. 반백 년 넘게 반복되어온 일상이지만 그에게 주방은 어제보다 새로운 것을 꿈꾸게 하는 설렘의 공간이다.

edit 이미주 — photograph 이과용, 이병주 — reference <감정의 법칙>-한길사
서울에 온 그랑 셰프

피에르 가니에르가 처음 대중에게 각인된 것은 요리 대결 프로그램 <아이언 셰프Iron Chef>를 통해서였다. 범상치 않은 아우라를 뿜어내는 그는 과묵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다양한 표정과 의외의 순수한 모습을 지녔다. 요리할 때 굉장히 예민한 사람처럼 굴다가도 작은 에피소드에 뒤로 넘어갈 정도로 호탕하게 웃었고, 말할 때는 고민 많은 사람처럼 조심스레 입을 열다가도 어떨 땐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답을 했다. 그의 요리는 자유로우면서도 독창적인 힘을 지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는 처음부터 어떤 요리를 만들겠다고 미리 정하지 않는단다. 새로운 요리를 만들거나 기존 메뉴를 한 단계 발전시킬 때는 경험이나 최근의 미각에 대한 기억을 더듬는다는 것. 처음 한 수저 정도는 맛보지만 그다음부터는 직관에 의지해 맛을 조절한다. 셰프가 자신의 요리를 먹기 시작하면 그 습관을 멈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피에르 가니에르는 성공한 셰프다. ‘요리계의 피카소’, ‘주방의 철학자’, ‘식탁의 시인’ 등 그를 찬미하는 수식어는 차고 넘친다. 그의 이름 앞에는 ‘위대한 셰프’라는 의미의 그랑 셰프Grand Chef가 항상 따라다닌다. 2003년 문예훈장, 2006년 레지옹 도뇌르 훈장과 나뮈르 대학교 명예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어디 그뿐인가. 2015년에는 프랑스 매거진 <르 셰프Le Chef>가 발표한 세계 100대 셰프 중 1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파리의 레스토랑 두 곳을 비롯해 전 세계 15개 레스토랑을 이끄는 수장이면서 1993년 생테티엔에서 처음으로 미쉐린 3스타를 획득한 후 지금까지 이를 유지하고 있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그랑 셰프 중 한 명인 피에르 가니에르가 처음 서울을 찾은 것은 2007년으로 기억한다. 롯데호텔이 주최한 세계 유명 조리장 초청 갈라 디너에 그는 첫 셀러브리티 셰프로 초대됐다. 그리고 이듬해 10월 소공동 롯데호텔 신관 35층에 그의 이름을 건 레스토랑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이 첫선을 보인 후 지금까지 평균 20만원을 호가하는 가격에도 9년째 성업 중이다. 그는 레스토랑의 퀄리티 유지를 위해 일 년에 두어 번 방한한다. 그리고 올해도 어김없이 서울을 찾았다.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에서 만난 그랑 셰프는 과거 TV 속 모습보다 이마의 주름은 깊었고 머리털은 하얗게 세어 있었지만 온몸에서 발하는 특유의 아우라는 여전했다. 십수 년간 반복된 질문과 답에 지칠 만도 한데 요리 거장은 피곤한 기색 없이 영어와 프랑스어를 섞어가며 자신의 생각을 또박또박 전달했다. 인터뷰를 통해 무려 50년이 넘는 그의 요리 인생을 오롯이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그를 수식하는 수많은 찬사가 거저 얻은 것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었다.

프레데릭 에리에 총괄셰프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피에르 가니에르. 프레데릭 셰프는 프랑스 아비뇽 출신으로 스타 셰프들과 일하며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 오픈 초기부터 주방을 책임져왔다.
모든 것에 완벽을 추구하는 피에르 가니에르는 인테리어 소품과 식기류도 본인이 직접 선택했고 모두 파리와 밀라노에서 공수해왔다.
그랑 셰프가 되기까지

예술을 사랑하는 프랑스에서조차 가장 예술적인 요리사로 평가받는 피에르 가니에르는 의외로 불온한 유년기를 보냈다. 열네 살 때 학교를 중퇴하고 제과사 견습생으로 요리에 입문했으나 자의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3남 1녀 중 장남인 그는 레스토랑을 운영하던 부모의 뜻에 따라 자연스럽게 가업을 이은 것. 그는 매일 새벽 4시 30분에 페이스트리 주방으로 출근해 6시 30분이 되면 갓 구운 빵을 집집마다 배달했다. 아직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나이에 그 모진 일과를 어떻게 견뎠는지 묻자 선택권이 없었다는 무심한 답변이 돌아왔다. “지금에야 세상 물정을 알기 때문에 반드시 가업을 물려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지만 그땐 몰랐어요. 내가 보고 배운 것이 요리였기 때문에 직업을 가져야 하는 나이가 됐을 때 당연히 요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다만 요리에 재능이 있는지 확신이 없었고 열정도 부족한 때였다. 다행히 정량을 지키고 규격화된 레시피를 따라야 하는 제과 주방은 요리의 기본기를 다지기엔 최적의 장소였다. 이후 폴 보퀴즈Paul Bocuse, 장 비냐르Jean Vignard의 견습생을 거쳐 다양한 레스토랑에서 경험을 쌓았다. 그러던 중 잠재돼 있던 요리사 DNA를 발현시킨 사건이 발생했다. “열일곱 살 때로 기억하는데 갑자기 배가 고프다는 친구의 말에 냉장고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재료를 꺼내 몇 가지 음식을 만들어주었죠. 엄청 맛있다며 칭찬을 해주는데 그 순간 묘한 감정이 가슴 한구석에서 꿈틀대기 시작했어요.” 그때 처음 자신의 요리를 먹은 사람의 감정을 본 피에르 가니에르는 요리의 힘을 깨닫게 됐다.

한때 아버지의 레스토랑을 운영하기도 했으나 두 사람의 성향이 워낙 달라 마찰이 잦았다. 결국 4년 만에 아버지를 떠나 1981년 생테티엔에 그의 이름을 내건 첫 번째 레스토랑을 오픈했다. 혈기왕성한 서른한 살의 피에르 가니에르는 이전에 없던 자신만의 스타일의 레스토랑을 만들고 싶었다. 기존의 포멀하고 클래식한 스타일을 탈피하고 음식뿐만 아니라 서비스, 관리, 테이블 세팅까지 완벽하게 자신만의 스타일을 갖췄다. 덕분에 미쉐린 3스타를 받고 손님은 넘쳐났지만 어느 때보다 의욕이 넘친 그와 대조적으로 팀원들은 타성에 젖어 그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했다. 관리는 어려웠고 운영이 엉망이 되자 손님의 발길이 끊겼다. 재정적 어려움을 겪다가 1996년 결국 레스토랑 문을 닫았다. 하지만 그는 요리에 대한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파산의 원인은 제 요리가 아니었으니까요. 제가 만든 요리에 회의는 있었지만 확신도 있었어요. 게다가 당시에는 적어도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요.” 파산으로 생테티엔을 떠난 것이 6월이었는데 같은 해 11월 파리 발자크 호텔에 레스토랑을 열었다. 그리고 개업한 지 1년 만에 다시 미쉐린 3스타를 받으며 명성을 회복했다. 보란 듯이 재기에 성공한 그는 2002년 런던의 스케치Scetch, 2004년 파리의 가야Gaya, 2005년 도쿄의 피에르 가니에르 도쿄, 2006년 홍콩의 피에르, 2008년 두바이의 레플스 파 피에르 가니에르Reflets Par Pierre Gagnaire, 2009년 라스베이거스에 트위스트 파 피에르 가니에르Twist Par Pierre Gagnaire 등을 차례로 성공시키며 유럽을 넘어 아시아, 미주에까지 그만의 혁신적인 요리 세계를 선보이고 있다.

(왼쪽부터) 데친 랍스타를 얼음물에 식히고 있다. / 디저트에 사용할 파인애플을 저온으로 익히는 중이다. 끓지 않을 정도의 온도에서 4시간 정도 익히는데 모양은 그대로 유지되며 질감은 살아난다. 바닐라 슈거, 팔각, 바닐라빈을 함께 넣고 익힌다.
피에르 가니에르의 4

열네 살에 처음 주방에 발을 들여놓았던 소년은 어느새 60대 중반의 노장이 되었다. 피에르 가니에르는 자신의 요리 인생이 4막에 접어들었다고 설명했다. 1막은 생테티엔에 첫 번째 레스토랑을 오픈했을 때, 2막은 파리에 입성해 그만의 스타일을 확립했을 때, 그리고 3막은 런던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 자신의 레스토랑을 확장했던 때다. 그는 4막에서는 개인보다 팀워크를 강조했다. 한 번의 지독한 실패로 요리는 셰프 한 사람의 능력과 창조성만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레스토랑의 수준은 셰프와 팀이 얼마나 잘 어우러지느냐에 달려 있다고도 덧붙였다. “손님들은 나라는 사람을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 찾아와요. 이곳에서 우리 팀이 만든 요리를 맛보기 위해서죠.” 피에르 가니에르 레스토랑의 탄탄한 팀워크는 미쉐린 3스타를 20년 가까이 유지한 비결이기도 하다. 4막에서 더 집중하고 싶은 것을 묻자 아이폰에 저장된 손자들의 재롱 피우는 영상과 사진을 보여주며 인자한 할아버지 미소를 지었다. “손녀의 탄생은 저에게 지난 10년의 변화보다 더 강렬한 변화와 부드러움을 가져다 준, 상상조차 못한 계기가 되었어요.” 그는 출장 일정이 없는 한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저녁까지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려 노력한다. 은퇴 계획을 묻자 “No, what can I do?(제가 요리 말고 무엇을 또 할 수 있을까요?)”라고 단호하게 답했다. 그에게 주방에서의 매일은 단 하루도 같은 날이 없다. 모든 일은 저녁에 완전히 끝나고 아침이면 새로운 일이 시작된다. 그는 오늘도 빳빳하게 풀 먹인 앞치마를 허리춤에 두르며 주방으로 들어간다.

피에르 가니에르의 디저트

제과사 견습생으로 요리에 입문한 피에르 가니에르는 코스의 마지막 단계인 디저트에 대해 자신만의 철학을 갖고 있다. 아무리 배가 불러도 유혹을 뿌리칠 수 없도록 모든 에너지와 창의력이 동원되어야 한다는 것.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의 메뉴판에는 다른 메뉴와 달리 디저트에 대한 설명이 전혀 나와 있지 않다. 그만큼 메뉴가 자주 바뀌기 때문이다. 레스프리 피에르 가니에르 코스에는 총 6가지의 디저트가 제공되는데 맛의 조합을 따져 두 번에 나누어 서비스한다. 처음에 서비스되는 디저트는 비교적 맛이 가볍고 상큼한 반면 두 번째로 서비스되는 것은 맛이 진한 초콜릿 메뉴로 구성된다. 보기에도 아름답지만 입에 넣는 순간 반할 수밖에 없는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의 디저트를 소개한다.

Dessert at Pierre Gagnaire

1. 베리 퓌레로 만든 무슬린 크림 위에 블루베리, 블랙베리, 라즈베리, 스트로베리, 카시스를 버무린 디저트.
2. 펙틴을 넣고 조린 사과주스젤리에 유기농 수제 요구르트를 곁들인 메뉴.
3. 초콜릿과 치즈 케이크, 무스코바도 설탕 튈.
4. 부라타 치즈 셔벗에 오렌지 콩피를 곁들인 메뉴.
5. 블랙베리의 농후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젤리.
6. 다쿠아즈 사이에 패션프루츠젤, 오렌지젤을 넣고 모히토 시폰을 곁들인 디저트.

L’esprit Pierre Gagnaire

1. 자몽캄파리마멀레이드에 수박캄파리그라니타를 곁들인 남미식 빙수.
2.저온조리한 연어를 셜롯과 버무려 얇게 민 토스트와 곁들여 먹는 아뮈즈부슈.
3. 홍합, 맛조개, 전복을 넣은 홍합육수크림에 멍게와 해초를 올린 오마주 아 서울.
4. 뱅 존Vin Jaune 와인으로 조린 필름에 허브를 감싸 바닷가재, 모렐 버섯과 곁들인 메뉴.
5. 차이브 향을 입힌 질로버섯볶음, 그리고 쿠쿠마 향을 더한 감자튀김.
6. 베리 비갸하드 소스를 뿌린 오리와 푸아그라 요리.
7. 피에르 가니에르 스타일의 키르 로열 칵테일.
8. 레드 와인 소스를 곁들인 한우알등심구이.
9. 버섯을 비롯해 다양한 채소를 담은 볼.
10. 소꼬리찜으로 소를 만든 만두.


info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은 ‘신이 즐기는 요리’라고 불리는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조리법과 독특하고 예술적인 감각이 돋보이는 그랑 셰프 피에르 가니에르의 프렌치 퀴진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피에르 가니에르가 직접 선별한 300여 종의 와인 컬렉션과 세계적인 디자이너의 감각적인 인테리어, 피에르 가니에르만의 철저한 서비스가 더해져 <미쉐린 가이드 서울판>에서 2스타를 획득했다.

• 런치 3코스 8만5000원부터, 레스프리 피에르 가니에르 4코스 25만원
• 서울시 중구 을지로 30 롯데호텔서울 신관 35층
• 오전 11시 30분~오후 3시, 오후 5시 30분~10시
• 02-317-7181~2

이 기사도 읽어보세요
QM3와 함께하는 소셜 다이닝 초대 이벤트 (feat. 채낙영 셰프, 개그맨 조세호)... 르노삼성자동차와 가 비비드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당신을 아틀리에 비비드 라이프(L’atelier VIVID LIFE)에 초대합니다. 소년서커스의 채낙영 셰프와 개그맨 조세...
강희재 크루·공공빌라·소니아 김 3人3色 크리스마스... 요리와 파티를 사랑하는 세 팀의 크리스마스를 미리 엿봤다. 콘셉트와 메뉴는 각각 달랐지만 좋은 사람과 맛있는 음식, 그리고 담소가 끓이지 않았던 파티 현장을 공개한다. 당신이 준비하는 파티에 기분 좋은 자극제가 될 ...
콜드브루 커피의 매력 ‘차가운 물에 우려낸다’는 뜻을 가진 콜드브루Cold Brew. 더치커피로 커피 전문점에서 간간이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커피 전문점은 물론 마트, 편의점 등에서도 자주 만날 수 있다. 갑자기 콜드브루 커피가 주목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