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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육성의 진진

2017년 3월 15일 — 0

중국집 허드렛일부터 시작해 호텔 중식당의 오너 자리까지 오른 왕육성 셰프. 60세 되던 해에 호텔을 떠난 그는 서교동의 후미진 길목에 중식당 진진을 열면서 인생 제2막의 서막을 알렸다.

동네 중식당, 미쉐린의 별을 따다

지난 2015년 1월 11일, 연희동도 연남동도 아닌 서교동에 중식의 대가라 불리는 왕육성 셰프의 중식당이 문을 열었다. 이름은 진진. 그를 ‘왕 사부’라 부르던 많은 중식 요리사들은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그는 확신이 있었다. SNS 시대인 만큼 음식의 맛과 서비스만 확실하다면 식당의 위치와 상관없이 손님들이 찾아올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1호점 진진 본관은 연일 만석을 이루더니 그 해 가을 건너편에 두 번째 매장 ‘진진 신관’이 자리했고, 작년 6월에는 3호점 ‘진진 가연’이 오픈했다. 사실 진진은 왕육성 셰프에게 요리 인생의 새로운 도전이자 오랫동안 묵혀둔 과제였다. 호텔 조리사 시절, 한 외국인 손님이 음식값이 비싸다고 불만을 토로했는데 반박할 수가 없었다. 호텔 구조상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는 음식값이 높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는 호텔과 동일한 수준의 맛과 품질을 유지하면서 음식값을 얼마나 낮출 수 있는지 시험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2013년 12월 31일, 만 60세가 되던 해에 미련 없이 호텔을 나왔다. 40년 요리 인생에 숨 고르기가 필요했고 차곡차곡 쌓은 중식 조리 노하우를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왕육성 셰프는 중식당이 모여 있는 상권을 포기하고 권리금이 없는 장소를 물색했다. 서교동의 진진 본관 자리는 지금보다 더 어둡고 조용한 곳이었지만 보자마자 여기다 싶었다. 인테리어에도 최소한의 비용만 투자했다. 대신 아낀 비용은 좋은 식재료를 구입하는 데 사용했다. 진진이 단순히 맛만 좋았다면 단시간에 지금과 같은 유명세를 얻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진진은 일반 중식당과 여러 면에서 차별된다. 먼저 짜장면, 탕수육은 판매하지 않는다. 손이 많이 가는 면 요리를 안 하면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고 동종 업계에도 피해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진진이 점심 영업을 하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진진 가연점을 제외하고는 오후 5시부터 시작해 7시, 9시 이렇게 세 타임으로 저녁에만 영업한다. 또한 진진은 회원제로 운영된다. 회원이 아니더라도 음식을 맛볼 수 있으나 3만원의 가입비를 내면 모든 메뉴를 20% 할인된 가격으로 즐길 수 있다. “식당 근처에 출판사가 많아서 문인들이 자주 왔으면 하는 바람에서 회원제를 시작했어요. 결과적으로 단골 고객이 많아져서 저희는 더욱 질 좋은 음식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고요.” 술 매상보다 가게 분위기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 소주는 한라산, 고량주는 연태고량주만 판매한다. “파란 소주가 없으니 취객 때문에 시끄러울 일이 없어요. 주변에 훌륭한 사람들이 많으면 자기도 덩달아 수준을 높이게 돼 있거든요.” 재료와 타협하지 않는 요리 철학, 오랜 경력으로 완성된 맛, 지역 상권과 상생하고자 하는 바람, 그리고 호텔 중식당을 운영하며 쌓은 사업 수완까지 왕육성 셰프의 40년 요리 인생의 결정체가 바로 진진인 것이다. ‘합리적인 가격에 다양하고 수준 높은 중식을 제공하여 늘 문전성시를 이루니 예약은 필수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17>의 소개 문구와 별 하나가 전혀 아깝지 않다.

진진의 식사 메뉴를 준비하고 있는 왕육성 셰프. 식사 메뉴는 물만두와 XO볶음밥 두 가지로 볶음밥을 주문하면 달걀국이 서비스된다. 밥류를 주문하면 짬뽕 국물을 같이 내는 여느 중국집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다.
중식계의 ‘왕 사부’가 된 철가방 소년

대부분의 화교가 그렇듯 왕육성 셰프 역시 처음부터 중식의 대가를 꿈꾸며 중국집 주방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아니다. 그땐 상황이 그러했다. 중국 톈진(天津) 출신의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때 주물 기술자로 한국으로 건너왔으나 주물 산업이 사양화되면서 가세가 기울었다. 학업을 포기하고 지인의 식당에서 배달, 서빙, 주방 보조 등 허드렛일을 도우며 생계 전선에 뛰어들었는데, 그의 나이 열일곱 살이었다. 다행히 요리를 좋아했고 소질도 있었다. 화교 집안에서 태어나 가장 익숙한 음식도, 가장 자신 있는 음식도 중식이었다. 중학생 때 이미 칼질과 만두 빚기에 능했고, 이후 식당에서 일하면서 면 뽑기와 볶음밥 등 중식의 기본기를 다졌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중식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업계에서 알아주는 요리사였던 왕육성 셰프의 동창이자 스승인 왕춘량의 도움으로 서울역 앞 대우빌딩 지하 홍보석의 주방에 들어가게 된 것. 급조된 그의 직책은 해삼 담당이었다. “당시 중식당에서 해삼을 많이 사용해서 해삼 불리는 일을 맡았어요. 일주일 걸려 불리는데 잘못하면 해삼이 녹기 때문에 신경을 많이 썼죠.” 낙하산 인사라는 꼬리표는 그의 성실함과 근성 앞에서 오래가지 못했다. 2~3시간 전에 미리 출근해 자신의 임무를 끝내고 근무 시간에는 다른 파트를 도와주며 일을 배웠다.

도제식인 중식 업계에선 실력 있고 성실하다는 입소문이 돌면 스카우트 전쟁이 벌어진다. 빠르게 성장한 왕육성 셰프는 사보이호텔 호화대반점을 거쳐 1982년에는 플라자호텔 도원에 입성했다. 몸값이 수십 배 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대만 현지 호텔 연수를 통해 견문을 넓히는 등 인생의 황금기를 만끽했다. 한데 그때 선택의 순간이 찾아왔다. 1980년대 중반은 호텔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외식업에 뛰어든 때. 코리아나호텔의 중식당 대상해에서 그에게 러브콜을 보낸 것이다. 당시 대상해는 오픈한 지 6개월 정도 지난 시점이었는데 홍콩 요리사를 초빙하는 등 공을 들였지만 부진을 면치 못했다. 반면 플라자호텔은 업계 지명도 1위였고 그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주방장 자리에 올라갈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많은 사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의 승부 근성이 발동했다. “안 되는 가게를 되게끔 만드는 것도 능력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땐 진짜 자신 있었으니까 한번 해봐야겠다 마음먹었죠.” 식재료의 유통 단계가 복잡해 불필요한 지출이 발생한다든가 상명하복식 업무 관행과 수직적 조직 체계 등 1986년 대상해에 합류해 레스토랑의 발전을 저해하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발견했다. 재료의 질을 높여 음식 맛을 끌어올렸고 강압적인 조직 체계를 유연하게 개선함으로써 서비스의 수준을 향상시킨 결과 1년 만에 매출이 10배 이상 뛰었다. 급기야 코리아나호텔에서 왕육성 셰프에게 중식당을 직접 운영할 것을 제안했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철가방을 들고 주방을 기웃거렸던 소년은 25년 뒤에 호텔 중식당의 오너셰프가 되었다. 등산으로 치면 정상에 오른 것이다.

왕육성 셰프가 본격적으로 요리를 하기 전에 웍을 코팅하고 있다. 웍에 기름을 잘 두르고 연기가 나기 직전까지 데웠다가 연기가 나면 기름을 버리고 새 기름을 둘러서 요리를 시작한다.
왕육성의 인생 제2막

산 정상에 올라본 사람은 하산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위만 보고 올라가다 미처 놓친 것은 없는지, 언제 내려가면 좋을지, 내려가다 이제 막 등반을 시작한 사람을 만나면 어떤 조언을 해줄까 생각하기 마련이다. 왕육성 셰프는 어떤 식으로 인생의 후반전을 준비할까 고민하다 베푸는 삶이 곧 행복이라는 해답을 찾았다. 그가 요리를 통해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었던 것이 바로 행복이었다. 전성기 때 열심히 돈을 벌었던 것도, 모두가 꿈꾸는 정상의 자리에서 미련 없이 내려온 것도 모두 행복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행복은 음식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업계 후배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해주는 것, 자신을 믿고 찾아온 손님들에게 변함없는 맛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그런 후배와 손님들을 보면서 스스로 행복해지는 것. 왕육성 셰프가 몇 해 전부터 공공연히 이야기했던, 그가 꿈꿨던 인생 제2막의 모습이다.

그의 꿈은 원몽인願夢人으로 꿈을 실현해주는 사람을 의미한다. 주변 여건 때문에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다시 꿈꿀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것. “일단 씨를 뿌렸으니까 운이 좋으면 먼 훗날 열매를 맛볼지도 모르잖아요. 작은 성의를 베푼 것뿐이지만 나중에 큰 의미로 다가올 수도 있으니까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지요.” 그는 직원들에게도 음식만 파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같이 파는 것이라고 교육시킨다. 손님에게 자잘한 감동을 주면 호기심에 방문했던 손님이 단골이 되고 그런 손님을 통해 직원들은 보람을 느끼게 된다는 논리다. 언제라도 진진에 가면 느낄 수 있는 작은 감동 중 하나는 미소와 친절이다. 오픈부터 마감까지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가지만 인상 쓰는 사람 하나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왕육성 셰프는 주방과 홀을 자유롭게 오가며 손님 응대도 마다하지 않는다. 손님이 들고 날 때 먼저 인사를 건넨다. 아침마다 30분 이상 거울을 보며 연습했다는 그의 미소는 자연스럽기 이를 데 없다.

다시 태어나면 직업이 요리하는 사람은 아니더라도 스스로 만족할 정도로 요리를 잘하고 싶다고 말하는 왕육성 셰프. “처음부터 요리사를 꿈꿨던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후회는 없어요. 요리를 통해서 제 자신에게 또 남들에게 크고 작은 행복을 안겨줬으니깐요.” 아버지의 고향 중국 톈진(天津)의 ‘진’과 마포의 옛 이름 양화진楊花津에서 ‘진’을 따와 명명한 진진. 그리고 입에 착착 달라붙을 정도로 맛이 좋다는 의미의 ‘진진하다’. 왕육성 셰프의 진진津津은 그야말로 진진했다.


DINNER AT 津津

왼쪽 상단부터 1~6

1. 카이란소고기볶음 굴소스에 중국 채소 카이란과 소고기를 함께 볶아낸 요리.
2. 대게살볶음 대게살을 큼직하게 발라내 버섯, 죽순, 달걀흰자와 볶은 뒤 고추기름을 곁들인 메뉴.
3. 멘보샤 다진 새우를 식빵으로 감싸 튀겨낸 중국식 토스트튀김으로 진진의 시그너처 메뉴.
4. 칭찡우럭 싱싱한 우럭을 통째로 찐 후 대파, 생강, 간장 소스를 부어 완성한 요리.
5. 마파두부 매콤한 양념으로 두부와 돼지고기를 조리해 칼칼한 맛이 일품인 사천식 요리로 고수를 곁들이면 좋다.
6. 간쇼새우 새우튀김에 마늘 향을 입힌 후 매콤달콤한 소스로 버무린 요리.

edit 이미주 — photograph 이과용, 이병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