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열기

main

Trend

대왕카스테라와 과학 @정재훈

2017년 3월 13일 — 0

대만에서 물 건너온 큰 사이즈의 카스텔라가 여전히 인기다. 대만 카스텔라의 인기 요인과 카스텔라에 숨겨진 과학 이야기.

text 정재훈 — edit 이미주 — photograph 차가연

대만에서 온 대왕카스테라
호불호가 뚜렷하다는 사람도 막상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나에게 대왕카스테라가 그랬다. 줄 서서 사먹는 거 싫다. 기다리는 시간도 아깝지만, 무엇보다 여유 있게 먹을 수가 없다. 뭐가 다르다고 줄을 서서 먹는단 말인가. 특별할 게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왕카스테라를 먹기 위해서 줄을 섰다. 그날따라 백화점이 한산했고, 줄이 짧았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노란색 카스텔라 한 판이 나오자 입맛이 돌았다. 뒤집고, 유산지를 떼어내고, 다시 뒤집어서 금속 자를 대어 표시한 뒤에 조각으로 자르는 걸 보면서 내 차례를 기다리려니 입에서 침이 돌기 시작했다. 뜨거운 카스텔라를 받아들자마자 손이 갔다. 절반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손이 닿지 않아서 포도송이를 시다고 외친 여우가 포도 맛을 봤을 때의 느낌도 이랬을까. 줄을 서고 싶지 않았던 것일 뿐 내가 대왕카스테라를 싫어하진 않는다는 사실을 그날 처음 알았다.

카스텔라의 과학
먹어보면 대왕카스테라가 인기를 끄는 이유를 알 수 있다. 거품이다. 우리는 과자 포장에 충전한 질소 가스는 싫어하지만, 거품 속에 잡아가둔 공기는 좋아한다. 달걀의 거품 형성 능력은 놀랍다. 공기 방울을 감싸고 거품을 안정시키는 것은 정확히 말해, 달걀흰자 그중에서도 10%에 불과한 단백질이다. 나머지 90%의 수분은 거품이 만들어지더라도 그것을 안정시킬 능력이 없다. 순수한 물을 병에 넣고 흔들면 처음에 거품이 생기지만 이내 사라져버리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거품기로 달걀흰자를 휘저어주면 그 속에서 털실 뭉치처럼 꼬여 있던 단백질 분자들이 풀어지며 서로 얽혀 그물 구조로 재결합한다. 이들 단백질은 기포 주변 액체의 점도를 높이고 그물 조직으로 공기와 물을 제자리에 고정시킨다. 휘저어 거품을 내면 달걀흰자는 원래 크기의 8배까지 부풀어 오른다. 그대로 두면 언젠가는 꺼져버릴 거품이다. 하지만 열을 가해 익히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열은 단백질 가닥 속에 숨어 있던 손들이 서로 맞잡고 화학적으로 단단히 결합하도록 하여, 거품에게 꺼지지 않는 영속성을 부여한다. 이때 단백질 가닥 속에 숨어 있던 손은 황 원자다. 오븐에서 계속 열이 가해지면 황과 황은 손을 맞잡고, 서로 엉겨 붙은 단백질 가닥들은 응고되며, 액체에 가까웠던 거품은 고체로 변한다. 가열로 생겨난 수증기가 거품을 더욱 커다랗게 부풀리지만 반죽 속 설탕과 밀가루의 도움으로 카스텔라는 무너짐 없이 모양을 유지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의 차이는 종이 한 장만큼 가볍다. 우리는 황과 황 원자들이 손잡고 단백질을 응고시켜주는 걸 좋아한다. 내가 언제 그랬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실은 달걀을 삶고 프라이하고, 수란과 오믈렛을 만들어 익혀 먹을 때마다 화학적 응고 반응을 이용하는 것이다. 폭신하게 부푼 대왕카스테라도 황 원자 덕택이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조금이라도 달걀을 과잉으로 익혀서 황과 황 사이의 결속이 깨지고 황 원자가 빠져나오면 싫어한다. 유황 특유의 고약한 냄새 때문이다.

요리는 화학이다
화학을 싫어하지만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요리는 화학이다. 우리는 달걀, 설탕, 밀가루를 사려고 줄을 서진 않지만, 그 혼합물에 공기를 넣어 부풀리고 화학 결합으로 형태를 완성하면 줄을 선다. 사람들 간에 호불호를 가르는 미묘한 선호도 차이를 결정짓는 것 역시 눈에 보이지 않는 화학적 요소의 차이다. 우리가 카스텔라에 잡아가둔 공기를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공기만으로는 부족하다. 말라서 퍼석해진 카스텔라에도 공기는 들어 있지만, 그걸 먹고 싶어 하는 사람은 드물다. 혀와 입에서 부드럽고 촉촉하게 느껴지는 질감이 중요하다. 언뜻 보기에 비슷해 보이는 대왕카스테라도 맛의 편차가 크다. 달걀흰자로 부풀리고 노른자는 적게, 밀가루는 많이 넣어 만들면 카스텔라 색깔이 연하고 질감도 퍽퍽하다. 노른자에 들어 있는 지방과 유화제 성분은 거품을 만드는 것을 방해하여, 기포에 잡아가둘 수 있는 공기의 양을 줄이지만 대신 부드러운 질감을 선사한다. 달걀 전체를 사용해서 반죽을 만들기가 더 어렵고, 비용도 많이 들지만, 결과물의 차이는 크다. 노른자를 충분히 사용한 카스텔라가 색상, 풍미, 질감 면에서 더 뛰어나다. 대왕카스테라 간판을 단 곳이 여럿이지만 평가가 엇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왕카스테라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굵은 설탕이 깔린 나가사키 카스텔라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설탕을 얼마나 넣느냐에 따라 맛만 달라지는 게 아니다. 질감에도 큰 차이가 생긴다. 설탕은 거품이 만들어지는 데는 방해가 되지만, 끈끈한 점성으로 만들어진 거품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설탕은 물을 잡아당기는 성질이 있어 카스텔라를 굽는 도중에 과도한 수분 증발을 막아주기도 한다. 단맛이 진한 카스텔라일수록 질감이 더 촉촉한 것은 꿀, 물엿, 설탕과 같은 당류의 도움 덕분이다. 카스텔라 겉면의 갈색도 당류 덕분으로, 고온에서 당과 아미노산과 함께 마이야르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수증기에 의해 익는 안쪽 부분은 섭씨 100도 이상을 넘기 어려워서 이러한 갈변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 설탕은 단순한 당도의 문제가 아니라 음식의 물리, 화학적 성질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요소다.

음식의 원조가 중요할까
나 한 사람 돌아섰다고 논쟁이 끝날 리 없다. 대왕카스테라를 자르는 장면을 찍어 동영상으로 페이스북에 올리자마자 여러 개의 댓글이 달렸다. 줄 서서 사먹어야 하는 음식인가 아닌가. 그냥 카스텔라 맛인가, 카스텔라만도 못한 맛인가, 더 뛰어난 맛인가. 인터넷을 찾아보면 더 많은 이슈가 있다. 카스테라가 맞나 카스텔라가 맞나. 카스텔라의 원조는 일본인가 포르투갈인가 스페인인가. 카스텔라에 설탕과 콜레스테롤 함량이 얼마나 되냐고 따지고 그게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어떠냐를 두고 갑론을박하는 것보다는 조금 낫지만, 특정 음식의 원조가 어느 나라인지 지나치게 따지고, 정형화된 규격에 맞춰 음식을 평가하는 것은 여전히 지루한 일이다. 달걀의 거품 형성 능력을 온전히 활용하기 시작한 지는 아직 400년이 채 못 된다. 비교적 짧은 그 시간 동안 세계 여러 나라에서 조리법과 식재료를 주고받으며 다양한 방식의 스펀지케이크를 발전시켰다. 조류 독감의 여파로 달걀이 품귀 현상을 빚자 벌어진 업계의 대란은 지난 400년 동안 달걀이 얼마나 굳건히 제과의 중심에 자리 잡았는지 보여준다. 대왕카스테라의 인기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몰라도, 달걀 거품의 인기는 거품이 아니다. 달걀, 설탕, 밀가루를 주재료로 각기 다른 방식으로 구워낸 케이크를 맛보며, 사용된 식재료의 물리, 화학적 특성과 조리 방법의 차이가 어떤 차이를 만들어내는지 살펴보는 일은 즐겁다. 우리는 유독 원조에 민감하다. 맛을 보고 평가하는 일에 앞서, 대만 현지에서 어느 집이 대왕카스테라의 원조인가, 어떤 방식이 정통 현지 스타일 카스텔라인가 더 궁금해한다. 어디 대왕카스테라뿐인가. 나가사키 카스텔라, 마카롱, 티라미수 등 모두 원조가 무엇인지, 정통 방식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한다. 기준을 세우고 정통을 찾는 것은 우열을 가리고 권력 서열을 정하는 데 익숙한 문화의 영향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늘에서 혼자 뚝 떨어진 레시피는 없다. 한국 식문화의 절대적인 기준처럼 생각하는 김치조차도 중국에서 온 배추, 중앙아시아에서 온 파와 마늘, 남미에서 들어온 고추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음식의 원형과 레시피의 기본적 특징을 파악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지만, 거기에 집착하면 창작은 불가능해진다. 나가사키 카스텔라도 대왕카스테라도 존재하지 않으며, 거칠고 투박한 17세기 스펀지케이크의 원형만 진정한 달걀거품케이크로 인정받는 세상이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달콤한 카스텔라를 입에 넣으며 괜한 상상을 했다. 아무래도 페이스북에 나가사키 카스텔라, 대왕카스테라 둘 다 맛있었다고 솔직히 밝혀야겠다.

정재훈은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한 후 캐나다 토론토에서 다년간 약사로 일했다. 음식만큼이나 사람들과 요리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한다. 잡지, TV, 라디오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음식과 약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전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정재훈의 생각하는 식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