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열기

main

Dining

호반 @정동현

2017년 3월 19일 — 0

메뉴는 소박하다.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단단하고 꽉 찬 맛에 사람들은 쉽게 감탄한다. 낙원동 뒷골목을 환히 밝히고 식객을 모으는 ‘호반’은 몇십 년 세월을 이겨낸 대단한 곳이다. 몸을 데우고 마음을 채우는 고마운 곳이다.

text 정동현 – illustration 왕조현

매일같이 식당을 다니지만 마음에 드는 곳 찾기가 쉽지 않다. 입맛에 맞는 음식 찾는 것부터가 난관이다. 큰 이유는 건강제일보국인 탓에 한국 모든 식당의 맛이 싱거워진 탓이다. 국가적으로 저염식을 강요하고 여차하면 벌금이라도 물릴 태세다. 저염 강박이 제일 심한 청담동에 가면 일식 중식 한식 할 것 없이 슴슴한 맛으로 통일되었다. 소금 간이 덜 되었다는 것은 맛이 없다는 의미와 같다. 사람들은 흔히 ‘예전보다 맛이 떨어졌다’고 말하는데 그 까닭은 십중팔구 예전보다 간을 덜 해서다. 사실 간은 지엽적인 문제다. ‘마음에 든다’는 것은 어려운 말이다. 식당의 공간, 즉 경험이 벌어지는 삼차원의 유형적인 틀과 그곳을 채우는 음식이란 콘텐츠, 그것을 운영하고 접객하는 사람이란 주체가 완벽하지 않으면 ‘괜찮지만 자주 가진 않는다’는 모순된 말을 하게 된다. 음식 맛을 보고 한 끼를 버렸다는 아쉬움이 드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기본조차 되지 않은 접객을 맞으면 아예 하루를 망친다. 물론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가진다’는 말이 있듯 손님의 수준에 맞춰 접객의 수준도 달라지는 법이다. 사회의 수준이 부문별로 들쑥날쑥할 리는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눈도 마주치지 않고 손님을 맞는 무심함, 접시를 내던지듯 놓고 가버리는 게으름, 무엇보다 손님을 귀찮은 존재로 여기고 하대까지 하는 곳을 만나면 나는 내가 유난스럽다고 자책해야만 겨우 잠에 들 수 있다. 그럴 때 고향에 가듯 찾게 되는 곳이 있다. 바로 낙원동 ‘호반’이다.

초행길인 사람들과 호반에 갈 때마다 민망한 상황이 생긴다. 주변에 모텔이 즐비하기 때문이 첫째, 낙원상가 부근 취객과 더러운 거리를 피해 걸어야 하기 때문이 둘째다. 알아서 오겠다는 초행자가 있으면 그것 역시 골치가 아프다. 호반이란 상호를 쓰는 곳이 여럿이라 물어보지 않고 행선지를 정하면 몇십 분 기다려야 하는 낭패가 생길 수도 있다. 방향을 잘 잡았다 하더라도 지도를 제대로 보지 않으면 복잡한 종로 뒷골목을 헤매는 것도 일쑤다. 이 모든 상황을 극복하고 커플들이 버뮤다 삼각지대라는 모텔 사이를 지나 발길을 재촉하면 파란 글씨로 호반이라 쓴 간판이 보인다. 여기에 예리한 사람이라면 눈치챌 만한 것이 있다. 호반 옆에 ‘구舊호반’이라고 따로 적어놓은 것이다. 이유를 찾자면 이 집의 역사부터 살펴봐야 한다. 호반이 처음 문을 연 것이 1961년이었다. 그 뒤로 자리를 옮겨가며 영업한 것이 여러 번, 단골들은 그때마다 이 집을 따라다녔다.

그리고 2015년 6월 잠시 문을 닫았다. 주인장이 노쇠한 탓이었다. 그 호반의 간판을 가지고 온 것이 현재의 주인장(추진연, 72세)이다. 1974년 호반에서 일하기 시작했다고 하니 어림잡아 40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한 것이다. 2015년 9월 처음 이전했을 때는 많이 알려지지 않아 손님 수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집을 사람들이 가만히 놔둘 리 없다. 지금은 예약을 미리 하지 않으면 자리 잡기가 어렵다.

— “처음에는 겁이 나가지고 가게를 작게 했지요.”

요즘 장사가 잘되어서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주인장은 웃음기 섞인 말투로 답했다. 시작은 단출했다. 1963년부터 주방에서 일했다는 세 살 터울 ‘언니’ 한 명과 함께 새로이 가게를 시작했다. 오래된 간판을 옆에 붙이고 문에는 새롭게 ‘호반’이란 이름을 새겼으며 굳이 ‘구舊호반’이라고 말을 더했다. 예전 호반이 주인을 바꿔 다시 문을 열었다는 뜻이다. 주인은 바뀌었지만 주방과 홀을 책임지는 이는 그대로다. 장사가 탄력을 받고 나서부터는 딸과 사위까지 가게 일에 뛰어들었다.

— “다른 사람하고 일을 하려니까 못하겠더라고요.”

늘 존댓말을 하는 주인장은 딸과 사위가 음식 장사에 뛰어든 까닭을 설명했다. 새로 사람을 구해 일을 하려니 손발이 맞지 않았다고 한다. 게다가 점심 장사부터 시작해 저녁 늦게까지 영업을 하는지라 한 식구 같지 않으면 일이 힘들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 “이제 사위가 아침 장도 보고 노량진도 가고 다 할 줄 알지요.”

사위는 주인장과 같이 홀을 보고 딸은 주방에 들어가 조리를 하는 것으로 역할 분담이 되었다. 객客인지라 그 속사정을 다 알 수는 없다. 그럼에도 무던히 가게를 찾은 경험으로 비추어볼 때 주인장의 말은 거짓이 아닌 듯싶다. 언제든 전화를 하면 빠르고 반갑게 수화기를 들고 인사하는 사위의 목소리는 한결같다. 손님이 밀려 들어와도 인상이 어둡지 않다. 늘 귀를 열고 손님의 목소리에 답한다. 적어놓으면 당연한 말 같다. 하지만 예습 복습을 철저히 하면 공부를 잘한다는 말처럼 당연한 것들이 어렵다. 이는 주인장이 모범이 되어서 그런 것이리라. 적지 않은 나이지만 주인장은 늘 먼저 손님에게 찾아가 인사를 하고 필요한 것을 묻는다. 손님을 반갑게 맞이하는 집치고 음식이 나쁜 곳은 드물다. 톨스토이가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서 일찍이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고 말했듯이 잘되는 집은 무엇 하나 빠지는 법이 없다. 딸과 나이 든 ‘언니’가 책임지는 이 집의 음식은 특히 그렇다. 먼저 앉자마자 깔리는 찬 면면이 다른 곳의 주연감이다. 통조림을 쓰지 않고 생꽁치를 직접 조린 꽁치조림은 달지도 짜지도 않지만 또 은근히 달고 짠 묘한 음식이다. 그 두툼한 살코기를 발라 먹다 보면 벌써 몇 순배가 돈다. 큰 스테인리스 사발에 담겨 나오는 물김치를 먹을 즈음에는 ‘이렇게 주면 뭐가 남냐’고 주인장에게 항의 아닌 항의를 하게 된다.

매번 바뀌는 반찬도 하찮게 볼 수가 없다. 남기면 안 된다는 마음에 계속 젓가락질을 하다 보면 금방 배가 부른다. 하지만 본식은 시작되지도 않았다. 내가 보통 먼저 시키는 음식은 순대다. 이북식으로 돼지 대창에 갖은 채소와 고기, 선지를 꽉꽉 욱여넣어 만든 순대는 호반의 대표 메뉴다. 소금, 새우젓, 양념까지 총 세 개의 양념이 딸려 나오는 이 순대가 나오면 주변에서 탄성이 터진다. 이런 모양새의 순대는 처음 본다는 것이다. 맛을 보면 또 이런 맛의 순대는 처음이란 말이 뒤잇는다. 따로 양념할 필요 없이 그 자체로 완벽한 간을 한 순대는 형용사를 버리고 명사와 동사만 고집하던 헤밍웨이의 글처럼 담백하지만 힘이 있다. 선 굵은 이 집의 맛은 우설로도 이어진다. 소의 혀인 우설은 대중적으로 찾기 힘든 메뉴다. 게다가 노린내가 나기 쉽고 겉껍질을 벗겨내야 하는 등 손질하기도 어렵다.

이 집은 어려운 것을 쉽게 해낸다. 우설은 부드럽고 기름지다. 소기름의 고소한 맛은 혀뿐만 아니라 입안 전체에 감돈다. 겨울이면 꼭 시켜야 하는 서산 강굴도 있다. 10월 말부터 시작해 4월 초까지 나는 이 강굴은 호반의 단골들이 여름 내내 기다리는 메뉴다. 겨울철 갯벌에서 인부들이 뾰족한 호미로 일일이 캐야 하는 자연산 굴인 강굴은 씨알이 잘고 대신 맛이 진하다. 신맛이 도는 양념장에 강굴을 푹 담가 숟가락으로 퍼먹으면 몸속으로 상쾌한 바닷바람이 들어오는 것 같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호반의 하이라이트는 병어조림이다. 큼지막한 두부를 밑에 깔고 폭신한 감자를 겹쳤으며 철에 따라 다디단 애호박에 실한 병어를 올려 센 불에 조려내는 병어조림은 가히 서울 최고라 할 만하다. 이렇듯 병어조림은 손님에겐 축복이지만 주인장에겐 애증의 메뉴다. 왜냐하면 살이 부드럽고 단맛이 도는 병어는 20여 년간 가장 값이 많이 오른 생선으로 꼽힐 정도로 비싼 재료이기 때문이다. 2016년 1kg당 평균 위판 가격이 1만7000원 선일 정도였다. 이 생선을 몇 마리만 올려도 대중과 언론이 좋아하는 원가는 판매가를 훌쩍 넘어선다. 그럼에도 주인장은 값을 올리지 않는다.

— “많이 찾아주시니까 감사하죠. 그러니 값을 올릴 수가 있나요. 죄송스러워서.”

주인장은 입에 붙은 듯 고맙다는 말과 죄송스럽다는 말을 반복했다. 이 집을 처음 왔을 때도 그랬다. 나는 기억한다. 처음 이 집을 가던 날, 주인장은 길을 찾지 못해 전화를 한 나에게 ‘길이 복잡하여 죄송하다’고 여러 번 말했다. 그리고 뒷골목을 헤매다 파란 글씨가 나타났을 때 나는 한 노인이 서서 손을 흔드는 것을 보았다. 그이는 주인장이었다. 이런 집을 두고 마음에 든다, 들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친절을 아끼지 않고 단 한 번도 음식 맛이 흔들리지 않는 호반은 특별하단 말로는 모자란 곳이다. 그저 감사할 뿐이다. 받은 만큼 주지 못해 미안할 뿐이다.

정동현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 유통 회사를 다니다가 훌쩍 영국의 요리 학교 탕트 마리Tante Marie로 유학을 떠났다. 호주의 레스토랑에서 늦깎이 셰프로 요리 열정을 불사르며 일했다. 저서로는 <셰프의 빨간 노트>가 있으며, 지금은 신세계그룹 F&B팀에서 ‘먹고(Food) 마시는(Beverage)’ 일에 몰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