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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ing

파리 살롱 @김금희

2017년 3월 8일 — 2

윤은 파리 살롱에서 가장 따뜻한 음식인 바게트 조각이 들어 있는 양파수프를 주문했다. 자신에게 찾아든 분명한 상실의 신호에 마음이 풍랑을 타지 않고 버틸 수 있도록.

text 김금희 — illustration 왕조현

식당은 정말 파리를 옮겨온 것 같았다. 3년 전 파리에 갔을 때 윤은 두 가지에 놀랐는데 일단 생각보다 춥다는 것과, 건물들이 낡았다는 것이었다. 구시가지에만 머물러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런데 식당은 ‘파리 살롱’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두 가지를 다 가지고 있었다. 경은 오지 않았고 전화해보니 이제 전철을 탔다고 했다. 그러면 적어도 한 시간은 걸리지 않을까. 주문하지 않고 버티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어서 차를 시킬까 했지만 이미 회사에서 두 잔이나 마셨기 때문에 윤은 맥주를 주문했다. 그러면서 대체 왜 이렇게 추워요? 하고 물었다. 서빙을 하는 청년이 추워요? 지금이? 하며 되물었다.

— “그럼요, 춥잖아요. 손이 이렇게 곱고. 난방은 하시는 거예요?”
— “당연하죠, 이런 날씨에 난방을 안 하면 어떻게 장사를 해요?”

청년은 불쾌한 기색은 없이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지, 아무리 2월이라도 추위가 만만치 않은데 난방도 없이 문을 열어서 손님을 오게 하면 어긋나지, 도의적으로도, 윤은 그렇게 수긍했다. 그건 유통기한 지난 식자재로 장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니, 오히려 더한 비윤리다. 그런 음식을 모르고 삼키면 몸 안의 왕성한 면역력을 통해 균을 이겨내기만 하면 되지만 추위는 내내 느낄 수밖에 없으니까. 확실하고 생생하게. 윤은 너무 추워서 등을 제대로 펴지 못했고 손가락과 발가락의 움직임이 불편하다고 생각했다. 긴장되고 불안하고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인지 뇌의 기능도 떨어져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할 수가 없었다. 이를테면 경은 약속 시간을 왜 말도 없이 어겨버리는 건가. 우리는 다투고 나서 보름 만에 만나는 것이 아닌가. 윤은 경이 그렇게 구는 것이 옳은가 나쁜가 부당한가 따지다가 피곤해져서 춥구나, 하면서 휴대전화로 트위터만 들여다봤다. 거기에는 이 도시 어딘가에서 7시 반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쏟아내는 온갖 푸념과 야유와 냉소와 분노와 드물게는 기쁨 같은 것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맥주는 좋지 않은 선택이었다. 배고픈 상태에서 그 찬 것을 홀짝거리다 보니 아랫배가 부글거렸고 그것은 마치 누가 배 속을 마구 헤집는 듯한 느낌이어서 윤은 하는 수 없이 화장실을 갈 수밖에 없었다. 화장실이 어디 있냐고 묻자 청년은 따라오라고 했다. 보통은 건물 밖으로 나가서 어느 쪽으로 돌면 있어요, 하고 말하지 않나 싶었지만 굳이 그런 친절을 베푼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청년은 유리문을 밀고 나가 건물을 반 바퀴 돌아서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있는 좁은 계단으로 올라갔다. 만약 술에 취한다면 낙상하기 좋은 높이였다. 그리고 거기에 화장실이 있었다. 약간 푸른빛이 도는 조명이라서 화장실은 냉랭하고 과장하자면 비정한 느낌이었다. 그러자 파리의 유료 화장실에 앉아서 사용료를 받던 붉은 체크무늬 숄의 여자가 생각났다. 여자는 세면대 앞에서 50센트를 받았는데 지폐를 내는 사람에게는 단호히 안 돼, 관광지여서 그랬는지 영어로 노,라고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 앞에 동전이 수북이 쌓여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거슬러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여자는 노,라고 자기가 그런 수고를 들여서 너를 도울 생각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여자는 위엄 있어 보였다. 고풍스러운 궁전 정원의 화장실이라서 그랬는지는 몰랐다. 유료 공중화장실이 뭐 그렇게 격조 있는 장소는 아니지만. 하지만 그곳은 파리이고 여기는 이름만 빌려온, 이를테면 가짜 파리 살롱일 뿐이라고 윤은 생각했다. 게다가 자기는 혼자라고, 화장실인데 혼자가 아니면 그것도 이상하지만 약속 시간을 어기고도 먼저 연락조차 하지 않은 경을 기다려야 한다고. 식당으로 돌아왔을 때는 문자메시지가 와 있었다. 경이었다. 몸이 좋지 않아서 집으로 곧장 들어가야 할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전화를 했더니 경이 힘없는 목소리로 받았다.

— “그래도 와야 하지 않아?”
— “피곤해. 꼭 만나야겠니?”
— “우리 못한 얘기도 있잖아. 그리고 나 배고파. 정말 엄청나게 배가 고프다고.”

경은 네가 원한다면 갈게, 하고 전화를 끊었다. 맥주를 다 마셔버린 윤은 다시 메뉴판을 열었다. 거기에는 계획대로라면 이미 한 시간 전에 윤과 경이 먹었어야 할 파리의 요리들이 프랑스인 사장의 손글씨로 적혀 있었다. 버섯과 토마토, 양파, 마멀레이드를 넣은 브루스케타, 와인과 토마토로 졸인 뵈프 부르기뇽, 콩 스튜인 카술레, 가지와 호박 치즈구이 그리고 프랑스식 채소 스튜인 라타투유 같은 메뉴들이. 하지만 윤은 다시 잔술로 된 와인을 시켰다. 청년이 주문을 받아가면서 머플러가 바닥에 떨어졌어요, 하고 알려주었다. 윤이 파리 식당에 온 데는 이유가 있었다. 프랑스인 사장이 파리에서 직접 사용했던 온갖 낡은 물건들과 가족들을 대대손손 찍은 흑백의 사진들과 책들과 프랑스풍 자수로 된 테이블보가 덮여 있는 이곳이 윤과 경이 떠났던 파리 여행을 떠올리게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때 둘은 연애를 시작한 지 8개월 남짓 된 무렵이었고 그들의 감정은 반짝였다. 마치 밤이면 더욱 빛나는 에펠탑처럼. 둘은 그 탑을 한번은 몽파르나스 빌딩에서 보고, 한번은 직접 올라갔다. 그날도 이렇게 추적추적 비가 왔다. 폐장 무렵이어서 탑에는 사람이 얼마 없었다. 승강기를 타고 내려오는데 중간층에서 피로연을 하던 웨딩드레스의 여자가 파트너 손을 잡고 뛰어들어온 장면이 기억났다. 그것은 아주 낭만적으로 보였고 때마침 경이 우리도 결혼할까, 하고 속삭였으므로 윤은 파리의 추위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속은 여전히 좋지 않았고 윤은 다시 화장실을 다녀왔다. 오는 길에 빗방울을 맞았다. 윤은 자기는 이렇게 추운데, 대기는 아직 빙점 아래로 온도가 떨어지지 않아서 눈이 아니라 비가 오는 게 이상했다. 이렇게 추운데. 하지만 비라서 다행이었다. 눈이 오면 경은 다시 그걸 핑계로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작은 상황의 변화로도 이제 약속은 없었던 일이 될 수 있는 것이었다. 시드는 감정이란 그렇게 슬픈 것이었다.

테이블로 돌아왔을 때는 윤이 주문하지 않은 식전빵이 놓여 있었다. 잘못 나온 건가 싶었지만 식당의 손님은 윤 하나였고 청년이 탄산수 박스를 옮기며 배고프실 것 같아서요, 했으므로 윤은 그게 자기에게 제공된 서비스라는 것을 알았다. 윤은 정말 허기가 졌기 때문에 그 빵을 조금씩 뜯어 먹었다. 그러면서 홀짝홀짝 와인을 마셨고 아까보다는 덜하지만 여전히 춥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정말 히터가 켜져 있는 걸까, 아니면 이 식당은 오래된 건물에 있으니까 히터가 아니라 라디에이터로 공기를 은근히 데우는 걸까. 경은 여전히 오지 않았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윤은 “오지 않는구나” 하는 문자메시지를 남기려다가 그냥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테이블의 격자무늬를 손으로 따라 그리며 생각에 빠져 있던 윤은 메뉴판을 펼쳤고 그중 가장 따뜻한 음식, 너무 따뜻해서 지금 자신에게 찾아든 분명한 상실의 신호에도 마음이 풍랑을 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음식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메뉴를 설명하는 건조한 설명들, 치즈와, 굽고, 버섯을, 튀겨서, 만든, 23000원, 쁘띠 사이즈 같은 단어들이 뭐가 그리 아픈 말들인지 눈앞이 흐려져서 윤은 여러 번 냅킨을 쥐었다 풀었다. 그리고 바게트 조각이 들어 있는 양파수프를 주문했다.

청년은 푸른색 볼을 가져와 윤 앞에 놓았다. 특별히 아주 뜨겁게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그 시큼하고 고소한 그리고 따뜻한 양파수프를 윤은 한 스푼 한 스푼 떠먹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이렇게 수프부터 시작해서 메인 디시, 사이드 디시, 디저트까지 차례차례 식사를 했다면 좋았으리라 생각하면서. 파리 살롱을 다시 찾을 것 같지는 않지만 앞으로도 어딘가에서 불현듯 추위를 느끼고 혼자임이 실감된다면 어디든 가장 가까운 곳에 들어가 누구도 기다리지 않고 따뜻한 것, 아주 따뜻한 것을 먹겠다고. 수프를 다 먹은 윤이 식당을 나서는데 청년이 미안한 듯 쭈뼛대며 알고 보니 히터의 온도가 올라가지 않고 있었다고, 그래서 추웠던 것 같았다고 사과했다. 그러자 윤은 자기가 느끼고 있던 추위, 차가움이 착각이 아니라 실제였구나 싶었다.

— “괜찮아요.”
— “죄송합니다. 수리를 했는데 또 그러네요.”
— “괜찮아요. 정말.”

식당을 나서는데 전화벨이 울렸고 경이었다. 윤은 전화를 받을까 말까 하면서 다시 파리에서 만났던 그 여자를 떠올렸다. 파리에서 가장 파리답지 않은 곳에 앉아서도 당당하게 노,를 외치던 파리지엔인 그녀를.

김금희는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소설집으로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너무 한낮의 연애>가 있다. 젊은작가상, 신동엽문학상,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