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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의 의미 @이해림

2017년 2월 24일 — 0

다수결에 순응하지 않는 것, 때로 실패하겠지만 마침내 나의 취향을 찾는 것. 그것이 미식으로 가는 길이다.

text 이해림

지난해부터 <수요미식회>에 자문을 하고 있다. 원망을 많이 받는다. <수요미식회>는 어떤 사람들에겐 ‘식당도둑’이다. 그러니까 “<수요미식회>에 털렸다”는 말이 돌아다닌다. 그 심정을 모르지 않다. 지난 여름엔 몇 년째 꽁꽁 숨겨놓고 먹던 식당을 무심코 자문해버려 콩국수를 못 먹고 여름을 났다. 얼마 전엔 평생 숨겨두리라 마음먹었던 식당을 실수로 자문해버려 말 그대로 ‘털리지 않길’ 바라며 떨고 있다. 사정은 <수요미식회> PD나 작가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그들은 “저도 숨겨둔 식당 턴 곳 많아요”라며 위로를 하곤 한다. 아니 그런데, 대관절 식당은 왜 숨겨놓고 먹는 걸까? “여긴 진짜 친하니까 데려온 거야” 하며 뻐기듯 말하게 되는 이유는 뭘까? 자백하자면 그 근본엔 식욕, 애착, 독점욕, 거기에 ‘나는 너보다 빠르다’는 우월 의식까지 버무려진 ‘부심’이 있다. 그 부심을 가진 단골들끼리는 미묘한 동지 의식까지도 느끼곤 한다. ‘훗, 댁도 좀 드실 줄 아시는군요.’ <수요미식회>는 그 무형의 카르텔에 난입해 훼방을 놓는다. 괘씸하다! 스스로 찾아냈든, 발 빠른 먹보 친구 손에 이끌려 왔든, 애지중지하던 식당에 ‘어중이떠중이’들이 몰려와 줄을 만들고 분위기를 흐리다니. 심지어 그 사람들, 날로 먹는다! 최고 시청률이 2%대에 불과한 것이 증거다. 방송을 보는 노력조차 하지 않고 블로그에 뜬 식당 리스트만 골라 먹고 다니는 것이 틀림없다! 다음 주 예고편만 보고도 귀신같이 선정 식당 리스트를 이미 줄줄 풀어놓는 몹쓸 블로거들! 그 심정도 이해한다. 그러나 단지 내 식당이 털려서만은 아니다. 그건 박탈감보다는 자괴감에 가까운 감정이다. <수요미식회> 방송 후 선정된 식당에 가면 소름 끼치는 광경을 보곤 한다. 모두가 방송 얘기를 하고, 다 똑같은 메뉴를 앞에 두고 방송에 나온 방법대로 먹고 있다.

모두가 탕수육, 짬뽕이다. 네네, 탕수육 괜찮죠. 맞아요. 짬뽕도 잘해요. 그런데 여긴 방송엔 안 나왔지만 짜장면도 정말 훌륭하거든요? 왜 아무도 시도를 안 해보고 있어요? <수요미식회>는 알파고의 시대에 소환된 델포이의 신탁일까,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 소환된 김일성 수령의 위대하신 영도일까. 우리는 모두 가난하고 바쁘다. 성공이 보장된 탕수육과 짬뽕에 만족하고 만다. 인정한다. 유명한 메뉴는 언제나 안전하고, <수요미식회>를 믿고 먹으면 최소한 실패는 하지 않는다는 점은 나도 보장한다. 어느 글에서처럼 ‘실패할 여유’도 없다. 아무도 검증해주지 않은 짜장면 한 그릇 더 주문해볼, 실패를 감당할 여유가 없다. 안정에 순응하는 데에 익숙해지다 보니 모험하고 도전할, 용기의 훈련도 돼 있지 않다. 능동적인 호기심을 펼치며 살아가기엔 강퍅하기 짝이 없는 세상이긴 하다.

허나 종종 서운하다. 언젠가부터 아무도 “여긴 뭐가 맛있어?” 하고 묻지 않는다. “여긴 뭐가 유명해?”라고 묻게 됐다. 명성은 불특정 다수의 다수 의견이다. 다수결에 의한 투표 결과로 유명한 식당이, 유명한 메뉴가 정해진다. 그래서 나는 그 아무렇지 않은 말에 흥이 깨진다. 맛은 경험이고 시간이며 공간이고, 너와 나다. 그것을 함께 나누고 싶었던 내밀한 자리에 불특정 다수가 불청객으로 난입하는 셈이다.

대화는 이렇게 맥없이 끝나곤 한다. “여긴 탕수육이 유명해.” “왜?” “<수요미식회>에 나왔어.” 잘 튀긴 고기나 질 좋은 채소, 딱 좋은 소스에 대한 나와 너의 생각이 나올 자리가 없다. 허무하다. 다음 대통령을 뽑자는 것도 아니고, 그래봐야 한 끼 지나가는 음식일 뿐이다. 미식은 다수결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나의 경험에 대한 문제에 불과하다. 모두가 다수결에 따라야 하지만 누군가는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어야 좋은 민주주의다.

편하더라도, 언제까지고 순응만 하지는 말자.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때로 걷고 실패도 겪어나가며 경험이 쌓이고, 가야 할 길과 가지 않아야 할 길을 알아볼 감식안도 생기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며 세상에 대해 주관을 가질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 그것이 취향이고 능동이며, 진정한 미식으로 가는 길이라 나는 여긴다. <수요미식회>를 이끄는 이길수 PD는 프로그램 기획 의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부터도 음식을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다. <수요미식회>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는 대화와 토론의 장이 되길 바랐다. 맛있는 음식은 누구라도 먹어볼 권리가 있는 거니까.” 전적으로 동의한 말이다. 대화와 토론, 그리고 경험의 공유. 좀 더 많은 우리가 잠자는 미식 DNA를 깨우고, 비로소 미식으로 세상이 이로워지는 그날을 나는 기다린다.

이해림은 오랫동안 잡지 업계에서 피처 에디터로 일하며 음식을 다뤘다. 지난해부터는 <한국일보>에 매주 금요일마다 음식 기사를 게재하고 있다. 이 외 다양한 매체에 음식 칼럼을 쓰는가 하면 <수요미식회> 자문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페이스북에 페이지(facebook.com/herimthefoodwriter)를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