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금 찾아온 전통주의 시대. 감각 있는 전문가들의 손에서 다시 태어나 트렌디한 옷을 입은 전통주와 다채로운 메뉴의 페어링을 만나본다.
난지당 — 임재윤 셰프

전통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일식 주점을 9년 정도 운영하면서 사케 소믈리에 자격증을 취득했다. 아는 만큼 손님들에게 더 잘 권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사케부터 시작해 술에 대한 공부를 더 심도 있게 했다. 이 과정 중 자연스레 전통주에 관심이 생겼다. 그래서 술을 직접 만드는 명인들을 찾아가 그들의 술을 맛보고 이야기도 들으면서 전통주에 대한 관심을 키워가기 시작했다.
난지당은 다양한 전통주와 페어링 메뉴를 선보이고 있다. 메뉴를 구성할 때 어떤 점을 중점적으로 생각하는가.
먼저 술을 만드는 장인의 의견을 듣는 편이다. 전통주는 향이 다양하고 만드는 이들에 따라 맛이 많이 달라지기 때문에 메뉴를 매칭할 때 고민이 많이 된다. 때때로 원하는 전통주를 발견했을 때는 먼저 만든 이의 의견에 따라 메뉴를 구성해본다. 그 외에는 향이 약한 청주에는 샐러드와 같은 가벼운 음식, 감홍로와 죽력고 같은 향이 깊은 전통주에는 고기와 간이 센 음식 위주로 구성한다.
전국을 돌며 전통주를 선별했다고 들었다. 기준은 무엇인지.
사실 개인적인 취향으로 선별했다는 것이 맞다. 지금은 전통주 갤러리나 책, SNS 등 다양한 곳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내가 전통주를 시작할 때에는 전통주에 관한 정보를 찾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술을 만드는 양조장과 유명한 술을 만드는 곳을 직접 찾아갔다. 맛도 보고, 명인들과 얘기도 나누면서 내 기준에 맞다 싶은 술을 골랐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좋아하고 잘 팔릴 수 있는 술이 무엇인지 우선적으로 생각했다.
지금도 새로운 전통주를 찾기 위해 각지를 돌아다니는가.
물론이다. 지금은 예전보다 전통주의 종류도 더 다양해졌고, 매칭하고 싶은 메뉴들도 더 많아졌다.
이번에 선보인 전통주 페어링 메뉴는 무엇인가.
죽력고와 갈비찜이다. 죽력고는 상쾌하고 진한 향이 특징인 술이다. 독하면서도 감칠맛이 풍부하고 여운이 길어 달달한 약밥과 단호박이 올라간 부드러운 갈비찜과 잘 어울린다.
좋아하는 전통주가 있다면.
죽력고, 이강주, 감홍로다. 조선 3대 술로 이미 유명한 술이지만 개인적인 입맛에도 이 세 개의 술이 가장 잘 맞는다. 특히 감홍로는 도수가 40도로 매우 높지만, 목 넘김이 상당히 좋다. 샷으로 마셔도 부담 없고, 뒤끝도 깨끗해 자주 손이 가는 술이다. 그리고 송명섭 명인의 죽력고 역시 최고다. 명인과 술을 마신 적이 있는데, 그때 대나무에 거르기 전의 죽력고 원액의 술을 권해 마셔보았다. 맛을 본 순간 이래서 명주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전통주의 매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다양성이 아닐까. 전통주는 향도 맛도 너무 다양하다. 사케는 마시다 보면 맛이 차이가 크게 느껴지지 않지만 전통주는 계속 마셔도 술마다 특징이 살아 있다.

목화다방 — 김태열 바텐더

어떤 계기로 전통주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가.
경기도 여주에서 태어났다. 여주는 쌀농사를 지으면서 매해 동네마다 막걸리를 빚었다. 어릴 때부터 막걸리를 쉽게 접했고, 술에 대한 부모님의 제재가 관대한 편이었다. 자연스럽게 술에 관심이 생겼고 그러다 보니 관심이 전통주로까지 이어졌다.
처음부터 전통주 공부를 시작했는가.
그건 아니다. 수많은 술 종류 중에 전통주를 처음 접한 건 맞지만, 전통주로 인해 술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고, 주류 전문가가 꿈이었다. 그래서 바텐더가 되었다. 사실 처음에는 주로 외국 술을 이용해 칵테일을 만들었다. 그러던 중 우리 술로 만든 칵테일은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부터 전통주를 더 깊게 공부하게 되었다.
직접 술도 빚는지.
물론이다. 한국가양주연구소에 들어가서 발효 과정과 누룩 빚기 등을 비롯해 고전 서적에 있는 술을 복원하면서 술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배웠다. 지금은 직접 재료를 선별해 술을 빚고 있다.
전통주의 매력은 무엇인가.
전통주는 저마다 스토리가 있고, 같은 술이더라도 만든 사람에 따라, 만들어진 환경에 따라 맛이 다 다르다. 그리고 왠지 모를 한국의 고유한 맛이 느껴진다. 한국에는 특유의 흥과 한의 정서가 있는데, 그것들이 모두 술에 녹아 있다고 생각한다.
전통주를 이용해 칵테일을 만들 때 기본 베이스로 선호하는 술이 있다면.
문배술이다. 문배술은 문배라는 백과의 돌배가 있는데, 그 배가 들어가지 않아도 문배의 향이 난다 해서 문배술이라 한다. 문배술은 대부분의 재료를 포용하는 힘이 있다.
특별히 좋아하는 전통주가 있는가.
이강주, 문배주, 함양 박흥선 명인이 빚은 솔송주를 좋아한다. 이 술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하고 만족해한다.
이번에 선보인 전통주 페어링 메뉴에 대해 설명해달라.
목화다방은 젊은 고객층이 많다. 전통주를 알리기 위해 문배주를 비롯한 전통주를 베이스로 사용하는 칵테일을 대거 선보이고 있다. 특히 ‘한강의 기적’ 칵테일은 색과 모양, 맛 모두 뛰어나기 때문에 처음 접하는 분들도 금세 호감을 갖곤 한다. 자몽 시럽과 파인애플주스, 레몬즙이 들어가기 때문에 달콤하고 상큼하다. 젊은 여성들이 선호한다. 때때로 한강의 기적과 그라탱을 페어링해 제공하는데, 이국적인 맛의 한강의 기적과 짭조름하고 부드러운 그라탱의 식감이 잘 어우러진다. 반면 술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냉이 마티니’를 권한다. 한 모금 마시면 냉이 향이 입안으로 은은하게 퍼진다. 도수가 있는 칵테일이니 기름진 스테이크와 조화를 이룬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내년 봄에 외국으로 나갈 계획이 있다. 현재 우리 술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데,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우리 술을 가지고 5년 동안 60개국을 돌 계획을 세웠다. 전 세계의 바텐더들을 만나 제대로 된 한국 술을 소개하고, 칵테일을 만들면서 그들에게 전통주의 매력을 알리고 싶다.

얀 — 황인수 셰프

태국 요리와 전통주의 페어링이 독특하다.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가.
태국에서 일할 당시 현지의 셰프, 소믈리에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들은 태국 요리는 다섯 가지의 강한 맛과 향이 있는데, 그 맛이 우리가 자주 마시는 와인과 잘 맞지 않다고 했다. 와인을 어떤 술로 대체할까 고민하던 중 전통주가 생각났다. 결국 몇 가지 시도를 해보니 도수가 높은 증류주들이 태국 음식과 어울림이 좋았다.
태국 요리가 어떤 면에서 전통주와 잘 어울리는가.
태국 요리는 단맛, 짠맛, 신맛, 매운맛, 쓴맛 다섯 가지 맛이 살아 있다. 요리에서 다섯 가지 향을 잘 음미하기 위해서는 오래 숙성된 진한 향의 술보다는 증류 방식으로 만든 한국 술과 매치하는 것이 적합하다. 와인이나 위스키 등 발효되었거나 숙성이 오래된 술들은 술 자체의 향이 지나치게 강하다. 전통주도 향이 강한 편이지만 음식의 맛을 없애기보다 조화롭게 어우러지게 하는 특징이 있다.
전통주와 태국 음식의 페어링을 구성할 때 중점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전통주와 태국 음식의 조화다. 태국 음식은 자체가 향이 강해 전통주와 잘 어울리지는 않는다. 술의 특징마다 잘 어울리는 음식이 따로 있다. 그래서 오랫동안 전통주 갤러리 관장님과 페어링을 연구했고, 소믈리에 친구들과도 논의하면서 맛을 맞춰가고 있다.
페어링할 때 선호하는 전통주가 있다면.
탁주보다 증류주를 선호한다. 탁주도 많이 노력해봤지만 쉽지 않았다. 탁주는 끝 맛이 쓰고 텁텁해서 태국 요리의 맛을 많이 떨어뜨렸다. 그래서 깔끔한 증류주들을 주로 사용한다. 증류주 중에서도 도수가 높은 독주들이 특히 잘 어울린다. 태국 음식을 먹으면 신맛을 처음으로 느끼게 되는데 독주들이 그 신맛과 매우 잘 맞는다.
전통주와 잘 어울리는 태국 요리를 추천해달라.
똠얌꿍이다. 한국에는 음식을 먹거나 술을 마실 때 꼭 국물이 있어야 된다는 문화가 있다. 또 똠얌꿍의 신맛이 전통주와 잘 어울린다. 뿌팟퐁 커리도 추천한다. 게의 부드러운 식감과 전통주의 깔끔한 맛이 조화롭다.
이번에 선보인 전통주 페어링 메뉴에 대해 설명해달라.
태국식 포크벨리와 증류주 칵테일인 담솔플라이의 페어링을 준비했다. 태국식 포크벨리는 속은 촉촉하고 겉은 바삭한 포크벨리의 기본적인 식감을 지녔지만 고기 위에 얹는 고명과 소스에서 태국의 향을 느낄 수 있다. 바삭하게 튀긴 돼지고기 위에 레몬그라스와 다섯 가지 향신료를 같이 빻아 파우더처럼 뿌렸고, 레드 커리 소스와 함께 먹으면 맛과 식감 모두가 환상적이다. 여기에 담솔플라이를 매칭하면 증류주의 특성상 톡 쏘는 쓴맛과 은은한 솔 향이 바삭한 고기와 잘 어울린다. 또 담솔은 도수가 40도로 높고 진토닉이나 위스키처럼 가볍게 마실 수 있는 특징이 있어 다소 무거운 음식과 조화가 좋다. 특히 담솔플라이는 포크벨리의 토핑 재료를 우려 만들었기 때문에 두 음식의 조화가 남다르다.
태국 요리와 전통주 페어링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가.
아무래도 수요가 적은 편이다. 레스토랑이 위치한 서래마을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와인을 많이 찾는다. 우리도 전통주를 주로 권하지만 아직까지는 많은 이들이 공감하지 않는 것 같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3~4년 후에는 과거 오래 일했던 호주나 태국으로 가게를 옮겨갈 생각이다. 한국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게 전통주라고 생각한다. 그곳에서도 태국 요리를 하면서 한국 전통주를 선보이고 싶다.

이끼이끼 — 이선재 전통주 소믈리에

전통주 소믈리에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가.
워커힐 호텔에서 근무하던 시절, 와인 소믈리에 과정을 끝내고 일식을 공부하면서 사케를 접하게 되었다. 일본에서 사케 소믈리에 자격증을 취득하고 나니 사케가 우리 술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 전통주도 사케처럼 소믈리에 제도를 도입하면 어떨까 싶었다. 전통주를 세계화하는 데 이바지하겠다는 포부로 지난 2010년, 전통주 소믈리에 도입 방안에 관한 논문을 쓰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전통주 소믈리에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 후로 직접 전통주를 빚게 되었고 우리 술을 많은 분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전통주의 매력은 무엇인가.
가성비다. 우리 술은 맛과 향 그 어느 면에서도 양주에 뒤지지 않는다. 또한 양주에 비해 가격이 저렴해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특별히 좋아하는 전통주가 있다면.
석탄주. 차마 마시기 아까운 술이라고 불리는 술인데, 찹쌀로 죽을 끓여 빚으며 와인보다 향기롭다. 쌀로 만든 술이지만 과일 맛까지 가지고 있어 특별하다. 또 전통주를 시작하면서 처음 접한 경주법주와 삼해주 등 우리나라 술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술을 좋아한다.
전통주와 곁들이기 좋은 음식을 추천해달라.
보통 사람들은 전을 먼저 떠올린다. 내 생각도 같다. 생선, 낙지, 전복과 같은 해산물과 소고기, 양갈비 등도 추천한다. 우리가 흔히 마시는 증류주는 대부분 도수가 높기 때문에 단백질이 풍부하고 기름진 음식과 잘 어울린다.
당신이 제안하는 일식과 전통주의 페어링이 남다르다. 어떻게 고안하게 됐는가.
사케와 우리 술이 비슷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전통주와 일식 또한 조화를 이룰 거라 믿었다. 일식이라고 사케나 청주 같은 정형화된 페어링만 고집할 필요가 없다. 때때로 손님에게 일식과 막걸리를 함께 들기를 권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이후로 다양한 종류의 전통주를 들여왔고, 직접 빚은 술도 함께 제공한다.
이번에 선보인 전통주 페어링 메뉴는 어떤 것인가.
예로부터 왕족이나 양반집에서는 청주나 소주로 귀한 손님을 대접하곤 했다. 안주로는 당시 귀했던 소고기와 해산물을 이용한 요리들이 많았다. 그래서 오늘 낙지꾸리 요리와 석탄주를 준비했다. 낙지꾸리는 낙지를 통으로 살짝 데친 다음 정선 산더덕과 파채를 올려 삼합으로 먹는 요리다. 직접 빚은 석탄주는 산미가 높아 특히 해산물과 궁합이 좋다. 낙지를 초고추장에 찍어 먹고, 산더덕무침에 약간의 식초를 가미하듯 석탄주의 산미가 삼합에 양념처럼 잘 스며든다.
일식과 특히 잘 어울리는 전통주는?
일식은 사시미, 스시와 같은 해산물 요리와 육류 요리가 많다. 그래서 국내의 화요나 일품소주와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막걸리로는 꾸지뽕주를 추천하는데, 꾸지뽕이라는 약재로 빚은 술이다. 우리나라의 좋은 약재로 건강하게 마시기에 좋다.
이끼이끼에서 추천하는 전통주 페어링 메뉴는 무엇인가.
낙지와 산더덕, 파채와 함께 먹는 낙지 삼합과 석탄주 페어링 그리고 소고기 다타키와 화요 페어링을 추천한다. 석탄주는 직접 빚기도 했지만 단맛과 산미가 함께 돌아 낙지와 산더덕과 잘 어우러진다. 손님들도 항상 즐겁게 즐기는 조합이다.

edit 김원정(프리랜서) — photograph 박상국, 이향아, 이병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