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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도시락이 불편한 이유

2017년 2월 13일 — 0

유명 연예인뿐만 아니라 요식업 대부까지 참여해 만들었다는 편의점 도시락이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우리가 간과한 점은 없는지 짚어봤다.

text 정재훈 — edit 이미주 — photograph 박상국

편의점 도시락 전성시대
세상에 믿을 사람 없다. 혜리와 김혜자는 그렇다고 치자. 백종원과 홍석천까지 이럴 줄은 몰랐다. 각기 요식업의 대부, 요식업의 황태자라 불리는 두 사람이지만, 도시락 뚜껑에 이들의 사진이 보인다고 믿고 고르진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맛이 없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맛에 관한 모든 공식을 뛰어넘게 맛없다. 단일 품종 쌀이 맛있다는 이야기에 편의점 도시락의 쌀밥은 논외다. 2016년 신동진 햅쌀로 지었다는 백종원 도시락과 그냥 국산 쌀로만 표시된(필시 혼합미일) 다른 3종 도시락의 쌀밥 맛을 비교 시식해봐도 뚜렷한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달면 맛있다는 명제도 의문스럽다. 시식한 제품들 중 백종원 한판도시락이 당류 함량 9g으로 제일 달고, 홍석천 치킨도시락이 당류 함량 0g으로 제일 덜 달다. 그럼에도 맛의 우열은 가리기 힘들다. 솔직히 그냥 다 맛없다. 뭐든 튀기면 맛있다고? 바로 먹으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냉장선반에서 눅눅하게 수분을 빨아들인 튀김의 문제는 2분간의 전자레인지 재가열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백종원 한판도시락에는 가라아게, 돈가스, 물만두까지 튀겨 넣었지만, 모두가 평등하게 맛없다. 홍석천 치킨도시락의 양념 반, 프라이드 반 전략도 실패다. 하나는 갈릭마요드레싱을 얹고, 다른 하나는 칠리소스에 청피망, 홍피망 슬라이스와 양파를 넣어 버무렸지만, 맛은 놀랍게 동일하다. 튀김과 밥을 데우다가 함께 뜨거워진 샐러드는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달걀로 만든 무언가가 스크램블드에그라는 데는 원재료 표시를 읽고도 동의하기 어려웠다. 우삼겹정식도, 화끈오징어불고기도, 6찬도시락도, 9첩반상도 다 마찬가지였다. 까만색 폴리프로필렌 재질 용기에 담긴 도시락을 하나씩 맛볼 때마다 도시락 뚜껑의 멋진 연예인들은 잊히고, 찜질방 단체복을 입은 사람들의 차별 없는 모습이 떠올랐다.

편의점 도시락의 영양학
눅눅한 튀김과 기름이 흘러내리는 햄과 소시지, 턱없이 부족한 채소 반찬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에 올라온 편의점 도시락의 맛 평가는 호평 일색이다. 나도 투덜거리면서도 남김없이 다 먹었다. 맛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도시락을 남긴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중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의 6년 동안 도시락 의존형 식생활을 이어가던 경험이 나를 몰아세웠다. 한번 붙든 도시락은 끝까지 먹어야 하는 법, 오후에 밀려드는 배고픔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감히 밥을 남긴단 말인가. 영양 차원에서 보면, 입맛을 조금 둥글게 하여 다 먹는 게 남는 장사다. 도시락 포장에 표시된 칼로리(혜리 도시락에는 빠져 있다)를 보고 다이어트에 미치는 영향을 계산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본래 칼로리 계산의 출발점은 식품의 가성비를 따지기 위한 것이었다. 오늘날 식품의 칼로리 표시는 19세기 말 미국의 화학자 윌버 올린 앳워터가 고안한 칼로리 측정법을 따르고 있는데, 당시 앳워터의 목표는 가난한 사람들이 비용 대비 영양가가 높은 음식을 구입하도록 돕는 것이었다. 그는 미국인들이 유럽인들보다 단백질은 적게 섭취하고, 탄수화물과 지방은 너무 많이 먹고 있다는 점을 특히 안타까워했다. 앳워터가 자신의 책 <음식: 영양가와 비용>을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같은 돈으로 소고기 등심을 사느니 목살을 선택하면 2.5배나 많은 단백질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노동자의 식사 환경은 100년 전 미국이나 21세기 대한민국이나 비슷하다. 바깥에서 음식을 사먹다 보면 여전히 가격 대비 제일 얻기 힘든 영양소가 단백질이다. 단돈 3500원으로 백종원 한판도시락을 사면 하루 섭취량 기준치 56%, 홍석천 도시락으로는 45%의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다. 편의점 도시락의 가격 대비 영양 가치가 얼마나 뛰어난지 보려면 햄버거와 비교해보면 된다. 소고기 패티 2장이 들어 있는 맥도날드 빅맥의 단백질 함량이 26g인데, 홍석천 치킨도시락 하나에는 25g, 백종원 한판도시락에는 31g의 단백질이 들어 있다. 단품으로 빅맥의 가격은 4700원이다. 25% 저렴한 비용에 거의 비슷하거나 20% 더 많은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는 셈이다. 나쁘지 않은 정도를 뛰어넘어 훌륭하다.

도시락이 불편한 이유
편의점 도시락을 마냥 칭찬해줄 수는 없다. 우선 너무 기름지다. 시식한 6종의 도시락 가운데 지방 함량이 가장 높은 백종원 우삼겹 정식에는 하루 영양 섭취 기준치 대비 71%나 되는 지방이 들어 있다. 나트륨 함량도 높은 편이어서, 가장 적은 김혜자 6찬도시락에 906mg, 제일 많은 백종원 한판도시락은 1405mg에 달한다. 도시락 하나만 먹으면 하루 기준치의 70%나 되는 나트륨을 먹게 된다. 실제 편의점 도시락을 먹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런 식으로 따져봐야 자기 마음만 상한다. 영양 가치는 훌륭한데 맛이 없다거나, 단백질 함량은 높은데 나트륨도 많다는 식으로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하다. 가성비 좋고 맛도 무난하다거나(도시락 구매자), 형편없는 맛에 건강에도 좋지 않다(도시락 기피자)고 믿어야 인지부조화를 줄일 수 있다. 편의점 도시락이라는 식품에 대한 평가는 그런 식으로 사실보다 평가자의 믿음을 반영하는 쪽으로 치우친다. 음식을 바라보는 사람의 관점에서 객관성이란 무의미, 또는 비현실과 동의어다. 얼마 전 보도된, 일주일 동안 점심으로 편의점 도시락만을 먹는 실험에 도전했다는 두 기자의 경험담에도 그러한 편견이 묻어난다. 두 사람 모두 소화가 잘 안 되는 불편을 호소했다. 나도 그랬다. 도시락만 먹으면 속이 더부룩하고, 트림도 더 많이 나오는 것 같고, 제법 오랫동안 배도 고프지 않았다. 편의점 도시락에 모종의 유해 성분이 들어 있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포만감이 오래 지속되는 것은 지방과 단백질 함량이 높기 때문이고, 소화불량 증상이 나타나는 것은 찬밥 속의 저항성 전분 때문이다. 우리가 먹는 쌀밥에는 빠르게 소화되는 전분(RDS)과 천천히 소화되는 전분(SDS), 저항성 전분(RS), 이렇게 3가지의 전분이 들어 있다. 소화가 어려운 저항성 전분 함량이 높아질수록 소화가 더뎌지고, 혈당이 천천히 오르고, 포만감은 오래 지속된다. 당뇨 환자나 다이어트 중인 사람에게는 좋은 소식이다. 하지만 장이 민감한 사람에게는 나쁜 소식이다. 저항성 전분이 제대로 소화되지 않은 채 대장까지 내려가서 장내 미생물의 먹이가 되면 가스가 차고 속이 불편하다. 캐나다 궬프 음식 연구소의 실험 결과, 일단 냉장 보관으로 저항성 전분 함량이 높아진 밥을 15분 동안 재가열해도 저항성 전분 함량에는 별 차이가 없다. 좋게 말하면 찬밥을 전자레인지에 2분 정도 데워 먹어도 저항성 전분의 소화 지연 효과를 볼 수 있고, 나쁘게 말하면 소화가 안 되는 건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집밥이든 편의점 도시락이든 찬밥은 소화가 어렵다.

무너진 균형
도시락, 김밥처럼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쌀 가공식품의 판매량은 연간 3억7000만 개라니, 하루 평균 100만 명이 편의점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있는 셈이다. 백종원 도시락 2종만 해도 출시되어 2주 만에 100만 개가 팔렸다. 한 달에 200만 명이 먹고 있는 음식이라면 그 음식만 들여다봐도 식문화가 변하는 방향을 짐작할 수 있다. 고지방 고단백 다이어트 맞다. 하지만 저탄수화물 다이어트는 아니다. 탄수화물은 그대로 먹고, 지방과 단백질만 늘리고 있다. 도시락 한 끼의 탄수화물은 하루 기준 섭취량의 ⅓을 살짝 밑돌고 단백질과 지방은 절반 수준이다. 삼시 세끼를 도시락으로 먹으면 탄수화물은 적당하고, 단백질과 지방은 기준보다 50%를 초과해서 먹게 되는 셈이다. 체중이 느는 게 당연하다. 도시락 속 식단의 균형도 점점 더 무너지고 있다. 채소를 먹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백종원 도시락이 출시된 초창기만 해도 도시락 반찬에 볶음김치 외에도 녹색 채소가 조금은 눈에 띄었다. 1년여 시간이 흐른 지금 유채나물은 사라지고, 마늘종게맛살볶음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고기반찬은 늘리고, 얼마 되지 않던 채소 비중을 더 줄였다. 도시락 뚜껑 속 인물의 건강미와는 거리가 한참 멀어 보이는 찬 구성이다. 중간은 없고 양극단만 보이는 세상에서 도시락 뚜껑 속의 사람과 그 도시락을 먹는 사람 사이의 간극은 점점 더 벌어져만 간다.

정재훈은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한 후 캐나다 토론토에서 다년간 약사로 일했다. 음식만큼이나 사람들과 요리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한다. 잡지, TV, 라디오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음식과 약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전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정재훈의 생각하는 식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