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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ing

차이린 @정동현

2017년 2월 17일 — 0

주방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요리였다. 그 열기를 따라 오래된 중국의 향기가 뿜어져 나왔다. 눈을 감으면 웅장한 본토의 너른 사막이 보이는 것 같기도 했고 어두운 숲 속 작고 좁은 산사山寺에 앉아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것은 꿈이 아니었다. 꿈을 꾸는 자가 만든 아름다운 요리의 숲이었다.

text 정동현 — illustration 왕조현

술에 취한 뒷자리 손님이 알은척을 했다.

— “혹시 사장님 아니세요?”

삼성중앙역 근처 중식당 차이린의 주인장(이정섭)은 손님 대신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단골손님이 부른 대리기사가 바로 본인이었다. 그는 “아, 네”라고 답하며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좋아서 시작한 일이 아니었다. 단지 생계를 꾸리려고 시작한 일이었다.

— “저는 원래 대우자동차 엔진 설계 엔지니어였어요.”

짧은 머리에 안경을 낀 그는 동그란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말에 장식이 많지 않았다. 에둘러 말하지 않았다. A는 A라고 설명할 뿐이었다. 그의 이력 때문인지 아니면 본래 성격이 그러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공대를 나와 자연스럽게 누구나 알 만한 대기업에 취직을 했다. 보험일에 뛰어든 것은 더 나은 생계를 위해서였다. 쳇바퀴 같은 직장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도 있었다. 그렇게 10년을 보냈다. 그리고 시작한 것이 요식업이었다.

— “라멘 프랜차이즈였어요. 10평짜리 주방에서 일하면서 전국 매출 1등을 했죠.”

1등이란 단어가 입에서 나올 때 그의 얼굴에 은근한 자부심이 비쳤다. 그러나 요리 한번 해보지 않은 그가 겪었을 시간이 모두 드러나지 않았다. 마치 복잡한 수학 문제 푸는 과정을 일일이 설명하지 않는 공대생처럼 그는 답을 보일 뿐이었다. 본래 달걀프라이밖에 하지 못하던 그였다. 프라이팬에 쌀을 넣고 팬 돌리는 연습을 했다. 아침 9시부터 새벽 1시까지 팬을 돌렸다. 두 달 뒤에는 두 손으로 팬을 돌리고 있었다. 그러나 프랜차이즈는 프랜차이즈였다. 회사 생활을 하던 때처럼 제약이 많았다. 본사는 메뉴와 식자재를 통제했다. 회사로서는 당연한 조치였다. 하지만 그가 꿈꾸던 생활은 아니었다. 1년이면 족했다.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다. 서울 일급 호텔 경력의 주방장을 구했다. 처음 1년은 이보다 좋을 수 없었다. 주방장의 실력은 명불허전이었다. 점심이 되면 삼성동 일대 회사원들이 줄을 섰다. 저녁이면 단체 손님으로 룸이 가득 찼다. 다시 1년이 흘렀다. 팀을 짜서 들어왔던 주방장과 그 휘하 팀이 한꺼번에 그만뒀다. 그렇게 호시절이 갔다. 그만둔 이유는 간단했다. 식당 하나를 오픈할 때 들어가는 시설 및 설비를 집어넣을 때 업자들에게 뒤로 돈을 받고 오픈하고 나서는 식자재상에게 또 돈을 받았다. 오래 일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목돈은 식당 하나 오픈할 때 들어온다. 식자재를 받으며 챙기는 돈은 그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았다. 적당히 일해주고 떠나면 그만이었다. 홀로 남은 주인장은 막막할 따름이었다. 주방에 일할 사람을 급히 구했다. 그때 만난 사람이 지금의 주방 실장(이운기)이었다. 키가 180cm가 넘고 눈이 작으며 손이 큰 실장은 한눈에도 거구다. 그가 중화냄비, 웍Wok을 잡으면 그 큰 냄비가 마치 가정주부가 쓰는 작은 프라이팬 같아 보인다. 그가 요리를 하게 된 계기는 거창하지 않다. 작은 눈이 더 작아지며 씩 웃는 그는 요리를 왜 시작했냐라는 질문에 공부하기 싫어서라고 짧게 답했다. 그러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 “농담이고, 그냥 요리가 좋았죠.”

만약 동화 속 이야기라면 새로운 실장을 만나 같이 잘 해나갔다는 이야기로 끝이 나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주인장과 실장은 잘 맞지 않았다. 무엇보다 주인장이 차이린의 콘셉트를 새롭게 잡으면서 갈등이 심해졌다. 시작은 우연이었다. 주인장의 외삼촌이 알고 지내던 중국 연태 지방의 호텔 오너가 차이린을 찾게 된 것이다. 중국에 없던 중화요리를 팔던 시절, 호텔 오너는 빈말인지 진심이었는지 자신의 호텔로 연수를 오라고 말했다. 주인장은 그 말에 의지해 실장과 함께 2주 후 진짜 중국으로 찾아가게 된다. 동시에 주인장은 ‘차이린6’라는 분점을 오픈했다. 표준화된 조리법과 재료로 주방장의 의존도를 낮춰보겠다는 의도였다. 차이린의 6가지 대표 메뉴를 가져와 만든 이 분점은 실패였다. 이유는 다양했다. 무엇보다 맛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고 메뉴의 구성도 대중의 취향과 맞지 않았다. 힘든 시간이 시작됐다. 주인장은 영업이 마친 9시부터 새벽까지 대리운전을 나가야 했다. 결혼반지, 전세 보증금까지 밀어 넣었다.

— “그래서 아직도 반지하 전세 살잖아요.”

과거 이야기를 하는 목소리 톤이 조금 낮아졌다.

— “말도 마세요. 아직도 그때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서. 예전 차이린6 자리로는 아직도 지나가지 않아요.”

새로 온 실장과도 마음이 맞지 않았다. 실장은 20여 년 간 배워온 중식을 새로 배워야 했다. 그것도 말도 통하지 않는 본토에 통역을 대동하고 낯선 곳에서 몸으로 기술을 익혀야 하는 것이었다. 주인장은 새로 연 분점에 돈을 쏟아부으면서 차이린의 콘셉트를 새롭게 잡으려고 했다.

— “남들이 가보지 않은 길로 가야 성공한다고 믿었죠.”

주인장은 여전히 그 말을 믿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길은 쉽지 않았다. 어려웠다. 주인장의 말처럼 한강을 여러 번 오고 갈 만한 상황이 반복됐다.

— “그래도 단 한번도 직원들 월급, 식자재 대금, 임대료 밀린 적이 없어요.”

본인이 희생할 뿐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주인장의 강단은 그런 것이었다. A가 아니면 B로, B가 아니면 C로 향하는 프로그램 순서도처럼 끊임없이 길을 찾았다. 그 와중에 중국 연수는 계속됐다. 일반 식당에서 거의 하지 않는 R&D였다. 주인장 본인이 엔지니어 출신이었기에 그 필요를 알고 실천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실장은 1년쯤 지나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숙해져야 하는 과정 자체가 고역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만두지 않았다. 지금은 의형제를 맺었다는 주인장의 끈질긴 설득이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2년 반 만에 분점을 접고 차이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오랜 고집이 빛을 보기 시작했다. 지금 차이린은 예전처럼 한국식 중화요리를 파는 곳이 아니다. 한국에서 찾아볼 수 없는 중국 본토 요리로 승부하는 식당이 되었다. 구로나 수원 등지에 흔한 사천요리집도 아니다. 홍콩, 청도, 사천 등 중국 각지에서 배워온 요리를 맛볼 수 있는 한국의 거의 유일한 곳이다. 먼저 먹어야 할 것은 산라탕이다. 영어로는 ‘Hot and Sour Soup’라고 부르는 이 수프는 원래 세계적으로 유명한 요리다. 하지만 특유의 꼬리꼬리한 향이 살아 있는 산라탕은 찾기 힘들다. 한국인의 입맛에 맞지 않다는 편견 아닌 편견에 향이 거의 없는 산라탕이 판을 친다. 주인장이 생각한 길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다음으로 먹어야 할 것은 ‘버미셀리 샐러드’다. 녹두로 만든 얇은 버미셀리 면에 중국 햄 샹탕과 고수, 그리고 쨍하게 산도가 살아 있는 중국 4대 식초 라오천추(老陳醋, 묵은 식초)를 버무린 맛은 전혀 새로운 세계다. 짜릿한 산미에 체면을 모르고 침이 돈다. 달걀흰자를 푼 ‘광동오슬’은 광동의 다섯 가지 보물로 만들었다는 뜻의 요리다. 불린 해삼, 새우, 셀러리 등이 들어간 이 요리는 미묘한 감칠맛이 혀를 잡아 이끈다. 뒤로 숨겨진 맛은 차이린에서 직접 만든 고추기름, 라유辣油다. 10여 가지 재료로 만든 이 라유를 뿌리면 기분 좋은 매운맛과 함께 복잡다단한 향이 올라온다. 침흘리는 닭이란 뜻의 구수계口水鸡도 꼭 먹어봐야 할 메뉴 중 하나다. 일견 빨간 외관에 닭볶음탕처럼 뜨거운 음식이라고 여기기 쉬우나 실상 차가운 요리다. 위에 얹은 고수를 닭고기가 담긴 소스에 비비고 땅콩과 밑에 깔린 쪽파를 잘 섞어 먹으면 맵다기보다 향긋하다는 느낌을 먼저 받게 된다. 가지 껍질을 얇게 벗겨내 튀기고 캐러멜 소스에 살짝 버무린 ‘풍미가지’ 또한 새로운 맛이다. 흔히 양꼬치집에서 파는 가지튀김과는 다른 고급스러운 식감과 풍미다. 중국의 가정식 요리를 가져온 ‘취과라편’은 소라와 절인 오이를 버무렸고, 동파육은 튀기지 않고 소스에 그대로 졸여냈다. 흔한 꿔바로우도 계핏가루를 묻혀 마치 추로스 같은 맛을 낸다. 여기에 ‘화자오(花椒)’라고 부르는 제피, 즉 사천 후추를 듬뿍 뿌린 마파두부와 마늘볶음밥도 빼놓을 수 없다. 모두 일반 중식과 다른 맛이다. 무엇보다 맛뿐만 아니라 향이 살아 있다. 그래서 음식이 나옮과 동시에 사람들의 오감을 자극한다. 그러나 음식을 먹는 손님들을 바라보는 주인장은 늘 조바심이 난 것 같다. 그 이유는 아마 그의 꿈이 미완未完이기 때문일 것이다.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어요. 계속 상상할 수 있고, 꿈꿀 수 있잖아요.” 이제 요식업을 한 지 8년을 넘어선 주인장은 후회가 없냐는 질문에 단호히 답했다. 그가 직접 이름 붙인 차이린은 ‘아름다운 요리의 숲’이란 뜻이다. 지금도 무수한 사람들이 그 숲의 매력에 빠져 인생을 바쳐 뛰어든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을 깨닫는 사람은 드물다. 그전에 미로에 빠지고 좌절하기에 그렇다. 하지만 차이린의 안경 낀 사내처럼 포기하고 주저 앉지 않는다면, 지도를 펴고 냉정히 갈 길을 찾는다면 어두운 숲도 끝내 길을 스스로 연다. 그가 만지던 기계 설계도처럼 어렵지만 논리적이며 그래서 아름다운 공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