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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의 의미 @김석신

2017년 1월 26일 — 0

미식은 실재實在하지 않는 실재다.

text 김석신

사전을 보니 미식美食은 ‘맛난 음식 또는 맛난 음식을 먹는 행위’라고 나와 있다. 내가 먹어본 음식 가운데 미식으로 기억나는 것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아주 오래전 백령도에 다녀왔다. 요즘처럼 쾌속선도 없을 때라 뱃멀미를 하며 힘들게 찾아간 곳이다. 그 모든 고생을 한 방에 날려준 것이 바로 전복 요리다. 자연산인 데다 값이 너무 싸서 정신없이 먹었다. 아침에는 죽으로 점심에는 무침으로 저녁에는 회로 먹었다. 돌아올 때는 산 채로 사가지고 와서 아내의 찬사도 들었다. 그런데 과연 백령도 전복 요리는 미식이었을까? 늘 먹던 음식이 아닌 색다른 별식別食 아니었을까? 그러면 도대체 미식은 뭘까?

먼저 인류의 역사로 들어가보자. 인류는 눈으로 볼 수 없고 손으로 만질 수 없는 어떤 것들, 즉 개념, 신념, 신화와 같은 것을 만들어내면서 인류만의 문화를 창조해왔다. 인류가 생각해낸 가치, 개념 등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으면서도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이것을 ‘실재實在하지 않는 실재’라고 부르겠다. 오늘의 주제는 미식이다. 미식도 음식이고 우리에게 음식의 으뜸은 밥이다. 요즘 빵을 많이 먹는다고 하지만 한국인에게는 밥이 여전히 최고의 음식이다. 그런데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밥에도 눈으로 볼 수 없고 손으로 만질 수 없는 어떤 것이 있을까?

음식 가운데 으뜸인 밥, 그 밥의 사전적 의미는 ‘쌀과 같은 곡식을 씻어서 솥에 넣고 물을 알맞게 부어 끓여 익힌 음식’이다. 이런 낱말 풀이는 지극히 가치중립적이고 자연과학적인 풀이다. 우리는 이런 풀이에서 결코 밥도 하늘도 어머니도 떠올릴 수 없고, 생명이니 행복이니 지혜니 하는 가치도 만날 수 없다. 그러나 실제 우리가 밥을 먹을 땐 문득 어머니가 떠오르고 행복감에 휩싸이기도 한다. 이때는 밥도 어머니도 ‘실재하지 않는 실재’가 된다. 이럴 때 비로소 밥은 ‘생명, 행복, 지혜’라는 가치를 지닌 ‘실재하지 않는 실재’가 된다.

이찬범 화가의 시 <어머니>를 읽어보면 ‘생명, 행복, 지혜’라는 ‘실재하지 않는 실재’를 잘 느낄 수 있다. “밥 부뚜막에서 밥 짓는 어머니는 / 연기가 맵다며 항상 우셨다. / 그 눈물은 자식을 배 불리는 / 안도의 눈물이었고 / 배곯지 않게 해야 하는/ 고단함의 눈물이었다. // 그렇게 / 평생 밥을 짓던 어머니 / 돌아가시던 날 / 내 손 꼬옥 잡고 힘겹게 물으셨다. / ‘밥은… 먹었느냐’고 / ‘어여… 밥 먹으라’고.” 어머니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을 잘 지키며 행복하게 살라고 밥을 지어주셨으며, 그 밥에는 고단함의 눈물로 터득한 어머니의 지혜가 담겨 있지 않은가.

이제 다시 미식으로 돌아가보자. 미식의 미美를 아우르는 보다 큰 개념은 ‘진선미眞善美’이다. 진선미는 참됨, 착함, 아름다움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서, 이상理想과 합치된 ‘실재하지 않는 실재’를 가리킨다. 진선미를 사람에 적용해보면, 진인眞人은 참된 사람, 선인善人은 착한 사람, 미인美人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진선미를 음식에 적용해보면, 미식美食은 있지만 진식眞食이나 선식善食은 없다. 원래 ‘큰 양’을 본뜬 美라는 한자어에는 ‘신에게 바치는 살찐 양→맛있다→아름답다→훌륭하다’의 의미가 들어 있다. 즉 미식에는 맛(맛있다)과 멋(아름답다, 훌륭하다)이 공존하는 것이다. 맛은 진과 선에 대응하고, 멋은 미에 대응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진선미라는 ‘실재하지 않는 실재’를 두루 갖춘 미식을 생각해볼 때가 아닐까? 겉으로 보이는 미美만 보아서는 미식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

아주 오래전 위스키 시음회에 참여한 적이 있다. A, B라고 표시된 위스키의 맛을 보고 좋은 것을 골랐는데, 대부분의 사람이 품질이 떨어지는 위스키를 더 좋다고 골랐고, 나도 물론 틀린 답을 골랐다. 색깔이 더 예쁜 위스키에 현혹되었던 것이다. 이렇듯 미에 현혹되지 않고 진과 선을 보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진정한 미식을 만나려면 미를 넘어 진선미를 보려고 애써야 한다. TV의 <복면가왕> 프로그램에서도 ‘인기’라는 미를 배제한 상태에서 최고의 가수를 뽑지 않는가?

미식의 진선미는 음식의 ‘생명, 행복, 지혜’라는 ‘실재하지 않는 실재’와 맞닿아 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바로 생명이고, 이것이 음식의 참된 진리이기에 진과 생명은 맞닿아 있다. 음식은 좋은 것, 즉 선이고, 선 가운데 최고선은 행복이기에 선과 행복은 맞닿아 있다. 생명과 행복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지혜이고, 자칫 탐하기 쉬운 미식도 지혜로워야 균형을 유지할 수 있기에 미는 지혜와 맞닿아 있다.

그러면 이제 결론을 내려보자. 누구에게나 최고의 미식은 어머니가 해주신 음식이다. 왜 그럴까? 어머니가 해주신 음식에는 진선미, 그리고 생명, 행복, 지혜라는 ‘실재하지 않는 실재’가 모두 들어 있기 때문이다. 투박한 질그릇에 예쁘지 않게 썰어 넣은 재료로 끓여낸 된장찌개나 김치찌개… 여기에 이 모든 것이 들어 있다. 생각해보니 백령도 전복 요리는 별식이었지 미식은 아니었다. 미식은 ‘실재하지 않는 실재’를 담아야 하기 때문이다.

김석신은 서울대학교 식품공학과에서 식품공학 학사를, 충남대학교 대학원에서 식품공학 석사를,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대학원에서 식품공학 박사를 취득했다. 롯데주조 사원, 국방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 조선대학교 식품영양학과 전임강사를 거쳐, 현재 가톨릭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음식윤리학-모든 음식인을 위한 응용윤리> <나의 밥 이야기> <주니어대학 11, 맛있는 음식이 문화를 만든다고?> <잃어버린 밥상 잊어버린 윤리> <좋은 음식을 말한다> <식품저장학> <식품가공저장학> <식품물리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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