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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욱의 도사

2017년 1월 25일 — 0

짧게 깎은 머리와 군복 바지가 트레이드마크인 라스베이거스의 요리사 아키라 백이 서울에서 백승욱으로 신고식을 마쳤다.

서울에서 도사가 된 아키라 백

최근 JTBC <냉장고를 부탁해> 모델 이소라 편에 군복 바지를 입은 강렬한 인상의 셰프가 등장했다. 그는 바로 라스베이거스의 요리사 아키라 백. 한국 이름은 백승욱이다. 그의 요리 인생을 들여다보면 유난히 ‘최초’ ‘처음’이라는 수식어와 인연이 깊다. 비일본계로는 처음 유명 일식 레스토랑 체인 노부 마쓰히사Nobu Matsuhisa 아스펜 지점의 총주방장을 맡았고, 이후 라스베이거스 벨라지오 호텔 일식당의 동양인 최초·최연소 총주방장이 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2008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미국의 인기 요리 대결 프로그램 <아이언 셰프 아메리카>에 출연하기도 했다. 라스베이거스를 비롯해 LA, 두바이, 자카르타, 뉴델리, 방콕, 싱가포르 등 세계 각지에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그가 지난 여름 청담동에 모던 한식을 표방한 레스토랑 도사DOSA를 오픈했다. 한국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레스토랑을 여는 것은 백승욱 셰프의 오랜 염원이었다. 열다섯 살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 간 그에게 한국이란 존재는 김치와 같다고 했다. “김치를 아주 좋아하는 것은 아닌데 안 먹으면 뭔가 허전하고 서운해요. 한국 사람이니까 한국에서 레스토랑을 내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 꿈은 우연찮게 실현되었다. 의외였던 것은 일식이 아닌 한식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것이다. “일식이 베이스이긴 하지만 지속적으로 저만의 스타일을 만들어왔어요. 한국에서 제 이름으로 낸 첫 번째 레스토랑인데 한식으로 정면 승부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한국에서 레스토랑을 열 거라고 계획하고 있었기에 꾸준히 메뉴 개발을 해왔다. 백승욱 셰프가 어릴 때 한국에서 경험했던 것들이 자신의 요리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언뜻언뜻 그리워지는 추억의 음식들, 특정 맛에 대한 기억들이 프렌치 테크닉과 일식의 기본기와 만나 도사의 메뉴로 탄생했다. “만약 저한테 정통 한식을 하라고 하면 솔직히 그건 못해요. 한식에 대한 기본기가 없으니깐요. 대신 저만의 한식을 하라고 하면 자신 있어요.” 레스토랑 이름인 도사는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주방에서는 요리에 통달한 셰프를 의미하고, 레스토랑을 찾는 손님들이 그의 요리를 오롯이 즐기기를 바라는 마음도 담고 있다. “손님들이 술을 잘 마시면 술도 사고 음식을 맛있게 먹으면 먹도사고 그런 거죠.” 그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사람 좋게 웃었다.

요리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다

백승욱 셰프는 20대 때 세계선수권대회에서 5위를 차지할 정도로 전도유망한 스노보드 선수였다. 아버지의 사업 때문에 샌프란시스코에서 눈의 도시 콜로라도 아스펜으로 이사 간 그는 언어 장벽과 인종 차별 때문에 ‘꽁꽁 언’ 청소년기를 보내야 했다. 동양인이라는 선입견과 부족한 영어 실력을 채워준 것이 스노보드였다. 유년 시절 일본으로 야구 유학을 계획할 만큼 운동에 소질이 있어서 스노보드 실력은 일취월장했고 자신감도 점차 되찾아갔다. 하지만 인생은 마음먹은 대로, 계획한 대로만 흘러가는 것은 아니었다. 세계선수권대회를 준비하던 중 심각한 발목 부상을 당한 것이다. 망연자실하며 목적지 없이 스키장 주변을 배회하던 어느 날, 그의 눈에 들어왔던 것이 일식 레스토랑 켄이치Kenich의 문 앞에 붙어 있던 구인 광고였다. 계시라도 받은 것처럼 다음 날 레스토랑의 셰프를 찾아가 일하게 해달라고 간청해 켄이치의 주방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다.
운명적인 터닝포인트였고 더 이상 잃을 게 없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용기가 생겼다. 하지만 요리에 대한 기본기가 전혀 없었고 군대식의 엄격한 주방 분위기는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기에 남들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했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모두 마치고 남은 시간에 선배들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칼 쓰는 법, 회 뜨는 순서 등을 곁눈질로 배웠다. 초밥의 모양을 잡을 때의 느낌을 기억하기 위해 일정량의 쌀을 손에 쥐고 잠이 든 적도 있다. 그 결과 6개월 만에 파트 조리장이 되었고 3년이 되었을 때 부주방장으로 승격되었다. 아키라Akira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은 이때부터다. 일본으로 야구 유학을 가기 위해 아버지의 지인한테 부탁해 만들었던 일본식 이름을 일식을 만들며 사용하게 될 줄은 상상조차 못한 일이었다. “켄이치에서 일하는 동안 스노보드 탈 때의 열정을 회복했어요. 요리도 스노보드처럼 제가 원하는 스타일로 창조할 수 있다는 것도 배웠고요.”
켄이치에서 주방장까지 지낸 백승욱 셰프는 아시안 프렌치 레스토랑 마오Mao의 오픈 멤버로 합류해 요리 장르의 폭을 넓혔다. 이때 요리의 지식에 대한 필요성을 느껴 AIC(The Art Institute of Colorado)의 요리 학과에 입학해 늦은 공부를 시작했다. 켄이치에서 일식의 기본기를 익혔다면 마오에서 응용편을 배웠고 AIC에서는 요리 이론의 기초를 닦은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워지지 않은 갈증이 있었다. 안정적인 직장인 마오를 그만두고 아키라만의 스타일을 찾기 위한 모험을 시작했다. 처음으로 찾아간 곳은 미국 일식의 대가 마사하루 모리모토Masaharu Morimoto가 운영하는 필라델피아의 모리모토 레스토랑으로 6개월간 일한 후 노부 뉴욕Nobu New York으로 옮겼다. 그 이후에는 미국 전역을 돌며 레스토랑에서 잠깐씩 머물며 최대한 다양한 요리를 보고 배웠다. 이처럼 계획된 방황을 하던 중에, 2003년 노부 마쓰히사 아스펜 지점의 총주방장으로 영입됐다. 노부가 노부 뉴욕에서 일했던 백승욱 셰프의 실력과 열정을 눈여겨봤다가 아스펜 지점을 오픈할 때 그를 합류시킨 것이다. 그는 노부와 마쓰히사 체인을 통틀어 유일한 비일본계이자 가장 나이 어린 총주방장이 되었다. 그리고 2007년에는 40여 명의 지원자를 제치고 라스베이거스 벨라지오 호텔 일식당 옐로 테일의 총주방장으로 발탁됐다. 처음 일식당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부터 숨 가쁘게 달려와 15년 만에 이룬 쾌거였다.

백승욱의 도전

물론 어느 정도 운도 따랐지만 과거를 곱씹어보면 어느 한 순간도 쉬웠던 적은 없었다. 요리 못하는 바보라고 놀림도 받았고 수개월간 주방 한쪽에 쪼그려 앉아 굴만 까던 시절도 있었다. “제가 생각해봐도 요리를 못해도 그렇게 못할 수가 없었어요. 근데 계속 생각했어요. 어떻게 하면 빨리 잘할 수 있을까 하고요.” 요리업계에 막 입문했을 때는 그는 스노보드 선수였던 백승욱과 일식을 만드는 아키라 백은 전혀 다른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차차 연장선상에 있음을 깨달았다. 스노보드 대회를 참가하기 위해 미국, 캐나다, 유럽을 다니며 다양한 음식을 맛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런 경험이 요리 전반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혔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리사와 운동선수는 공통점이 많다. 정상에 가까울수록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 하고 머리도 쓰고 땀도 흘려야 한다. 불경기나 슬럼프 때는 포기하지 않고 견디는 법도 알아야 한다. 남이 성공했다고 섣불리 따라 하면서 자기 페이스나 스타일을 잊어서도 안 된다.
백승욱 셰프의 요리는 일식을 바탕으로 서양 음식의 기본인 프렌치 테크닉을 활용하고 한국적인 에센스를 담은 것이 특징이다. 재료의 맛은 살리되 먹는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해 스타일을 강조한다. 달걀을 깨뜨리면 흰자와 노른자가 아닌 수정과 아이스크림이 나오는 식이다. “눈으로 먹고 이로 씹으면서 귀로는 소리를 듣는, 그런 오감을 만족시키는 요리가 제가 추구하는 스타일입니다.” 그래서 그의 요리는 그냥 단맛이 아닌 달면서 시고 또 짜다. 한때는 약점이었겠지만 정통 일식 요리사 출신이 아니었기에 지금과 같은 대체 불가한 스타일을 갖게 되었다. 백승욱 셰프에게 요리는 메신저다. 자신의 개성을 세상에 내보이고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도구다. 그는 싱가포르와 토론토에 아키라 백 오픈을, 그리고 자카르타에 고깃집 론칭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엔 또 어떤 주제로 어떤 메시지를 주고받을지 지켜볼 일이다.

도사 INFO
도사는 미국에서는 일식으로 자신의 요리 세계를 펼치고 있는 아키라 백 셰프의 모던 한식 레스토랑이다. 참치와 새송이버섯으로 만든 피자, 엔다이브 김치를 곁들인 이베리코 보쌈 등 한식을 아키라 백 식으로 재해석한 재기발랄한 메뉴를 맛볼 수 있다.
· 런치 5만~7만원, 디너 8만~12만원
· 서울시 강남구 도산대로67길 7 지하 1층
· 02-516-3672


Dinner AT DOSA

1. 참치와 새송이버섯으로 만든 피자 위에 깻잎순과 화이트 트러플 오일로 마무리한 참치버섯피자.
2. 빵가루, 깻가루 그리고 말린 누에로 표현한 윈터가든.
3. 알밤과 버섯 피클을 넣은 밤 수프와 군밤 먹물빵.
4. 제주 옥돔과 옥수수와 비트로 만든 옥수수 퓌레, 그리고 막걸리 폼.
5. 김치찜 스타일의 엔다이브 김치에 숙성 쌈장, 마늘장아찌를 곁들인 이베리코 보쌈.
6. 송로버섯과 여러 가지 곡물, 비스큐 스톡으로 만든 리소토.
7. 고흥 유자와 상큼한 석류 빙수 그리고 제철 과일.
8. 15가지 곡물로 만든 아이스크림.

edit 이미주 — photograph 이과용, 이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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