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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씁쓸한 가공우유 @정재훈

2017년 1월 18일 — 0

수박, 버터, 아보카도 등 생각지도 못한 재료들과 우유가 만난 제품들이 앞다투어 출시되고 있다. 이토록 다양하고 달콤한 가공우유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text 정재훈 — edit 전보라 — photograph 이향아

색다른 우유 맛에 빠지다
모닝시리얼우유, 민트초코우유, 메론우유, 수박우유, 옥수수우유를 찾아다니느라 사흘이 걸렸다. 아보카도우유와 버터우유를 얻는 데는 끝내 실패했다. 요즘 편의점에 새로운 우유가 많이 늘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면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현실은 아니었다. 집 주변에서는 딸기, 바나나, 초콜릿 외의 다른 맛 우유를 좀처럼 찾기 어려웠다. 마침 주말에 여의도에 갈 일이 생겼고, 국회의사당 주변 편의점 네 곳을 돌아서야 구색을 갖출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식탁에 20종의 우유를 늘어놓고 나니, 수박우유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고창 수박으로 만들어 더 맛있다는 문구에 호기심이 더욱 커졌다. 수박과 우유라니,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조합이다. 진한 녹색 줄무늬를 넣은 제품의 앞면에는 수박 조각을 들고 입맛을 다시는 젖소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다. 재미있는 그림이지만, 곧이곧대로 믿으면 곤란하다. 젖소에게 수박을 먹여 젖을 짠다고 해서 수박맛 우유가 되진 않는다. 줄무늬의 녹색을 띠는 엽록소는 소의 간에서 이미 분해되어 사라지고, 오렌지색 카로틴 색소의 일부는 비타민 A로 전환되고 일부는 우유에 그대로 남겠지만, 우리가 눈치챌 정도로 우유의 풍미나 색깔이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수박맛 우유를 만들려면 우유를 짜낸 다음에 맛, 향, 색을 더하는 게 낫다. 실제로 0.1% 이하의 향료와 색소면 색다른 맛의 가공우유를 만들 수 있다. 과즙으로 1%에 해당하는 고창 수박 농축액과 그보다 더 적은 양의 수박 향만을 넣어서 우유의 맛을 바꿔놓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음식을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
음식의 선택에 중요한 것은 맛일까, 건강일까? 두 관점은 매번 대립하고 충돌한다. 가공우유는 둘 중 어느 한쪽도 완벽하게 만족시키지 못한다. 우선 미식의 관점에서 가공우유의 맛이 그다지 훌륭하다고 볼 수 없다. 제품 이름과 포장이 호기심을 자극했지만, 실제로 맛을 보면 모두가 평범했다. 수박우유는 진짜 수박보다는 수박맛 아이스바를 연상시키는 맛이었고, 메론 과즙으로 1%에 해당하는 이스라엘산 메론 농축 과즙과 메론 향을 넣었다는 메론우유도 메론맛 아이스바를 녹인 맛이었을 뿐, 메론맛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머지 우유도 비슷했다. 옥수수우유는 옥수수맛 아이스크림, 모닝시리얼우유는 미숫가루와 비슷한 맛이 났다. 시식 전에는 아보카도우유를 못 구한 게 아쉬웠지만, 스무 가지 우유를 다 마셔본 뒤에는 기대를 접었다. 아보카도우유도 하루를 더 소비해가며 일부러 찾아서 마실 만한 맛은 아닐 것임에 분명했다. 흰 우유를 놔두고 굳이 당류와 향료를 첨가한 가공우유를 마신다는 것은 순수한 건강주의자의 관점에서도 이해 가지 않는 일이다. 실제로 라벨 표시를 보면, 원유의 세 배나 되는 당류가 들어 있는 가공우유도 있고, 단백질 함량이 원유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가공우유도 있다. 가공우유를 마시면, 우유의 다른 영양 성분은 줄어들고, 당분만 과잉으로 섭취하게 될 거라고 의심할 만한 합리적 근거가 있는 셈이다. 하지만, 모든 가공우유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허니초콜릿우유의 경우를 보자. 달콤한 맛을 위해 벌꿀 5.5%, 초콜릿 풍미를 위해 코코아 분말 1.05%가 첨가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 제품에 압도적으로 많이 들어 있는 원재료는 저지방우유 93.38%다. 당연히 영양 성분도 원유 그대로에 가깝다. 200ml 1컵을 마실 때 섭취하는 당분의 양은 원유보다 6g이 많은 15g이고, 단백질은 동일하게 6g, 지방은 원유의 절반 수준인 4g이다. 첨가한 당분의 양이 생각보다 적은 것은 우유에 원래부터 4∼5% 정도로 유당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유당 덕분에 기본적으로 은은한 단맛이 나니까, 여기에 조금만 당분을 더해줘도 충분히 달콤한 맛의 가공우유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상하목장 유기농바나나우유, 유기농딸기우유도 원유 함량이 90%나 된다. 순수한 맛의 관점에서나 영양의 관점에서 가공우유가 최적의 선택은 아닐지 모르지만, 훌륭한 차선책은 될 수 있다. 나한테는 흰 우유가 충분히 맛좋은 음식이지만, 우유를 즐기지 않는 어린이에게 흰 우유만 강요했다가는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2014년 미국 코넬 대학교의 연구 결과, 초콜릿 우유를 초등학교 식당 선반에서 없애자 우유를 집어든 학생들의 수가 10% 줄었고, 먹지 않고 버려지는 우유의 양이 29% 늘어났다. 그보다 앞서 2008년 미국 영양학회지에 발표된 또 다른 연구에서는 우유 또는 가공우유를 마시는 어린이들이 우유를 마시지 않는 그룹보다 비슷하거나 조금 더 날씬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공우유를 마신다고 특별히 당분 섭취량이 늘어나지는 않았지만, 우유를 마시는 그룹의 비타민 A, 칼슘, 마그네슘의 섭취량은 우유를 마시지 않는 그룹보다 확실히 더 많았다. 맛만 추구하면 건강을 잃는다. 건강만 챙기다 보면 맛이 없다. 모두 양극단의 주장이다. 가공우유를 보면 맛과 건강은 얼마든지 양립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맛과 영양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가공우유를 선택하기도 의외로 쉽다. 가공우유에는 스누피부터, 곰돌이 푸, 도라에몽, 미니언즈, 개그콘서트까지 캐릭터 상품이 유독 많은 편인데, 이렇게 캐릭터가 그려진 것들일수록 라벨의 영양 성분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재미에 치우친 제품일수록 원유의 함량과 영양 가치가 줄어들고 당류가 더 많이 첨가되는 셈이다.

가공우유로 보는 음식의 의미
우유가 성인의 건강에 도움이 되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오랫동안 완전식품의 대명사였던 우유의 권위가 최근 들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다. 2014년 10월에는 하루에 우유를 석 잔 이상 마시면 사망률이 증가한다는 스웨덴 연구가 발표되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하지만 특정 음식이 건강에 이롭나 해롭나를 두고 벌어지는 논쟁은 우유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다음 해인 2015년 10월, 문제의 초점은 가공육, 적색육의 암 유발 위험으로 옮겨졌다. 2016년에는 도대체 어떤 음식이 악의 축으로 지목될 것인가? 내 예상은 알코올 음료였다. 잘못된 추측이었다. 2016년의 스타는 버터와 삼겹살이었다. 고지방 저탄수화물 다이어트의 열풍 속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유제품과 육류가 돌아왔다. 이렇게도 빨리, 스캔들을 극복하고 나타난 연예계 스타보다 더 화려하게 복귀할 줄이야! 이제 와 돌이켜 생각해보면, 음식을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인간들의 세상에서 당연한 결과다. 전통의 바나나, 딸기 우유부터, 새로 등장한 아보카도, 메론, 수박 우유까지, 가공우유에는 유독 과일 맛 우유가 많다. 생각해보면 참 재미난 조합이다. 과일과 우유는 애초부터 누군가가 먹도록 설계된 것들이다. 인간은 음식을 먹지 않고서는 살 수 없지만, 지구상에 원래부터 음식으로 존재하는 것은 드물다. 우리가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다른 무엇인가의 생명을 희생시켰다는 의미인 것이다. 음식을 먹을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한다면 괴로울 테지만, 분명한 현실이다. 우리 모두는 지구상의 다른 존재들에게 생명을 빚지고 있다. 우유와 과일은 잠시 동안이나마 불편한 진실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해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식품이다(그런데 잠깐! 과일은 몰라도 우유는 다르지 않은가? 반문할 만하다. 맞다. 우유는 송아지를 위해 마련된 음식이다. 하지만 과일이라고 뭐가 다른가. 원래 식물의 목적대로 과일을 먹고 씨를 뿌려주는 건 아니니 말이다). 미식의 시대에 살면서도 우리는 정작 관계에 무관심하다. 과일이 그려진 가공우유 포장을 보면서 그 맛과 영양은 궁금하지만 정작 송아지와 젖소의 모습은 잘 그려지지 않는다. 요리와 가공은 원재료의 형태를 변화시키고, 그것이 한때 생명이었다는 사실을 잊게 만든다. 가공된 음식일수록 그저 먹는 것으로 보일 뿐, 우리가 생산자에게, 다른 생명체에게 상호 의존해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은 잘 나지 않는다. 그렇게 잊혀진 관계 때문일까? 과거 어느 때보다 음식 맛이 훌륭한 시대에 살고 있지만, 음식을 음식으로만 보는 세상에서 따뜻한 정은 자꾸만 줄어드는 느낌이다. 달콤한 가공우유의 다양한 맛에 즐거우면서도 왠지 씁쓸하기만 하다.

정재훈은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한 후 캐나다 토론토에서 다년간 약사로 일했다. 음식만큼이나 사람들과 요리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한다. 잡지, TV, 라디오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음식과 약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전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정재훈의 생각하는 식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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