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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ing

쿠마 @정동현

2017년 1월 8일 — 0

지독히도 붉은 참치 등살이었다. 그 빛깔에서 참치의 거대한 규모와 시간, 끝없이 막막한 바다의 깊이가 느껴졌다. 그리고 참치를 썰어낸 사내는 가슴속에 그 바다를 품고 있었다.

text 정동현 — illustration 왕조현

첼로의 성자聖子라고 불린 파블로 카잘스는 매일 아침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을 연습했다. 96세로 타계할 때까지 변하지 않는 그의 아침 일과였다. 여의도 ‘쿠마’의 주인장 김민성의 하루는 새벽 1시부터다. 가장 좋은 물건은 제일 일찍 나와 가장 먼저 사라지기 때문이다. 마치 거장이 첼로 활을 잡듯, 그는 매일 신새벽 노량진수산시장에 발을 딛는다.

— “이렇게 다녔는데도 한눈팔면 바로 이상한 물건이 들어와.”

그는 하루에 적게는 100만원, 많게는 150만원어치 물건을 산다고 했다. 월로 환산하면 3000만원에서 5000만원이 되는 큰돈이다. 그러면 굳이 직접 새벽마다 물건을 보지 않더라도 알아서 가게로 편하게 보내줄 수 없느냐는 질문에 그는 고개를 흔들며 말을 이었다.

— “오사카는 더 장난 아니야. 속이는 게 무시무시해. 아주 나쁜 놈들이야.”

‘오사카’라는 말이 내 귀에는 ‘오싸아카’로 들렸다. 경상도치고도 아주 억센 사투리 억양이었다. 억양뿐만 아니라 외모도 한반도 동남쪽의 누군가를 연상시켰다. 바싹 자른 머리, 동그란 안경에 조그만 눈만 보면 영락없는 투수 최동원이다. 따져보면 삶의 방식도 그 무쇠팔 투수를 닮았다. 1984년, 7차전 승부인 한국시리즈에 4번이나 등판하며 홀로 롯데를 우승으로 이끈 안경잡이 투수처럼 그도 혼자 가게를 이끈다. 사람을 더 써야 하지 않냐는 질문에 그는 또 짧게 말했다.

— “내 성격이 이래가지고 남한테 못 맡겨. 내가 해야지. 내 가겐데.”

그가 누나라고 부르는 아주머니 둘과 영업을 하는 쿠마는 여의도 충무빌딩 2층에 있다. 주 고객은 여의도에 흰 셔츠에 슈트를 입고 활보하는 증권사 직원들과 국회 거주민들이다. 국회의원, 증권사 사장도 여럿이다. 남이 모는 차를 타고 다니는 그들이 굳이 오래된 빌딩 2층, 때가 낀 계단을 걸어 올라 복도 구석까지 물어 물어 와 먹는 메뉴는 단 한 가지다. 1인당 무조건 10만원, 오마카세 메뉴다. 손님의 선택권은 없다. 시장의 시세와 주인장의 의지와 취향에 따라 그날그날 나오는 요리가 결정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분명 제철 재료가 있지만 바다의 사정에 따라 최고 등급의 물건은 매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 “나는 진짜 재료에 목숨 거는 사람이야. 최고가 아니면 안 써. 이 자존심 하나는 내가 있다 이거야.”

말 그대로 그는 좋은 재료를 보면 돈을 아끼지 않는다. 노량진수산시장에 그가 등장하자 여기저기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 “쿠마야, 어디 가노. 오늘 물건 좋다.”
— “쿠마야, 여기 와서 이것 좀 먹고 가라.”

인기 스타를 방불케 하는 그의 인기는 모두 화끈한 ‘지름’에 있다.

— “이거 다 담으소. 전부 다.”

싹쓸이한다는 ‘아도’ 친다는 표현대로 그는 이것저것 재지 않는다. 좋은 것은 모두 가져가야 직성이 풀린다. 그날은 럭비공처럼 살이 찐 대방어 12kg, 자연산 석화, 낙지 등을 전리품으로 챙겼다. 이동 수단은 세단 승용차, 겉은 번드르르한 중형차지만 안에 들어가면 생선 냄새가 가득하다. 그런데도 그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

— “요리 말고는 아무 데도 신경을 안 써. 집에 가면 입고 던져놓은 티셔츠가 산더미라. 사서 입고 벗고 또 사서 입고 벗고. 빨지를 않거든.”

그는 말하면서 본인도 웃긴지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그렇게 1차로 장을 보고 나면 새벽 3시가 된다. 물건을 가게에 놔두고 그제야 집에 돌아가 잠을 잔다. 다시 가게로 나오는 시간은 아침 8시다. 함께 일하는 아주머니들을 가게로 ‘모시러’ 가야 하기 때문이다. 10시가 되어 가게로 들어와 1인당 1만3000원 하는 점심 식사 영업을 마치면 그는 또다시 노량진수산시장에 간다. 혹시나 새벽에 놓친 물건이 있을까봐 점검차 가는 것이다. 다시 가게로 돌아오면 오후 3시가 조금 넘는다. 그때부터는 본격적인 저녁 영업 준비에 들어간다. 그가 이렇게 요리를 한 지는 20년이 훌쩍 넘었다. 요리를 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일본으로 건너간 것이 군대를 막 제대한 20대 초반이었다. 그저 일본에 가면 요리를 배울 수 있으리란 생각뿐이었다고 한다. 그가 다시 한국에 돌아오기까지 10년이 걸렸다. 덕분에 쿠마에서 나오는 음식은 대부분이 일식이다. 무엇보다 재료의 선도가 중요한 회가 주를 이룬다. 보통 집과 다른 점은 그의 식재료에 대한 집착에서 나오는 구색, 선도, 그리고 사람을 압도하는 양이다.

— “내가 먹고 배가 차야 되거든. 내가 기준이야.”

많이 주어서 다 먹지 못하겠다는 불평 아닌 불평에 그는 단호히 답했다. 양이 많다고 하여 구색 같은 찬이 잔뜩 나오는 것도 아니다. 그의 승부는, 그 무쇠팔 투수처럼 돌직구로만 이뤄진다. 저녁 영업 시작은 6시, 오직 예약 손님만 받기 때문에 한번 가볼까 하는 마음으로는 이 가게에 들어갈 수 없다. 이런 영업 방침 탓에 근래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사실 주인장이다. 지난 9월 통과된 김영란법 탓에 타격을 받지 않았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보다 ‘노쇼’에 주인장은 자주 분노한다. 예약한 손님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는 준비한 재료를 모두 버리게 된다. 60%가 넘는 원가율에 노쇼가 겹치게 되면 그는 화를 속으로 참을 수밖에 없다. 나는 쿠마의 작은 다찌에 앉아 그의 불평을 들었다. 그는 입으로는 ‘어찌 이럴 수 있느냐’고 울분을 토했지만 칼을 쥔 손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그래도 그의 음식을 기다리는 손님이 있기 때문이었다. 쿠마를 찾는 이들이 사시사철 늘 보게 되는 것은 참치회다. 그중 빨간색을 넘어 보르도의 어린 레드 와인을 연상시키는 핏빛 자주색으로 반짝이는 참치 등살 ‘아까미’는 쿠마의 자존심이다. 주인장의 굵은 손가락만큼이나 두껍게 썬 이 붉은 살을 입에 넣으면 다른 집에서는 맛볼 수 없는 산미부터 느껴진다. 다른 잡맛은 전혀 없다. 수분기가 빠져 서걱거리는 것이 아닌, 모찌 떡을 먹은 것처럼 쫄깃하게 풀리는 식감도 맛의 격을 높인다. 깍두기처럼 썰린 참치 뱃살 ‘오도로’는 입에 넣자마자 눈이 녹듯 사라져버린다. 저절로 ‘아아’ 하는 탄성이 나오게 하는 농염한 맛이 전신에 퍼진다. 겨울 맞아 제철인 대방어도 필수다. 등 쪽으로 섬세하게 칼집이 들어가 있어 우선 보기에 아름답다. 지방이 많은 뱃살부터 감칠맛 좋은 등살까지 한번에 맛보게 자른 의도는 곰이라는 뜻의 ‘쿠마’에 걸맞지 않게 섬세하다. 이 대방어를 주인장이 직접 만든 새우장에 듬뿍 찍어 먹으면 이 집이 양으로만 어필하는 단순한 곳이 아님을 알게 된다. 일반 일식집처럼 다시마를 쓰지 않고 절인 고등어, ‘시메사바’를 먹을 때쯤에 나는 놀라서 주인장을 쳐다보고야 말았다.

— “다시마를 쓰면 맛을 내기 쉽거든. 그래서 안 써. 대신 겉을 토치로 지지고 라유를 뿌린 다음에 채 썬 양파를 뿌리면 이게 절묘하거든.”

그는 유인구로 헛스윙을 잡아낸 투수처럼 씨익 웃으며 말했다. 뒤이어 양식이 아닌 잠수를 해 캐낸 석화가 올라왔다. 크림 녹듯이 진한 우유 맛이 나는 굴이었다. 마치 괴물 같은 형상에 팔뚝만 한 규모를 한 전갱이구이, 육고기가 아쉬울까 소의 힘줄과 연골을 무와 함께 찐 요리가 좁은 상을 비집고 올라왔다. 곁들여 먹을 달래무침, 대접에 담긴 매생이국, 복어 껍질 무침은 주연 같은 조연이었다. 그는 이 모든 것을 서빙 보는 아주머니 둘과 해내고 있었다. 혼자 큰 칼을 들고 이무기같이 커다란 물고기를 썰고 국을 끓였으며 틈마다 테이블을 돌며 음식 설명을 했다. 웨이터와 소믈리에, 십수 명의 셰프가 합을 맞춰 손님을 내는 프렌치 레스토랑이 웅장한 협주곡, 조용히 초밥을 쥐는 스시집이 바이올린 독주곡이라면 그의 너르고 깊은 음식은 무반주 첼로 독주곡을 듣는 것 같았다. 청자를 예민하게 자극하기보다 그 규모에 감탄하고 깊이에 저절로 빠져들게 하는 바흐의 첼로 독주곡처럼 가게 안 손님들은 그의 음식에 크게 감탄하고 크게 웃었다. 이에 흥이 넘친 손님들이 가게를 빠져나가지 않으면 그는 손님들에게 ‘문 잘 닫고 나가시라’고 하며 문밖을 나선다. 밤 11시, 그는 또 아주머니들을 집까지 바래다주고 임시 거처 같은 집으로 향한다. 쉽지 않은 삶이다. 무언가에 미친 삶이다. 그는 ‘그만큼 요리가 좋다’라고 늘 말했다. 요리가 하면 할수록 재미있다는 설명에는 전혀 머뭇거림이 없었다. 그의 모습에서 이전에 들은 일화가 떠올랐다. 95세의 나이에도 하루에 6시간씩 늘 첼로 연습을 하던 파블로 카잘스에게 누군가 ‘왜 아직도 그렇게 연습을 하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 “내 실력이 아직도 향상되고 있기 때문이오.”

갈망하는 자에게 있어 삶은 흘려보내는 시간의 뭉텅이가 아닌 이룩해가고자 하는 바를 위한 총체적 규범規範이요, 하나의 양식樣式이다. 곰을 닮은 쿠마 주인장의 시계는 그리하여 평범하게 돌지 않는다. 눈을 뜨면 상인들이 소리치는 시장이요, 눈을 감으면 너른 바다다. 그리고 여의도 쿠마는 그가 이룩한 작은 용궁이다. 그 작은 세계의 용왕인 그는 자리를 일어나 셈을 치르는 나에게 크게 말했다.

— “맛있게 묵읏나? 그럼 됐다. 고맙다.”

오직 중앙을 향해 전력으로 공을 던지는 사나이의 복선 없이 맑고 투명한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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