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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희의 그릇

2016년 12월 28일 — 0

보통의 그릇 가게가 아니다. 노영희의 테이블 스타일링 아이디어를 엿볼 수 있으며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그릇을 취향껏 스타일링해볼 수도 있다. 삼성동에 문을 연 노영희의 그릇 가게 이야기다.

식품·외식 업계를 취재하다 보면 감각적인 사람은 더러 있지만 꾸준히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수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요리연구가이자 푸드스타일리스트인 노영희의 행보는 단연 눈에 띈다. 매거진 에디터 출신의 그녀는 반가 음식의 대가인 강인희 요리연구가에게 5년간 사사한 후 여러 매체에서 요리와 스타일링을 담당했다. ‘모던 한식’이란 개념조차 생소하던 시절, 그녀는 제철에 나는 최상의 재료와 안전한 먹거리를 사용해 현대적 관점에서 재해석한 반가 음식을 선보이는 레스토랑을 오픈했다. 2008년 12월 남산에 문을 연 품 서울이 그것이다. 이곳은 최근 발표한 <미쉐린 가이드> 서울 편에서 별을 받아 맛과 서비스의 질을 인정받기도 했다. 노영희는 품 서울을 통해 좋은 식재료를 이용해 정통 한식의 맛은 살리되 플레이팅과 서비스는 기존 한식보다 더 세련되게 제공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맛은 곧 식재료의 질이라고 믿기에 오픈해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재료비와 타협한 적이 없다. 그녀가 좋은 식재료만큼 고집하는 것은 바로 모던한 플레이팅이다. 한식은 음식을 수북이 담는 것이 미덕이라고 여겼던 10여 년 전부터 노영희는 여백과 디테일을 살린 자신만의 플레이팅을 선보여왔다. “한번은 김영란법의 시행을 앞두고 어떤 기자한테 ‘김영란 메뉴’를 만들 거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품 서울이 지켜온 이미지가 있는데 문을 닫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게는 못한다고 했어요. 그 메뉴를 만들려면 저렴한 재료를 사용해야 하는데 한식당에서 국산 재료를 안 쓰면 누가 와서 먹겠어요? 법제에 하나하나 맞추다 보면 결국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가 없으니깐요.” 이처럼 하고 싶은 것은 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녀는 레스토랑 오픈 이외에도 중간중간 재미있는 작업들을 해왔다. 제대로 된 한식 도시락은 왜 없을까 고민하다 도시락 가게를 냈고,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반찬 가게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반찬 가게도 운영했다.

노영희의 그릇 가게 외관 전경. ‘Roh02’s 그릇’이라 새겨 있는 간판이 사랑스럽다.

그런 그녀가 최근 삼성동 보고재 빌딩 1층에 그릇 가게를 냈다. 오랫동안 음식을 만들며 다양한 그릇을 접해온 노영희의 오랜 숙원이었다. “그동안 여러 그릇을 사용하면서 조금 더 쓰임새가 좋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어요. 큰 고민 없이 그릇을 세트로 구입해 찬장에만 넣어두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기도 했고요.” 그래서 자신이 그릇을 사용하면서 느꼈던 점을 작가들과 공유하고 오랫동안 축적해온 테이블 스타일링 노하우를 손님들과 나눌 수 있는 공간인 ‘노영희의 그릇’을 오픈한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평소 애용하는 그릇을 소개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직접 사용하면서 느낀 점을 작가들과 이야기함으로써 디자인뿐만 아니라 쓰임이 좋은 그릇을 만드는 데 일조를 하고 있다. 때문에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도 노영희의 그릇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특별한 라인이 있다. 현재는 8명의 중견 작가의 그릇을 판매 중이며 앞으로 신인 작가의 발굴과 판매를 늘릴 계획이다. 이 그릇 가게의 또 다른 특징은 여러 작가의 그릇을 섞어서 진열한다는 것이다. 특히 매장 중앙에 놓인 커다란 나무 테이블은 노영희가 제안하는 제철 그릇 스타일링을 엿볼 수 있는 공간. 여러 작가의 작품뿐만 아니라 서양 브랜드의 와인잔이 서로 이물감 없이 조화롭게 놓여 있는 모던한 상차림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그 옆에는 손님이 직접 그릇을 스타일링해볼 수 있는 빈 테이블도 놓여 있다. “대개 작가들 그릇이라고 하면 부담부터 갖는데 가격도 합리적이고 쓰임새가 좋은 것들이 많아요. 무엇보다 한식에 잘 어울리고요. 직접 그릇을 이렇게 저렇게 맞춰보면서 집에서 진열용이 아닌 자주 사용할 그릇을 선택할 수 있도록 마련한 공간이에요.”

무심하게 놓은 듯한 그릇 세팅이 멋스럽다. 이처럼 매장 곳곳에서 노영희가 셀렉한 그릇의 스타일링 아이디어를 엿볼 수 있다.

그릇 구매 요령을 묻자 세트 구입을 지양하라고 조언했다. 그 구성을 살펴보면 쓰임새가 적은 것이 많다라는 것. 그리고 밥이나 국 공기가 아닌 메인 메뉴를 담는 큰 그릇부터 바꿀 것을 추천했다. 큼지막한 것이 몇 개 놓이면 상차림의 느낌 자체가 달라져 작은 그릇들도 덩달아 좋아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좋은 그릇일수록 자주 사용할 것을 당부했다. “잘 생각해보면 밥그릇은 절대 안 깨져요. 어쩌다 손님 와서 꺼내놓은 아끼는 그릇이 오히려 잘 깨지지요. 늘 자기 손에 익게끔 여러 그릇을 바꾸면서 사용해야 스타일링에 대한 안목도 생긴답니다.” 서두르지 않고 소신껏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노영희의 다음 목표는 키친 플래너가 되는 것이다. 살림 초보자에게 조리도구 구입부터 자신에게 맞는 주방을 설계할 수 있도록 든든한 조력자로 활동할 예정이다. 그리고 ‘미쉐린의 별’이라는 효과 좋은 영양 주사를 한 대 맞았으니 한식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음식 대사’의 역할도 톡톡히 해나갈 작정이다. 품 서울이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 한식을 맛보기 위해 꼭 들러야 하는 레스토랑으로 등극할 때까지 묵묵히 그리고 정직하게 주방을 지킬 계획이다. 제자리에서 잠연하게 해오던 일을 지속한다면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결국 원하는 것을 이룰 것이라 믿는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노영희의 그릇 둘러보기
그릇 가게의 중앙에 위치한 널찍한 나무 테이블은 노영희의 감각적인 그릇 스타일링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세팅은 주기적으로 바꾼다.
우리나라 세라믹과 잘 어울리는 커틀러리도 구비해놓았다. 소재와 기법은 전통 방식을 따랐으나 디자인은 양식기처럼 모던하다.
여러 작가의 그릇을 믹스매치해 감각적인 테이블 스타일링을 완성했다.
느티나무를 켠 모양 그대로 살려서 만든 선반의 그릇을 꺼내 그 앞에 놓인 테이블에서 마음껏 스타일링해볼 수 있다. 작품보다는 쓰임새를 강조한 노영희의 그릇에 대한 신념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Roh02’s 그릇
· 서울시 강남구 삼성로126길 6 보고재 빌딩 1층
· 02-518-5177

edit 이미주 — photograph 이과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