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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부부의 페어링룸

2016년 12월 20일 — 0

테이스팅룸, 멜팅숍 등 오픈과 동시에 핫 플레이스로 떠오른 레스토랑의 오너인 건축가 안경두와 조명 디자이너 김주영 부부. 그들의 새로운 레스토랑 페어링룸이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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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중앙에 위치한 카운터 겸 주방 입구. 클래식하면서도 레트로한 감성이 느껴진다.

새로운 도전, 페어링룸
미국에서 각각 건축설계사와 조명 디자이너로 일했던 두 사람은 2004년 한국으로 돌아와 건축·인테리어 회사를 차렸다. 이들의 이력은 한눈에 봐도 어마어마하다. 갤러리아 백화점의 푸드코트 고메이 494, 뚜레쥬르 콘셉트 스토어, 디저트 카페 코코브루니 등의 외식 공간뿐 아니라 CGV 청담시네시티, CJ E&M센터, SBS 미디어센터, YG 엔터테인먼트 신사옥 등 굵직한 프로젝트가 그들의 손을 거쳤다. 맛있는 음식에도 일가견이 있던 그들은 6년 전 청담동에 테이스팅룸을 열었다. 기대했던 것보다 사람들의 호응이 매우 좋았다. 서래마을에 이어 코엑스, 롯데월드 몰 등까지 5개의 지점으로 몸집이 커나갔다. 지난 2014년에는 테이스팅룸을 만든 지 7년 만에 처음으로 세컨드 브랜드인 레스토랑 멜팅샵을 열었다.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강남 도산공원의 핫 플레이스로 떠올랐고 예약이 힘들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그리고 2016년, 테이스팅룸 청담점이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거쳐 페어링룸으로 변신했다. 잘 나가던 레스토랑의 한 곳을 접고 새로운 레스토랑을 오픈한 이유는 무엇일까.
“올해가 테이스팅룸 청담점을 오픈한 지 9년이 되는 해에요. 9년 전에도 45년 된 건물을 리모델링해 만들었는데 이젠 세워진 지 50년이 넘은 건물이 되어서 시설적으로도 리모델링이 필요했어요. 테이스팅룸을 그대로 하기보다는 이 공간을 우리가 만든 새로운 외식 브랜드를 론칭하는 공간으로 활용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페어링룸의 첫 공간이 된거죠.” 레스토랑을 둘러보니 내부는 물론 외부까지 기존 테이스팅룸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테이스팅룸은 빈티지 베이스에 인더스트리얼 요소를 가미한 콘셉트였다면 페어링룸은 클래식 스타일을 베이스로 두되, 인더스트리얼과 레트로적인 요소를 가미했다. 1층부터 3층까지 각각의 공간에서 느낄 수 있는 감성을 차별화시키기 위해 조명과 의자 하나까지 섬세하게 신경을 썼다고. “페어링룸이라는 이름은 음식과 와인, 디저트와 차 등 다양한 식재료와 여러 문화권의 요리를 섞는 의미의 페어링도 있지만 ‘짝을 짓다’라는 의미도 담겨 있어요. 연인이나 친구처럼 ‘짝’이 함께 모여 대화도 하고 오랜 친구와 만나서 식사도 가능한 감성적인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이국적인 페어링룸의 외관.
이국적인 페어링룸의 외관.

동양과 서양의 조화
그들의 레스토랑이 단숨에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 중 하나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었던 독특한 메뉴 때문이다. 페어링룸의 메뉴 또한 보리굴비녹차리소토, 항정살페퍼메주파스타, 현미크리스피&아이스크림 등 메뉴명만 들어서는 도무지 상상되지 않는 메뉴가 대다수다. 한식과 일식이 속하는 동양, 프렌치와 이탤리언이 속하는 서양에서 자주 사용하는 식재료와 조리기법을 페어링해 한 플레이트 안에 담았다. 기존 테이스팅룸에서 선보였던 메뉴보다 한층 넓은 스펙트럼과 깊은 강도의 퓨전이다. 모든 메뉴는 안경두 대표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이태원에 있는 메뉴 개발실에서 셰프 2~3명이 함께 모여 10개월 동안 노력한 결과다. 한 가지 메뉴를 만드는 데 2달에 걸쳐 60~70번씩 만든 것은 부지기수였다. 하루에도 10개가 넘는 음식을 몇 개월간 계속해서 맛보느라 위장병까지 걸렸다고.
“우리가 익숙하게 먹고 있는 요리들은 수십 수백 년간 맛있는 조합이라는 것이 증명되면서 굳어진 것들이에요. 저희는 그것을 해체하면서 비일상적이고 새롭고 특이한 메뉴를 만들려고 했죠. 상당한 용기와 끈기가 필요합니다. 메뉴 개발실도 요리를 하는 곳이기보다 연구소 내지는 실험실에 더 가까워요. 시그너처 메뉴라고 할 수 있는 보리굴비녹차리소토도 그렇게 만들어졌어요. 보리굴비는 전통적으로 밥을 시원한 녹차에 말아 함께 먹는데 그걸 다른 시각으로 풀어보면 어떨까 싶었어요. 녹차물에 말은 밥 대신 녹차 가루와 우유로 만든 리소토에 말차 가루를 넉넉하게 뿌려 보리굴비와 함께 녹차의 삽싸름한 맛과 크리미한 리소토의 식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어요. 비슷한 식재료지만 조리기법이나 온도, 식감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익숙함에 새로움이 더해져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움을 느낄 수 있는 거죠.” 안경두 대표가 사용하는 식재료는 진귀하거나 비싼 것들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식재료다. 그에게 메뉴 개발의 핵심은 어떤 조합을 어떤 방향으로 풀어낼 것인지에 관한 것이다. 그동안 시도되지 않았던 조합에 도전하고 실험하면서 새로운 메뉴가 탄생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메뉴는 그들이 만든 공간에서 여태껏 맛보지 못한 새로운 맛으로 사람들의 눈과 입을 사로잡는다.

1층 중앙에 위치한 카운터 겸 주방 입구. 클래식하면서도 레트로한 감성이 느껴진다.
1층 중앙에 위치한 카운터 겸 주방 입구. 클래식하면서도 레트로한 감성이 느껴진다.

디자인과 요리
부부의 계획은 앞으로 매년 새로운 레스토랑 브랜드를 하나씩 론칭하는 것이다. 작년에는 현대백화점 판교점에 리코타바 by 멜팅샵을, 올해는 페어링룸을 오픈했으니 계획은 이미 실행에 옮겨진 셈. 디자인을 하는 두 사람이 이토록 요리로부터 느끼는 매력은 어떤 것일까.
“디자인과 요리에는 공통점이 있어요. 내가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면 그것을 불특정의 다수가 사용하거나 먹는다는 것. 그래서 프로세스도 비슷해요. 다른 사람이 이것을 사용하거나 먹었을 때 어떤 생각과 느낌을 가질지에 대해 예상하고 만들죠. 공간이든 음식이든 직접 만든 창작물을 사람들이 좋아해주는 것을 보면서 보람과 희열을 느껴요.” 특히 음식은 시각뿐만 아니라 미각, 후각, 청각까지 더 많은 감각으로 사람들과 소통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매개체라고 말하는 부부. 힘이 닿을 때까지 디자인과 요리 모두 함께해 나갈 생각이다. 부부는 내년 오픈을 목표로 새로운 레스토랑 브랜드를 준비하고 있다. 이번에는 또 어떤 독특한 공간과 메뉴로 우리의 눈과 입을 사로잡을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페어룸의 대표 메뉴들. 발사믹관자와 감자퓨레, 항정살페퍼메주파스타, 찰떡마카롱, 보리굴비녹차리조토(왼쪽부터 시계방향).
페어룸의 대표 메뉴들. 발사믹관자와 감자퓨레, 항정살페퍼메주파스타, 찰떡마카롱, 보리굴비녹차리조토(왼쪽부터 시계방향).

edit 김민지 — photograph 차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