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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ing

스시 @이동원

2016년 12월 29일 — 0

어떤 음식을 먹어도 미각을 잃어버린 사람마냥 아무 맛도 느끼지 못하던 나는 ‘아’ 하고 소리를 질렀다. 내가 기억하던 맛이었다.

text 이동원 — illustration 왕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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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4일, 23시 45분. 나는 휘발유 통을 들고, 일층은 식당, 이층은 집으로 사용하는 작은 건물 앞에 섰다. 불이 꺼진, 하지만 곧 불타오를 건물의 주인은 일층 식당에서 스시를 만드는 노인이다. 노인의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에 징용되었지만 그를 좋게 본 일본군 소령의 도움으로 장교들을 상대로 하는 고급 스시 집에서 일하게 되었다. 하늘의 인도였는지 그에겐 요리사의 자질이 있었다. 끌려간 곳에서 평생의 업을 찾은 그는 해방 후에도 일본에서 자리를 잡았다. 말년에 이르러서는 일본 전역에서도 손꼽히는 명인이 되었다. 명인에겐 크리스마스에 태어난 쌍둥이 아들이 있었다. 명인은 에이코우와 슈에이, 한국말로 영광과 송영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아버지의 성실함을 물려받은 형은 대를 잇기 위해 일을 배웠다. 동생은 성인이 되자마자 아버지의 돈을 훔쳐 집을 나갔다. 명인은 아들이라고 봐주는 법이 없었다. 오히려 더 혹독하게 가르쳤다. 생선 손질만 십 년을 한 후에야 형은 스시를 만들 기회를 얻었다. 남몰래 연습을 해온 터라 자신 있게 도전했지만 명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특히 형을 애먹인 것은 스시에 들어가는 와사비였다. 알맞게 들어간 와사비는 스시의 풍미를 더하지만 양의 조절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낙담만 하고 있진 않았다. 연습에 매진한 형은 이 정도면 명인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까 싶은 스시를 만들어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아버지를 찾았다. 명인은 환하게 웃었다.

동생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십 년 동안 밖을 떠돌다 돌아온 동생의 몰골은 비참했다. 몸에선 최하 등급의 생선에서 나는 꿉꿉하고 비린 냄새가 났고, 추운 겨울에 걸치고 있는 거라곤 낡아 빠진 점퍼뿐, 맨발엔 고무신을 꺾어 신고 있었다. 아버지의 돈을 도박과 유흥으로 탕진한 동생은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했다. 아들 대접을 받을 자격도 없으니 종이라 여기고 허드렛일이라도 시켜 달라며 눈물을 흘렸다. 와사비가 과하게 들어간 형의 스시를 먹고 눈물 어린 눈으로 불호령을 하던 명인은 고약한 냄새가 나는 동생을 끌어안고 울었다. 명인은 그날 가게를 접고, 예약된 손님에게 내놓으려던 최고급 생선으로 스시를 만들어 동생에게 먹였다. 형은 자신이 만든 스시를 들고 말없이 그 옆에 서 있었다. 다음 날부터 동생은 형과 함께 명인 밑에서 스시를 배웠다. 형이 명인의 성실함을 물려받았다면 동생에게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형은 눈앞에서 동생이 자신의 지난 십 년을 훌쩍 뛰어넘어 버리는 모습을 보았다. 그런 동생을 자랑스럽게 바라보는 명인의 모습도. 형은 명인에게 독립하겠다고 말했다. 전쟁의 시대를 지나온 명인은 둘을 떼어놓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나간 쪽은 이번에도 동생이었다. 명인은 동생을 다른 도시도 아닌 한국으로 보내 버렸다. 동생이 떠나던 날, 명인은 동생에게 돌아올 생각은 말고, 그곳에서 뼈를 묻으라고 말했다.

동생의 실력을 그만큼 믿어서였지만 형은 이제 아버지의 대를 잇는 것은 자신뿐이라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명인이 숨을 거두고, 형이 가게의 주인이 되자 손님이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가격을 낮추고, 메뉴도 추가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사람들은 명인의 진정한 후계자는 쫓겨난 동생이라고 떠들곤 했다. 동생의 스시를 먹기 위해 한국으로 여행을 가는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괴로워하던 형은 일곱 살 아들을 아내에게 맡기고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와 함께 입맛을 잃었다. 모든 색이 사라진 흑백 티브이처럼 어떤 음식도 무無 맛이었다. 끼니 때마다 찾아오는 식사는 고통의 시간이었다. 나는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는 음식들을 잘근잘근 씹어 먹었다. 동물의 사체를 씹는다는 마음으로, 식물을 짓밟는다는 기분으로. 음식 하나하나에 증오를 담아 먹었다. 마음 가득 차오른 독기는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내뱉은 말들이 행동으로 옮겨졌다. 나는 아버지가 생선 손질을 하던 나이부터 교도소를 들락거렸다. 크리스마스를 한 달 앞두고 세 번째 출소를 한 나는 전자상가에 진열된 티브이에서 아버지의 얼굴을 보았다. ‘한국에 스시를 알린 명장 슈에이.’ NHK가 만든 다큐에 아버지와 똑같이 생긴 삼촌이 나오고 있었다. 삼촌의 식당은 소박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나오는 ‘ㄷ’자 형태의 바와 바를 둘러싼 열두 개의 의자가 전부였다. 삼촌은 바 중앙에서 자신이 만든 스시를 먹는 손님들을 바라보았다. 똑같이 생긴 아버지에게선 본 적이 없는 얼굴이었다. 삼촌은 행복해 보였다. 방송은 한국에 처음 발간된 <미쉐린 가이드>에서 삼촌의 식당이 별 셋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하며 끝을 맺었다. 지금쯤 삼촌은 자식들이 준비한 크리스마스 겸 일흔 번째 생일 파티를 호텔에서 즐기고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 온 미심쩍은 조카도 초대해 주었지만 선약이 있다는 핑계로 거절했다. 나는 파티 대신 두 인생의 균형을 맞춰볼 생각이다. 같은 집에서, 같은 날에, 같은 얼굴로 태어난 두 사람의 인생이 고작 스시 때문에 이렇게나 달라졌다니 웃기지 않은가. 평생 일궈온 식당과 추억이 담겨 있을 집 정도는 사라져야 기울어진 행복의 무게추가 조금은 균형을 찾지 않을까.

나는 문을 열고 아무도 없는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스시였다. 참치, 광어, 오징어, 새우, 대합, 달걀 스시에 박고지 김말이까지, 정갈한 접시 위에 올라와 있는 일곱 점의 스시가 바 중앙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순간 삼촌이 거기 서 있는 줄 알았던 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약속 때문에 늦는다고 했던 날 위해 만들어 놓은 걸까. 난데없이 내가 나타난 날, 삼촌은 할아버지가 그러했듯 나에게 스시를 만들어 주었다. 난 스시를 싫어한다고 말했다. 아버지, 그리고 나를 불행하게 만든 스시 따위는 먹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도 스시를 만들어 놓았다. 삼촌 역시 한때는 할아버지의 돈을 홈쳐 야반도주를 했던 사고뭉치였다. 어쩌면 뭔가 눈치를 챘는지도 모른다. 나는 자꾸만 내 눈앞의 스시가 음식이 아니라 책상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편지처럼 보였다. 내가 올 줄 알고 삼촌이 미리 써둔 편지. 봉투를 열지 않으면 편지는 읽을 수 없다. 이 스시의 의미를 알려면 먹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손을 들어 스시를 집었다. 그리고 입에 넣었다.

어떤 음식을 먹어도 미각을 잃어버린 사람마냥 아무 맛도 느끼지 못하던 나는 ‘아’ 하고 소리를 질렀다. 내가 기억하던 맛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 이건 아버지가 만든 스시의 맛이었다. 믿기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할아버지의 후계자로 인정받은 삼촌의 스시와 평생 그런 삼촌에게 열등감을 느꼈던 아버지의 스시가 다르지 않다니. 나는 옆에 있는 다른 스시도 먹어 보았다.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의 스시는 얼굴 생김새만큼이나 똑같았다. 분명했다. 아버지의 스시는 내가 기억하는 유일한 맛이니까. 아버지와 함께 나는 모든 음식의 맛을 잃어버렸지만 아버지가 만든 스시의 맛만큼은 결코 잊지 않았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들어간 와사비가 코끝을 가볍게 두드리고, 본연의 재료와 어우러져 묘한 단맛을 내며 혀끝에서 사라졌다.

— “아버지.”

나는 혼잣말을 하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바 중앙 위쪽에 붙어 있는 식당의 가훈이 눈에 들어왔다. 액자 속에 들어 있는 글은 성경의 한 구절이었다.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 마가복음 7장 15절
맞았다. 모든 음식은 깨끗하다. 입으로 들어가 뒤로 나오는 것은 사람을 더럽히지 못한다. 속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 탐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 이 모든 악한 것이 마음속에서 나와 사람의 영혼을 더럽힌다. 스시엔 죄가 없었다. 철없던 시절엔 스시가 싫어 집을 떠났고, 나중엔 스시를 너무 잘 만들어 집을 떠나야만 했던 삼촌은 이곳에서 매일 저 액자 속의 글을 보며 스시를 만들었던 것이다. 평생을 집에서 살았던 아버지가 마침내 동생과 같은 스시를 만들어내고 세상에서 사라져 버린 그 시간에도. 막 자정을 넘긴 시간, 식당의 전화가 울렸다. 삼촌이었다. 삼촌은 아버지와 꼭 닮은 목소리로 말했다.
— “밥은 먹었나?”
— “네.”
— “맛있나?”

나는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 “와사비가 너무 많이 들어갔어요. 눈물이 다 나네요.”

수화기 너머에서 어릴 적 들었던 아버지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동원은 2013년 청소년 소설 <수다쟁이 조가 말했다>로 등단, 이듬해 장편소설 <살고 싶다>로 세계문학상을 수상했다. 올 가을 세 번째 장편소설 <완벽한 인생>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