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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희의 더 그린테이블

2016년 12월 19일 — 0

제철 식재료를 이용한 프렌치 퀴진을 선보이며 오랫동안 서래마을에서 사랑받아온 더 그린테이블이 압구정 로데오거리로 자리를 옮겼다. 이사 후 더 푸르러진 더 그린테이블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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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도, 셰프가 되다
셰프테이너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만큼 TV에서 수많은 셰프들을 만날 수 있는 요즘, 좀처럼 여자 셰프의 모습은 찾기 어렵다. 여성 시청자를 겨냥한 제작진의 의도가 어느 정도 반영된 결과겠지만 활동 중인 여자 셰프가 그만큼 드물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더 그린테이블을 이끌고 있는 김은희 셰프는 요즘 가장 눈에 띄는 여자 셰프 중 한 명으로 대학에서 환경공학을 전공한 후 웹 디자이너로 일한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요리에 관심이 많았지만 그녀가 대학에 입학했던 199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여자가 요리사를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착한 딸이 되려는 강박감과 소심한 성격 탓에 하고 싶은 것을 잘도 참아왔는데 20대 중반에 유레카 같은 순간이 찾아왔다.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그동안 만족하는 삶을 살아왔나 돌아보게 되었어요. 그래서 하고 싶은 것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늦은 나이에 진로를 변경한 만큼 마음이 조급했다. 미국 CIA로 요리 유학을 떠나기로 결정한 후 10개월 뒤인 2003년 뉴욕행 비행기에 올랐다.
시간을 아낄 요량으로 따로 어학 연수를 받지 않고 바로 수업에 들어갔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언어의 장벽이 높았다. 수업도 수업이었지만 졸업을 위해 반드시 이수해야 했던 현지 레스토랑에서의 인턴십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셰프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실수를 연발했고 동료들은 그녀를 ‘벙어리’ 취급했다. 한국어로 된 영어 슬랭 사전을 달달 외우며 주방의 분위기를 익혔다. 시간이 흐르자 특유의 근성과 성실함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인턴 신분으로는 이례적으로 차가운 음식을 준비하는 가르드 망제Garde Manger 스테이션에서 핫 애피타이저 스테이션으로 ‘승진’까지 한 것. 우려했던 것과 달리 CIA에서 21개월 과정을 무사히 마쳤고 1년 정도 더 머물며 현지 레스토랑에서 경험을 쌓았다. 뉴욕의 프렌치 레스토랑 블레이Bouley, 유러피언 레스토랑 크루Cru, 그리고 인턴십을 했던 파크 애비뉴 카페Park Avenue Café의 주방을 거쳤다. 또 시간과 돈을 투자해 가능한 한 많은 레스토랑을 방문했다. “요리사들에게는 레스토랑에 가서 밥을 먹는 것이 공부하는 거예요. 음식이 나오면 눈치 보면서 사진을 찍고 메뉴에 대해 기록하고, 집에 와서 다시 꺼내 보고 이건 어떻게 만들었을까 탐구했죠.” 2007년에는 당시의 사진과 기록을 엮어 <접시에 뉴욕을 담다>를 출판하기도 했다.

시즈널 애피타이저를 플레이팅 하기 위해 딜을 넣은 아이올리소스를 올리고 있다.
시즈널 애피타이저를 플레이팅 하기 위해 딜을 넣은 아이올리소스를 올리고 있다.

더 푸르러진 그린테이블
한국에 돌아온 김은희 셰프는 푸드 컨설턴트와 푸드 스타일리스트로 활동 중인 두 명의 언니와 푸드 스타일링 그룹 그린테이블Green Table을 론칭했다. ‘식재료가 건강한 음식이 가득 담긴 식탁’이라는 의미로 미국 CIA 요리학교 인턴 시절, 지하철에서 불현듯 떠오른 이름이다. 그녀는 귀국한 바로 다음 날부터 케이터링, 쿠킹 클래스, 요리책 출간 등의 일에 매진했다. 그리고 2009년 서래마을에 한국의 제철 재료로 만든 프렌치 퀴진을 표방한 더 그린테이블The Green Table을 오픈했다. 당시 방배중학교에서 함지박사거리로 이어지는 ‘함지박길’은 프랑스 뒷골목 같은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냈다. 그녀는 그런 거리의 분위기에 반해 서래마을에 정착하게 되었다. 호기는 좋았으나 2년 반쯤 지났을 때 고비가 찾아왔다. 요리와 경영, 모든 것을 혼자 도맡아 하면서 체력을 방전했고 직원들 때문에 상처를 입기도 했다. 자신을 다독이며 버티던 어느 날, 2층에서 밖을 내다보는데 은행나무 길이 눈에 들어왔다. “아차 싶었어요. 내가 이렇게 예쁜 곳에서 일하고 있었구나, 그때 안 거죠.” 그렇게 점점 여유를 찾다보니 어느새 횟수로 7년이 되었다. 처음엔 망하지 않으려고 열심히 살았고 그러다가 직원들을 교육시키는 재미로, 어떤 때는 일을 마친 후 직원들과 와인 마시는 즐거움에 살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예전에 엄마가 하루하루 살다보니까 시간이 흘러가 있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젠 그 말에 동감해요.”
지난 10월 24일 압구정 로데오에 더 그린테이블을 새로 오픈했다. 비교적 상권이 젊은 강남으로의 진출은 몇 해 전부터 염두해 왔었다. 파스텔 컬러의 외관에 가정집 같은 아기자기한 느낌의 이전 레스토랑과 달리 회벽, 벽돌, 나무 등을 사용해 모던하면서도 내추럴한 공간을 연출했다. 너무 여성스럽지 않아 지금의 공간이 더 마음에 든다는 김은희 셰프는 인테리어 소재뿐만 아니라 테이블, 도자기, 조명까지도 직접 다 골랐다. 메뉴 구성도 전체적으로 달라졌다. 과감하게 단품 메뉴를 없애고 런치와 디너 각각 1개의 코스만 진행한다.

은희 셰프가 디너 코스 중 메인 메뉴인 랍스터를 플레이팅하고 있다. 모든 재료를 담은 뒤 생선과 해산물, 마늘과 양파 등 채소를 넣고 끓인 지중해식 생선 스튜인 부야베스를 뿌려 풍미를 더한다.
은희 셰프가 디너 코스 중 메인 메뉴인 랍스터를 플레이팅하고 있다. 모든 재료를 담은 뒤 생선과 해산물, 마늘과 양파 등 채소를 넣고 끓인 지중해식 생선 스튜인 부야베스를 뿌려 풍미를 더한다.

또 다른 7년을 위해
신사동에서 시즌2를 맞이한 더 그린테이블은 김은희 셰프의 선택과 집중의 결과물이다. 레스토랑의 규모를 줄여 제철 식재료를 찾는 것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고 손님들과 자주 소통하고 싶었다. 사실 처음 레스토랑을 오픈할 때부터 추구했던 가치인데 일과에 좇겨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것이 늘 아쉬웠다. “서래마을 건물은 계단이 많아서 얽매이는 게 많았어요. 지하에 있는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다보면 홀에 한 번씩 나가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거든요. 그러다보니 몇 년째 단골인데도 못 알아보는 경우도 종종 있었고요. 근데 여기는 몇 발자국만 나가면 되니까 쑥스럽지만 더 많은 손님들과 만나려고 합니다.” 그리고 농장에 더 자주 다니기로 결심했다. 이사 후 일 년치 농장 견학 계획을 세웠고 며칠 전에는 직원들과 가평 사과농장으로 워크숍을 다녀왔다. 좋은 식재료를 찾고자 하는 그녀의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노량진 수산시장, 경동시장 등 일주일에 1~2번 전통시장을 다니고 틈틈이 온라인 쇼핑을 통해 원하는 재료를 찾는다. “재료가 좋으면 소금과 후추만 뿌려 먹어도 맛있으니깐요. 저도 허브를 30여 가지 길러봤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 잘하는 분을 찾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알았지요.”
요리를 시작하면서 그녀에게 많은 변화가 생겼다. 타인한테 도통 관심이 없었는데 오너 셰프를 하면서 리더십이 생겼고 소극적인 성격은 뭐든지 앞장서서 도전하는 적극적인 성향으로 바뀌었다. 그녀는 요리가 지금의 김은희를 만들었다고 표현했다. “이제는 제가 용기 내지 않으면 안 되니깐요. 예전에는 사람들을 만나면 피곤해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요즘은 무슨 좋은 일 있냐고 물어봐요. 딱히 달라진 것도 없는데 말이죠. 이게 연륜인가 봐요.” ‘연륜’이라는 단어를 툭 내뱉고 멋쩍은 듯 웃는 그녀에게서 7년차 셰프의 여유가 묻어났다. 또 다른 7년 후엔 강북에서 더 그린테이블 시즌 3를 찍고 싶다고 말하는 모습에서는 자신감도 엿보였다.
김은희 셰프는 13년 전 요리 유학을 떠난 그때처럼 여전히 성실의 아이콘이다. 좋은 재료를 찾는 것에 열심히고, 그 재료로 메뉴를 낼 때도 정성을 다한다. 만든 음식마다 자신이 투영돼 있다고 믿는 그녀는 작은 채소 하나 허투루 다루는 법이 없다. 재료를 손질할 때 누가 어떤 마음으로 다듬었는지에 따라 신선도의 지속 기간이 달라진다고 직원들한테 입버릇처럼 말한다. 좋은 재료를 그냥 묵힐 수 없어 피클을 담다 보니 보관중인 피클만 20가지가 넘는다. 약재에도 관심이 많아 꾸준히 <동의보감>을 읽고 있고 평생 식재료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며 스스로를 욕심쟁이라 불렀다.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이 많아 레스토랑의 규모를 줄였다는 그녀, 그리고 이전한 지금의 더 그린테이블에서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그녀. 성실하고 욕심 많은 그녀가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자신의 기량을 어떻게 펼칠지 천천히 지켜볼 일만 남았다.

디너 마감 후 회의 중인 김은희 셰프와 스태프들.
디너 마감 후 회의 중인 김은희 셰프와 스태프들.
<Dinner at The Green Table>

제철 식재료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그린테이블의 디너 코스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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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muse
저온 조리한 새우살을 감태로 감싼 카나페, 그뤼에르 치즈를 넣은 프랑스식 홈런볼, 돼지감자와 대추토마토 피클, 그리고 양송이크림수프.

2. Crudo
학꽁치 피클, 도미 타르타르, 말똥성게, 새콤한 유자젤리.

3. Seasonal Appetizer
홍합, 삐소라, 알로에, 브라질리언 시금치에 곁들인 딜을 넣은 아이올리소스와 카피르 라임 코코넛폼.

4. Green Tree
생크림, 시금치, 구운 마늘을 넣은 플란과 허브 향 가득한 버섯 콩피.

5. Grains
보리와 녹두로 지은 밥에 나물 피클과 토란, 우엉, 초석잠을 올려 만든 비빔밥.

6. Fish
저온 조리한 도미, 더덕 퓨레를 곁들인 뇨끼, 단삼 제첩 브로스, 그리고 단삼차.

7. Main
수비드 기계로 저온에서 익힌 후 그릴에 구운 채끝등심.

8. Dessert
사과 소르베, 사과젤리, 사과칩, 캐러멜 밤, 대추 절임 등 제철 식재료 콤포지션.

더 그린테이블 INFO
한국의 제철 식재료를 사용한 음식을 선보이는 모던 프렌치 레스토랑으로 최근 압구정 로데오로 이전했다. 나물, 곡물, 생선, 해산물 등으로 구성된 런치와 디너 각각 한 가지 코스만을 서비스하며 120여 가지의 와인 리스트를 보유하고 있다. 휴무일이 월요일에서 일요일로 변경됐다.
· 런치 3만5000원, 디너 8만5000원
· 서울시 강남구 선릉로 155길 13 2층
· 02-591-2672

edit 이미주 — photograph 이과용, 이병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