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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버터 이야기

2016년 12월 13일 — 0

꿀과 함께 허니버터로 이름을 날리던 버터는 이제 고지방 저탄수화물 다이어트와 함께 다시 한 번 화제의 주인공이 되었다. 왜 일까. 그리고 우리는 버터를 어떻게 먹어야 할까.

text 정재훈 — edit 전보라 — photograph 이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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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방 저탄수화물 다이어트의 위력
소셜 미디어를 통해 보이는 세상은 평온하다. 내 주위에 고지방 저탄수화물 다이어트를 실천하는 사람은 고작해야 한두 명에 불과하다. 마블링 소고기를 버터에 찍어 삼겹살에 쌈 싸먹어도 살이 빠진다고 TV에서 떠들어도 흔들리는 사람은 없다. 한쪽으로 치우치는 극단적 식단으로는 지속적인 체중 조절이 어렵다는 생각에 모두가 동의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마트는 말한다. 꿈 깨시라. 세상은 흔들리고 있다. 그렇다. 진열대에 국내산 버터는 이미 품절이었고, 프랑스산 발효버터만 겨우 네 통이 남아 있었다. 한 달 전에도, 이번 방문 때도 마찬가지였다. 방송에 소개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고지방 저탄수화물 다이어트의 위력은 여전했다.

버터가 인기 있는 이유
버터는 고지방 저탄수화물 다이어트 열풍 속에서 떠오르는 스타다. 맛 좋은 버터를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이 다이어트에 뛰어드는 사람들도 있을 만하다.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는 맛도 일품이지만, 버터를 요리에 사용하면 음식의 풍미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릴 수 있다. 맛과 향기 물질을 녹여 혀의 맛봉오리에 전달하는 역할은 다른 지방과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버터는 성분 구성이 독특하다. 지방으로만 구성되는 식물성 기름과 달리, 버터는 유지방이 80% 이상이다. 그리고 16% 이하의 수분으로 구성된 액체 성분과 단백질, 탄수화물, 비타민, 미네랄로 구성된 2~4%의 고체 성분(우유 고형분)으로 이뤄져 있다. 버터를 가열하면 수분이 증발하면서 우유 고형분 속의 단백질과 젖당이 반응하여 새로운 맛과 향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버터 특유의 갈변 반응 때문에 채소, 육류, 생선과 같은 식재료를 버터로 조리하면 표면이 황금빛으로 반짝거리고 풍미가 더 깊어진다. 그러나 우유 고형분의 갈변 반응은 버터가 쉽게 타버리는 단점의 원인이기도 하다. 정제하지 않은 버터는 내열성이 약하여, 가정에서 장시간 육류나 생선을 조리하는 용도로 사용하기가 어렵다. 스테이크를 구울 때 처음에는 식물성 기름을 팬에 두르고 굽다가 나중에 버터를 녹여 끼얹는 것도 버터가 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기름을 버터와 함께 쓰면 덜 탈까? 많은 요리책에는 그렇게 설명되어 있다. 하지만 틀렸다. 버터를 타게 만드는 것은 고형의 단백질과 당이다. 이들을 걸러내지 않는 이상, 기름을 더한다고 해서 내열성을 높일 수는 없다.) 그런데도 미식가의 관점에서 버터 중심의 고지방 저탄수화물 다이어트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식단이다. 버터와 가장 잘 어울리는 음식을 머릿속에 떠올려보라. 죄다 탄수화물 음식이다. 빵 조각 위에 버터를 올리고, 따끈한 밥에 버터와 간장을 넣어 비비고, 구운 감자에 버터와 사워크림을 얹어 먹는다. 밋밋한 탄수화물 음식에 버터 특유의 풍미가 더해지면 음식의 맛이 살아난다. 화이트 소스의 대표격인 베샤멜 소스와 우리에게 친숙한 데미글라스 소스의 농후함도 버터와 밀가루로 만든 갈색 또는 흰색의 루roux가 더해진 덕분이다. 제빵으로 가면 버터는 더욱 다재다능해진다. 바삭한 파이와 촉촉한 쿠키, 입에서 살살 녹는 케이크는 모두 버터와 설탕, 밀가루의 합작품이다. 버터는 전분질 음식의 오랜 친구였다. 불행히도, 요리와 식문화 속에 담겨 있는 이들의 우정은 고지방 저탄수화물 다이어트로 인해 깨지기 직전이다.

버터로 살을 뺄 수 있을까
고지방 저탄수화물 식단은 과학자의 관점에서도 이해하기 어렵다. 버터와 중쇄지방(MCT)을 넣어 만든 방탄커피의 경우가 그렇다. 화학적으로 보면 버터는 물방울을 지방이 둘러싸고 있는 형태의 유중수형(Water-In-Oil) 에멀젼Emulsion이다. 주로 지방이니 물과 잘 섞이지 않는다. 반대로 크림은 기름방울을 물이 둘러싼 형태의 수중유형(Oil-In-Water) 에멀젼이다. 커피와 제대로 섞기 위해 블렌더가 필요한 버터와 달리 크림은 티스푼만으로도 커피와 타서 마실 수 있다. 버터보다 크림에 당분이 조금 더 들어 있긴 하지만, 지방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적은 양이다.
과학적으로 보면 손쉽게 타 마실 수 있는 크림을 두고 굳이 커피에 버터를 넣어 블렌더로 갈아 마셔야 할 이유가 없다. (생산자 입장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기껏 우유 크림을 기계로 휘저어 알갱이를 만들고 남은 버터밀크를 씻어내고 이겨서 버터를 만들었더니 그걸 다시 블렌더로 휘저어 크림으로 만드는 셈이기 때문이다.) 방탄커피에 함께 넣는 중쇄지방은 어떤가? 이 커피를 판매하는 미국의 IT 기업가 데이브 애스프리의 중쇄지방에 공복감을 줄이고 포만감을 늘려주면서 대사를 촉진시켜 주는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야말로 주장일 뿐이다. 중쇄지방의 효과에 대한 연구 13건을 종합 분석한 2015년 연구 결과를 보면 이로 인한 체중 감량 효과는 기껏해야 0.5kg에 불과하며, 실험 참가자의 수와 실험설계 면에서 보면 그조차도 신뢰하기 힘든 수준이다. 이론은 단순하고 현실은 복잡하다. 누군가 새롭고 특이한 이론을 들고 나오면 미디어는 마치 증명된 사실인 양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하지만 그 이론이 정말 믿을 만한 것인지 과학자들이 결론을 내리는 데는 훨씬 더 긴 시간이 걸린다. 고지방 저탄수화물 다이어트가 인슐린 분비를 줄여준다. 지방이 에너지원으로 쓰이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케톤에 추가적인 체지방 분해 효과가 있다는 가설은 매력적으로 들린다. (케톤이 뭔지 궁금하다면 네일 리무버로 쓰이는 아세톤을 떠올리면 된다. 진한 발효버터의 향기도 미생물이 버터를 먹고 남긴 디아세틸이란 케톤 덕분이다.)
하지만 실제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고지방 다이어트만의 극적인 체중 감량 효과는 허구에 가깝다. 2015년 미국 국립보건원 연구 결과에서는 저지방 식단이 체지방 감량에 고지방보다 도리어 조금 나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지방 다이어트로 체중 감량에 성공한 스웨덴의 사례가 있지 않냐고? 25년 동안 북부 스웨덴에서 14만 명의 남녀를 대상으로 한 관찰 연구 결과를 보면 2004년부터 2010년까지 스웨덴 사람들의 탄수화물 섭취는 줄고, 지방 섭취는 증가했지만, 체중은 꾸준히 증가했다. 언론에서 비춰주는 것처럼 고지방 식으로 살이 빠진 사람이 있었을 거고, 그대로인 사람도 있었을 것이며, 살이 찐 사람도 있었을 거다. 그런데 전체를 놓고 보면, 저지방식이든 고지방식이든 체중은 증가했다. 연구를 이끈 잉게거드 요한슨은 연구 결과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영양과 건강의 관계는 복잡하다. 특정 음식 구성 성분들과 그들 간의 상호작용, 유전적 요인과 개인적 필요와의 상호작용 등이 관련된다.”

버터, 어떻게 먹을 것인가
고지방 다이어트의 반대쪽에는 30년 전 안셀 키스가 내세웠던 저지방 식단이 있다. 그는 달걀과 버터를 먹으면 콜레스테롤 수치가 올라가고 그로 인해 심장병에 걸린다는 과감한 주장을 펼쳤고 대중과 미디어는 박수로 화답했다. 하지만 지난 30년간 축적된 과학적 자료는 안셀 키스의 이론이 실제와는 거리가 멀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식이조절만으로 콜레스테롤 수치를 조절하기는 어려울 뿐더러, 심혈관계에 미치는 콜레스테롤의 영향도 과거에 이해했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단순히 악당으로 치부되었던 지방의 누명이 벗겨진 것이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동물성 지방이 생각보다 해롭지 않다는 과학적 사실은 동물성 지방을 많이 섭취할수록 건강에 유익하다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악이 아니면 선이 되는 것은 소설 속의 이야기다. 과학은 우리가 하나의 음식 또는 영양 성분의 선악을 가르기 힘든 복잡한 현실 세계에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 글을 쓰면서 시식하고 남은 버터를 조심스럽게 포장지로 감싸 다시 냉장고에 넣었다. 버터는 주변의 냄새를 쉽게 흡수하므로 보관할 때 특히 주의가 필요하다. 이런 버터의 특성을 거꾸로 이용해서 향신료와 허브를 넣어 맛을 내기도 한다. 마늘 버터, 헤이즐넛 버터, 레몬 버터에서 랍스터 버터와 캐비어 버터까지, 다양한 풍미의 버터를 차갑게 식혔다가 조각을 잘라 요리와 함께 낸다. 사실이지 버터만 먹으면 금방 질린다. 잡식동물인 사람에게 가장 맛있는 버터는 다른 음식과 함께 먹는 버터다. 복잡한 현실 속에서 버터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음식은 골고루 먹으라는 교훈일 것이다.

정재훈은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한 후 캐나다 토론토에서 다년간 약사로 일했다. 음식만큼이나 사람들과 요리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한다. 잡지, TV, 라디오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음식과 약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전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정재훈의 생각하는 식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