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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ing

에멘탈 치즈 @신희

2016년 11월 21일 — 0

S가 에멘탈 치즈의 마지막 조각을 자르는 순간 사람들이 에멘탈 치즈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고요했던 갤러리는 마치 마법이라도 부린 양 생기를 띠었다.

text 신희 — illustration 박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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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갤러리는 요술을 부린 양 사람들이 금세 많아졌다. 어디에 있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언제 그토록 빨리 몸단장을 하고서 이곳에 모여들었을까. 블루 재킷을 팔에다 건 민소매 차림의 여자와 청회색 정장 차림의 남자가 내 쪽으로 걸어오는 바람에 길을 비켜주었다. 그 사람들 말고는 사진 감상을 하는 사람이 없어 보인다. 사진에 대해 말하는 것 같지도 않다. 사진이 변변치 않은가? 눈빛은 갈 곳을 잃은 듯 불안해 보이고 두 손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처럼 허공에 어색하게 떠 있다. 오늘의 주인공은 S다. S는 출입문에 바투 서서 손님맞이 하느라 열심히 입을 벙긋거린다. 나는 사진 한 장을 멍하니 올려다본다. 사진 속에는 웬 사내가 노천카페에 홀로 앉아 무엇을 먹고 있다. 걷어 올린 셔츠 소매 아래로 드러난 팔뚝에 잔털이 쫙 깔려 있다. 사내는 까만 선글라스를 꼈다. 내 눈길은 극단적으로 높은 콧등과 귀밑에 달린 팥알만 한 사마귀를 지나 사내가 막 포크로 찍은 샐러드에 가서 멈췄다. 그때였다. 누군가 내 어깨를 툭 쳤다.
— 어릴 적에 <톰과 제리> 봤어?
돌아보니, 하 박사였다. 하 박사와 나와 S는 학부 때 친구로 지금까지 별 말썽 없이 지내왔다. 기차를 타고 강촌으로 놀러 갔던 그날 밤이 생각난다. 늦은 밤까지 소주병을 빨고 빨다가 풀밭에 앉거나 서서 시원하게 오줌을 누었는데, 그 장면이 떠오를 때마다 아찔해진다. 하 박사는 독일에서 박사 과정을 마친 뒤 시간 강사로 지방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하 박사의 인사법은 원래가 독특하다. 그래도 그렇지, 기껏 S의 사진 초대전시회 오프닝에 와서 사진에 관한 담화는 고사하고 전혀 어울리지 않게 웬 뚱딴지같은 소리냔 말이다. 해서 나는 물었다.
— 웬 톰과 제리?
팔짱을 끼고는 사진을 보는 둥 마는 둥 하던 그가 대답 대신 거칫한 턱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의 눈길을 되는대로 따라가 봤다. 실내 가운데에 놓여 있는 길쭉한 식탁이 한눈에 들어온다. 식탁 위에는 크고 작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납작한 원통 모양의 치즈가 놓여 있다. 그 치즈가 구멍마다로, 살아 있는 사람처럼 숨을 쉬고 있는 듯했다. 치즈 겉면은 매끈하고 밝은 황금빛이었으며 물레방아 바퀴 모양을 하고 있다. 군침이 돌았다. 나는 그 덩이 치즈를 얇게 슬라이드 떠서 크래커 위에 얹어 입안에 쏙 넣었다. 물론 상상으로 말이다. 꽃향기랄까 과일 향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맛은 고소하고 톡 쏘는 듯했으며, 뒷맛은 달콤했다. 나는 눈알을 굴려 와인을 찾았다. 과연 테이블 한 켠에 화이트와 레드 와인이 요요한 색시처럼 서 있다. 갑자기 목이 말랐다.
— 그럼 그렇지. 와인이 없을 리 없지.
— 그들은 단짝이니까.
하 박사가 맞장구를 쳐주는 바람에 나는 흥이 나 한술 더 떴다.
— 단짝을 넘어 아예 죽고 못 사는 사이라니깐.
실없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반듯한 직장도 없이, 나이는 서른하고도 여덟 살이나 더 먹은 주제에 더군다나 갤러리에서 품위 떨어지는 소리만 해대는 꼴이 한심하다 못해 서글퍼지기까지 했다.
— 저 치즈를 보는 순간 톰과 제리가 생각났지. 항상 구석에 몰려 당하는 건 톰이고, 톰을 요리조리 피해 치즈를 덥석 먹어치우는 건 제리잖아. 그 치즈가 바로 저 에멘탈 치즈란 말이지.
— 하하, 하 박사. 아는 게 많아서 배고프시겠어.
내 웃음소리가 컸나 보다. 저만치서 누군가와 담소를 나누던 S가 힐끗 돌아본다. S는 허리가 꼭 끼고 소매 끝에 리본이 달린 흰색의 원피스를 입고 있다. S의 잘록한 허리가 슬프도록 농염하다. 언젠가 S는 어둠이 고인 술집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우리는 남의 인생을 스쳐갈 뿐이지. 남들이 갖고 있는 햇빛이나 미소를 느끼기란 쉽지 않아. 그래서 전시회 제목이 타자他者일까. S는 가슴이 답답하고 턱 막히고 탈장 수술을 한 사람처럼 무기력증에 빠질 때면 카메라를 들고 기차나 비행기를 탔다. 이번에 다녀온 곳은 프랑스 남부, 어느 도시였다. 어느새, S가 사람들 틈을 비집고 우리 옆에 다가왔다. 그러곤 물었다.
— 사진 어떠니?
이 순간을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른다. 나는 사진에 관한 한 문외한이다. 물론 S로서는 초대전시회를 열면 더 이상 아마추어라는 꼬리표를 달 일이 없이 당당히 작가로 데뷔하게 되는 기정사실 앞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하고 싶었을 것이다. 물론 나는 S가 훌륭한 사진작가가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대개가 그렇듯이, S의 사진 역시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모양이다. 사람들의 눈빛이 불안하게 흔들린다. 낮게 긴장감이 떠돈다. 아직도 사람들의 두 손이 허공에 어색하게 떠 있다. 나는 말했다.
— 내가 사진에 대해서 뭘 알아야지 말이야. 그건 너도 잘 알잖아.
결국 나는 나를 속이지 못했다. S는 행여 잊을세라 하 박사에게 이 먼 데까지 와줘서 고마워, 했고 뭘, 당연히 와야지, 사진 멋지네 하며 하 박사가 화답했다. 나는 S에게 입 발린 소리를 하지 않은 게 어쩐지 찜찜했다. 곧 S가 누군가를 알은척하더니 늘씬한 목을 흔들며 자리를 떴다. 사진 속 선글라스 사내가 자꾸만 내 시선을 끌었다. 왜일까. 사내와 나는 공유한 추억도 없고, 그래서 미움도 없고, 애정도 없고, 그래, 우린 그냥 아무런 사이가 아니잖아. 사내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식사를 하지만 아직 포크로 샐러드를 집은 채 아무것도 못 먹고 있다. 식사가 끝나면 사내는 무엇을 할까. 산책을? 데이트를? 사내의 텅 빈 어깨 위로 햇빛이 느긋하게 앉아 있다. 거리엔 햇살이 수북하고, 사내 뒤편에는 몇몇 사람이 머나먼 추억처럼 걸어간다. 아니, 그들은 그 자리에 홀로 멈춰 있다. 어쩌면 수백 년 동안. 저 길에서 그토록 오래 머물다니. 식물처럼, 혼자서, 묘지처럼 외롭게.
— 그래, 서울엔 어쩐 일로 행차하셨어?
내가 하 박사에게 물었다. 하 박사가 나직한 소리로 말한다.
— 응 뭐. 엄마한테 볼일이 있어서.
— 그럼, S의 데뷔전에 부러 온 게 아니었어?
— 실은…… 나도 그래. S와의 관계가 손상될까 불안해서 온 셈이랄까.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뭐.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혹시 이 모든 사람들도 나처럼 어떤 조그만 불안 때문에 온 게 아닐까? 나는 잠시 나를 떨게 하는 불안에 대해 생각했다. 또 하나의 사진이 내 시선을 끌었다. 그 액자 속에는 등 돌린 채 의자에 앉아 있는 또 하나의 사내가 들어 있다. 그 사내는 밝은 줄무늬 드레스셔츠 차림이다. 널찍한 등판에 등뼈가 약간 휘어졌을 뿐 군더더기 없는 근육질이다. 사내의 등이 빈 무대처럼 텅 비어 있다. 아무것도 읽을 수 없다. 무엇을 읽어야 할까. 바로 그런 이유로, 나는 그 사내의 텅 빈 등짝에 푹 잠겨 있었다. 물론 나는 그날, 어둠이 고인 술집에서 S가 한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남의 인생을 스쳐갈 뿐이고, 남들이 갖고 있는 햇빛이나 미소를 느끼기가 쉽지 않다는 걸. 어쩌면 우리의 삶은 그런 고독들로 만들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 에멘탈 치즈입니다.
먼 데서 들려오는 듯한 S의 목소리. 어렴풋하게. 아득하게. 식순이 끝났나 보다. 모두 S에게 시선을 돌린다. S가 칼을 든다. S가 치즈를 쪼갠다. 사람들 모두 에멘탈 치즈를 바라보고 있다.
— 여간해서는 쉽지 않을 거야.
하 박사가 내 귀에다 대고 말한다.
— 뭐가? 나도 입 모양만 만들어낸다.
— 에멘탈 치즈는 굉장히 딱딱하거든. 하지만 중간중간에 나 있는 구멍이 편리하게 쪼갤 수 있도록 도와주지.
과연 S는 케이크 모양의 에멘탈 치즈를 보기 좋게 쪼개고 있다.
— 근데, 구멍은 왜 생기는 건데? 내가 작게 말했다.
— 음, 구멍은 발효 중에 생기는 이산화탄소가 기포를 형성하기 때문이야.
— 오, 그래? 어떻게 그리 잘 알아?
— 으음, 독일에서 질리도록 먹은 게 치즈였다구.
너무 조용하다. 긴장된 분위기 때문인지 목구멍이 근질근질한 게 기침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다. 어디선가 잘강, 소리가 난다. S가 마지막 조각을 낸 뒤 활짝 웃는다. 지금 내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믿을 수 없다. 사람들이 에멘탈 치즈 가까이로 덤빌 듯이 모여 섰다. 에멘탈 치즈가 몸을 한껏 열어놓았다. 난 괜찮아요, 기왕 이렇게 된 몸 모두 다 나눠 잡수세요, 라고 마음껏 친절을 베푸는 듯했다. 하나둘 치즈 조각으로 팔을 뻗는다. 손들이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한다. 갤러리의 죽은 시간이 마법처럼 어느새 되살아난 것 같다. 실내가 부산스럽게 생기를 띤다. 나도 그들을 비집고 치즈 조각 하나를 냉큼 손에 넣는다. 무심결에 주머니 속 휴대폰을 꺼내 든다. 사진을 찍는다. 찰칵.

신희는 2010년 ‘제2회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에 단편 <제(祭)>가 당선되며 등단했다. ‘2013 젊은 소설’에 단편 <아직 오지 않은 거리>가 선정된 바 있다. 현대 사회 속 인간의 존재와 허무를 낱낱이 드러낸 첫 번째 장편소설 <해머링 맨>을 최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