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열기

main

Trend

언제나 맛있는 과자

2016년 11월 10일 — 0

언제 어디서 먹어도 맛있는 음식이 있다면 단연 과자다. 요즘 통통 튀는 수입 과자들의 인기가 갈수록 높아지면서 국내 과자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수입 과자는 우리의 친구인가, 적인가.

text 정재훈 — edit 전보라 — photograph 이향아

1110-cookie

과자를 즐기는 법
가을 제철 음식의 대표는 과자다. 연중 과자를 만들어 먹기에 딱 좋은 시기는 언제나 가을부터 겨울까지다. 추수한 곡식이 가장 풍성할 때에야 비로소 과자를 즐길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남는 곡물은 저장할 수도 있고, 알코올로 발효시켜 술을 빚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잉여 곡물을 활용하는 가장 놀라운 방법은 남녀노소가 모두 즐길 수 있는 달콤한 과자를 만드는 것이다.
과자는 배부른 위장 속에서 숨겨진 공간을 찾아내고, 가라앉았던 식탐을 다시 불태우기 위한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다. 식사 뒤에 배가 부른 사람도 웬만큼 의지가 강하지 않고서는 과자의 유혹을 떨치기 힘들다. 태생적으로 그렇다. 스페인산 블랙 트러플 프리미엄 포테이토 칩스Black Truffle Potato Chips와 일본산 우마이봉 콘포타지맛은 전혀 다른 과자처럼 느껴지지만, 동일한 목적을 수행한다. 과자는 우리가 신체의 포만 신호의 한계를 넘어서서 잉여 곡물을 즐길 수 있도록 설계된 음식이다. 그런 본래의 목적을 고려하면, 블랙 트러플 감자칩 과자 한 봉지(125g)에 1mg도 안 되는 적은 양의 송로버섯이 들어 있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값으로 치면 1원밖에 되지 않는 미량으로도 감자칩 전체에 송로버섯 특유의 묘한 향기가 느껴지는 게 그저 신기할 뿐이다.

수입 과자에 끌리는 이유
영국으로 건너가면 감자칩의 맛을 형용하는 문구가 또 달라진다. “봄베이에 매운맛이 더해졌을 때” “치킨 수프가 나의 하루를 살려낸 방법” “미스터 쏠트의 비밀”.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름이다. 그러나 맛은 이름의 특이함을 따라가지 못한다. 설탕, 정제 소금, 커민, 카옌, 파프리카, 강황, 회향, 생강, 계피, 호로파, 소두구, 너트메그, 정향, 쌀가루, 파프리카 추출물, 토마토 분말, 양파 분말, 마늘 분말, 구연산을 넣어 만들었다는 마드라스 시즈닝의 맛은 평범한 카레 맛에 불과했다. 히말라야 핑크소금으로 맛을 냈다는 더 데일리 크레이브 렌틸 칩스The Daily Crave Lentil Chips 역시 “당신의 욕구를 따르라”는 과감한 포장문구와는 어울리지 않게 그저 조금 더 짭조름할 뿐 여느 콘칩과 다를 바 없는 맛이었다. 과자에 히말라야 핑크소금을 넣는다고 해서 맛에 차이를 가져올 수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원료 표기상 히말라야 핑크소금보다 그냥 소금이 더 많이 들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연한 귀결이다. 수입 과자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인가? 다양하고 이국적인 맛인가, 아니면 맛을 묘사하는 문구의 독특함 때문인가?
의문은 폴트 딸기 타르트에서 풀렸다. 비슷한 국산 제품을 먹을 때마다 딸기잼의 양이 조금만 더 많았더라면 하는 생각을 했었다. 어렸을 때부터 빅파이, 후렌치파이 같은 국산 과자를 먹으면 풍요로움 속에서도 모종의 결핍이 느껴졌다. 이에 비하면 프랑스산 딸기 타르트의 정중앙에서 면적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잼은 풍성함 그 자체였다. 생지에 넣은 코코넛 조각이 입에서 걸리적거려도 충분히 즐거웠다. 가운데 살짝 얹어진 잼 부분만 남도록 주변의 과자를 잘라내어 먹은 다음, 남은 잼을 씹으며 즐거움을 만끽했던 어린 시절부터 상상 속으로 그려보던 과자가 현실이 된 것이다. 묵직한 수입 과자 봉지들을 집어 들어보면 과자가 부스러지는 걸 막기 위해 질소 충전을 한다는 업체들의 변명에 의문이 생기지만, 사실 국산 과자에 대한 불만이 반드시 질소 충전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대형 마트의 국산 과자들 가운데는 나의 혀를 기쁘게 하려는 생각보다는 재료비 절감으로 대기업 회장님의 비위를 맞추고자 하는 의도가 배어 나오는 것들이 너무 많다. 과자를 먹는 사람이라면 단순히 150g에 2000원이라는 가격보다는 그 150g을 어떤 재료들로 어떻게 채우고 있느냐에 관심이 가기 마련이다. 소비자의 불만에는 이유가 있다. 우리는 왜 그렇게 많은 공간을 질소를 채울 수밖에 없는지 해명을 듣고 싶은 게 아니다. 더 많은 공간을 과자로 채운 제품을 바라는 것이다.

수입 과자는 더 건강한가
과자는 잉여 곡물을 소비하기 위한 훌륭한 방법이지만, 동시에 과잉 열량 섭취로 인한 독이 되기 쉬운 음식이다. 과자가 건강을 해치는 적이라는 생각은 세계 어디에나 널리 퍼져 있는지, 과자 포장의 문구도 국적과 제조사를 초월해 비슷비슷하다. 무가당, 글루텐 프리, 할랄, 코셔, 인공향료, 인공색소 무첨가, 트랜스 지방 프리. 모두 의미 없다. 과자에 당을 첨가하지 않아도 과자 속 전분질은 빠르게 당분으로 분해되어 흡수된다. 과자가 건강에 해로운 것은 그로 인한 과잉 열량의 섭취 때문이다. 글루텐, 인공향료, 인공색소가 간혹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겠지만, 과잉 열량 섭취로 인한 비만과 과체중의 문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멀리 바다를 건너오며 더 많은 방부제와 보존료를 넣지 않았겠냐고? 대부분의 과자는 수분 함량이 낮아서 그런 투자를 하지 않아도 비교적 오랫동안 보존이 가능하다. 있지도 않은 적에 대한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다. 문제는 양이다. 과자는 적게 먹기가 너무 어려운 음식이다. 다시 말하지만, 애초에 그렇게 만들어졌다.
영양 구성 면에서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것도 문제다.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대부분의 과자는 탄수화물 위주의 식품이다. 지방은 많이, 탄수화물은 적게 먹어서 체중도 줄이고 건강도 회복할 수 있다 하여 최근 유행하는 LCHF(Low Carbohydrate High Fat) 다이어트와 과자는 정반대 지점에 있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영양 균형이 맞지 않는 다이어트는 어느 경우든 지속이 어렵다. 과자 다이어트가 어려운 것처럼 고지방 저탄수화물 다이어트도 오래 지속하기 힘들다. 잘 먹고 과자를 또 먹으면 체중 증가를 막기 힘든 것처럼 고지방 저탄수화물 다이어트에도 음식을 조금 더 추가해서 다양성을 높여주면 초기의 체중 감소 효과는 금방 사라진다. 건강에 해롭다며 과자를 적게 먹으려 하는 사람들이 다른 한편으로 LCHF 다이어트와 같은 식으로 뭔가를 많이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애쓴다는 것은 모순적이다. 큰 틀에서 잘못된 계획을 실행하면 세부가 어떻든 결과는 동일한 실패로 끝난다.

과자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들
음식이 한 사회의 문화에 대해 알려준다면 과자 또한 그러하다. 맥비티 홉놉스Mcvities Hobnobs는 영국인들의 티타임에 안성맞춤이다. 악마의 과자라는 호주의 팀탐도 비슷하다. 비스킷을 차에 적셔 먹듯 팀탐의 한쪽을 살짝 베어 먹고 다른 한쪽을 음료에 담가 스트로처럼 빨아 먹다 보면 겉면의 초콜릿은 녹고 안쪽의 과자 부분은 액체를 흡수하여 부드러워진다. 티타임에 맞춰 하루에 한두 개를 먹으면 적당하지만, 아무런 맥락 없이 간식으로 우적우적 씹어 삼키다 보면 대여섯 개를 쉽게 해치우게 된다. 밥 두 공기에 맞먹는 열량을 순식간에 섭취하게 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마트의 세계 과자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드러난다. 세계의 과자를 한곳에서 맛볼 수 있다고 해서 우리가 그들 각각을 만들어낸 나라들에 더 깊은 관심을 갖게 되진 않는다. 초콜릿 크림을 비스킷 사이에 넣고 다시 진한 초콜릿으로 겉면을 감싼 호주 과자를 먹는다고 해서 내가 호주를 사랑하는 사람이거나 호주의 식문화에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처음 팀탐을 먹었을 때 나는 그게 호주에서 만든 과자인지도 몰랐다. 끝을 잘라서 음료를 빨아 마시는 이야기도 이번에 글을 쓰면서 자료 조사를 하다 처음 알게 된 것이었다. 이탈리아의 미수라 토스트 비스킷을 통해 이탈리아의 식문화에 대해 더 배운 건 하나도 없었고, 미국의 테라 오리지널 칩스를 맛볼 때도 미국 생각은 거의 나지 않았다. 다른 나라 과자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딱 그 정도다. 러시아 사람들이 초코파이를 먹기라도 하면 언론에서는 그들에게 한국의 식문화를 널리 알리고 수출한 것처럼 자랑스러워하지만, 정작 그걸 먹는 사람들은 과자 이외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과자를 통해 보면 국가 차원에서 한식을 세계에 알리겠다는 한식 세계화의 허상이 드러난다. 국내산보다 외국의 과자를 선호한다고 걱정할 일도 없고, 다른 나라에서 한국산 과자를 즐겨 먹는다고 자랑스러워할 것도 없다. 과자는 원래 맛있어서 먹는 음식이다. 그냥 좀 여유롭게 즐겨보자.

정재훈은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한 후 캐나다 토론토에서 다년간 약사로 일했다. 음식만큼이나 사람들과 요리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한다. 잡지, TV, 라디오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음식과 약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전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정재훈의 생각하는 식탁>이 있다.

이 기사도 읽어보세요
진진 같은 곳에서 같은 것을 먹고 느낀 전문가와 아마추어의 생생한 레스토랑 평가서. 이달은 요즘 핫 플레이스로 떠오른 중식 레스토랑 진진을 찾았다. edit: 김옥현 / photograph: 안세경 THE ...
유리컵&플레이트 여름에는 유리 소재의 테이블웨어가 식탁을 더욱 돋보이게 해준다. 다양한 컬러와 디자인의 컵부터 요리를 투명하게 담아내는 플레이트까지, 보기만 해도 청량해지는 테이블웨어를 소개한다. edit 권민지 / photo...
페르피냥의 와인 눈부시게 맛있는 와인을 만드는 남프랑스 루시용의 와인 수도, 페르피냥 근교에 다녀왔다. 가을로 접어드는 남프랑스 와인 산지 루시용의 포도밭 풍경.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이 포도의 건강을 해치는 바닷바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