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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ing

가을, 조개구이 @김엄지

2016년 10월 21일 — 0

기분 좋게 취한 그와 그녀가 해가 뜨기 전까지 할 수 있는 것은 많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 채 가장 예쁜 조개껍데기를 하나씩 골라 쥐고 밖으로 나섰다.

text 김엄지 — illustration 왕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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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비가 내릴 거야.
하늘은 깊은 바다의 색이었다.
그와 그녀는 해변에 서 있었다.
파도는 멀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산을 보도록 하자. 그가 말했다.
나는 산보다 바다가 좋아. 그녀가 말했다.
그와 그녀는 끌어안았다.
서로의 어깨너머로 각자 산과 바다를 보았다.
그가 바라보는 산은 하늘보다 더 짙은 어두움이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바다의 수면에 떨어지는 빗방울들을 바라보았다.
비는 옅게 내리기도 했고, 그와 그녀는 비가 그쳤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더 어두워지면 돌아가자. 그가 그녀를 안고 말했다.
더 어두워지면 돌아가고 싶지 않을 거야. 그녀가 말했다.
그럼 돌아가지 말자. 그가 말했다.
돌아가야 해. 내지 않은 세금이 있어. 오늘까지 내지 않으면 가스가 끊길 거야. 전기도 끊길지 몰라. 이미 끊겼을지도 모르겠어. 그럼 다시 신청해야 하고. 끔찍해. 그녀가 말했다.
뭐가 그렇게 끔찍해? 그가 물었다.
끊기는 것보다 다시 신청해야 하는 것. 다시. 그녀가 대답했다.
그렇군. 끔찍하군. 그가 말했다.

너는 왜 바다를 좋아하지? 그가 그녀에게 물었다.
바다에서 태어났거나. 바다에서 한번 죽었거나. 그녀가 대답했다.
너는 왜 산을 좋아해? 그녀가 그에게 물었다.
산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아. 산은 그저 그래. 그가 대답했다.
그래. 나쁜 건 가스야. 나쁜 건 전기고. 그녀가 말했다.
나쁘지 않아. 돌아가서 세금을 내면 되지. 그가 말했다.
세금을 내야 하다니. 또 세금을. 그녀가 말했다.
비가 거칠게 내리기 시작했다.
계속 비야. 그녀가 말했다.
괜찮아. 그가 말했다.
어두움 속에서 파도 소리는 더 커졌다.
춥다. 그녀가 말했다.
응. 이제 춥네. 그가 말했다.
그와 그녀는 조개구이를 파는 비닐하우스를 향해 걸었다.

비닐하우스의 내부는 비리고 짠 냄새, 부연 연기와 뜨거운 습기로 가득했다.
조명은 백열전구의 노란색이었다.
테이블마다 웅성거림이 있었다.
둘은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그녀는 모둠조개구이와 소주와 맥주를 주문했다.
조개탕도 주세요.
매운 고추 많이 넣어주세요. 칼칼하게요. 맵게 먹고 싶어요.
요구는 갖가지였다. 너 매운 것 잘 먹니? 그가 그녀에게 물었다.
매운 거 아주 좋아. 그녀가 대답했다.
술병들이 먼저 테이블에 올랐다.
한잔할까.
조개가 구워지기 전에, 둘은 술부터 마셨다.
그녀는 소주만 마셨고, 그는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셨다.

너 해산물 즐길 줄 아니? 그가 그녀에게 물었다.
어. 좋아해. 연어. 메로. 기름진 물고기 좋고. 멍게 향도 좋아. 그녀가 대답했다.
불 들어가요. 테이블 가운데 불이 놓였다.
불 위에 키조개, 칼조개, 백합, 대합, 웅피, 명주, 가리비가 올려졌다.
그는 목장갑을 끼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개껍데기 달궈지는 냄새가 올라왔다.
뜨거운 가운데 조개껍데기가 딱딱 벌어졌다.
가리비에 뿌려진 치즈가 진득하게 녹기 시작했다.
빨리 먹고 싶어. 맛있겠어. 그녀는 입맛을 다셨다.
잘 익혀 먹어야 해. 그가 말했고,
좀 덜 익혀야 촉촉하고 야들야들해. 그녀가 말했다.
덜 익히면 위험해. 그가 말했다.
위험한 건 가스고 전기야.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가장 먼저 가리비를 먹었다.
그는 가장 먼저 백합을 먹었다.
그녀는 조갯살에 초장을 듬뿍 찍어 먹었다.
그녀는 조개를 다 삼키기 전에 소주를 들이켰다.
그녀는 조개를 씹다가 입 밖으로 침을 흘리기도 했다.
그는 땀을 흘렸다.

둘 다 쩝쩝거리며 먹었다.
비닐하우스에 비가 떨어지는 소리가 계속되었다.
파도는 더 크게 철썩거렸고, 소주는 차가웠고, 조갯살은 부들부들하고 담백했다.
이렇게 취하기 좋은 밤인데, 집에 돌아가야 하다니. 그녀는 한숨을 쉬기도 했다.
해 뜨는 걸 보고 갈까? 그가 그녀에게 제안했다.
좋아. 그런데 해가 뜰 때까지 우리 뭐 하지? 그녀가 그에게 물었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둘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숙소를 잡고 두어 시간 잘 수 있다.
자다가 꿈을 꿀 수 있다. 우리는 어쩌면 같은 꿈을 꿀 수도 있다. 악몽일 수 있다.
술을 더 마실 수 있다.
편의점에 들러 팩소주와 우비를 살 수 있다.
우비를 입고 해변을 더 걸을 수 있다.
해변을 걷는 것과 술을 마시는 것을 동시에 할 수도 있다.
해변에 앉을 수도 있다.
모래성을 쌓을 수 있고, 모래성을 무너뜨릴 수 있다.
해변에 누울 수도 있다. 별은 아마 보이지 않을 것이다. 구름이 무겁게 지나갈 것이다.
산과 바다를 번갈아가며 바라볼 수 있다.
산과 바다를 향해 소리를 지를 수 있다.
산속에서 들리는 울음소리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다.
산속에서는 아무도 울지 않을 수도 있다.
산으로 향하지는 말자.
우리 천천히 먹자.

그와 그녀는 조개탕에 집중하기로 했다.
조개탕의 국물에 푸른빛이 돌았고, 매큼한 향이 올라왔다.
시원해. 그는 국물에 감탄했다.
이거 먹으려고 여기 온 것 같아. 그녀 역시 국물이 마음에 들었다.
비가 언제 그치려나. 둘은 짐작해보기도 했다.
비는 그치지 않았고, 둘은 술병을 모두 비웠다.
둘은 테이블 위에 모든 것을 다 먹었는데, 계속해서 허기졌다.
돌아가야 할지, 남아서 뜨는 해를 보아야 할지,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둘 다 적당히 취해 기분이 좋았다.
제일 예쁜 조개껍데기를 찾아볼까? 그와 그녀는 수북이 쌓인 것 중에서 골랐다.
바다에 던지자. 둘은 각자 조개껍데기 하나씩 들고 밖으로 나섰다.

김엄지는 현대인들의 삶을 건조하면서도 날카로운 문체로 그려내, 한국 소설의 새로운 미래라 불리며 주목받는 젊은 작가다. 단편소설 <돼지우리>로 2010년 ‘문학과 사회’ 신인문학상에 당선되며 등단했다. 소설집 <미래를 도모하는 방식 가운데>와 에세이집 <소울반띵>(공저), 장편소설 <주말, 출근, 산책: 어두움과 비> 등이 있다. 동인 ‘무가치’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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